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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득이의 꿈
 만득이의 꿈
ⓒ 황정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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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정다감한 바람돌이 만득이

자원봉사 선생님들과 함께 색칠공부와 수학공부 등을 하고 있는 지구촌지역아동센터 어린이들.
 자원봉사 선생님들과 함께 색칠공부와 수학공부 등을 하고 있는 지구촌지역아동센터 어린이들.
ⓒ 조호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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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득(가명·11·초등4학년)이는 식당종업원으로 일하는 엄마와 인터넷 게임에 푹 빠진 중학생 형과 셋이서 가리봉 벌집 동네에서 산다. 그래서 슬프거나 우울하냐고? 그렇진 않다. 만득이에겐 마음의 안식처이자 놀이터인 지구촌지역아동센터가 있다. 공부방 동생들인 민우(3학년)와 브라이언(2학년)이 가끔가다 대들어서 싸우기도 하지만 곧 화해하고 더 친하게 지낸다.

"만득이는 도예시간이 되면 찰흙으로 레고, 도자기, 컵도 만드는데 솜씨가 아주 좋아요. 뿐만 아니라 종이접기도 잘하는데다 만화책까지 만들었어요. 그런데 만화책은 아무한테나 보여주지 않아요. 몰래 숨겨 놓았다가 좋아하는 선생님에게만 살짝 보여줘요."

손하영(38·여) 센터장의 귀띔이다. 재주꾼 만득이는 A4 이면지에다 습작 중인데 <핀과 제이크의 모험>과 <소년무사 바람돌이>가 현재의 대표작이다. 이면지를 접어서 엮은 <소년무사 바람돌이>는 현재 20화까지 만들었는데 앞으로 24화까지 더 그릴 예정이다. 주요 등장인물은 주인공 바람돌이와 악당, 괴물, 고르곤, 바이퍼, 공주, 그림자 무사 등이다.

만득이는 살가운 아이란다. 개구쟁이들의 뒤치다꺼리를 하다가 너무 지쳐서 주저앉고 싶을 때면 어깨를 주물러주겠다고 다가오는 만득이의 그 손길에 그만 행복해진단다. 만득이는 지역아동센터의 누나동생들을 지켜주는 바람돌이이기도 하다. 하연(5학년)이 누나가 학교에서 남자친구들에게 놀림을 당할 때 만득이가 소년무사처럼 '짠!'하고 나타나 5학년 형들을 제압했다는 것이다.

지역아동센터의 바람돌이인 만득이가 태권도를 배우는 것은 악당들을 물리치기 위해서다. 그렇다고 해서 만득이가 주먹 자랑이나 하는 일진이냐고? 아니다. 마음도 말도 부드러운 만득이는 평화주의자다. 우리의 주인공 만득이에게 학교와 사회의 문제인 '왕따'에 대해 물었다.

"니네 학교엔 왕따 없니?"
"거의 없~어~요. 조금 있긴 있어요."
"왕따 당하는 친구를 보면 명수 너는 어떻게 하니?"
"왕따 당하는 친구와 왕따 하는 친구를 모두 도와주고 싶어요!"
"왕따 당하는 친구를 도와주겠다는 것은 알겠는데 왕따 하는 친구를 어떻게 도와줄 수 있니? 설마 같이 왕따 하겠다는 것은 아니겠지?"
"그게 아니고요. 왕따 당하는 친구를 도와주는 것은 당연하잖아요. 그런데 왕따를 없애려면 친구의 마음을 바꿔야 하잖아요. 왕따 하는 친구에게 '왕따는 나쁜 짓이니 하지 말라고'하면서 착한 길로 인도하고 싶어요!"

무의식적으로 망각하게 된 이유?

아이들의 상장이 걸려 있는 지구촌지역아동센터
 아이들의 상장이 걸려 있는 지구촌지역아동센터
ⓒ 조호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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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네시아에서 온 브라이언은 게임에 푹 빠졌다.
 인도네시아에서 온 브라이언은 게임에 푹 빠졌다.
ⓒ 조호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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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득이는 일곱 살까지 중국에서 살았다. 만득이네 가족이 한국에 온 것은 다른 중국동포들처럼 '코리안드림' 때문이다. 중국에서 태어났으니 중국말을 잘하겠지 싶어서 "점심 먹었어요!"를 중국말로 어떻게 하냐고 물었더니 "중국말 다 까먹었어요. 생각나지 않아요." 그러는 것이다.

중국말뿐이 아니라 중국에서의 생각이 전혀 나지 않는단다. 언어는 그렇다 치고 자신이 자라고 놀았던 동네나 친구 이름까지도 전혀 기억이 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왜 기억이 나지 않는 걸까?

"엄마아빠가 많이 싸워서 그랬나 봐요!"

남의 이야기 하듯이 단서를 '툭' 던진다. 엄마아빠의 싸움이 심각했나 보다. 동포들이 모여 사는 길림성과 연변의 가정들은 쑥대밭이 됐다. 연변자치주 조선족의 2009년 이혼 건수는 1800여 건으로, 한국에 돈 벌러 떠난 여성 10명 중에서 7명가량이 이혼한다는 것이다.

영화 <황해>에서 연변 택시운전수 구남(하정우)이 황해를 건너 한국에 가게 된 것은 한국에 간 아내의 소식이 6개월째 끊겼기 때문이다.

그것은 고통스러운 기억이다. 저주하고 욕하며 주먹질에다 살림까지 부수는 그 끔직한 싸움에서 아이들이 할 수 있는 것은 울며불며 매달리는 것 뿐. 고통스럽거나 불안했던 기억을 까먹게(억압)하는 것을 '동기화된 망각'이라고 하는데 프로이트는 이를 '무의식적 현상'이라고 했다. 만득이는 엄마아빠의 끔찍한 싸움 때문에 중국에서의 기억을 무의식적으로 망각하고 있는 것이다.

만득이는 부모님의 이혼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 어쩌면 무의식적으로 외면하고 있는 건지도 모른다. 이혼에 대한 원인 제공은 아빠가 했다. 전기공인 아빠가 한국에 와서 인터넷 도박에 빠졌는데, 뼈 빠지게 일해서 번 돈을 날린 것이다. 돈 벌어서 떵떵거리며 잘살려고 한국에 왔다가 자본주의가 파놓은 수렁에 빠지면서 가정까지 파괴된 것이다.

만득이 엄마는 몸이 약하다. 최근까진 일식집에서 일했는데 몸이 아파서 그만뒀다. 하지만 마냥 누워 있을 수 있는 처지가 아니기에 식당 일자리를 찾아 이를 악물고 나섰다. 한국은 말이 통하는 나라이긴 하지만 의지가지 할 데가 없으니 낮선 타국이나 마찬가지다. 타국에서 여자 혼자의 몸으로 아들 둘을 키우는 것은 힘든 일이다. 만득이 엄마는 식당 영업이 끝나는 밤 10시쯤에 집에 돌아오는데 만득이와 중학생 형은 저녁밥쯤은 알아서 챙겨먹는다.

열한 살 가장인 만득이 "그래도 행복해요!"

지난해 크리스마스 잔치에서 연극을 하고 있는 지구촌지역아동센터 아이들.
 지난해 크리스마스 잔치에서 연극을 하고 있는 지구촌지역아동센터 아이들.
ⓒ 조호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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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득이는 엄마랑 중국동포교회(김해성 목사)에 다닌다. 교회에 가서 기도를 많이 한다고 했다. 만득이의 간절한 기도 제목은 엄마아빠가 사이가 좋아서 한 가정에서 행복하게 살게 해달라는 것. 하나님이 만득이의 간절한 기도를 들어주셨냐고 물었더니 아직은 아니란다. 그래서 "참 무심한 하나님"이라고 핀잔주듯 말했더니 그게 아니란다.

"하나님께서 제 기도를 안 들어주신 게 아니라 저보다 불쌍한 애들이 많기 때문에 그런 애들부터 도와주시기 때문이에요. 저도 힘들지만 저보다 더 힘든 친구들이 많아요. 가난해서 학교도 못 다니고 가리봉에 돌아다니는 친구들을 많이 봤어요. 저는 그래도 행복해요!"

가리봉 벌집 동네에 사는 만득이는 방 2개짜리 월세에 산다. 지역아동센터의 어떤 친구들은 단칸방에서 사는데다 월세까지 밀리곤 한다. 그런 친구에 비하면 행복하다. 손하영 센터장이 "만득이가 집안의 가장"이라고 귀띔해준다. 엄마는 자주 아프고, 아빠는 도박에 빠졌고, 중학생 형은 게임에 빠졌고…. 그래서 만득이는 엄마를 보호하기 위해, 게임에 빠진 형을 철들게 하기 위해 어른스럽게 행동하는 것이다.

만득이의 꿈은 과학자다. 그냥 과학자가 아니라 돈 엄청 버는 과학자다. 사랑하는 엄마를 동네 할머니들처럼 박스를 주우며 살게 하고 싶진 않다. 만득이는 NIE(신문활용수업) 공부시간에 과학자 만득이의 미래를 설계했다. 7년간 로봇 연구 끝에 성공해서 온 우주에 알려진 과학자가 되는데 그때가 34세가 되는 2034년이다. 애완용 로봇과 타임머신 등을 만들어 팔아서 부호가 된 만득이 회장의 고액기부 인터뷰가 실린 <지구촌일보>에는 이런 내용이 실렸다.

"(가난한 시절을 보낸 가리봉) 지구촌(지역아동센터)에 오랜만에 왔다. (이주민 가정의 이혼 편모가정에서 자란) 과거의 내가 생각나서 10,000,000,000원을 기부하였다."


태그:#가리봉, #지구촌지역아동센터, #이주민, #다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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