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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층에 불날 때 집에 계셨었어요?"

"네 있었어요. 그런데 그걸 어떻게 알았아요?"

 

"이틀 전인가, 그 집에 갔었어요. 집에 불이 났다면서 정수기 코디를 부탁해서요. 먹는 물이 급하잖아요. 다행히 정수기는 괜찮은데 집안이 난리도 아니에요. 장판, 벽지, 문틀 뭐하나 멀쩡한 것이 하나도 없는 것 같고. 집안은 모두 시꺼멓고 장롱이고 이불이고 다 타고... 청소전문인한테 맡겨야지 아직도 주방바닥을 닦아내는데 잘 지워지지 않더라고요."

"며칠 전에 엘리베이터 앞에도 연탄처럼 시커먼 발자국이 있더니 그 집 청소 때문에 그랬구나."

 

우리 집에 정수기 코디가 와서 주고받은 말이었다.

 

요란한 소방차 소리도 듣지 못하다니

 

지난주였다. 오전에 금세 집을 나선 남편에게 다급한 목소리로 전화가 왔다.

 

"왜 뭐 빠뜨리고 나갔어?"

"그게 아니고 우리 집 전기장판 다 꺼졌나 확인해 봐."

"내가 끄긴 껐는데."

"다시 한 번 잘 확인해보고 바깥 좀 봐. 지금 우리라인 9층에서 불이 나서 굉장하다."

 

난 전화를 끊고 베란다로 나가 밖을 보니 소방차와 구급차 등 9대의 차들이 아파트 앞마당을 가득 메우고 사람들은 웅성웅성하고 있었다. '세상에 이렇게 난리가 나도 모르고 있었다니' 만약 큰 불이 났더라면 어쩔 뻔 했던가. 순간 아찔했다. 이중창에 TV까지 크게 틀어놓아서 그런가, 소방차의 요란한 소리를 전혀 듣지 못했던 것이다.

 

마침 집을 나선 남편은 공동현관으로 향했고, 소화기를 들고 허겁지겁 9층으로 향하는 경비아저씨를 만나 남편도 함께 올라갔다고 한다. 소화기를 들고 안으로 들어가려고 했지만 매연 때문에 입구에서부터 꼼짝도 못하고 갈팡질팡하고 있을 때 소방관 아저씨들이 도착해서 무사히 불을 끌 수가 있었다고 한다. 그나마 다행인 것이, 금세 끌 수 있었고 더 큰 피해가 없다는 것이다.

 

화재의 원인은 요즘 빈번하게 신문방송에 나오는 전기장판 과열 때문이라고 했다. 작은방에서 자던 누군가가 전기장판을 끄지 않고 외출을 했고 끄지 않은 장판은 과열이 되어서 불이 붙었던 것이다. 오전 중이라 또 다른 방에서 다른 식구가 자고 있다가 무엇인가 요란한 소리와 메쾌한 냄새에 잠을 깨 거실로 나오니 온통 연기와 불길로 뒤 덥혔고, 거실에 있던 살림살이들은 거의 다  탔고, 안방까지 불이 붙어 장롱을 시작으로 온집안이 불에 활활 타고 있었다고 한다.

 

아주 조금만 늦었더라면 아파트 전체가 화마에 뒤 덥힐뻔?

 

아주 조금만 늦었더라면 진짜 간발의 차이로 아파트 전체가 불의 화마에 뒤덥히는 상황이 되고 말았을 것이다. 생각만 해도 끔찍했고 소름이 확 쏟았다. 방 3개의 구조인데 방 하나는 두 개의 방과 조금 떨어져 주방 쪽에 있었으나 그 방문마저 타버려 쓸 수 있는 것이 거의 남아 있지 않다고 한다. 

 

그날 그 난리가 났으니 나도 밖으로 나가봐야 했다. 통로 전체에는 꾀꾀한 매연냄새가 코를 찔렀다. 매연 때문에 사람이 죽는다는 것이 얼마나 고통스러운가가 실감나는 시간이었다. 9층보다 더 위에 사는 사람들은 입으로 코를 막고 자신의 집으로 올라가지도 못하고 엘리베이터 앞에서 우왕좌왕하고 있었다.

 

그때 소방관 아저씨들이 내려오면서 "이젠 올라가셔도 됩니다"라고 말한다. 아저씨들의 늠름하고 믿음직스러운 모습에 다시 한 번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소방차도 모두 돌아가고 아파트는 다시 평상을 되찾았다. 나도 집으로 들어왔다. 집에 있는 전열기구들을 다시 한 번 꼼꼼하게 확인했다.

 

난방비가 너무 비싸 전기장판들을 많이 사용해요

 

정수기 코디의 말이 "가스료가 언제 그렇게 많이 올랐는지 난방하기가 겁이 나요. 가스 비이 너무 비싸니깐 집집마다 전기장판을 많이 사용하잖아요. 그러니 이런 사고도 자주 생기고..." 하기사 나도 난방비가 너무 많이 나와 집에 혼자 있을 때에는 전기장판을 켜고 가스난방은 틀지 않고 있다.

 

화재가 난지도 어느새 일주일이 넘어가고 있다. 그 집에서 나온 화재의 잔재가 큰 트럭에 실려나가는 모습이 눈에 띄었다. 남편에게 그 집의 실정을 물어보니 집안에 있는 것은 트럭으로 몇 차인지도 모를 정도로 여러 번 버렸고 아직도 화마가 쓸고 간 잔재들이 집안구석구석 남아 있다고 한다. 아무튼 집안에 있는 가구, 살림살이, 전기제품 등은 거의 버려야하고 집수리도 몽땅 새로 해야 한다고 한다. 못쓰게 된 물건은 버리면 되지만 내부수리가 큰 문제일 것 같다는 남편의 말이다. 시꺼먼 뼈다귀만 남아 있는 집이 보는 사람도 심란 하다고 전해준다.

 

그러나 다행 중에 다행인 것은 인명피해가 없다는 것이다. 화재의 후유증이 그렇게 심하다는 것을 새삼 알게 되었다. 2층인 우리 집은 돌아가면서 방충망을 했다. 앞 베란다의 방충망은 모두 거두었다. 올겨울은 다른 해 겨울보다 무척 춥다고 한다. 23일 서울중부지방의 기온이 영하 11도까지 내려가는 맹추위가 찾아온다고 예고하고 있다. 그 추위는 며칠 동안 계속될 예정이라고 한다.

 

난방기구들의 사용이 더 많이 늘어날 것이다. 난방기구들을 좀 더 조심스럽게 사용해서 우리의 소중한 생명과 재산을 잘 지켰으면 하는 바람을 가져본다.  

 

9층 화재 후 달라진 남편

 

난 남편에게 "그나 저나 불끌 준비도 방법도 잘 알지도 못하면서 소화기를 들고 무작정 그집안으로 들어가서 뭘 어쩌려고. 그러다 큰일이라도 나면..."이라고 말했다. 그랬더니 남편은 "그러게 그게 그렇게 무식하게 덤빌 일이 아니더라고 현관 앞에 매연이 꽉 차 있으니깐 마스크도 없지 아무 준비도 없이 들어갔다가는 큰일 나겠던 걸" 한다.  

 

9층의 화재 사고가 난후 남편에게는 새로운 버릇이 생겼다. 평소 남편은 전기제품의 사용에 대해 특히 전원을 끈다거나 플러그를 뽑는 일을 대충 넘어가곤 했었는데 요즘에는 내게 묻는다. "전기장판은 잘 껐지? 외출 할 때에는 꼭 끄고 나가. TV는? 가스렌지 중간벨브는?..." 이에 난 "내가 다 확인했는데 당신이 다시 한 번 확인해 봐"라고 답한다.


태그:#화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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