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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일을 잊지 않는 것은 뒷일의 스승이 되고 역사를 거울삼아 미래를 창조해 간다(前事不忘, 後事之師. 以史爲鑑, 開創未來)
▲ 중국 난징대학살 기념관 입구 지난 일을 잊지 않는 것은 뒷일의 스승이 되고 역사를 거울삼아 미래를 창조해 간다(前事不忘, 後事之師. 以史爲鑑, 開創未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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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라는 핸들을 잡고 '미래'라는 앞을 향해 나아갈 때 '과거'라는 백미러를 보는 것은 매우 유용하고 사고를 예방하는 데 적지 않은 도움이 된다. 그래서 "지난 일을 잊지 않는 것은 뒷일의 스승이 되고 역사를 거울 삼아 미래를 창조해간다(前事不忘, 後事之師. 以史爲鑑, 開創未來)"는 말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여전히 유효해 보인다.

1937년 12월 13일, 난징(南京)을 점령한 일본군은 약 7주간 근대전쟁사상 가장 잔혹한 약탈, 살인, 강간, 파괴를 일삼았다. 그날의 일을 중국은 30만 명이 죽어간 '난징대학살'로 규정하며 잊지 않는 것으로 과거의 치욕을 되풀이하지 말자고 다짐하고, 일본 우익진영은 많아야 40~50명 사망설을 주장하고 '난징사건'으로 간단하게 치부하며 교과서에서 아예 언급조차 하지 않으려 하고 있다.

루촨(陸川) 감독의 영화 <난징! 난징!>(2009)에는 중국 국민당군이 끝까지 난징 인민들을 지키기 위해 시가전을 벌이며 저항한 것처럼 묘사하고 있으나 상하이에서 일본군에게 패한 국민당 패잔병들이 민간인 복장으로 난징을 안전하게 도망가기 위해 난징 시민들을 죽이거나 강탈하는 일도 많았다고 한다.

장제스가 난징을 끝까지 사수하라고 임무를 주었지만 옛 군벌 출신의 탕성즈(唐生智)는 목숨을 걸고 싸우겠다가 공언했다가 12월 12일 자신만 급하게 난징을 탈출하며 군사적 혼란만 가중시키며 무고한 난징 시민들을 독이 오를 대로 올라 있던 광폭한 일본군에게 방치, 헌납하고 말았다.

일본군은 만주를 발판으로 중국 내륙으로 깊숙이 침략을 감행하며 퇴로와 보급로가 길어지는 것에 부담을 느끼게 되었으며 무엇보다 잠재된 중국인들의 집단 저항을 두려워하였다. 그래서 점령지에 대하여 이른바 싼광(三光)정책을 실시한다. 즉 점령지의 모든 것을 불태우고(燒光), 죽이고(殺光), 약탈(搶光)하였다.

기념관 곳곳에서 발굴 전시된 시신들은 당시의 참혹상을 잘 대변해주고 있다.
▲ 난징대학살 기념관의 유골들 기념관 곳곳에서 발굴 전시된 시신들은 당시의 참혹상을 잘 대변해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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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군은 항저우(杭州), 상하이(上海) 전투에서 국민당의 저항이 예상 외로 거세 약 4만여 명의 사상자를 냈다. 물론 중국군은 그보다 훨씬 많은 25만 명이 사망하거나 부상당했다. 일본군은 그간 전투에서 쌓은 분노와 적개심을 무고한 시민들만 남은 난징에서 적나라하게 펼쳐놓았다. 일본군이 6주간 난징에서 저지른 만행은 인간의 야만성과 잔인함이 어디까지일 수 있는지를 여실히 보여주었다.
 
2만 명 이상의 여성들은 강간, 윤간 후 사살되었고 백기 든 군인들도 무차별 살해되었다. 총알을 아끼기 위해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칼로 난도질하고 생매장 하고 건물 안에 몰아넣고 불을 질러 죽였다.

인간을 총검술의 대상으로 삼고 어린 아이를 공중에 던져 칼로 베고 심지어 누가 더 목을 빨리 베느냐는 시합을 했고, 그것을 일본 본토에서는 '전공'으로 보도하였다.

일본군이 중국군의 항복을 종용하며 "항복하지 않으면 양자강을 핏빛으로 물들이겠다"고 했는데 그 말을 정말 실행에 옮긴 듯이 양자강은 온통 핏빛으로 붉어졌고 사방에 시체와 해골이 쌓여갔다.

30만 명의 희생자 숫자와 생매장되어 죽어가는 난징 시민의 모습이 형상화되어 있다.
▲ 난징대학살 기념관 30만 명의 희생자 숫자와 생매장되어 죽어가는 난징 시민의 모습이 형상화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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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징의 비극은 항일투쟁 과정에서 장제스가 이끄는 국민당의 무능함과 무책임한 철수작전도 문제가 없었다고 할 수 없다. 그러나 더 큰 책임은 점령지에서 민간인을 상대로 비인륜적인 만행을 일삼은 일본군에 있다. 그리고 더 큰 잘못은 지금도 그 역사를 인정하지 않는 데 있다. 그 역사적 과오에 대해 지금이라도 책임 있는 반성의 자세가 필요하다.

빌리 브란트 독일 총리처럼 무릎을 꿇고 지난 역사의 과오에 대해 용서를 구하는 일을 국제사회에서 리더임을 자부하는 성숙한 일본이 못할 이유가 없다. 그와 같은 사죄와 반성이 없는 한 일본은 과거의 침략사를 여전히 미화하고 그리워하는 미성숙한 나라로 치부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런 나라를 이웃에 둔 동아시아는 그래서 여전히 불안하고 불행하다.


태그:#난징대학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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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베이징에서 3년, 산둥성 린이(臨沂)에서 1년 살면서 보고 들은 것들을 학생들에게 들려줍니다. 거대한 중국바닷가를 향해 끊임없이 낚시대를 드리우며 심연의 중국어와 중국문화를 건져올리려 노력합니다. 저서로 <중국에는 왜 갔어>, <무늬가 있는 중국어>가 있고, 최근에는 책을 읽고 밑줄 긋는 일에 빠져 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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