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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 한국의 유산'은 KBS 10대 기획의 일환으로 2010년 1월 1일 첫 방송을 시작해, 매주 한 편씩 우리의 유산을 소개해 왔다. 1분간의 함축적인 영상으로 당대 최고의 기술력으로 탄생한 유물, 선조들의 얼이 깃든 기록, 한 시대의 빛이 되어준 시대정신 등 5,000년 역사가 담긴 유· 무형의 유산을 통해 그 가치와 한민족의 우수성을 재조명하고 있다." - <한국의 유산> 프로필에서

<한국의 유산> 겉그림
 <한국의 유산> 겉그림
ⓒ 상상너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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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유산>의 저자는 'KBS 한국의 유산' 제작팀. 지난해 KBS에서 같은 제목으로 방송된 것을 바탕으로 두 명의 구성작가가 쓴 책이다. 책을 통해 소개하고 있는 문화유산은 모두 45항목. 記(기록유산), 人(인물), 文(문화유산)으로 나눠 '우리 민족의 얼과 정신을 대표하는 문화유산과 인물' 등을 간략하게 소개한다.

한 꼭지 분량은 5분 가량 읽을 정도인지라 잠깐의 짬에 읽기 좋다. <팔만대장경>이나 <직지> <동의보감>처럼 많이 알려진 문화재들부터 그 가치에 비해 많이 알려지지 않은 <천상열차분야지도>나 <산가요록> <제시의 일기> 등까지 골고루 다루고 있는지라 우리의 자랑스러운 기록문화유산들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해 보는데도 도움이 많을 것 같다.

인물유산과 문화유산 편도 마찬가지. 이순신이나 안중근, 윤동주, 이회영 등처럼 이미 많이 알려진 인물들도 다루지만 윤동주의 시집이 나올 수 있게 한 정병욱이나 아버지의 나라에 전쟁(한국전쟁)이 터지자 미국에서의 안정된 생활과 직위 등을 버리고 한달음에 달려와 싸운 카피텐 김(김영옥), 한국전쟁 때 희생된 수많은 학도병들과 무명용사 등도 다룬다.

의도는 좋은데 많은 '오류'와 이해할 수 없는 문장, 아쉽다

"'팔만대장경'은 국보 제32호로 지정된 해인사 '고려재조대장경'의 경판을 인쇄한 두 부 가운데 하나로 선조들이 일구어낸 위대한 문화적 업적이다." - <팔만대장경> 편에서

이게 무슨 말일까? 더 이상 읽지 못하고, 한참 들여다봤던 부분이다. 읽지 않고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는 표현이 더 적절할 것 같다. 해인사 장경각에 보관돼 있는 대장경판 자체가 국보요, 세계문화유산 아니던가 말이다. 아무렴 이처럼 심각한 오류를 범할 수 있을까 싶다. 의도가 참 좋은 책인데, 하지만 이런 부분 참 씁쓸하고 아쉽기만 하다.

"1970년대, 프랑스 국립도서관 별관 창고 안을 정리하던 한 한국인 서지학자의 눈에 한 권의 책이 눈에 들어왔다. 중국 것으로 분류되어 중국 고서들 속에 아무렇게나 섞여 있던 낡고 허름한 책 표지에 적혀 있는 낯익은 글자는 '불조직지심체요절'. 고려 공민왕 21년(1372년)에 백운화상이 엮은 책으로, 대한제국 말기 헐값에 팔려 프랑스로 넘어간 <직지심체요절>(이하 직지심체)이었다." - '<직지심체요절>과 박병선' 편에서

<직지심체요절>은 흔히 <직지>라고 줄여 부르지만, 원래의 이름은 <백운화상초록불조직지심체요절>(보물 제1132호)이고 문화재지정(1992년 4월 20일) 명칭은 이에 '목판본'이 더 붙는다. 청주고인쇄박물관은 명칭을 줄여 <불조직지심체요절> <직지심체요절> <직지심체> <직지>라고 쓸 수 있다고 밝히고 있다. 이 책에선 <직지심체>로 줄여 쓰고 있다.

<직지심체>가 틀린 말은 아니지만, <직지> 관련 누리집(청주고인쇄박물관)에서도, 세계문화유산이나 <직지>를 알리고자 치렀던 그간의 수많은 행사에서도 거의 '직지' 혹은 '직지심체요절'로 쓴 바, 보편성이 떨어지는 '직지심체'라는 명칭은 아무래도 아쉽기만 하다.

'직지심체'로 검색, 그 결과 일부다. 대부분 이처럼 '직지심체요절'로 쓰지 '직지심체'라고 쓰지 않는다. <직지>가 세계문화유산(기록유산)에 등재되면서 영어권에서는 'Jikji'로 많이 알려졌다. 우리 역시 '직지'와 '직지심체요절'을 일반적으로 쓴다.
 '직지심체'로 검색, 그 결과 일부다. 대부분 이처럼 '직지심체요절'로 쓰지 '직지심체'라고 쓰지 않는다. <직지>가 세계문화유산(기록유산)에 등재되면서 영어권에서는 'Jikji'로 많이 알려졌다. 우리 역시 '직지'와 '직지심체요절'을 일반적으로 쓴다.
ⓒ 포털사이트 화면 캡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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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지>를 <직지심경>이라고 부르고 있는데 이는 잘못된 명칭이다. 엄밀히 <직지>는 경전이 아니기 때문이다. '직지심경'이란 명칭은 1972년 프랑스 국립도서관이 주최한 '책' 전시회에 <직지심경> 이라고 소개되면서부터, 누군가의 단순한 오류가 많은 사람들에게 오류를 범하게 하는 실례다.
 <직지>를 <직지심경>이라고 부르고 있는데 이는 잘못된 명칭이다. 엄밀히 <직지>는 경전이 아니기 때문이다. '직지심경'이란 명칭은 1972년 프랑스 국립도서관이 주최한 '책' 전시회에 <직지심경> 이라고 소개되면서부터, 누군가의 단순한 오류가 많은 사람들에게 오류를 범하게 하는 실례다.
ⓒ 포털사이트 화면 캡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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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지심체'를 검색해 보면 알겠지만 현재 '직지심체'라 단독으로 쓰는 경우는 거의 없다. 모두 '직지' 혹은 '직지심체요절'이라 명칭하고 있다. 또한, <직지>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기록유산)에 등재되면서 영어권에서는 'Jikji'로 많이 알려졌다.

그렇다면 보편적으로 쓰이지 않는 '직지심체'보다는 현재 대표성을 띠고 있으며 가장 많이 쓰이고 있는 '직지'나 언론 등이 보편적으로 쓰고 있는 '직지심체요절'이라 쓰는 것이 훨씬 좋지 않을까? 우리말 자체에 낯설 수밖에 없는 외국인들과 우리 문화재를 이제 막 알아가는 아이들, 우리 문화재를 잘 모르는 사람들에게는 혼란의 소지가 있기 때문이다.

한때 <직지심경>이라는 명칭이 보편적으로 쓰였고, 그 때문인지 지금도 <직지심경>이라 부르는 사람들이 꽤나 있는 것 같다. 이참에 검색을 해보니 불교계나 출판물, 일부 언론에서조차 '직지심경'이라고  여전히 쓰고 있는데 이는 잘못된 용어다.

불교에서 '경(經)'은 불교경전을 뜻하는데, <직지>는 '역대 여러 부처와 고승들의 법어, 대화, 편지 등에서 중요한 내용을 뽑아서 편찬한 것'(문화재청 설명)이다. 즉, 불경이 아니므로 잘못된 명칭인 것이다. 이 책에서는 위 인용문처럼 소제목에 '고려 불경'이라 쓰고 있다.

참고로, '직지심경'이란 명칭은 1972년 프랑스 국립도서관이 주최한 '책' 전시회에 <직지심경> 이라고 소개되면서부터 쓰였다고 한다. 누군가의 단순한 오류가 많은 사람들을 오류에 빠뜨린 것이다. 이런지라 <직지심체>라는 명칭도 신중하게 써야 할 필요가 더욱 절실한 것이다.

"…허름한 책 표지에 적혀 있는 낯익은 글자는 '불조직지심체요절'…." (본문 중에서)

직지 워드마크(위)와 <직지>
 직지 워드마크(위)와 <직지>
ⓒ 청주고인쇄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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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용 본문 중 이 부분도 쉽게 스치지 않는다. 아무리 봐도 책표지에는 '직지' 두 글자뿐인지라.

또한 내용 어디에도 원래 이름인 '백운화상초록불조직지심체요절'이란 언급조차 없다. 심지어는 사진 설명에서도. 이 점도 아쉽다. 또한, '일제 말에 헐값에 팔려나갔다'고 설명하고 있는데, 어떻게 프랑스인의 손에 닿았는지 그에 대해 아직 명확하게 밝혀진 것이 없어 의견과 추론이 분분한 것으로 안다. 내가 아는 한 그렇다.

<직지>의 우수성은 세계 최초의 금속활자로 알려진 구텐베르크의 금속활자를 78년이나 앞섰음을 입증하는 기록이라는 것에 있다. 기록의 중요성을 입증하는 좋은 사례라고 할까. 그러기에 이런 실수 혹은 오류가 쉽게 스쳐지지 않는다. 게다가 공영방송을 바탕으로 한 책 아닌가. 

세 번째 이야기 <천상열차분야지도>편도 아쉽다. 책에서 다루고 있는 것은 국립고궁박물관에서 볼 수 있는 국보 제228호인 '천상열차분야지도각석'. 책에서 당연한 듯 명칭하는 <천상열차분야지도>(시도유형문화재 제 78호)가 부산박물관에도 있는 바, 이에 대해 명시하거나 '각석'을 붙여 구분해 쓰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을까.

사실 나는 이 책 출간을 무척 반겼다. 방송의 존재는 알았지만 워낙 짧았던 영상이고 또한 즐겨보지 않는 방송인지라 번번이 놓쳤기 때문이다. 그런만큼 무척 기대했던 책인데, 첫 번째 주제 <팔만대장경>, 두 번째 <직지심체요절>과 박병선, 세 번째 <천상열차분야지도> 편에서 이런 아쉬움을 맛봐야만 했는지라, 또한 이 책의 바탕인 방송 의도도 있고 해서 무척 씁쓸하고 아쉽게 읽혔다.

오류가 사실로 굳어지기 전에 바로잡아야

책 뒷표지에는 모 대학교 사학과 교수를 비롯해 한국홍보전문가와 사이버 외교사절단 반크,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 등의 추천사가 붙어 있다. 그럼에도 어찌 이런 오류가 그냥 넘겨졌는지 이해할 수 없다.

비목문화재→ 비목문화제', '보신간→ 보신각' 등처럼 틀린 글자도 자주 보였다. 오타 역시 있을 수 있지만, 첫 번째 글부터 오류로 시작됐기 때문인지 어쩔 수 없는 실수로 넘겨지지 않는다.

나 역시 누군가에게 읽히기 위한 글을 수없이 쓰면서 나도 모르는 오류와 실수를 할 수 있는지라 누군가의 이와 같은 허물('직지심체'라는 명칭이 틀린 것은 아니지만)을 지적함이 한편으로는 여간 불편한 것이 아니다.

그럼에도, 조심스럽게 이처럼 드러내는 그 이유 첫 번째는 내 스스로 반면교사를 삼고자이고, 두 번째는 모두가 짐작하는 것 때문이다. 오류가 바로잡히지 않은 채 더 많은 사람들에게 읽혀 사실로 굳어지기 전에 가급 빨리 바로잡아야 한다는. 또한 신중하게 써야 한다는.

반면, 이 책을 통해 <제시의 일기>, '칠정산' '매사냥' '칠지도' '단파방송수신사건'에 대해 알게 된 것은 좋았다. 잘 모르고 있던 것들이기 때문이다. 앞서 지적한 대로 아쉬운 점이 많은지라 나름의 검증을 거쳐야 하겠지만 말이다.

흔히 '유산'이라는 말과 함께 조상들이 남긴 어떤 문화유산 같은 것들을 떠올리기 십상인데, 예상과 달리 '병사의 편지' '무명용사의 묘지' '(연평해전의)박동혁' '독도' '동계올림픽 역사'를 우리를 살린 유산으로 다룬 것은 무척 신선하게 느껴졌다.

덧붙이는 글 | <한국의 유산> (KBS 한국의 유산 제작팀 씀ㅣ상상너머ㅣ2011.7.29ㅣ1만7000원)



태그:#문화유산, #기록유산, #인물유산, #직지심체요절, #상상너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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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제게 닿아있는 '끈' 덕분에 건강하고 행복할 수 있었습니다. '책동네' 기사를 주로 쓰고 있습니다. 여러 분야의 책을 읽지만, '동·식물 및 자연, 역사' 관련 책들은 특히 더 좋아합니다. 책과 함께 할 수 있는 오늘, 행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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