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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행나무들의 융단폭격으로 노란 융단길이 된 돌담길
 은행나무들의 융단폭격으로 노란 융단길이 된 돌담길
ⓒ 김종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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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엔 친구나 지인과 약속을 하게 되면 꼭 서울 시청 부근의 덕수궁 앞에서 만나자고 한다. 깊어가는 이 가을에 어울리는 '정동길'이 오래된 나무들이 서 있는 고즈넉한 덕수궁 담장에서 시작돼서다.

수도권 전철을 타고 1호선이나 2호선 시청역에서 내려 덕수궁 이정표를 보고 지상으로 나오면 노랗게 익은 은행나무의 잎들이 '옐로 카펫'이 되어 덕수궁 정문까지 안내를 해준다.

회색빛 건물과 아스팔트, 보도블록으로 돼 있는 도심의 삭막한 길이 은행잎 덕에 환하게 바뀌었다.

혼자 스웨덴에서 여행왔다는 젊은이의 사진을 찍어주기도 하고, 여기저기서 들려오는 중국말 소리며 다양한 국적의 사람들이 모여 있는 덕수궁 대한문의 바로 옆으로 들어서면 운치있는 덕수궁 돌담길이 맞이해 준다.  

덕수궁 돌담길은 지금 '옐로 카펫'길

'이제 모두 세월 따라 흔적도 없이 변해 갔지만, 덕수궁 돌담 길엔 아직 남아 있어요, 다정히 걸어가는 연인들 ♬'

아스라한 추억과 함께 언제나 마음속에 남아 있는 '광화문 연가'를 흥얼거리며 노랑 융단으로 뒤덮인 덕수궁 돌담길을 걷는다. 매년 가을이면 일부러 찾아와 걸어보는 친숙한 돌담길이지만 이상하게 물리거나 지겹지가 않다. 하지만 올 가을 돌담길의 분위기는 좀 다르다. 명당자리이기도 한 돌담 바로 밑 길을 따라 옷, 장신구, 음식을 파는 천막들이 들어섰다. '불우 이웃을 돕기위한 바자회'라니 딱히 할말은 없지만 짧디 짧은 절정의 가을날 낭만적인 길이 장터가 되버린 것 같아 아쉬운 마음이 든다.  

이맘때면 곳곳이 노랑 수채화로 채색되는 덕수궁 돌담길과 정동길
 이맘때면 곳곳이 노랑 수채화로 채색되는 덕수궁 돌담길과 정동길
ⓒ 김종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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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수궁 돌담길의 명물이 된 화가 할아버지는 딴일을 보시다가도 사진을 한 장 찍겠다고 부탁을 드리자 익숙하신듯 자연스럽게 포즈를 취해주신다.

은행나무와 잘 어울리는 '광화문 연가'에 나오기도 하는 교회당을 지나 왼쪽 언덕길을 오르다보면 거대한 향나무가 나온다. 얼마나 오랜 세월을 살았는지 지팡이같은 버팀목으로 서 있는 모습이 백발수염이 난 산신령같다.

이 향나무 뒤의 건물은 1885년 생겨났다는 배재학당으로 지금은 역사 박물관이다. 붉은 벽돌로 세워진 박물관 입구에 써 있는 '크고자 하거든 남을 섬기라(欲爲大者 當爲人役)' 문구가 예사롭지 않게 다가온다.

박물관 옆 낙엽과 가을정취로 가득한 '배재공원'을 거닐며 다시 언덕길을 내려와 본격적으로 정동길을 걸어간다. 길가에 도열해 있는 은행나무들의 융단폭격으로 정동길은 은행 융단길이 되었다. 같이 걷던 친구에게 "은행 융자는 무섭지만, 은행 융단은 참 예쁘다 그치?" 라고 나름 유머를 날렸지만 피식~ 썰렁하단다. 어디선가 바람이 불어오자 은행잎들이 후두두 떨어지면서 뺨을 스치고 머리칼을 덮듯이 낙하한다. 탄성을 지르며 쳐다보는 사람들의 얼굴도 노랗게 물들은 것 같다.       

덕수궁 돌담길에서 만난 시립미술관에선 사진전이 한창이다.
 덕수궁 돌담길에서 만난 시립미술관에선 사진전이 한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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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담길의 낙엽들과 미술작품들이 잘 어울린다.
 돌담길의 낙엽들과 미술작품들이 잘 어울린다.
ⓒ 김종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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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담길을 걷다가 만난 미술관

덕수궁 돌담길을 걷다보면 예전엔 대법원 건물이었다는 서울시립미술관이 보인다. 11월 말까지 '서울 사진 축제'를 하고 있다는 홍보 포스터를 따라 걸어가 본다. 입장료는 무료이고 인근에 있는 서대문 역사박물관 옆 경의궁 분관 (종로구 새문안길 60)에서도 사진전을 한단다. 모자이크한 사진, 그림같은 사진, 공모로 뽑힌 시민들의 사진 등 다양한 사진 작품들이 눈을 즐겁게 하고 무언가 생각에 빠지게 한다.

관람객들을 위해 예술을 공부하는 학생들로 보이는 젊은이들이 사진 해설을 해주는데 말도 더듬고 쑥쓰러워 하는 몇몇 학생의 모습이 불쾌하지 않고 풋풋하다. 인터넷이나 블로그에서 모니터안에 갇힌 작은 사진들만 보다가 전시장에 걸린 사람키보다 큰 사진작품들 하나 하나가 새삼스럽고 유심히 감상하게 된다. 솔솔 풍겨오는 커피향을 따라 미술관 3층에 있는 카페에 앉으니 저녁해가 뉘엿뉘엿 지고 있다. 창문을 통해 보이는 덕수궁의 가을 전경이 멋진 작품 사진같다.       

해저믄 궁궐을 거닐어보면 색다른 기분을 느낄 수 있다.
 해저믄 궁궐을 거닐어보면 색다른 기분을 느낄 수 있다.
ⓒ 김종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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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수궁 안쪽의 고요한 숲속 오솔길, 사람의 마음을 차분하게 해준다.
 덕수궁 안쪽의 고요한 숲속 오솔길, 사람의 마음을 차분하게 해준다.
ⓒ 김종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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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스름 달빛 아래 궁궐을 거닐다

시립미술관 카페에서 보이는 덕수궁 안의 가을 경치를 보고 싶어 다시 덕수궁 돌담길을 따라 간다. 이미 해가 저물어 문이 닫혔을까 봐 뛰다시피 덕수궁 정문에 도착하여 보니 고맙게도 오후 8시까지 입장이 가능하단다. 주변의 높고 거대한 빌딩들에 갇혀 빛을 잃어 보였던 궁궐은 땅거미가 질수록 그 존재가 다시 돋보이는 것 같다. 중명전, 함녕전, 석어당 등의 별채들이 은은한 조명을 받으며 그 옛날의 역사가 현재에 이어지고 있으며 살아있음을 알려준다. 궁궐 마당에 쌓인 낙엽 위를 여유로이 걸으며 낮과는 또다른 가을의 정취를 한껏 음미해본다.

궁궐의 뜰 곳곳에 앉아있는 사람들의 이야기 소리가 소곤소곤 들려오고, 어스름하면서도 형형한 달빛 아래 사각사각 낙엽밟는 소리가 고즈넉하면서도 마음을 차분하게 해준다. 덕수궁의 안쪽으로 더 들어가면 고요한 숲속 오솔길 같은 곳도 나타나 걸음을 더욱 천천히 내딛게 한다. 보통 덕수궁 돌담길과 정동길을 산책하러 갔다가 덕수궁 안에는 들어가보지 않았는데, 이맘때엔 특히 저녁녘에 꼭 거닐어 볼일이다.

덧붙이는 글 | 11월 4일날 다녀왔습니다.



태그:#정동길, #덕수궁 돌담길, #서울사진전, #서울시립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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