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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국대 이해랑예술극장에서 공연된 신시컴퍼니의 연극 <레드>. 제목만 들어도 강렬하다. 20세기 중반을 장식한 추상표현주의의 마지막 화가인 미국의 마크 로스코와 그의 조수 켄이 주인공이다.

 

연극은 1950년대 후반 50대 중반의 로스코와 20대의 청년 켄을 주인공으로 한다. 무대는 체육관을 개조한 작업실로 각종 그림 도구와 그림들로 가득하다. 그림들을 감상하는 큰 설치대가 매번 움직이면서 막 사이를 구분한다. 그림 자체가 무대가 된다. 첫 장면에서 객석에 있는 가상의 그림을 바라보며 "뭐가 보이나" "그림이 숨을 쉬게 해"라며 조수가 되려고 온 켄에게 묻는다. 로스코는 건축가 필립 존슨이 지은 뉴욕 시그램 빌딩 안에 있는 포시즌즈 레스토랑의 벽화를 거액에 제의받고 수락한 상태이다.

 

연극 <레드>는 여러 가지를 보여준다. 첫 번째로 이 이야기는 성장기이다. 인간은 누구나 성장한다. 살아가는 동안 많은 것을 배우고 느낀다. 연극의 대사는 무척 직접적이고 표면적이다. 누구나 느끼는 삶과 인간관계와 심리에 대한 근본적인 성찰을 무척 직접적인 대사로 표현한다. 특히나 예술가의 고뇌와 집념, 집착이 가득하다.

 

두 번째로 한 예술가와 그의 예술에 대한 존재감과 진실에 대한 끊임없는 고민과 성찰이다. 로스코는 조수 켄과의 첫 만남에서 켄에게 가장 좋아하는 화가가 누구냐고 묻는다. 켄은 "잭슨 폴락"이라고 답한다. 로스코는 화가 나는지 잠시 당황한다.

 

어느 날 로스코가 현대미술 전시회에 다녀온다. 리히텐슈타인, 뒤샹 등 다음세대 화가들에 분개한다. 가볍다며 너무 대중적이라는 것이다. 그림은 심오한 사상을 드러내야 한다며, 인생은 무거울 수도 있고 항상 즐겁지만은 않은 것이라고 한다. 하지만 켄은 사람들은 그런 그림도 좋아한다고 얘기한다. 둘은 무척 언쟁을 벌인다.

 

여기서 이 연극의 특징이 또 드러난다. 세 번째로 아버지와 아들의 이야기이다. 미술 뿐만이 아니라 인생은 언제나 한 세대와 다음 세대와의 싸움이다. 아들은 아버지를 밀어내려 하고 아버지는 아들을 막으려 한다. 로스코 자신이 이전세대 큐비즘의 피카소나 야수파 마티스의 그림들을 밀어내고 추상표현주의의 잭슨 폴락 등과 함께 새로운 시대를 열었지만, 다음 세대인 팝아트 미술가들에게 이젠 자리를 내어주어야 할 차례다.

 

"검은색은 붉은색을 집어삼키려 한다". 켄은 고용주이자 스승 로스코 그림의 모든 밑 작업-칠, 판넬-등을 하고 모든 신경질도 받아주고 언쟁도 벌여주지만 스승의 유일한 대화상대자이자 인도자의 역할을 한다. 로스코와 켄의 관계가 마치 검은색과 붉은색과 같다. 서로 다르지만 같고, 서로를 필요로 하고 보완하지만 서로 배척한다. 서로가 있기에 존재한다. 이전세대와 다음세대의 관계도 필연적으로 마찬가지다. 연극에서 켄과 로스코의 끊임없는 대화는 이것에 대해서 인생에 대해서 예술에 대해서 끊임없이 묻고 또 묻는다.

 

배우들 연기 또한 일품이다. 단 두 명이 등장하는 연극은 매우 집중감과 에너지가 넘친다. 연극 장소인 이해랑 예술극장은 넓지도 작지도 않은 공간에 관객이 집중할 수 있게 해주고 소리의 울림도 좋다. 강신일은 자신만만하고 열정 넘치고 고집 있는 현대 미술가이자 아버지, 스승 역할에 잘 어울렸다. 강필석은 아버지를 이기려는 아들, 다음세대, 스승을 묵묵히 보좌하지만 아버지를, 스승을 능가하는 열정의 다음세대 역할을 멋있게 해내었다. 페인트 통과 화판을 다루는 능숙한 붓놀림과 몸짓에서 이 배우들이 무척 많은 연습과 기간 내내 집중력을 쏟았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정말로 미술 작업실이고 스승과 제자 사이 같다.

 

연극 중 마크 로스코의 자살을 암시하는 장면이다. 로스코와의 언쟁 후 밖에서 켄이 돌아와보니 로스코는 손목에 흥건히 피를 흘리고 있었다. 영락 없이 자살처럼 보인다. 하지만 곧 그는 "페인트가 묻었어" 라며 아무렇지도 않게 켄과 관객을 놀랜다. 재미있다. 연극의 앞부분에서 그의 동료이자 라이벌인 잭슨 폴락이 운전 중에 죽게 된 것은 반드시 자살이라며 "그림밖에 모르던 촌놈" 폴락을 죽음으로 내몬 것은 세상의 인정과 기대, 부담, 그리고 자본주의라고 한다. 

 

마지막 장면에서 로스코는 켄을 해고하며 "니 인생은 저 밖에 있으니까"라며 밖을 가리킨다. 켄이 떠나고 무대에 혼자남은 로스코가 뒷모습으로 자신의 붉은 그림을 쳐다보면서 연극은 끝난다. 연극에는 나오지 않지만 로스코는 결국 거액의 벽화 제의를 거절하게 된다. 2010년 브로드웨이 토니 상 6개 부문에 빛나는 연극 <레드>는 올해 한국에서도 물론 뜨거웠다. 20세기 거장 화가 로스코의 이야기라기보다는 모든 젊은 세대를 위한 이야기였던 연극이었기에 더욱 열정적이고 감동적이었다.


태그:#연극 "레드", #신시컴퍼니, #강신일, #강필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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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을 전공하고 작곡과 사운드아트 미디어 아트 분야에서 대학강의 및 작품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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