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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성공원의 코끼리
 달성공원의 코끼리
ⓒ 정만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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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에서 아이들과 함께 걷을 만한 길을 말하라면 단연 '달성 토성'의 성곽 윗길을 추천하지 않을 수 없다. 국가가 지정한 사적 62호이자, 우리나라 고대 토성 축성술을 전형적으로 증언하는 길이니 그것은 당연한 선택이다. 원형으로 난 성곽 위를 한 바퀴 휙 돌면서 달성 안의 풍경과 사방의 시가지 모습을 구경하는 재미가 쏠쏠하다.

게다가 이 길은 공원까지 거느리고 있다. 공원 안에는 '인내천'을 외치는 동학혁명의 최제우 동상도 있고, 독립운동가 허위 선생의 동상도 있다. 또 우리나라에서 처음 세워진 시비인 상화시비도 있고, '실천하는 선비'의 상징인 서침 선생을 기려 '서침나무'라 이름 붙여진 커다란 회화나무도 있다. 그런가 하면, 조선 말기에 이등박문과 동행한 순종이 심은 것으로 여겨지는 커다란 향나무도 있다.

성곽 윗길과 공원 안을 천천히 다 걸었으면, 이제 대구의 역사를 간단명료하게 요약하여 보여주는 향토역사관도 꼭 둘러볼 일이다. 공원관리사무소 건물 1층에 있다. 물론 경상감영의 정문이었던 관풍루는 아까 성곽 윗길 산책 때 이미 걸었다. '백성들의 풍습을 지켜본다'는 뜻의 관풍루는 현재 최제우 동상 뒤편 성곽 위에 있는데, 친일파 박중양이 대구읍성을 파괴하던 때에 이곳으로 옮겨졌다.

특히 달성공원이 자랑할 만한 것은 아이들이 좋아하는 동식물들을 많이 가지고 있다는 점이다. 호랑이를 비롯해 25종 90마리의 포유류가 있고, 향나무 등 60종 5,236그루의 나무가 우거져 거의 수목원 수준이다. 그 외에도 8종 17마리에 이르는 천연기념물 조류도 있고, 2종 940마리의 어류도 있다.  

3.1운동로
 3.1운동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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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이 조금 더 크다면 '3.1운동로'를 걸을 일이다. 달성공원 구경을 두루 마친 다음 서문시장에서 출발하면 된다. 서문시장은 대구에서 3.1독립만세운동이 처음 시작된 장소이므로 우리나라 3대시장의 하나였다는 점 말고도 빼놓을 수 없는 역사 답사지이다.

1919년 3월 8일, 당시 계성학교 교사와 학생들의 주도 하에 대구의 3.1운동이 시작되었다. 이 날은 사람들이 많이 운집하는 서문시장 장날이었는데, 계성학교 담장 바로 너머가 서문시장이었으니 이 거대시장이 대구 3.1운동의 발상지가 된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당연히 계성학교도 꼭 방문해야 할 주요 답사지이다. 교내의 3.1운동기념비, 한강 이남 최초의 2층 학교건물인 아담스관(1908년 건축, 유형문화재 45호) 등 고색창연한 건물들이 볼거리이다. 계단 50층을 올라야 본관에 닿을 수 있고, 계단 둘레로 나무들이 울창한 교정도 훌륭하다.

계성학교에서 육교를 건너 동산병원을 지나친다. 병원 뒤편의 선교사 주택들을 둘러보는 것이 여정이다. 대구에서 처음 지어진 서양식 주택들이 많은 이곳은 풍광이 아름답고 깨끗하다. 1919년 만세운동 때 대구 학생들은 이 주택들 사이를 거쳐 "대한독립만세!"를 외치며 시내 중심가로 진출했다. 그래서 이 곳을 '3.1운동로'라 부른다.

선교사 주택들 사이에는 대구에서 가장 오래된 사과나무 종자목이 있고, <동무 생각>의 음악가 박태준 노래비도 있다. 선교사주택 중 블레어주택(유형문화재 26호)은 3.1운동기념관으로 꾸며져 있어 내부까지 들어가볼 곳이다.

대구의 현대사를 말해주는 3.1운동로

선교사주택에서 계산성당으로 내려가는 계단을 걷는다. 이곳에 서면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의 상화고택과 '국채보상운동'의 주역 서상돈고택이 발 아래에 보인다. 두 집은 서로  마주보고 있다. 구한말과 일제 시대를 힘들게 살았던 당대 선각자들의 호통소리가 아직도 들려오는 듯한 길이다.

상화고택, 이상화의 형인 이상정 독립군 장군 고택, 서상돈 고택 등을 지나면 바로 약전골목이다. 한약 냄새가 정말 천지를 진동하는 이 길은 대구 이외에서는 찾을 수 없는 골목이니 당연히 대구가 내세울 만한 '자랑스러운 길'이다. 한약재의 생산과 가공, 약효 등을 충분히 해설해주는 한의약문화관까지 지어져 있어 답사골목으로는 더 바랄 것이 없다.

봉무공원
 봉무공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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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외로 나가서 호숫가를 거닐고 싶다면 동구 봉무공원 둘레가 제일이다. 이 길에는 자동차 소리가 들리지 않으니 좋고, 모텔이니 술집이니 따위가 없어 더 좋다. (이는 수성구 소재 수성못 둘레에 빗대어 하는 말이다.) 산을 끼고 있지만 심한 오르막은 없으니 아무리 어린 아이일지라도 걷는 데에 아무 문제가 없다.

더욱이 철만 맞으면 산책로 중간쯤에서 나비생태원의 진풍경도 즐길 수 있으니 금상첨화이다. 만약 더 걷고 싶다면 오른쪽 산길을 올라 불로고분군(국가사적 262호)으로 가면 된다. 181기의 고분들이 줄을 지어 늘어선 산능선을 한 바퀴 돌아 다시 봉무공원으로 회귀하면 그것만으로도 하루 운동은 충분하다.

대구광역시와 경상북도 청도군의 경계 지점인 한티재 정상의 모습. 감 조형물이 여기부터 청도군이라는 사실을 말해준다.
 대구광역시와 경상북도 청도군의 경계 지점인 한티재 정상의 모습. 감 조형물이 여기부터 청도군이라는 사실을 말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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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동차를 몰고 다닐 만한 길 중에는 달성군 가창면에서 한티재를 넘는 길이 제일이다. 초입에 가창댐이 있어 시원한 물 구경부터 즐길 수 있고, 두 곳의 미술관이 길 좌우에 포진해 있어 언제든지 예술을 가까이 할 수 있는 여유도 있다. 게다가 길이 상수도 보호구역을 따라 펼쳐지기 때문에 경관이 깨끗하고 물소리 또한 맑다.

한티재 넘기 이전에 국가지정 중요민속자료 200호인 조길방가옥을 방문할 수도 있고, 고개 넘자마자 나타나는 용천사의 일품 물맛도 즐길 만하다. 일연 스님의 자취가 남아 있는 용천사에는 비슬산까지 오르는 등산로도 있고, 일대에 갖가지 식당들이 있어 허기를 채우고 식도락을 즐기는 데에도 모자람이 없다.

대구 동구 평광동 시량리의 신숭겸 유허지
 대구 동구 평광동 시량리의 신숭겸 유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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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적 의미를 따져보며 걸을 만한 최고의 길은 '왕건의 길'이다. 신숭겸의 지원군과 견훤군이 대대적으로 맞붙은 살내(동화천 하류)와 연경마을이 있는 무태를 지나 신숭겸장군유적지(기념물 1호)으로 간다. 왕산 아래 지묘동에서 신숭겸은 죽고 왕건은 독좌암에 홀로 앉자 탄식을 하다가 이윽고 시량리로 간다. 다시 왕건은 우리나라 천연기념물 1호인 도동 측백수림 아래를 지나 불로동을 거쳐 반달이 뜰 때쯤 안심에 닿아 마음을 놓는다.

왕건은 금호강을 건너 강변을 타고 앞산까지 숨어든다. 은적사에 사흘간 숨었다가 더 안전한 곳을 찾아 안일암에 이른다. 안일암 뒤편 앞산 정상부 턱밑의 왕굴이 마지막 피신처가 된다. 뒷날 왕건은 임휴사를 거쳐 성주 방면으로 도주한다. 당시 성주는 견훤을 적대시하고 왕건에게 우호적이었기 때문이다.

대구 시내에서 걸을 만한 길

앞산 고산골 입구. 이 길을 걸을 때에는 길바닥의 특이한 무늬에 주목해야 한다. 고산골에 산재해 있는 건열 화석의 모양을 본뜬 것이다.
 앞산 고산골 입구. 이 길을 걸을 때에는 길바닥의 특이한 무늬에 주목해야 한다. 고산골에 산재해 있는 건열 화석의 모양을 본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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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내에서 걸을 만한 길은 바로 왕건이 오갔던 앞산 등산로이다. 출발은 안지랑골에서 하는 것이 좋다. 대구 독립운동의 본거지였고, 한때 왕건이 숨어 지냈던 안일사부터 둘러보고, 계속 올라 왕굴까지 간다. 왕굴에서 앞산 정상까지는 '금방'이다.

정상에서 능선을 타고 큰골 방향으로 걷는다. 중간에 산불 감시초소를 지나면 곧 왼쪽으로 하산하는 길이 나타난다. 물론 집으로 가기 위해 산을 내려오는 것이 아니라 은적사를 방문하기 위해 이 길을 선택한다.

하산길 중간 지점에 있는 정자에서 오른쪽으로 접어든다. 그래야 바로 은적사에 갈 수 있다. 편탄하게 잘 다듬어진 산길을 걷다보면 문득 메아리처럼 울려퍼지는 염불소리가 들려온다. 신라 천년 고찰 은적사가 눈앞에 있다는 예고이다.

은적사에는 왕건이 사흘간 숨어지냈다는 왕굴이 있다. 들여다보면 깊이가 너무 얕아 피선처로는 역시 부족해 보인다. 왕건이 이곳에 있을 때 거미들이 나타나 무성한 거미줄로 앞을 가로막아 견훤군의 수색으로부터 보호를 해주었다는 전설이 전한다.

은적사에서 하산할 때에도 역시 오른쪽으로 접어든다. 그래야 이호우 선생의 <개화> 시비를 감상할 수 있다. 이호우 시비에서 도랑을 건너 맞은편에 있는 낙동강승전기념관을 보고, 그 뒤에 세워져 있는 독립운동가 이시영 선생 기념비에서 묵념을 한다. 그리고 다시 오른쪽으로 난 샛길 같은 산길을 걷는다.

길은 고산골로 이어진다. 공룡발자국을 보고, 또 건열과 연흔화석 등을 보기 위해서다. 이들은 모두 고산골 등산로 입구에 있는데, 길에 안내판이 세워져 있어 찾는 데 별로 어려움은 없다. 공룡발자국 바로 아래에서부터 식당가가 펼쳐져 있어 갓 등산을 마친 사람의 허기를 채우기에는 안성마춤이다. 그 탓인가, 이곳 식당들은 낮에도 사람들로 붐빈다.

팔공산 서봉 아래의 부인사. 사진에서 맨 앞에 보이는 건물이 신라 선덕여왕을 제사지내는 선덕묘이다.
 팔공산 서봉 아래의 부인사. 사진에서 맨 앞에 보이는 건물이 신라 선덕여왕을 제사지내는 선덕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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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산길 정도로는 만족할 수 없는 분들은 팔공산으로 가야 한다. 본격적인 등산로를 걷는 것이다. 팔공산에서 가장 사랑받는 등산로는 동화사에서 염불암을 거쳐 동봉에 닿는 길과, 갓바위를 보기 위해 관봉에 오르는 길이지만, 필자는 선덕여왕을 기리는 부인사에서 출발하여 서봉을 거쳐 비로봉과 동봉으로 가는 답사로를 추천하고 싶다. 이 길은 그늘이 좋아 땡볕에 시달리지 않아도 되는 장점도 있지만, 마지막 오르막이 상당히 가팔라 진땀을 흘릴 수 있다는 것 또한 좋다. 이왕 힘든 등산로를 걷고 싶다면 땀께나 쏟는 게 이래저래 좋지 않나 싶어서 드리는 말씀이다.

이 길을 권해드리는 더 중요한 까닭은, 팔공산 정상인 비로봉과 동봉을 한꺼번에 보려면 어차피 서봉에 가지 않으면 안 되기 때문이다. 부인사 등산로를 올라 서봉에 당도하면 비로봉과 동봉을 단숨에 보여주는 장쾌한 전망이 기다린다. 비로봉과 동봉에서는 맛볼 수 없는, 정말 팔공산에 올랐다는 쾌감이 온몸을 시원하게 자극해준다. 그래서 이 길을 올라야 한다.

누구나 오를 수 있는 비슬산강우관측소. 이 건물 꼭대기에는 원형의 전망대가 설치되어 있다.
 누구나 오를 수 있는 비슬산강우관측소. 이 건물 꼭대기에는 원형의 전망대가 설치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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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가장 좋은 길은 '모두'가 함께 오르는 등산로이다. 신체건장한 사람만 산에 오를 수 있고, 장애인 앞에서는 "산에 오르면 공기가 좋고 전망이 대단하다"는 말도 못하는 그런 등산로라면 적어도 최선은 아니다. 최선의 등산로는 노인도 아이도 장애인도 모두 오를 수 있는 그런 길이다.

그런 길이 어디에 있을까. 비슬산에 있다. 비슬산 소재사에서 출발하여 자연휴양림으로 들어가, 중간쯤에서 오른쪽으로 난 임도를 걷는다. 포장도 되어 있고 경사가 완만하여 휄체어를 밀고서도 얼마든지 오를 수 있다. 게다가 중간중간에서 왼쪽으로 고개를 돌리면 세계 최대의 빙하기 암괴류 유적인 천연기념물의 풍광까지 즐길 수 있으니 이만하면 전국 그 어디에서도 맛볼 수 없는 '국민 등산로'이다.

노인도 장애인도 오를 수 있는 비슬산전망대

자연파괴의 혐의를 지닌 케이블카를 설치하지 않고도 모든 국민들에게 세계 최대의 빙하기 암괴류 유적(천연기념물 435호)을 보여주는 비슬산 임도 등산을 온 나라에 '홍보'하고자 한다. 뿐만 아니라, 비슬산 중 한 봉우리에 있는 비슬산강우관측소에 들어가면 건물 꼭대기 층에 온 사방을 바라볼 수 있는 원형의 전망대까지 설치되어 있으니, 온 국민이 케이블카를 타지 않고도 갈 수 있는 산정 중 이만한 곳이 어디 또 있다면 누가 한번 말씀해 보시라

대구의 대표적인 길들은 고대 토성 건축술과 동물원까지 거느린 달성공원 성곽 윗길, 왕건의 구사일생과 신숭겸의 죽음이 깔린 '왕건의 길', 약령시의 향기까지 품어내는 '3.1운동로', 그리고 어느 누구도 소외되지 않고 끝까지 함께 동행할 수 있는 비슬산 강우관측소로 가는 임도, 그렇게 네 길이다. 한번 걸어보시라. 결코 실망하지 않으시리라.

케이블카를 타지 않고도 누구나 산 정상부까지 올라 사방의 전망을 두루 감상할 수 있는 산은 아마도 대구광역시 달성군의 비슬산밖에 없을 것이다. 사진은 초곡산성에서 바라본 비슬산 전경.
 케이블카를 타지 않고도 누구나 산 정상부까지 올라 사방의 전망을 두루 감상할 수 있는 산은 아마도 대구광역시 달성군의 비슬산밖에 없을 것이다. 사진은 초곡산성에서 바라본 비슬산 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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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대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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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편소설 <한인애국단><의열단><대한광복회><딸아, 울지 마라><백령도> 등과 역사기행서 <전국 임진왜란 유적 답사여행 총서(전 10권)>, <대구 독립운동유적 100곳 답사여행(2019 대구시 선정 '올해의 책')>, <삼국사기로 떠나는 경주여행>,<김유신과 떠나는 삼국여행> 등을 저술했고, 대구시 교육위원, 중고교 교사와 대학강사로 일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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