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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 네 시. 칸트는 그 시각만 되면 하루도 빠짐없이 같은 길을 산책했다고 하지요. 그 때문인지 마을 주민들은 그가 나서는 그 때를 오후 네 시로 인식했다는 유명한 일화가 있지요. 박제의 <오후 네 시의 루브르>도 그로부터 착안한 듯합니다. 그 시각이면 동네 한 바퀴를 돌듯 루브르 박물관을 둘러 본 것 말이지요. 그에게는 해질녘 오후 네 시의 루브르가 새로운 길목을 여는 광장과 같았던 것이지요.

 

2002년 월드컵이 한창일 때 나는 그곳 루브르를 기웃거린 적이 있습니다. 그곳에서 만났던 '모나리자'나 '십자가를 진 예수'는 감격 그 자체였지요. 그 그림들이 내게 살아서 걸어온 듯했기 때문입니다. 카메라의 셔터를 한 번씩 누를 때마다 그 그림들은 한 발자국 내게 더 가까이 다가왔었지요. 그 그림들 외에도 여러 그림들을 들여다보긴 했지만 여태 내 뇌리 속에 생생하게 남아 있는 것은 그것들뿐입니다.

 

이 책에서는 파사넬로의 '젊은 공주의 초상'을 비롯하여 7편의 초상화 작품을 감상토록 도와주고 있고, 캥탱 마시의 '돈놀이꾼과 그의 아내'를 비롯하여 세속을 향한 그림들, 피에트로 페루지노의 '아폴론과 마르시아스' 같은 여러 풍속도들, 루카스 크라나흐의 '풍경속의 비너스'와 같은 여러 성적인 작품들, 그리고 성경 속에 등장하는 예수와 그 어머니에 대한 그림들이 한 꼭지씩, 모두 5가지 테마로 구분하여 각각의 그림들을 설명해 주고 있습니다.

 

박제는 젊은 공주의 초상을 그렇게 읽어주고 있습니다. 혼인을 준비하는 공주의 얼굴 속에는 비장함과 우수가 묻어난다고 말이지요. 왜일까요? 하룻밤을 지나고 나면 다른 여자를 부인으로 맞이하려는 남편의 간악함을 알고 있기 때문이라고 하죠. 그 그림 속의 실제 주인공인지 정확하게 알 길 없지만, 리미니 지역의 군주였던 말라테스타(Sigismondo Malatesta)와 1434년에 혼인한 지네브라는 7년 만에 죽었다고 하니, 그 초상화가 어느 정도 정설을 대변해 주는 듯합니다.

 

저도 그랬지만 대부분은 루브르 박물관 하면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모나리자'를 떠올릴 것입니다. 박제는 그 이유를 신비스런 미소에서 찾지 않고 있습니다. 다빈치가 창조해낸 과학과 예술의 결정체에 찬사를 보내고 있습니다. 나는 그녀가 나를 뚫어지게 쳐다보는 것에 만족했지만, 그래서 더더욱 기억해내는데 용이했지만, 박제는 '스푸마토 기법'을 들이대며 실제를 허구로 만든 작품이라고 꼬집기도 합니다. 그런 면들을 읽어내는 이들이야말로 진정한 화가가 아닐까 싶습니다.

 

이 책에는 내게 깊이 있는 울림을 전해주는 또 하나의 작품 소개가 있었습니다. 페르디낭 빅토르 외젠 들라크루아가 그린 '키오스 섬의 학살'이 그것이었습니다. 박제는 그 그림을 처음 만난 게 글을 깨우치기 전의 어린 시절이었다고 합니다. 그때는 그 그림이 마법의 양탄자이자 꿈속 세계와 같았다고 합니다. 그만큼 그 그림이 어린 박제에게 상상의 날개를 달아준 셈이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그 그림은 이 책 속에서, 그리고 루브르 박물관에서 가장 잔인한 그림이지 않을까 싶습니다. 사실 그 그림은 419×354센티미터에 이르는 커다란 그림이요, 수직적인 구도로 그린 그림이기에 훨씬 인상이 강렬하다고 하지요. 그런데 그리스 영토였던 카오스 섬 주민들은 오토만의 술탄이 내린 학살 명령에 2만 5천명이 죽었고, 5만 명이 노예로 팔려갔다고 하니, 얼마나 참혹한 실상이었을까요?

 

"그리스인이 터기에 맞선 독립 항쟁은 유럽인의 열렬한 호응을 얻었다. 단순히 그리스에 대한 호감 때문이라기보다 이슬람에 대한 기독교인의 공통적인 적대감이 드러났던 것이다. 그리스 독립전쟁으로 말미암아 19세기 유럽에서는 이슬람에 대한 적대 의식이 다시 불타 올랐다. 중세 십자군 전쟁에서부터 21세기 유럽공동체의 터키 가입 반대에 이르기까지, 기독교와 이슬람 사이의 잠재울 수 없는 감정적인 대립은 계속 이어지고 있다."(153쪽)

 

박제는 성 바르텔레미가 그린 '십자가에서 모셔 내려옴'을 통해 막달라 마리아를 깊이 있게 읽어주고 있습니다. 그 그림 속의 예수 시신은 이미 차갑게 식어버린 시신이요, 찢어진 가슴에서 흘러내리다 굳어버린 핏자국은 지금 막 십자가에서 모시고 내려오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킬 정도라고 합니다. 그런데 그 틈바구니 속에 있는 막달라 마리아는 슬픔을 이기지 못해 온 몸을 뒤틀고 있고, 그녀는 맨 손으로 예수의 맨다리를 부여잡고 있고, 심장 부위를 그러잡음으로써 감당 못할 애도를 표현한다고 합니다. 그것이 성경 속의 막달라 마리아를 더 실제적으로 보여주는 듯한 모습이 아닐까 싶기도 합니다.

 

루브르 궁전의 넓은 벽면을 메운 많은 그림들 가운데 예순일곱 점만을 골라 설명하고 있는 박제의 이 책 <오후 네 시의 루브르>를 정원을 산책하듯 찬찬히 읽어보길 바랍니다. 어쩌면 박제가 느꼈던 어린 시절의 꿈속 세계로 날아갈지도 모르겠습니다. 이 책은 그토록 깊이 있는 상상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할 것입니다.


오후 네 시의 루브르

박제 지음, 이숲(2011)


태그:#박제, #모나리자, #키오스 섬의 학살, #십자가에서 모셔 내려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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