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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의 별 1인 시위
▲ 쌍용자동차1 별의 별 1인 시위
ⓒ 육성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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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망 15명, 구속 96명, 정리해고 2646명, 손해배상 가압류 및 구상권 청구 380억 원. 지난 2009년 여름 경기도 평택시 쌍용자동차 공장에서 77일간 진행된 처절한 농성의 상처다. 2년 전 쌍용차 노사는 무급 전환자들의 1년 후 복직과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고용보장 등에 합의했지만, 지금껏 공장으로 돌아간 노동자는 단 한 사람도 없다. 중국 상하이자동차가 떠난 자리에 인도 마힌드라자동차가 들어섰지만 경영 실적은 좀처럼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노동자들은 일터를 잃었으되 경영자들의 밥그릇은 굳건하다.

9월 26일. 금속노조 쌍용자동차지부 비정규직지회는 평택지역의 여야 국회의원 사무실 앞에서 1인 시위를 시작했다. 민주당 정장선 의원과 한나라당 원유철 의원은 2009년 8월 당시 중재단으로 활동하며 노사대타협에 기여한 바 있다. 따라서 쌍용차 노동자들은 정치권을 향해 사실상 합의 파기에 이른 현 사태의 책임을 엄중히 따지고 있는 셈이다. 쌍용차 하청업체에서 일하다 해고된 복기성씨는 "2년 동안 해고자들에게 해준 것이라고는 한 차례의 형식적인 면접밖에 없었다"며 사회적 무관심을 질타했다.

복씨는 2008년 쌍용차 비정규직 노조를 설립한 주역이다. 노조가 만들어진 직후 복씨가 일하던 하청업체는 휴업에 들어갔다. 이어 회사는 폐업을 했고, 복씨는 그 뒤로 벌써 3년째 일자리를 잡지 못하고 있다. 무려 8년간 쌍용차를 내 회사라 여기며 일했는데 단칼에 폐업하는 모습을 보고 분노가 치밀었다고 한다.

쌍용차 안에서 쌍용차의 지시에 따라 쌍용차의 부품을 만들었지만, 막상 공장이 문을 닫자 쌍용차와는 '무관한' 사람이 돼버렸다. 아내와 두 아이를 둔 가장에게 실직은 곧 생계의 위기였다. 그는 요즘 신문을 배달하고 공사장 막노동을 하면서 근근이 버틴다.

노조 회의 모습
▲ 쌍용자동차2 노조 회의 모습
ⓒ 육성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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쌍용자동차 정문에서 한 달 넘게 이어지고 있는 '별'의 '별' 1인 시위를 보았다. 앞의 '별'은 2009년 이후 세상을 떠난 15인의 동료를, 뒤의 '별'은 살아있는 자들의 현실적 무게인 77일간의 투쟁을 상징한다. 첫 번째 1인 시위는 감옥에서 막 출소한 '최신 별', 금속노조 김혁 비정규국장이 맡았고 어느덧 60차를 넘겼다. 참가자들은 15시간 동안 먹지도 자지도 않으면서 희생자를 추모하고 자신의 삶을 돌아보고 있다. 별의 별 1인 시위는 77차까지 진행될 예정이다.

1인 시위 현장에서 눈길을 끄는 문구를 발견했다. 주식회사 쌍용자동차가 금속노조 쌍용차지부 등을 상대로 신청한 가처분 고시였다. 법원이 발부한 고시에는 과도한 스피커 사용 금지와 더불어 쌍용차지부가 발언해서는 안 되는 말들이 빼곡히 담겨 있었다. 너무 적나라하게 적어 놓아 민망할 지경이었다.

'개××, 똥개××, 무능한 놈, 사기꾼들, 앞잡이, 미친 놈, 도둑놈, 빵에 집어넣어라, 개 한 마리가 뛰어다닌다, 개만도 못한 놈….'

쌍용차지부 사무실은 평택 시내에 있다. 그러나 지부는 공장 앞에 별도의 사무실을 마련했다. 끝까지 싸워서 공장으로 돌아가겠다는 강한 의지의 표현일 것이다. 비록 해고자들이 이끌어가는 사무실이지만 여느 사업장 못지않게 팽팽한 긴장감이 감돌았다.

바깥에서 쌍용차의 결합을 원하는 목소리도 크지만, 그보다는 쌍용차 스스로 외부의 투쟁을 외면하지 않으려는 각오가 남달라 보였다. 한진중공업의 행정대집행을 보면서 남의 일처럼 느껴지지 않아 평택에서 부산까지 하루 50km씩 걸어갔던 그들이다. 한진중공업 가족들을 위로하기 위해 무궁화호 열차 한 칸을 가득 채우고 부산으로 내려갔던 그들이다.

김득중 수석부지부장이 일정을 점검하고 있다.
▲ 쌍용자동차3 김득중 수석부지부장이 일정을 점검하고 있다.
ⓒ 육성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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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봄 쌍용차 피해자들의 사고후 스트레스 장애(PTSD)가 언론의 주목을 받았다. 실은 언론이 뒤늦게 알았을 뿐, 당사자들은 노사대타협 직후부터 겪어온 고통이었다. 최루가루를 뿌리며 공장 위를 날던 헬리콥터는 사라졌으나 농성 참가자들의 귀에서 굉음은 사라지지 않았다.

한솥밥을 먹던 노동자끼리 치고받는 비극은 끝났으나 야속한 동료에 대한 기억은 좀처럼 잊히지 않았다. 살아남은 자들은 죽은 자의 영정 앞에서 고인과 가까운 순서대로 죄의식을 느껴야 했다. 알코올 중독, 자살 시도, 가정 폭력의 참상이 그들의 삶을 깊은 수렁으로 몰아넣었다.

지자체와 지역사회는 뒤늦게 대책 마련에 분주했다. 평택시는 긴급히 예산을 편성해 공공근로 프로그램을 만들기도 했다. 이제 해고자들은 자신이 일하던 공장 주변을 청소하며 생계를 유지한다. 발등의 불은 껐으나 장기적 대안은 없다. 더 큰 문제는 밖으로 나오지 못하는 중증 피해자들이다. 고용노동부 관계자는 일터로 나와야만 지원이 가능하다고 말하지만, 정작 중요한 건 나올 수 있는 몸과 마음을 만드는 일이다. 상처가 치유되지 않은 이들에게 "우선 일을 하라"고 요구하는 것도 폭력에 다름 아니다.

금속노조 쌍용차지부 김득중 수석부지부장은 말한다.

"심리적 충격, 주변의 냉소, 가족들의 따돌림 등으로 대인공포증을 호소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그들에게 절실한 것은 일자리 이전에 상담치료다."

정신과 의사 정혜신 박사가 쌍용차 가족들을 찾아 지속적으로 집단상담을 벌이는 이유도 여기 있다. 그는 인권센터 주춧돌 강연에서 이렇게 말한 바 있다.

"치유를 위해서는 상처의 현장으로 돌아가야 한다. 끔찍한 고통을 끄집어내는 것에서 치유가 시작된다."

반가운 소식도 들린다. 쌍용차 가족들의 집단상담이 하나둘 치유의 싹을 틔우고 있다는 후문이다. 또 오는 10월 22일엔 쌍용차 가족들의 놀이와 치료를 겸할 수 있는 '와락 센터'가 문을 연다. 쌍용차 가족대책위원회 권지영 대표의 브리핑을 들으며 마음 한 구석의 짐을 내려놓을 수 있었다.


태그:#쌍용자동차, #와락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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