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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환경미화원이 손수레를 끌고 있다. (오마이뉴스 자료사진)
 한 환경미화원이 손수레를 끌고 있다. (오마이뉴스 자료사진)
ⓒ 김대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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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각장애 2급인 도로환경미화원 이아무개(48)씨. 그는 청각장애에다 지적능력마저 떨어지고 의사소통이 원활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는 도로 청소만큼은 누구보다 열심히했다. 이 씨는 인천서구청 소속으로 일 해온 13년 5개월 동안 모범적인 근무를 해 구청장과 노조위원장, 시의회의장으로부터 각각 표창을 받았다.

하지만 그는 지난 2월, 인천 서구청에서 쫓겨났다. 노부부가 운영하는 작은 식당에 공공용 쓰레기봉투를 무상으로 제공했다는 이유 때문이다. 중앙노동위원회가 지방노동위 판결을 뒤집고 '부당해고'라며 복직명령을 내렸지만 인천서구청(구청장 전년성)은 이에 불복, 행정소송을 준비 중이다.  

인천 서구청은 해고처분이 '당연하다'는 주장인 반면 이씨를 비롯 가족들은 '지나치다'고 하소연하고 있다. 이씨는 한순간에 생계를 걱정해야 하는 처지에 몰렸다.

사건은 지난 1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인천 서구청 청소행정과에 이씨의 비위행위 의혹이 접수됐다. 신고를 접한 서구청 청소행정과 관계자는 즉시 현장조사에 착수했다. 조사결과 이씨가 가좌1동 도로청소를 하면서 구청에서 지급해준 공공용쓰레기봉투를 주변에 있는 공단 내 모 식당에 제공하고, 식당주인인 노부부로부터 박카스 등 음료를 받아 마신 것으로 드러났다. 

서구청측은 확인 결과 1년 동안 일주일에 50리터(ℓ)짜리 공공용 쓰레기봉투를 1장 내지 2장씩 모두 약 150장(약 15만 원 상당) 정도를 준 것으로 확인됐다고 밝혔다.

도로 환경미화원들에게는 쓰레기 및 비규격봉투에 담겨 배출된 쓰레기를 처리할 수 있도록 하루 5매 정도의 공공용봉투가 배부되는데 이중 일부를 노부부에게 전달했다는 얘기다. 이와 관련 식당의 노인부부는 이씨가 준 공공용 쓰레기봉투를 일주일에 1장정도 사용했고, 남아 있던 쓰레기봉투는 모두 서구청에서 회수해갔다고 밝혔다.

이씨는 과거 이 같은 사유로 주의나 경고 등 징계를 받은 전력이 전혀 없었다. 그러나 서구청은 사실 확인이 끝나자마자 곧바로 이씨에 대한 해고절차를 밟기 시작했다. 3번씩이나 받은 모범근로자 표창장도 아무 소용이 없었다. 

일사천리 해고절차...10일 만에 구청장 결재까지

인천서구청 청소행정과 담당 공무원은 지난 1월 말 담당 과장과 국장, 부구청장에게 이씨를 해고해 달라고 상신했고, 최종 구청장의 내부결재까지 얻어냈다. 결재를 올린 지 10여 일만에 이씨의 손에 해고통지서가 전달됐다. 서구청측은 조사과정에서 이씨에게 진술서에 해당하는 문답서를 받은 것 외에 별다른 소명의 기회를 주지 않았다.

서구청 측은 "쓰레기봉투를 주면서 음료수를 제공받은 것에 그치지 않고 지속적으로 음료수를 요구하거나 주인의 허락 없이 냉장고에서 음료수를 꺼내 먹었다"며 "명백한 금품수수 등 부정행위이자 공익재산 관리소홀 등 업무상 중대한 과실에 해당돼 관련 규정에 따라 적법하게 해고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반면 이씨와 가족들은 "노부부가 비규격용 쓰레기봉투를 지속적으로 사용하자 도로변을 깨끗하게 할 생각으로 공공용 쓰레기봉투를 건넨 것"이라며 "음료수를 얻어먹기 위한 대가성이 아니었다"고 항변했다. 이어 "청각장애 2급이자 지적수준이 정상인에 비해 떨어지고 의사소통이 어려운 상태에서도 13년여 동안 누구보다 성실히 근무해 왔다"며 "잘못을 저지른 것은 사실이지만 생계수단마저 잃게 하는 것은 가혹하다"고 호소했다.

이에 대해 지방노동위원회는 서구청의 해고가 정당하다며 이씨의 항변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하지만 중앙노동위원회의 판단은 달랐다. 중앙노동위원회는 이씨가 인천광역시 서구청을 상대로 제기한 '부당해고구제재심청구'에 대해 "인천시가 행한 징계해고는 부당해고에 해당한다"며 "이씨를 원직에 복귀시키라"고 최근 결정했다. 

중앙노동위 "해고는 징계권 남용...원직 복귀시켜라"

인천광역시 서구청 홈페이지
 인천광역시 서구청 홈페이지
ⓒ 심규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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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노동위원회는 "공공용 쓰레기봉투를 제공한 것은 식당 주변도로의 청소를 위한 것이며 금품을 수수한다는 인식이 없는 상태에서 이루어진 행위로 '금품수수 등 부정행위는 성립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이어 "공공용봉투를 일반인에게 제공한 것은 자신의 직무를 다른 사람에게 미룬 것으로 볼 수 있다"면서도 "'중대한 업무상 과실' 아닌 '근무지시 불이행' 및 '직무태만행위에 해당한다"고 판단했다.

증앙노동위원회는 "장애인인 해당 근로자에 대한 사용자 측의 교육상 배려는 전혀 없었던 것으로 파악된다"며 "사용자가 관리 감독 및 교육을 제대로 하지 않은 책임도 있다"고 덧붙였다.

중앙노동위는 "근무지시불이행 및 직무태만행위에 대해서는 해고라는 극단적인 선택보다는 다른 징계를 통해서도 충분히 징계목적을  달성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며 "사용자의 충실한 교육지도감독을 받으며 다시 한 번 근무할 수 있는 기회를 주는 것이 타당하다"고 판시했다. 즉 환경미화를 목적으로 공공용쓰레기 봉투를 준 행위에 대해 해고 처분한 것은 징계재량권을 남용한 부당해고에 해당된다는 판단이다. 중앙노동위는 "30일 이내에 이씨를 원직에 복귀시키라"고 주문했다.  

인천 서구청 "승복 못해...행정소송 하겠다"

거리에 쌓여 있는 쓰레기 (자료사진)
 거리에 쌓여 있는 쓰레기 (자료사진)
ⓒ 김대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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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인천 서구청은 원직복직 대신 행정소송을 준비하고 있다. 인천 서구청 청소행정과 관계자는 지난 19일 기자와 한 전화통화를 통해 "중앙노동위 결정에 승복할 수 없다"며 "1년 동안 수십 여 차례에 걸쳐 식당주인에게 박카스 등 음료를 받아먹은 것이 왜 대가성이 아니냐"고 반문했다.

이어 "관련 규정(서구청 환경미화원 근무규정)에는 금품수수 등 부정행위에 대해서는 주의나 경고 없이 즉각 해고가 가능하도록 돼 있다"고 강조했다. 이 관계자는 또 "이씨가 근처 또 다른 식당에도 공공용 쓰레기봉투 15장을 준 사실을 추가로 확인했다"며 "현재 행정소송을 준비 중"이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이씨 사건을 담당해온 이혜영 노무사는 20일 "인천서구청 환경미화원 근무규정에 따르면 근무태만의 경우 주의와 경고에 이어 곧바로 해고가 가능하도록  돼 있다"며 "만약 이 씨가 장기계약직 근로자가 아닌 일반직 공무원이었다면 근무규정만으로도 '해고'라는 극단적 징계를 당하지 않았을 것으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어 "이씨의 경우 해고되면 다른 직장을 구할 여지가 전혀 없다"며 "징계가 지나치다며 원직복직하라는 중앙노동위원회의 결정에도 불구하고 행정소송을 제기하려는 것은 도저히 납득하기 어렵다"고 강조했다.   

이 노무사는 이어 "인천 서구청의 경우 환경미화원과 관련 징계사유 발생 시 징계위원회 구성 및 징계대상자에 대한 소명기회 부여 등 기본적인 권리를 보장하는 징계절차 규정조차 마련돼 있지 않다"며 "관련 규정 마련 등 제도적 정비가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태그:#인천 서구청, #전년성, #중앙노동위, #환경미화원, #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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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보천리 (牛步千里). 소걸음으로 천리를 가듯 천천히, 우직하게 가려고 합니다. 말은 느리지만 취재는 빠른 충청도가 생활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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