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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 젓는 배 타고 섬으로 들어가기

배를 타고 들어가는 블레드 섬과 성모 마리아교회
 배를 타고 들어가는 블레드 섬과 성모 마리아교회
ⓒ 이상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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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착장 입구에서 빌라 블레드까지는 호수를 따라 길이 나 있다. 호숫가에는 수련이 피어 있고, 그 주변에서 오리가 놀고 있다. 사람들도 호숫가에 앉아 휴식을 취한다. 빌라 블레드로 올라가는 언덕에는 산수국이 피어 있다. 우리는 호수 건너편 블레드성과 섬을 바라보며 여유있게 호숫가를 걷는다. 섬으로 건너가려면 배를 타야 하는데, 사람들은 이 배를 플레트나(Pletna)라고 부른다. 사공이 노를 젓는 목선이다.

도선장에 도착하니 플레트나 두 척이 우릴 기다리고 있다. 가이드가 이미 연락을 해서 대기하고 있는 것이다. 배를 타고 블레드 섬에 들어가 성모 마리아교회를 보고 나오는 것은 선택 사항으로 1인당 50유로다. 50유로가 싼 것은 아니지만, 함께 한 30명 모두 섬에 들어가기로 한다. 배를 타는 즐거움, 섬 안 문화유산 체험, 소망을 비는 종이야기 등이 우리를 유혹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간 우리를 위해 애쓴 가이드에게 보답하는 마음도 어느 정도 작용을 했다.

사공이 노를 젓는 목선 플레트나
 사공이 노를 젓는 목선 플레트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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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두 팀으로 나눠 15명씩 배에 오른다. 배가 크질 않아 정확히 절반씩 좌우로 앉도록 배치한다. 그러므로 한쪽에 8명씩 나란히 앉는다. 사공이 뒤에 타서 노를 젓는다. 비교적 많은 사람이 타서 그런지 사공이 꽤나 힘들어 한다. 다른 배를 보니 여섯 명이 타고 있다. 배를 타고 건너는 거리는 1㎞ 남짓이다. 호수에는 1인 또는 2인용 보트를 타는 사람들이 눈에 띈다. 이곳이 유럽의 대표적인 조정경기장이니 이처럼 보트를 타는 게 당연한 일이다.

배가 나무 데크로 만들어진 섬 선착장에 도착한다. 사공이 배를 거꾸로 돌려 선미가 선착장에 닿도록 한다. 그리고 양쪽에서 차례차례 사람이 내리도록 유도한다. 한쪽에서 먼저 내리거나 균형이 안 맞으면 배가 기울 수 있기 때문이다. 사실 이 배는 구명조끼라든지 안전장구 같은 것이 없다. 그래서 더 조심을 해야 한다. 선착장에 내리니 바로 교회로 올라가는 계단이 있다.   

성모 마리아교회의 역사

성모 마리아교회
 성모 마리아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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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단은 교회 마당으로 이어지는데, 계단의 숫자가 99개라고 한다. 계단을 따라 올라가다 보면 중간 왼쪽에 작은 예배당이 하나 있다. 여기서 다시 계단을 올라가면 왼쪽으로 사제관이 있다. 사제관 앞으로는 마당이 펼쳐지고, 그 끝에 54m 높이의 종탑이 보인다. 초기 바로크 양식의 성모 마리아교회다.

블레드 섬에 사람이 살기 시작한 것은 기원전 7세기경이라고 한다. 그것은 이곳에 있는 무덤의 발굴을 통해 확인되었다. 이곳에 교회가 세워진 것은 8~9세기경으로 추정된다. 당시 슬라브 토속신앙 제단이 설치되었던 자리에 예배공간(Chapel)이 만들어졌고, 그것이 12세기에 로마네스크 양식의 교회로 발전했다. 그리고 1465년 류블랴나의 주교 지기스문트 람베르크에 의해 고딕양식으로 개축되었다. 이때 제단과 종탑도 완성되었다고 한다.

수태고지
 수태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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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1509년 대지진이 일어났고, 건물이 초기 바로크 양식으로 다시 지어졌다. 1534년에는 이탈리아 파도바 출신의 프란시스쿠스 파타비누스에 의해 소망의 종이 만들어져 종탑에 걸리게 되었다. 이 종은 지름이 66㎝, 높이가 56㎝, 무게가 178㎏이다. 지금의 교회는 1690년 지진 이후 다시 지어진 것으로 바로크 양식을 보여주고 있다.

이 교회의 공식 명칭은 성모 마리아교회다. 그래서인지 교회 벽에 마련된 기도소에 수태고지 장면이 부조되어 있다. 가브리엘 천사가 무릎을 꿇은 성모 마리아에게 성령으로 예수를 잉태하게 되었음을 알려준다. 1866년 작품이다. 이곳을 돌아 교회 정문으로 들어가면 정면으로 중앙제단이 보인다. 아기 예수를 안은 마리아상을 조각했고, 좌우에 하인리히 2세와 그의 부인 쿠니군데가 호위하고 있다. 제단의 조각은 나무로 만들어졌으며, 화려한 금박을 입혔다. 1747년에 만들어졌다고 한다.   

교회에서 종을 치면서 소원 빌기

종을 치기 위해 줄을 잡아당기는 아내와 나
 종을 치기 위해 줄을 잡아당기는 아내와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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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중앙제단 앞에는 천장에서 긴 줄이 하나 내려와 있다. 이것이 바로 종을 치는 줄이다. 줄을 잡아당기면 종소리가 울리고, 그때 소원을 빌도록 되어 있다. 그러므로 소원을 빌려는 관광객이 이곳 마리아 교회를 많이 찾는다. 아내와 나도 차례를 기다려 종을 친다. 그런데 종을 치기 위해 줄을 끌어당기는 데만 신경을 쓰다 보니 소원 말하는 것을 잊어버렸다. 그래서 우리는 다시 한 번 종을 치며 소원을 빈다.

마리아 교회의 종이 이처럼 소원을 비는 종이 된 데는 다음과 같은 사연이 있다. 블레드 성에 아름다운 과부가 하나 살고 있었다고 한다. 그녀는 남편이 도둑에게 살해된 것을 슬퍼하며, 돈을 모아 블레드 호수섬의 교회에 종을 하나 기증하기로 마음먹는다. 그녀의 소원이 결실을 맺어 종이 완성되었고, 그 종을 섬으로 이송하게 되었다. 그런데 폭풍에 그만 배가 뒤집혀 종이 물속으로 가라앉고 말았다.

중앙 제단
 중앙 제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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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탄에 빠진 젊은 과부는 로마로 가 수녀원에 들어가게 되었다. 그녀가 죽은 후 교황은 새로운 종을 하나 만들어 블레드 호수섬에 있는 교회에 보내주게 되었다. 그때부터 마리아를 공경하며 종을 치는 자는 그 소망을 이루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요즈음에도 조용한 밤이면 호수 깊은 속에서 나는 종소리를 들을 수 있다고 한다.

교회 안에는 제단과 종 외에 1639년에 만든 오르간과 1690년에 만들어진 성 안나 제단 등이 있다. 이곳에 남아있는 가장 오래된 조각품은 15세기에 나무로 만든 성 모자상이다. 왕관을 쓴 성모 마리아가 왼손에 예수를 안고 있는 고딕양식의 작품이다. 그리고 1470년경에 그려진 고딕식 프레스코화도 일부 남아 있다. 또한 교회 바닥에는 발굴한 곳을 유리로 덮어 지하의 모습을 볼 수 있도록 했다. 

교회에서 만난 결혼식 하객들

섬에서 바라 본 블레드성
 섬에서 바라 본 블레드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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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를 나온 우리는 교회 주변을 한 바퀴 돈다. 우선 정원에 바로크 양식으로 만든 마리아 막달레나 조소상이 보인다. 바로크 양식이라면 300년은 된 것이다. 마리아 막달레나, 예수의 부활을 처음 목격한 사람이다. 그녀의 모습을 이렇게 생생하게 볼 수 있다니 행운이다. 상상력이 가미된 예술품이기는 하지만, 그 감회가 남다르다. 소설 <다빈치 코드> 때문에 더 관심이 간다. 마리아 막달레나 앞에는 제라늄 꽃이 놓여 있다.

또 주변에서는 지진으로 파괴된 건축 부재들을 볼 수 있다. 이제는 계단을 내려가 물가로 간다. 호수 건너 블레드성이 가까이 보인다. 섬을 한 바퀴 돌면서 호수 주변을 살펴본다. 건너편 빌라 블레드도 보이고, 호수에서 보트를 타는 사람들도 보인다. 교회를 보기 위해 찾아온 이슬람교도도 있다. 물가에서 성모 마리아교회를 올려다보니 종탑이 더 높아 보인다.

젊은 결혼식 하객들
 젊은 결혼식 하객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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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언덕을 올라와 교회를 다시 한 번 살펴보고 우리는 선착장으로 향한다. 그런데 정장차림의 남녀가 한 떼 몰려온다. 다들 젊은 사람이다. 알고 보니 결혼식 하객들로, 신랑신부와 함께 이곳 교회에 소망을 빌러 왔다고 한다. 신랑과 신부는 아직 도착하지 않았고, 이들 친구들이 먼저 도착을 했다는 것이다. 옷이고 표정이고 정말 멋쟁이들이다.

슬로베니아는 구 유고 연방국가 중에서 가장 민주적이면서도 소득이 높은 나라다. 그래서 그들은 2004년 유럽연합에 가입했고, 서유럽의 시스템을 받아들이고 있다. 사실 우리도 슬로베니아에 들어옴으로 해서 유로존(Eurozone)에 들어온 셈이다. 유로화를 사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들의 종교도 로마 가톨릭이어서 정신적인 면에서도 서유럽적이다.

빌라 블레드
 빌라 블레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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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배를 타기 위해 다시 계단을 내려간다. 우리는 선착장에서 배를 타고 다시 블레드 호수를 건넌다. 그리고 빌라 블레드에 들러 잠시 내부를 살펴본다. 빌라 블레드는 정원이 잘 갖춰진 4성급 호텔이다. 이곳에서는 섬의 성모 마리아 교회도 잘 보이고, 호수 건너 블레드성도 잘 보인다. 한때 이곳을 별장으로 사용했던 요십 티토(1892-1980)도 이렇게 아름다운 경치 속에서 편안한 휴식을 취했을 것이다.

티토는 유고슬라비아가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지배를 받던 1892년 쿰로베치(현재 크로아티아 지역)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크로아티아 사람이고, 어머니는 슬로베니아 사람이었다. 그는 제1차 세계대전 때 오스트리아-헝가리제국의 군인으로 러시아 전선에 투입되었다가 러시아군의 포로가 되었고, 1917년 러시아 10월 혁명에 참여하면서 공산주의자가 되었다. 그는 제1차 세계대전 후 유고 공산당 창립에 주도적으로 참여했고, 1939년 유고슬라비아 공산당 서기장이 되었다. 1943년에 그는 유고 사회주의 연방공화국의 수상이 되었고, 1953년 대통령이 되어 1980년 죽을 때까지 유고의 정치를 이끌며 비동맹 외교노선을 추구했다.

블레드를 떠나면서   

블레드의 피카소
 블레드의 피카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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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라 블레드를 나와 주차장으로 가니 버스가 기다리고 있다. 우리는 이제 블레드를 떠나 잘츠부르크로 간다. 시내를 지나면서 보니 데바 프리(Deva Puri) 미술관에서 7월 6일부터 11월 27일까지 파블로 피카소 전시회가 열리고 있다. '리베에라에서 보낸 몇 년'이라는 제목으로 열리는 특별전시회다. 전시회 포스터에 그의 사진이 들어있다. 검은 모자를 쓰고 입에 담배를 문 인상적인 모습이다.

주름진 얼굴에 능청스러운 미소까지 띠고 있다. 그는 미술에 있어서 한 세기를 풍미한 사람이지만, 그 능청스런 미소로 많은 여자들을 유혹하곤 했다. 그 미소를 뒤로 하며 우리는 블레드를 떠나고 슬로베니아를 떠난다. 차는 잠시 후 고속도로로 들어서더니 이내 고도를 높이며 줄리앙 알프스 산맥으로 들어간다. 예세니체를 지나 터널을 한두 개 통과하자 어느새 오스트리아 땅이다. 독일어 권역에 들어왔으니 이제 언어소통이 조금 자유로워질 것 같다. 


태그:#블레드섬, #성모 마리아교회, #소원을 비는 종, #티토, #피카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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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심분야는 문화입니다. 유럽의 문화와 예술, 국내외 여행기, 우리의 전통문화 등 기사를 올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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