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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치고 지나가는 바람
왔다가 사라지는 바람
날 울려놓고 가는 바람
그대 이름은 바람 바람 바람

참으로 기복이 심하다. 그래서 더욱 허망하다. 요동치는 선거 풍향과 민심 동향은 가수 김범용이 불렀던 <바람 바람 바람>이란 노래 가사만큼이나 기복이 심하고 허망하다. 민심을 더욱 복잡하게 만든 바람이 추석연휴 끝에 다시 한번 거세게 불어닥쳤다. 정가에 혜성처럼 나타나 거대한 돌풍을 일으킨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에 이어 또 한 명의 유력 야권 후보가 서울시장 후보군에서 바람처럼 사라졌다.

장고를 하더니 추석연휴 마지막 날, 던졌다. 한명숙 전 국무총리가 13일 서울시장 보궐선거에 출마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후폭풍과 파생변수가 만만치 않을 전망이다. 한 전 총리는 이날 황창화 전 총리실 정무수석을 통해 "서울시장 보궐선거에 출마하지 않기로 결정했다"면서 "그동안 당 안팎의 많은 분들과 상의하고 여러 날 고심을 거듭한 끝에 내린 결정"이라고 밝혔다. 안철수 교수가 박원순 변호사를 지지하며 서울시장 출마포기를 선언한 지 1주일 만이다.

같은 날, 같은 표본 대상 여론조사, 왜 빗나간 결과 나온 것일까?

한명숙 전 총리가 3일 오후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된 전태일 열사의 어머니 고 이소선 여사의 빈소를 찾아 조문하고 있다.
 한명숙 전 총리가 3일 오후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된 전태일 열사의 어머니 고 이소선 여사의 빈소를 찾아 조문하고 있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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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가올 10·26 재보선뿐만 아니라 내년 총선과 대선 풍향의 커다란 변수로 작용할 만하다. 당장 정치권에 미칠 파장이 커 보인다. 박원순 변호사가 손학규 민주당 대표와 만난 것도 추석연휴 마지막 날이다. 이 자리에서 박 변호사는 민주당에 입당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싸늘한 민심이 싸늘한 바람을 일으킨 것으로 해석된다. 

가뜩이나 추석을 앞두고 실시한 지역언론사들의 여론조사에서 물갈이론이 팽배했다. 새 인물, 제3의 인물에 목말라하고 있음이 대부분 지역신문들이 실시한 여론조사와 진단결과에서 묻어났다. 이에 호응이라도 하듯 추석이후 정가의 풍향은 급속도로 새 기류를 맞게 됐다. 민심의 향배도 다시 오리무중이다.

그러나 서울시장 선거는 여전히 정치적 함의가 크다. 내년 중대 선거에 강력한 변수로 작용할 전망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새로운 정치적 변수를 만날 때  마다 꼭 지뢰밭을 걷는 기분이라고 말하는 여론조사 전문가들이 더러 있다. 지뢰밭을 알고 헤쳐나가는 것과 모르고 헤쳐나가는 것은 극과 극의 결과를 가져오기 때문이다. 여론조사도 마찬가지다.

정치적 상황의 가변적 요인들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설계한 설문문항을 제시하거나 독립적인 변수와 종속적인 변수를 거꾸로 활용한 경우, 또는 임기응변식의 급한 조사방식을 사용한 경우, 응답률이 극도로 저조한 때에는 정치적 상황을 정확히 분석하고 선거결과를 예측해 내기란 매우 힘들기 마련이다.

저마다 다른 형태의 여론조사를 미끼로 달아놓고 민심의 향배를 쫓던 언론사들은 한 전 총리의 불출마 선언 앞에 정치권 못지않게 당황해하고 있다. 불과 사나흘 앞의 변수를 읽지 못했으니 그럴 만도 하다. 일부 언론들은 추석연휴가 끝나자마자 한 전 총리가 서울시장 출마선언을 할 것으로 내다보며 기정사실처럼 보도했다.

그러나 틀린 예측이었다. 추석연휴가 시작되면서 경쟁적으로 내놓은 여론조사 결과도 들쭉날쭉 달랐다. 언론사들은 추석연휴 전만 해도 한 전 총리가 강력한 서울시장 후보군의 변인으로 보고 여론을 저울질했던 것이다. 결과는 들쭉날쭉이었다. 춤추는 여론조사는 어디서부터 시작되는 것일까. 같은 날 같은 표본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들인데도 왜 빗나간 결과가 나오는 것일까. '극과 극', '널뛰기' 여론조사 사례들을 복기해보면 그 원인과 해법을 찾을 수 있다.

[장면①] 빗나간 여론조사, 언론은 상습범?

<매일경제신문>이 무상급식 주민투표와 관련, 8월 14일과 15일 이틀 동안 실시한 조사결과를 내보냈다. - <매일경제신문> 누리집 갈무리
 <매일경제신문>이 무상급식 주민투표와 관련, 8월 14일과 15일 이틀 동안 실시한 조사결과를 내보냈다. - <매일경제신문> 누리집 갈무리
ⓒ 매일경제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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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 무상급식 주민투표 실시 한 달 전인 지난 7월 23일. <조선일보>는 미디어리서치에 의뢰해 투표율 예측 여론조사를 실시했다. 그 결과 "반드시 투표하겠다"는 '적극 투표층'은 34.6%로 나타났다. <동아일보>도 오세훈 서울시장이 대선 불출마를 선언한 8월 12일 이후 코리아리서치센터에 의뢰해 8월 13일과 14일 이틀 동안 투표율 예측 여론조사를 실시했다. 조사결과, '적극 투표층'이 37%로 나타났다. <조선일보>의 결과보다 높은 수치다.

이어 <매일경제신문>이 한길리서치와 공동으로 8월 14일과 15일 이틀 동안 실시한 조사결과는 더욱 높아진 결과가 나와 주목을 끌었다. 조사결과, 무려 40.3%의 응답자들이 "투표에 반드시 참여하겠다"는 '적극 투표의사'를 밝혀 조사결과 가운데 가장 높은 수치를 기록했다. 그 후 <중앙일보>와 YTN, 동아시아연구원이 한국리서치에 의뢰해 8월 20일 실시한 여론조사에서도 적극 투표층은 38.3%로 <조선일보>, <동아일보>의 결과를 앞질렀다. 그래서일까. 한나라당과 서울시는 투표 직전까지 투표율을 30%대로 자신했다.

그러나 8월 24일 실시된 서울시 무상급식 주민투표율은 25.7%에 머물렀다. 투표율이 개표에 필요한 33.3%에 미치지 못하면서 주민투표는 투표함도 열지 못한 채 자동 무산됐다. 시장직을 내걸었던 오세훈 서울시장 사퇴와 함께 여당 지지도는 동반 하락했다. 박근혜 한나라당 전 대표의 지지율도 20%대로 추락했다.

언론사가 실제 투표율을 고려해 '적극 투표층'의 범위를 명확하게 정해야 한다는 지적은 이미 여러 차례 나온 바 있다. 그런데 이들 신문들은 언제나 그랬던 것처럼 투표율 예측이 크게 빗나간 보도에 대한 해명과 사과에 인색했다. 지난해 6․2 지방선거와 지난 4․27 재보궐 선거에서도 결과를 제대로 예측하지 못했던 언론들이 이번 서울시 무상급식 주민투표에도 '적극 투표 응답률'과 실제 투표율의 '공백'을 크게 좁히지 못했다.

지난 4․27 강원도지사 재보선선거 보도도 예측과 결과가 달랐다. 엄기영 한나라당 후보와 최문순 민주당 후보가 격돌한 강원도지사 선거가 엄기영 후보가 승리하는 것으로 여론조사 결과가 발표됐지만, 결과는 최문순 후보가 당선됐다. 빗나간 예측조사는 출구조사에서도 마찬가지다. 작년 6.2 지방선거 16개 광역단체장 선거에 대한 KBS, MBC, SBS 등 방송3사와 YTN-한국갤럽의 출구조사가 각각 엇갈린 예측을 내놓아 유권자들이 혼란을 겪었다.

[장면②] 서울시장 재보선 여론조사결과 '극과 극' 왜?

지난 8월 27일과 28일, 이틀 사이에 실시된 서울시민 대상 여론조사결과가 서로 다르게 나와 따가운 시선을 끌었다. 같은 사안인데도 결과는 180도로 달랐다. <한겨레>와 <한국일보>가 같은 날, 같은 표본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결과가 대조를 이뤘다.

<한겨레>는 한국사회여론연구소(KSOI)에 의뢰해 지난달 27일 서울지역 유권자 400명을 대상으로 전화여론조사를 실시했다. 조사결과, 서울시장 보궐선거에서 여당 후보를 찍겠다(40.0%)는 사람이 야당 후보를 찍겠다(32.9%)는 사람보다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부동층은 27.1%였다. 

여야 후보군 전체를 대상으로 한 서울시장 보궐선거 지지도 조사에서 나경원 한나라당 최고위원(21.5%), 한명숙 전 총리(20.0%), 정운찬 전 총리(7.6%) 순으로 나타났다. 이와 관련, 신문은 "서울의 여당 강세현상은 보수층의 결집 흐름이 강해지고 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며 "지난해 6·2 지방선거 이후 4·27 재보선, 무상급식 주민투표까지 여당이 연전연패하면서 보수층의 위기감이 그만큼 높아졌다"고 분석했다. 이 조사는 95% 신뢰수준에 표본오차는 ±4.9%p다.

<한국일보>가 <한국리서치>와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 - <한국일보> 누리집 갈무리
 <한국일보>가 <한국리서치>와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 - <한국일보> 누리집 갈무리
ⓒ 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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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한국일보>의 같은 날 조사결과는 정반대였다. <한국일보>는 한국리서치에 의뢰해 27일 서울시민 800명을 대상으로 전화여론조사를 실시했다. 10∙26 서울시장 보궐선거에서 여야의 유력 후보들이 맞붙는 가상대결 여론조사를 실시한 결과, 한명숙 전 총리가 출마할 경우 한나라당 유력 후보들과의 대결에서 모두 승리하는 것으로 나왔다.

나경원 한나라당 최고위원과 한 전 총리가 맞붙을 경우 한 전 총리의 지지도는 47.6%로 나 최고위원(28.6%)보다 19.0% 포인트 더 높은 것으로 조사됐다. 한나라당이 정운찬 전 총리를 영입해 출마시킬 경우에도 한 전 총리는 48.5%의 지지율로 정 전 총리(28.0%)를 20.5% 포인트 차이로 앞섰다.

또한 후보의 이름을 명시하지 않고 한나라당 후보와 야권 단일후보에 대한 지지를 물을 경우에 야권 단일후보 지지율이 43.8%로 한나라당 후보 지지율(26.9%)보다 크게 앞섰다. 이 조사의 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 ±3.5%p이다. 두 신문의 여론조사결과는 유권자들을 헷갈리게 하기에 충분했다.

[장면③] '춤추는 여론조사' 추석민심 "헷갈리네"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이 6일 오후 서울 광화문 세종문화회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10·26 서울시장 보궐선거에 출마하지 않겠다며 입장을 밝힌뒤 박원순 희망제작소 상임이사와 함께 포옹을 하고 있다.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이 6일 오후 서울 광화문 세종문화회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10·26 서울시장 보궐선거에 출마하지 않겠다며 입장을 밝힌뒤 박원순 희망제작소 상임이사와 함께 포옹을 하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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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연휴 직전, 각 언론사들이 쏟아낸 여론조사 결과가 천차만별이어서 연휴기간 내내 유권자들을 혼란스럽게 했다. 먼저 <조선일보>는 미디어리서치와 7일 서울시민 500명을 대상으로 여론조사를 RDD(Random Digit Dialing, 임의번호 걸기방식)를 실시했다. 조사결과, 양자대결에선 박원순 변호사 51.1%, 나경원 한나라당 최고위원 32.5%로 나타났다. 그러나 다자대결에선 박원순-한명숙-나경원(19.2%-18.4%-18.3%) 순으로 근소한 차이를 보였다.

<동아일보>도 코리아리서치에 의뢰해 지난 6일과 7일 이틀간 전국 성인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여론조사를 실시했다. 이 역시 서울시장 선호도를 RDD방식으로 실시했다. 결과는 박원순 변호사가 나경원 최고위원과의 양자대결에서 49.9%대 33.5%로 크게 앞섰다. 다자대결에선 박원순-한명숙-나경원(19.8%-13.2%-12.6%) 순으로 나타났다.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가 6일 여론조사 전문기관 리얼미터에 의뢰해 실시한 여론조사결과는 나 최고위원이 오차범위 내에서 앞서는 것으로 조사됐다. 나 최고위원은 안철수 교수 사퇴전인 지난 4일 조사보다 4.4% 포인트 오른 41.7%를 기록했고, 박 변호사는 1%p 오른 37.3%를 기록, 나 최고위원이 4.4%p 앞서는 것으로 조사됐다.

야권 단일후보로 한 전 총리가 맞붙을 경우에도 나 최고위원이 44.7%, 한 전 총리가 38.3%를 기록, 나 최고위원이 앞서는 것으로 나타났다. 나경원-박원순 대결에 비해 부동층이 줄어들고 후보 간 격차가 소폭 증가해, 나 최고위원이 한 전 총리를 5.5% 포인트 앞서는 것으로 나타났다.

<경향신문>과 여론조사기관 디오피니언이 7일 서울의 성인남녀 6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에서도 나 최고위원은 45.6%를 얻어 박 변호사(42.5%)에 3.1%p 앞섰다. 나 최고위원과 한 전 총리의 가상대결에서는 나 최고위원(51.5%)의 지지율이 한 전 총리(33.9%)보다 17.6%p 높았다.

그러나 MBC가 8일 여론조사기관 엠비존C&C에 의뢰해 전국 19세 이상 성인남녀 1537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휴대전화 여론조사 결과에선 다른 결과가 나왔다. 서울시장 선호도 1대1 가상대결에서 박 변호사는 과반 이상의 지지율을 얻으며, 나 최고위원을 무려 20% 포인트 가까이 앞섰다. 박 변호사의 지지율은 6일 이후 지금까지 나온 서울시장 선호도 여론조사 중 가장 높은 수치다. 어떤 여론조사가 맞는 걸까. 헷갈리다 못해 어지럽게 했다.

[장면④] "안철수야" vs. "박근혜야", 대선 여론조사도 '극과 극'

SBS 9일 8시뉴스 - SBS 방송화면 갈무리
 SBS 9일 8시뉴스 - SBS 방송화면 갈무리
ⓒ S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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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장에 이어 내년 대선 여론조사결과를 놓고도 언론사들 간 상반된 결과를 내놓아 헷갈리게 한다. 추석을 앞두고 MBC-SBS가 같은 날 보도한 여론조사 결과는 너무 큰 간극을 보임으로써 혼란을 부채질했다. 언론이 악의적 의도를 지니고 혼란을 부추기는 게 아니냐는 지적이 나올 정도다. SBS가 9일 8시뉴스를 통해 여론조사기관 TNS미디어에 의뢰해 전국 19세 이상 남녀 1500명을 대상으로 전화여론조사를 실시한 결과를 먼저 보도했다.

'내년 대통령 선거에 한나라당 박근혜 후보와 야권의 안철수 후보가 출마한다면, 누구에게 투표하겠느냐'는 질문에 박근혜(45.9%), 안철수(38.8%) 순으로 나타났다고 보도했다. 박근혜 한나라당 전 대표가 안철수 서울대 교수를 7.1%p 앞선 것이다. '모름, 무응답'은 15.3%였다.

전국 1500명을 대상으로 집 전화를 이용한 전화면접 방식이 특징을 이룬다. 이 조사의 오차한계는 95% 신뢰수준에 ±3.1%p로, 박 의원과 안 교수의 지지도 차이인 7.1%p는 이번 조사의 오차한계 최대치인 6.2%p를 넘어선 수준이다.

MBC 9일 뉴스데스크 - MBC 방송화면 갈무리
 MBC 9일 뉴스데스크 - MBC 방송화면 갈무리
ⓒ M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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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MBC가 엠비존씨엔씨에 의뢰해 전국의 19세 이상 성인남녀 1537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결과는 달랐다. 차기 대선 선호후보로 양자구도일 경우 박근혜 전 대표 32.6%, 안철수 교수 59.0%로 안 교수가 압도적으로 높은 것으로 조사됐다고 이날 MBC는 보도했다. 어느 여론조사보다 안 교수가 높게 나왔다. MBC 여론조사결과가 SBS와 상반된 결과를 보인 이유는 뭘까.

그런데 다음날 <중앙일보>는 박근혜 전 대표와 안철수 교수가 박빙으로 조사됐다고 보도했다. <중앙일보>가 자사 조사연구팀을 통해 지난 8일 전국의 성인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실시했다는 여론조사결과는 박근혜 46.6%, 안철수 46.3%였다. <중앙일보>의 조사방식 또한 달랐다. RDD방식, 즉 전화번호부에 없는 사람까지 조사하기 위한 임의번호 걸기 방식으로 실시한 것이다.

<중앙일보>의 조사방식은 집 전화 조사를 했다는 점에서 SBS와 유사한 방식을 썼다. 그러나 같은 날 진행한 여론조사가 이렇게 큰 차이가 나타났다는 것은 쉽게 이해되지 않는 대목이다. 같은 시기에 진행한 여론조사가 이렇게 큰 차이를 나타낸다면 여론조사 자체의 신뢰성에 의문이 제기될 법도 하다.

응답률, 조사방식 등 '기본요건' 충족 때만 조사발표 허용해야

언론의 여론조사 신뢰성이 땅에 떨어진 지 오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론조사는 계속되고 있다. 그렇다면 앞으로 언론은 선거와 관련해 여론조사를 실시하지 말아야 하는 걸까. 유권자들에게 보다 다양하고 유용한 정보를 전달하기 위해선 당장 개선책이 필요하다. 특히 동일시점에 동일사안에 대한 여론조사들이 '극과 극'이라면 문제는 심각하다. 국민들에게 '믿거나 말거나', 알아서 취사선택하라는 얘기에 다름 아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무엇부터 개선해야 할까. 여론조사가 같은 날 조사에도 불구하고 차이가 나는 것은 일단 조사 의뢰자의 편의성에 있다. 조사 의뢰자가 원하는 방향대로 조사를 의뢰할 때 현실과 부합되는 결과가 나올 수 있다. 특히 설문문항은 일체의 수사를 붙이지 않은 건조한 문항을, 그것도 매우 짧고 간결하게 설계해야 하는 것은 기본이다.

예를 들면 "다음의 후보 중 귀하는 누구를 지지하십니까? 질문순서는 기호순입니다"라고 하는 것과 설문 중 '00당 000후보와 대항하여 어떤 후보가 더 경쟁력이 있다고 생각하십니까?'라든지, '야권의 연합후보로 어떤 후보가 더 적합하다고 생각하십니까?'라는 문항은 역선택이기 때문에 편차가 클 수밖에 없다. 설문문항에 의도된 계산이 깔린 경우로 볼 수 있다.

또 다른 문제점은 전화번호부의 등재된 가구와 그렇지 않은 가구, 일반전화와 핸드폰, RDD 조사방식에 따라 차이가 날 수 있다. 전화번호부에 집 전화를 등재한 집단과 등재하지 않은 집단 간 정치적 성향의 차이가 존재하기 때문에 '전화번호부에 등재된 가구'만을 대상으로 한 방식은 오류가 있을 수 있다. 평일 집 전화조사의 경우 대부분 주부나 장년·노년층이 대부분이기 때문에 평일에 할 경우 저녁시간대에 하는 것이 중요하다. 하지만 이런 것을 지키는 여론조사기관이 과연 얼마나 될까?

아울러 KT 전화번호는 가입자가 공개되는 반면, 휴대폰 전화번호의 경우 사용자가 동의를 해야 조사대상으로 포함시킬 수 있는 것도 문제점으로 부각되고 있다. 최근 MBC와 SBS의 내년 대선관련 여론조사결과가 다른 이유도 한쪽은 휴대전화 조사방법을 택했고, 다른 쪽은 집 전화 조사방법을 택했기 때문이다.

휴대전화 조사방식은 임의로 전화를 걸어 응답을 받은 것이 아닌, 조사에 참여할 의사를 밝힌 사람들을 대상으로 하는 일종의 패널 조사방식이지만 집 전화 여론조사의 경우 상대적으로 보수적인 성향의 응답이 높다는 게 지배적 분석이다. 성인이면 누구나 가지고 있다는 점에서 보편적인 여론을 확인하는 데 더 유리한 휴대전화는 다르다. 그러나 전화조사의 경우 낮은 응답률이 더 큰 문제다. 20%에도 못 미치는 낮은 응답률을 전체 표본에 적용한다는 것 자체에 무리다.

또 다른 문제는 언론의 보도태도에 있다. 자사의 이념적 성향에 맞는 프레임을 이미 구축해 놓고 그 프레임에 녹여 붓는 형태의 보도가 문제다. 여론조사의 '적극 투표 응답률'과 실제 투표율이 큰 차이가 있다는 걸 알면서도 이러한 사실을 제대로 보도하지 않은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이쯤 되면 응답률과 조사방식 등이 '기본요건'을 충족했을 때에만 발표를 허용하도록 '타율적 규제'가 필요하지 않을까?


태그:#여론조사, #총선, #대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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