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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영파선교회 의료봉사단(단장 박재형 서울대의대교수), 대길사회복지재단(이사장 박현식 목사), 서대문교회(담임목사 장봉생) 등은 8월 14~15일, 1박2일간 경북 의성군 다인면 외정1리에 위치한 산정교회(담임목사 류기선)에서 의료봉사 및 이/미용봉사, 음악회와 주민잔치를 진행했습니다.

 

가는 길도 오는 길도 막혔습니다. 13~15일까지 사흘간의 황금 연휴 기간을 즐기기 위해 나선 차량들로 인해 고속도로는 주차장을 방불케 했습니다. 세계 경제가 휘청거리고 주식시장이 폭락하면서 한숨과 비명소리가 들리고, 유가와 물가가 천정부지로 솟구친다며 아우성치지만 그럼에도 우리가 사는 세상은 풍요롭습니다.

 

빚을 내서라도 먹고, 마시고, 즐기는 세상입니다. 자신들만의 기쁨을 충족시키기 위해 자유와 풍요를 누리는 세상 한 켠에는 많진 않지만 이웃을 사랑하려고 애쓰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네 몸과 같이 이웃을 사랑하라는 예수의 가르침을 따르는 사람들과 함께 시골교회로 향했습니다.

 

 

14일 오후 5시 넘어 출발한 봉고차량은 장대비와 어둠을 뚫고 달렸습니다. 서울에서 장장230km 떨어진 산정교회에는 밤 8시30분경 도착했습니다. 내비게이션이 없었다면 찾아가지 못했을 겁니다. 이 논과 저 밭을 여럿 지나 꼬불꼬불, 자칫하면 논두렁에 빠질 수 있는 좁은 길을 지나, 길이 더 이상 없을 것 같은 그 외진 곳에 시골교회가 있었습니다. 1958년에 설립된 '산정교회', 뼛속까지 허기졌던 그 시절에 누군가는 땅을 내 놓았을 테고 또, 누군가는 벽돌을 찍고 쌓았을 테고, 또 누군가는 종탑을 세웠을 테고, 연봇돈도 없는 가난한 교인들은 한 줌 한 줌 모은 성미(誠米)를 내 놓았을 테고….

 

담임목사님이 늦은 도착을 반겨주었는데 천상 농민의 모습이었습니다. 그래야겠지요. 농민들의 이웃이 되려면 양복차림보다는 구릿빛 얼굴이 마땅하지 않을까요. 이웃이 되려면 높은 자리에 앉아선 곤란하겠지요. 눈물 흘리는 이들의 이웃이 되려면 눈물이 되어야 하겠고, 아픈 이들의 이웃이 되려면 아픈 마음이 되어야 하겠고, 가난한 이들의 이웃이 되려면 심령이 가난해져야겠지요. 그래서 목수 출신의 갈릴리 사내 예수는 고아와 과부와 어부와 병든 사람과 가난한 이들의 친구였습니다.

 

 

하늘의 뜻을 강조해도 될 것 같습니다. 6월 장마이래 해뜬 날이 손꼽을 정도였는데 8월 15일은 그야말로 광복(光復)의 날이었습니다. 새벽을 깨워 밖으로 나섰더니 비는 그쳤고 아슴프레한 안개가 논에 뿌려졌습니다. 이장님은 이른 아침부터 확성기를 틀고서 안내 방송을 했습니다. 교회에서 의료봉사와 이/미용봉사, 주민잔치와 음악회가 열리니 한 분도 빠짐없이 교회로 모이라고 말입니다. 담임목사님과 이장님의 말씀에 따르면 주민의 대다수가 교회로 왔다고 하더군요. 이날 인기가 가장 좋은, 일명 '대박' 터트린 봉사는 이/미용이었습니다. 새벽 농사를 마친 할머니들은 9시 시작 전부터 진을 치고 있다가 커트를 하고, 퍼머를 하셨습니다.

 

온 몸이

쑤시고 아파도

농삿 일이 바빠서

눕지도 못하는 사람들아

온 생이

눈물로 얼룩져도

세상 일에 쫓기다가

쉴 곳도 없이 떠나는 사람들아

 

- 습작 '하직'(下直)

 

비오면 비오는 대로 해뜨면 해뜨는 대로 바쁜 농삿일, 젊은 일꾼들은 눈 씻고 찾아도 보이지 않는 농촌에는 평생을 흙과 함께 살아온 촌로들이 김을 매고 피를 뽑습니다. 이른 새벽부터 늦은 밤까지 일하고 또 일해도 줄어들지 않는 게 농삿일…. 몸이 아파도 일이 무서워 병원에 가지 못합니다. 그렇게 고단한 인생들이 막막하게 지고 있습니다. 병원 갈 짬도 없는 촌로들, 자신의 휴일을 반납하고 그 이웃들을 찾아가 의료봉사를 하는 의사들이 참 귀합니다.

 

 

병든 자를 고치며

죽은 자를 살리며

문둥이를 깨끗하게 하며

귀신을 쫓아내되

너희가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어라

 

공짜가 아니라 거저입니다.

 

눈 뜨고도 코 베어가고, 간 빼어가는 이 세상에 공짜가 어디 있습니까. 그런데 간혹 예외는 있습니다. 예수께서 '너희가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어라'고 가르쳤으니 예수쟁이라면 세상 천하에 없어도 그렇게 따르는게 마땅하겠지요. 이날 진행된 커트, 퍼머봉사, 초음파검사, 건강검진과 링거주사, 콩국수와 떡, 수박과 백숙잔치는 모두 거저였습니다. 반면 땀 흘리면서 수고한 봉사자들에겐 일당이 없습니다. 대신 회비를 냈습니다. 이 땅에서 한 것 만큼 이 땅에서 상급을 받으면 하늘에선 받을 게 없다고 했습니다.

 

 

류기선 담임목사의 말씀입니다.

 

"10년 넘게 산정교회에서 목회를 했습니다. 처음 부임했을 때에는 교회 마루바닥에 비가 새고, 겨울엔 샛바람에 문이 덜렁거리고…. 손수 수리를 하고, 가꾸고, 증축도 했지만 건축비가 없어서 중단하기 일쑤였습니다. 무엇보다 할 일은 많은데 함께할 사람이 없습니다. 교회에 부임한 뒤에 모두 일곱 분의 장례를 치렀습니다. 교인 30여명 가운데 아흔이 되신 분이 두 분이고 가장 젊은 성도가 육십입니다."

 

학교는 폐교되었습니다. 운동회는 더 이상 열리지 않습니다. 주민들은 하나 둘 세상을 떠나고 그들이 살던 집은 폐가로 변했습니다. 외지고 깊은 산속에서, 성장 가능성 제로에 가까운 시골교회에서 목회를 하는 건 미련한 일인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누군가는 거기에 가서 그들의 아픔과 죽음을 거두어주어야 합니다. 도시는 농촌을 먹고 성장 부흥했지만 거들떠 보지 않습니다. 다행하게도 하계 봉사에 동참한 서대문교회는 산정교회를 돕고 있습니다. 재정적 지원과 함께 의료봉사에 동참한 것입니다.

 

 

아무도 찾아오지 않는 오지의 시골교회!

그 먼 길을 마다하지 않고 찾아와 퍼머도 해주시고

떡도 주시고, 콩국수도 주시고, 백숙 잔치에 음악회까지 열어주시니

너무 감사하고 고마운데 이렇게 신세만 지어서 어쩌면 좋냐고 하시면서도 참 좋아하시던 시골교회 교인들과 주민들! 그들과 함께 보낸 하루가 행복했습니다. 양촌리 퍼머에 함박웃음을 짓는 할머니 교인들의 그 기쁨으로 인해 찌든 마음이 맑아졌습니다. 오히려, 저희들이 감사합니다. 참 감사합니다.

 

영파선교회 의료봉사단은 의성군 전체 주민을 담당할 만한 진용이었습니다. 치과의사와 통증의학 전공의사, 가정의학 전공의사. 한의사와 약사, 초음파 검진을 하는 영상의학회까지 가세했으니 가공할 만한 진용입니다. 뿐만 아니라 정성을 다해 진료를 하고 처방을 하니 환자들은 기뻐할 수밖에 없습니다. 다만 아쉬웠던 점은 오지여서 환자들이 대거 몰리지 않았던 것입니다.

 

치과 장비가 설치된 굿피플 진료버스에선 치과 치료가 진행됐습니다. 산정교회와 이웃한 교회의 목사님이 치과 진료를 받았는데 참 좋아했습니다. 치과의사 봉사자는 정성을 다해 치석을 제거하고 스케링을 해주었습니다. 잇몸에선 피가 한 움큼 나왔습니다. 시골 목사는 돈이 없습니다. 연봇돈 낼 교인들이 없으니 그렇습니다. 그래서 몸이 아파도 병원엘 가지 못합니다. 대신 눈물로 기도합니다. 기형도 시인의 시 '우리 동네 목사님'에선 그 목사님의 어린 아들은 병원갈 돈이 없어서 감기를 방치하다 끝내 폐렴으로 숨졌습니다.

 

 
외롭고 쓸쓸했던 시골교회에 풍성한 잔치가 열렸습니다.
솥단지를 걸고 장작불을 때서 국수도 삶고 백숙도 삶았습니다.
의사의 손길만 귀한 게 아닙니다. 이/미용 봉사의 손길만 중한 게 아닙니다.
이른 아침부터 음식을 장만하기 위해 부지런히 손을 놀린 서대문교회 여성 봉사자들의 수고로 인해 이날의 잔치는 즐거웠습니다. 마당에 엉덩이를 깔고 앉거나 선 채로 콩국수를 먹었는데 정성을 다함으로 해 세상에서 가장 맛 있는 콩국수를 먹었습니다. 이날 잔치의 별미는 저녁에 차려진 백숙입니다. 솥단지에 장작불로 삶은 백숙이니 오죽 맛 있었겠습니까. 음식을 만들고 설거지 통에 담근 그 손길들이여 정말 수고했습니다.
 

 

백숙으로 저녁을 맛 있게 먹었습니다.

그리고 음악회를 즐기기 위해 예배당으로 모였습니다.

이날 첫 무대는 의료봉사에 참여했던 가정의학 전문의 이동주 선생님의 독창으로 시작됐습니다. '청산에 살으리라'는 가곡을 불렀는데 참으로 빼어난 솜씨더군요. 이어서 대길사회복지재단 산하의 '해밀합창단'의 성가 합창과 가곡 합창이 이어졌는데 아무래도 농촌 어르신들의 취향은 '최진사댁 셋째 딸' 이더군요. 이 대목에서 박수 소리가 커지면서 흥이 오르고, 앵콜과 재청이 이어지면서 가요 메들리로 음악회의 밤을 달구었습니다.

 

모처럼 퍼머를 해서 기뻤습니다.

정성껏 퍼머를 해드릴 수 있어서 기뻤습니다.

모처럼 건강검진과 치료를 받아서 기뻤습니다.

정성껏 아픈 몸을 돌봐드릴 수 있어서 기뻤습니다.

모처럼 모여서 떡도 나누고 백숙도 먹어서 기뻤습니다.

작은 정성으로 차려드린 잔치를 그리 기뻐하시니 기뻤습니다.

이웃과 이웃이 모여서 거저 주고 거저 받으니 이렇게 기뻤습니다.

눈물 나는 세상에서 이렇듯이 환한 웃음으로 하루를 보내니 기뻤습니다.

 

 


태그:#영파선교회, #대길사회복지재단, #서대문교회, #영상의학회, #의료선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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