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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대 정문 앞에서 1인시위 하는 필자의 모습
 고려대 정문 앞에서 1인시위 하는 필자의 모습
ⓒ 김현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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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한 폭우 끝에 찾아온 폭염이 우리를 지치게 하고 있는 요즈음, 나는 고려대학교 정문 앞에서 58일 동안(28회) 릴레이 1인 시위를 하고 있다.

여러 사람들을 충격에 빠뜨렸던 고대의대생 집단성추행 사건 때문이다. 고대가 가해자들에게 출교처분을 내리지 않으면 형사 처벌을 받더라도 그 친구들이 의사가 될 수 있으며 가해자와 피해자가 같은 공간에서 수업을 계속 받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고대 측에 그들의 출교를 촉구하기 위해서다.

그래도 학교를 믿어보자는 생각에 묵묵히 1인 시위를 하고 있었는데, 불과 며칠 전까지만 해도 무기한 연기될 거라고 했던 상벌위원회가 지난 8월 4일 비공개로 열렸다는 소식에 이어 출교처분의 위헌성 운운하며 출교처분을 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소문까지 들으니 착잡한 기분을 금할 길이 없어 펜을 들었다.

충분한 소명의 기회?

이 사건과 관련해서 크게 두 가지 질문을 고려대학교에 던지고 싶다.

첫 번째는, 피해자가 사건을 신고한 것이 5월 23일인데, 그로부터 2개월 반이 지난 지금까지도 고려대학교가 징계절차를 마무리 짓지 못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궁금하다.

언론보도를 보니, 가해자들에게 충분한 소명의 기회를 주지 않으면 나중에 그들이 절차상 하자를 이유로 행정소송을 제기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필요한 절차를 거치느라고 시간이 걸리는 데다 가해자들이 구속상태에 있어서 징계 절차가 더디게 진행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 고려대학교의 입장이다.

이해가 안되는 것은 피해자가 사건발생 다음날인 5월 23일에 바로 학교 측에 신고를 했고 가해자들이 구속된 날짜가 6월 16일이면, 고려대학교가 구속되기 전에 가해자들을 조사할 수 있었던 기간이 무려 24일이나 되었던 것인데, 한달이 가까이 되는 시간 동안 대체 무엇을 했는가 하는 점이다.

고대가 이전에 다른 사건들(이건희 회장의 명예박사 수여식을 방해한 사건과 총장실을 점거했던 사건. 이들은 사법처리도 받지 않았으나 출교처분을 받았다)에서 보여준 신속한 징계과정과 비교해보면 납득하기가 어렵다.

위헌 논란?

두 번째는, 며칠 전부터 들려오는 출교처분의 위헌성 논란에 대한 것이다.

학교 측 논리는 출교처분이 고려대학교에만 있는 유일한 처분이고, 퇴학처분과 달리 재입학의 기회를 부여하지 않는 것이라서 위헌의 여지가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다른 학교의 퇴학처분 중에도 고려대학교의 출교처분과 동일하게 재입학을 허용하지 않는 것이 있기 때문에, 출교처분이 고려대에만 있는 유일한 처분이라서 위헌이라는 말은 부당한 것 같다(지난 해에 문제가 되었던 중앙대학교 퇴학처분 관련 기사를 보면 알 수 있다).

또한 사립대학에는 광범위한 자치권을 허용한다는 입장을 법원이 여러 차례 밝힌 바 있기 때문에, 재입학을 허용하지 않아서 위헌이라는 주장 역시 타당성이 없어 보인다(법원은 교원에 대한 징계와 관련한 수많은 사건들에서 동일한 입장을 보였다). 지금 껏 학내 징계와 관련한 소송 중에 그것이 과도한 징계라는 이유로 다툰 적은 있어도 징계 자체가 위헌이라는 주장이 나오지 않았던 이유가 여기에 있는 것이 아닐까.

그리고 출교처분이 위헌이라면, 몇 년 전 출교처분무효확인소송에서 패소했던 고려대학교가 그 사건 이후에 출교처분을 학칙에서 삭제하지 않고 놓아둔 이유는 무엇인지 알 수 없다. 고대에 계신 저명한 법대 교수님들만 해도 몇 분인데, 그토록 위헌적인 학칙을 개정하지 않고 그대로 두었단 말인가.

백번 양보해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려대학교의 출교처분이 위헌이라면, 고려대학교는 나와 같은 일반인들을 납득시킬 수 있을 만한 근거를 공개적으로 설명하여야 할 것이다. 대체 헌법 몇 조에 위반하여 위헌이라는 것인지를 말이다. 나아가 과거에 그러한 위헌적인 규정에 따라 출교처분을 했던 학생들의 구제절차를 마련해서 그들에 대한 징계가 무효였음을 확인하고 사과하며 그동안 끼친 정신적 손해에 대한 배상을 해야 할 것이다.

근거를 명확히 설명하지 않는다면 갑자기 출교처분의 위헌성 논란이 나온 이면에 유력가의 자제인 가해자들을 출교처분에서 구제해주기 위한 목적이 있는 것이 아니냐는 세간의 의심을 피해가지 못할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렇게 장기간 징계를 확정짓지 않는 것이 피해자에게 커다란 심리적 고통을 주고 있을 거라는 사실을 잊지 말았으면 좋겠다. 피해 학생의 입장에서는 재판에서 가해자들이 어떤 재판을 받는가보다 학교에 돌아와서 다시 마주치게 되는 것이 더 두려운 일일텐데 어쩌자고 이렇게 시간을 끈단 말인가.

고려대학교 졸업생의 한사람으로서 고려대학교의 성의 있는 답변을 기다려 보겠다.


태그:#고대의대, #성추행, #출교촉구, #1인시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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