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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 중문해수욕장에 몰려든 피서객
 제주도 중문해수욕장에 몰려든 피서객
ⓒ 임병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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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휴가 계절이 돌아왔다. 올해도 대부분 7월 말부터 8월 첫째 주에 여름휴가를 떠날 것이다. 강원도 동해안이 '역시' 여름휴가지 1위로 손꼽히고 있다. 예전에 강원도 동해로 휴가를 떠났다가 고속도로에 8시간 갇혀 있던 기억이 있다. 그래서 올여름도 길에서 휴가를 보낼 사람이 수두룩하다는 생각을 하면, 고소하기도(?) 하고 안타깝기도 하다.

나에게 '여름휴가 어디로 가느냐'고 물어보는 사람은 이제 없다. 작년에 제주도로 귀촌했기 때문이다. 작년 겨울은 눈이 오지 않을 거라는 내 예상을 무참히 깨고, 지독히 눈이 내려 고생했다. 하지만 이번 여름은 하루하루를 천상의 낙원에서 사는 기분으로 살고 있다.

나무와 숲이 울창한 천연의 자연정원
▲ 제주도 농가주택 나무와 숲이 울창한 천연의 자연정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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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철 열대야가 기승을 부린다는 뉴스를 보면, 아내와 나는 서로 마주 보고 웃는다. 제주에서도 중산간 지방에 있는 우리 집은 한낮에만 잠깐 더울 뿐, 저녁은 서늘하고 새벽에는 전기장판을 켜야 잠잘 수 있을 정도로 춥다. 그래서 집에 에어컨은커녕 선풍기조차 없다.

에어컨은커녕 선풍기도 없는 우리 집

바로 앞 도로 주변에도 나무가 무성하게 자라고 있을 정도로 우리 집은 사방팔방 모두 울창한 숲으로 둘러싸여 있다. 그래서 나무를 흔드는 시원한 바람이 허름한 농가주택 거실까지 세차게 들어온다. 집은 낡았지만 거실에 누워 푸른 하늘을 보면서 낮잠을 즐기기에는 그만이다.

바닷가 바로 앞쪽은 살기에 그리 좋지 않다.
▲ 김녕해수욕장 바닷가 바로 앞쪽은 살기에 그리 좋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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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리 중산간이고 시원한 집이라도 낮에는 덥다. 그러면 입고 있는 옷 그대로 차에 탄다.딱 10분 운전하면 바닷가에 닿는다. TV 프로그램 <1박2일>에 나왔던 김녕해수욕장은 10분이면 도착하고, 우도 가는 배를 타는 성산항이나 성산일출봉도 20여 분이면 쉽게 갈 수 있다.

그래서 여름휴가 때 바다 한 번 보려고 8시간 운전하고 가는 사람들이 측은하게 느껴진다. 그냥 10분 운전해서 바다에 발 담그고, 아이와 수영을 빙자한 물장난도 치다가 배고프면 '잽싸게' 집에 와서 아내가 비벼주는 비빔국수를 먹는다.

식당보다는 집에서 먹는 음식이 최고
▲ 삼겹살파티 식당보다는 집에서 먹는 음식이 최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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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휴가를 떠나 야외에서 고기 구워먹는 풍경을 흔히 볼 수 있다. 솔직히 가스불에 프라이팬으로 구운 고기와 숯불로 구워 먹는 고기 맛은 차원이 다르다. 어쩌면 꽉 막힌 식당에서 뿌연 연기를 맡으며 먹는 고기보다, 탁 트인 자연 속에서 먹는 그 자체에서 맛있다는 느낌 때문인지도 모른다.

우리 집에는 거금 5만 원을 투자해서 만든 고기 굽는 드럼통이 있다. 가끔 아내와 둘이서 삼겹살이 땅기면 동네 정육점에서 만 원어치 삼겹살을 사다가 속성으로 숯을 피워놓고 먹기도 한다. 누군가에게 캠핑은 꿈이지만, 제주에 사는 나에게는 하루하루가 캠핑이다. 

드라마 <인생은 아름다워> 촬영지
▲ 불란지 펜션 드라마 <인생은 아름다워> 촬영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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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상의 휴가를 즐기는 나에게도 고통이 있는데, 그것은 바로 육지에서 내려오는 지인들의 여름휴가 '민원'이다. 아는 사람이 가이드를 요청하는가 하면, 숙소를 알려달라고 전화·메일·페이스북·트위터로 거의 '난리'인데, 나에게는 참으로 곤욕스럽다.

우선 숙소만 따져보자. 가족도 아닌 사람을 허름한 우리 집에 재워줄 수도 없고, 아는 펜션이나 민박도 여름 성수기 한철 장사라서 비싼 요금으로 임대한다. 나라고 무슨 뾰족한 수가 있어 저렴하게 원하는 날짜에 예약해줄 수 있는 건 아니다. 전국 어디나 비슷하겠지만, 특히 제주도 펜션은 성수기에 많은 사람이 몰린다. 여름 휴가철에는 게스트 하우스는 물론이고, 민박·모텔까지 예약이 거의 꽉 찬다.

마음 한편으로는 안타깝지만, 휴가를 떠날 사람은 미리미리 예약하는 게 휴가지에서 바가지 쓰지 않는 지름길이다. 
시계방향으로 갈치국,고기국수,옥돔물회,고등어구이
▲ 제주토속음식 시계방향으로 갈치국,고기국수,옥돔물회,고등어구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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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로 귀촌한 나, 휴가 기간이 무섭다

이렇게 어찌어찌해서 육지에서 지인들이 오면 밥이라도 대접하려고 딴에는 생각해서 제주 토속음식을 사준다. 하지만 그다지 좋아하지도 않는다. 갈칫국은 비리다고 난리고, 고기국수는 느끼하다며 먹다가 남기고, 제주 사는 나도 먹기 힘든 옥돔물회는 된장으로 양념했다고 입맛에 맞지 않는 표정을 짓기 일쑤다.

솔직히 제주에 살면서 맛집 찾아다니는 사람은 별로 없다. 시가지에 사는 사람은 종종 회사 동료와 같이 가겠지만, 제주에서도 산골에 사는 내가 시간 내서 맛집을 찾아다닐 이유는 없다. 게다가 맛집이라고 가보면 솔직히 맛도 없고 비싸기만 하다.

제주에 사는 사람치고 육지에서 오는 사람들 때문에 곤란한 일을 당하지 않은 사람은 별로 없다. 진짜 친한 친구나 가족은 오히려 경제적·시간적 여유가 없어서 오지 못하는데, 여유가 돼서 오는 사람은 뭔가를 해줘도 맘에 안 드는 표정을 짓기 때문이다.

성수기 때 제주 여행을 하려면 먼저 숙소 등을 예약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낭패 보기 쉽다.
 성수기 때 제주 여행을 하려면 먼저 숙소 등을 예약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낭패 보기 쉽다.
ⓒ 임병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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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면 있다고 제주에 와서 귀찮을 정도로 마구 연락하는 사람도 있지만, 오랜만에 보는 반가운 사람들이 제주에 오면 이구동성으로 자기도 나처럼 제주에서 살고 싶다고 하는 경우가 많다. 오랜 시간을 제주에서 살지 않았지만, 본가 식구들이나 처가에서 올라오라고 해도 나는 육지로 다시 나갈 생각이 없다.

제주로 귀농이나 귀촌한 사람의 50% 이상은 제주도로 여행 왔다가 그냥 자리를 잡고 사는 이들이다. 그들이 놀러 왔다가 눌러 앉을 만큼 제주는 여름휴가지로 최상의 조건과 천혜의 자연이 숨 쉬고 있다. 그러나 많은 사람이 부러워하며 나처럼 제주에 살기 원해도, 제주도에도 안 좋은 것들이 있다.

제주 농촌에 사는 것은 언제나 벌레,습기와의 전쟁
▲ 제주귀농 제주 농촌에 사는 것은 언제나 벌레,습기와의 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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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상의 낙원'에도 고통은 있다

제주에서, 특히 숲에 둘러싸인 우리 집은 여름이면 매일 밤마다 벌레와 전쟁을 벌여야 한다. 담배 크기만 한 나방은 아주 애교스럽고, 작은 벼룩이나 개미, 이름도 알 수 없는 벌레들의 습격은 모기약·전자 모기 퇴치기·바퀴벌레약 등 철저한 대비를 해도 언제나 곤욕스럽다.

게다가 우리 집은 습기가 많기로 유명한 동네에 있는데, 제습기를 온종일 틀어놔도 대책이 없을 정도다. 벽지에 곰팡이가 생기는 것은 다반사고 옷이며 가방, 심지어는 아기 유모차에도 자고 일어나면 곰팡이가 필 때가 있다.

아름답고 천혜의 자연경관을 지닌 제주도.
 아름답고 천혜의 자연경관을 지닌 제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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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에 살면서 느낀점은 이 세상에 천상의 낙원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아무리 돈을 많이 들인 초호화 여행도 결국 집에 도착하면 '아이고, 집이 제일 편하다'라는 말이 절로 나오지 않는가.

올여름, 휴가를 어떤 곳으로 갈 것인가를 결정하기에 앞서 어떤 여행이 내 몸과 마음, 그리고 영혼까지 쉬게 해줄 수 있는가를 생각해보자. 어디로 떠나는 게 힘들다면, 아이들과 방안에서 텐트 치고 함께 웃고 즐기는 것도 그리 나쁘지 않다고 생각한다.

최악의 여름휴가는 무엇을 해도 만족하지 못하는 마음이고, 천상의 여름휴가는 바로 내가 어디에 있든지 '이곳이 낙원이다'라는 생각으로 사는 것이다.

덧붙이는 글 | '아이엠피터의 소시어컬쳐'에도 게재됐습니다.



태그:#제주여행, #제주도, #귀농, #여름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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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 언론 '아이엠피터뉴스'를 운영한다. 제주에 거주하며 육지를 오가며 취재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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