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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에서 채취한 해산물로 저녁 식탁이 풍성하다.
▲ 속살을 드러낸 고둥(보말) 바다에서 채취한 해산물로 저녁 식탁이 풍성하다.
ⓒ 장태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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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가족이 살고 있는 서귀포시 남원읍 하례리의 망장포 청정바다는 많은 해산물을 감춰둔 보물창고다. 하지만 이 창고는 아무에게나 쉬이 보물을 드러내지는 않는다. 오래전부터 어민들이 터득해온 밀물과 썰물이 반복되는 조석의 이치를 몸소 익힌 사람이라야 해산물에 손에 댈 수 있다.

바다는 달과 태양의 인력에 따라 영향을 받아 그 수위를 조절한다. 특히, 음력 15일(보름)과 30일(그믐)이 되면 태양-지구-달 혹은 태양 -달- 지구 순으로 서로 일직선을 이루게 되는데, 이때 바다는 밀물과 썰물 때의 해수면 높이차가 최대에 이르게 된다.

이날을 사리라고 하는데, 해안사람들은 사리 때의 바다를 '일곱물'이라 부른다. 만약 29일이 마지막 날인 달에는 29일을 여섯물 대신에 일곱물이라 하였다.(아래 표 참조)

해안 사람들은 바다를 부를 때 음력 날짜별로 그 이름을 달리했다.(표는 고광민 저 '제주도의 생산기술과 민속'에서 발췌)
▲ 바다의 이름 해안 사람들은 바다를 부를 때 음력 날짜별로 그 이름을 달리했다.(표는 고광민 저 '제주도의 생산기술과 민속'에서 발췌)
ⓒ 장태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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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곱물에 망장포 바다가 넓게 바닥을 드러냈다.
▲ 일곱물 일곱물에 망장포 바다가 넓게 바닥을 드러냈다.
ⓒ 장태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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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조에 바닷물로 덮였던 해저는 썰물에 일부 바닥을 드러내는데, 간조에 노출되는 바다의 바닥을 조간대라고 한다. 조간대는 해안선에서 시작하여 상부·중부·하부로 분류하는데, 각 구간별로 자라는 생물이 다르기 때문에 바위의 색깔도 확연하게 차이가 난다.

조간대 상부는 사리 때가 아니면 밀물에도 바닥을 보이는 곳을 말한다. 조간대 상부는 보통은 항시 노출되다가 사리 때 만조가 되면 바닥이 해수로 덮인다. 조간대 중부는 평균적으로 썰물에 바닥이 노출되는 곳을 말하는데, 조간대 가운데 가장 넓은 지역을 차지한다. 조간대 하부는 보통 바닥을 드러내지 않다가 사리에 썰물이 최대로 진행되면 드러내는 바닥을 말한다.

삿갓 모양으로 생긴 것이 배말이고 껍질에 새로로 손톱과 같은 주름(종륵)을 여러 개 가진 것이 군부다. 이들은 조간대 중부 바위 아래에서 무리를 지어 생활한다.
▲ 배말과 군부의 무리 삿갓 모양으로 생긴 것이 배말이고 껍질에 새로로 손톱과 같은 주름(종륵)을 여러 개 가진 것이 군부다. 이들은 조간대 중부 바위 아래에서 무리를 지어 생활한다.
ⓒ 장태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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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간대는 생물들이 공기 중에 노출되고 뜨거운 햇볕을 견뎌야 하는데, 그중에서도 조간대 상부는 공기 중에 노출되는 시간이 길기 때문에 생물이 거의 살지 않는다. 그리고 조간대 중부는 고둥(보말) 중에서도 몸집이 작은 것들과 배말·군부 같은 틈을 좋아하는 동물들의 서식지다.

몸집이 큰 고둥(보말)·소라(구젱기)·성게(귀) 등의 동물들과 미역·톳 등의 해초들이 왕성하게 자라는 곳은 조간대 하부다. 이곳에 사람의 발길이 잘 닿지 않기도 하거니와, 썰물이 되어도 공기에 노출되는 시간이 짧아서 생물들이 스트레스를 덜 받기 때문이다.

해안가 주민들이 일곱물을 가장 기다리는 이유는 이날이 물에 잠겨있는 조간대 하부가 감춰뒀던 보물창고를 드러내는 날이기 때문이다. 일곱물에 우리 가족이 가장 관심을 갖는 해산물은 고둥(보말)과 톳이다. 청정 음식으로 많은 각광을 받고 있는데, 시장에서는 쉽게 구할 수도 없는 것들이다.

이웃에 사는 어른이 고둥을 잡다가 예기치 않던 문어도 발견하여 잡았다. 소쿠리에 들어있는 고둥(보말)은 대부분 밤고둥(먹보말)이다.
▲ 소쿠리 이웃에 사는 어른이 고둥을 잡다가 예기치 않던 문어도 발견하여 잡았다. 소쿠리에 들어있는 고둥(보말)은 대부분 밤고둥(먹보말)이다.
ⓒ 장태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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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곱물이 되자 톳이 물위로 모습을 드러냈다.
▲ 톳 일곱물이 되자 톳이 물위로 모습을 드러냈다.
ⓒ 장태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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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둥(보말)은 그 모양에 따라 이름이 다양한데, 그 크기와 모양별로 분류하면 각시고둥(참고메기)·눈알고둥(문디닥지)·밤고둥(먹보말)·팽이고둥(수두리보말) 등이다. 그 중 검은색 각시고둥은 조간대 중부의 바위틈에, 눈알고둥은 조간대 중부의 물웅덩이에 서식하는데, 둘 다 인기가 별로다. 각시고둥은 담백한 맛이 나지만 크기가 작고, 눈알고둥은 독특한 쓴 맛이 있기 때문이다.

밤고둥과 팽이고둥은 맛이 담백하고, 크기가 커서 매우 인기가 높다. 최근 웰빙 요리로 각광을 받는 보말죽이나 보말칼국수는 대부분 밤고둥과 팽이고둥을 재료로 한다. 하지만 귀한 것은 항상 손에 넣기 어려운 법. 이들은 조간대 하부에 주로 서식하기 때문에, 일곱물이 되어서야 잡을 수 있다.

톳도 일곱물이 주는 귀한 또 다른 보물이다. 톳이 바위에 부착기를 고정시킨 채, 긴 줄기를 파도에 내맡겨 너울거리면 보는 이들의 마음이 사뭇 설렌다. 마치 산들바람에 젊은 아가씨의 치맛자락이 나부낄 때, 잠시 그녀의 다리를 엿본 것 같은 설렘이다. 물을 떠나서는 견딜 수 없는 놈이기 때문에, 조간대 하부에서 자란다. 톳도 역시 일곱물에나 채취할 수 있는데, 바로 삶아서 양념장을 곁들여 먹으면 맛과 향이 일품이다.

일곱물 저녁이면 가족들이 모두 채취한 해산물을 삶고 고둥의 껍질 속 속살을 꺼내느라 분주하다. 그리고 식탁은 용궁의 진미로 풍요롭다. 어쩌면 자연은 그 순행과정을 통해 '때를 기다릴 줄 아는 이라야 행복을 얻을 수 있다'는 귀한 이치를 가르치고 있는지도 모른다.


태그:#하례리, #망장포, #일곱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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