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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보고 웃으시는 할머니들
 나를 보고 웃으시는 할머니들
ⓒ 최성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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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료실을 찾아온 김옥심 할머니가 평소보다 낯빛이 나쁘다. 금방이라도 한숨을 한 말이라도 토해 낼 듯한 모습에 잠을 못 주무시냐고 물었다. 그러자 가슴 속 막힌 걸 풀어내려는 듯 심호흡을 크게 하신다.

할머니는 근처 맨션에 사신다. 3층짜리 아담한 건물이다. 2층에 사는 할머니 바로 위에는 젊은 부부가 살고 있다. 가까운 이웃사촌인 그들이 요즘 할머니한테 걱정거리다.

젊은 부부 밑에 유치원 다니는 아이가 둘 있단다. 젊디 젊은 혈기를 이기지 못한 그 친구들의 과한 동작이 2층 거주자에게 민폐가 되고 있었던 것. 원래 예민한 성격의 소유자인 옥심 할머니는 쿵쾅거리는 소리에 가슴이 막혔다. 거기까지는 참을 만했다고 한다. 언제부턴가 드르륵 바닥을 긁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단다. 신경을 긁어대는 소리는 아이들이 타고 노는 장난감 차였다. 바닥과 바퀴의 까칠한 마찰음은 할머니 귓바퀴를 타고 마음까지 까칠하게 만들었다.

"내가 몇번 말했제. 딴 건 괜찮아도 차만 타지 말라고. 노인네 혼자 산께 시퍼보나봐."

지나치게 예민한 것일까 아니면 정말 시끄러운 것일까. 사전 조사가 필요했다. 할머니 집에서 책이나 볼 겸 확인해볼까. 오늘 저녁에 들르겠다고 얘기드렸다. 고맙다면서도 부담줄까봐 싫단다. 부담은 무슨 부담이냐며 밤에 전화드리고 찾아뵙겠다고 했다.

확실하게 하고 싶어서 면사무소 민원실에 들렀다. 마침 맨션 1층에 사는 분이 면사무소 직원이란다. 상담을 요청했는데, 직원분의 말은 이랬다.

"어린 애들이랑 살다 보면 이럴 수도 저럴 수도 있는 건데, 할머니가 너무 예민해서 혼자 속을 썩는 거예요."

할머니의 거듭된 항의에 2층 부부도 스트레스가 이만저만 아니라고 했다.

이해당사자끼리는 서로 말이 다른 법. 인간 소음측정기가 필요한 순간. 정말 못 참을만큼 시끄러운지 직접 확인해 봐야겠다. 그날 저녁, 전화를 걸었더니 흐뭇해하는 할머니 목소리. "오늘 그 사람들 집에 없나 보오. 밖에 나갔나봐. 다음에 와야되겄소." 위층 집이 텅 비니 할머니 가슴도 뻥 뚫렸다.

한 일주일 정도 흘렀을까. 진료실 문을 열고 들어오는 옥심 할머니의 얼굴이 좋아보인다. 까닭을 묻자, 요즘 차 소리가 안 들리다고 했다. 영문을 몰라하는 나에게 할머니가 말했다.

"면사무소 찾아가서 내 얘기를 해 줬담서. 고맙네. 고마워..."

면사무소에 찾아가서 그냥 얘기만 듣고 왔는데 달라진 게 있을까. 암튼 애들이 더 이상 차를 안 탄다면 그걸로 되었다. 원래 할머니 아드님이 찾아오려 했다. 힘없는 어머니를 대신해 3층 부부에게 직접 따져보려 했지만 서울 사는 입장에 고흥까지 오기가 쉬울 리 없다. 자녀들이 무심해야 꼭 독거노인이 되는 건 아닌가보다. 기댈만한 아들딸이 가까이 없으면 그게 바로 혼자 사는 것이겠다.

그래서 한 거 없는 나에게도 고마우셨나보다. 지금까지 침을 수십 번 놔드렸지만 면사무소 한번 찾아간 게 할머니 건강에는 더 좋아보인다. 며칠 전에는 침을 놓고 돌아서는 나에게 흰 봉투 하나를 건네주셨다. 사양하는 손을 뿌리치며, 기어코 건네주신 할머니. 세종대왕 몇 분이 보였다. 누워 계신 틈을 타서 핸드백에 몰래 넣어버렸다. 그걸로 맛난 거나 사 드시면 좋겠다.


태그:#할머니, #신혼 부부, #소음, #나로도, #공중보건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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