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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일, 핵발전소 유치 반대 집회에 참석하기 위해 백두대간 아래 도시이자 지리적으로 강원 남부지역에 자리잡은 삼척시를 찾았다. 동해안에서 가장 아름다운 해변을 자랑하고 있는 삼척시이지만 시는 오랜 세월 동안 핵발전소 유치 문제로 몸살을 앓고 있다.

 

30년 가까이 이어온 '핵과의 싸움'... 삼척 시민은 지쳤다

 

삼척이 처음 핵발전소 건설 예정지로 선정된 것은 1982년 1월. 당시 동력자원부는 삼척시 근덕면 덕산리 일대를 원자력발전소 건설 예정지로 선정·고시했다. 삼척시의 핵과의 싸움은 이때부터 시작됐다. 삼척의 원전 건설 예정지가 해제된 것이 1998년 12월 30일이니 이 때 벌인 삼척 시민들의 투쟁 기간만해도 17년에 이른다.

 

긴 싸움 끝에 원전 건설을 막아낸 삼척 시민들은 바다가 인접한 근덕면 덕산리에 원전백지화 기념탑을 세웠다. 핵과의 싸움은 그렇게 끝나는가 싶었다. 하지만 정부는 2005년 삼척에 핵방폐장을 건설하겠다고 했고 또 다시 격랑이 일었다. 시민들은 찬성과 반대로 갈라졌고 극심한 내홍을 겪은 후에야 방폐장 건설도 백지화되었다.

 

'원자력'이나 '핵'이라는 소리만 들어도 진저리치는 삼척시민들에게 또 다시 '핵'의 악몽이 다가왔다. 김대수 삼척시장이 삼척에 핵발전소를 유치하겠다고 적극적으로 나서자 지역은 술렁거렸다. 인구 7만의 소도시에서 행정력을 앞세운 유치 운동 등이 벌어지는 가운데 서명에 반대하는 목소리를 내기란 쉽지 않은 듯 보였다. 

 

그런 가운데 삼척시는 시민의 96.9%가 원자력발전소 유치에 찬성한다는 결과를 발표했고 여론은 그렇게 흘러가는 듯했다. 반대의 목소리는 더욱 작아졌고 2010년 말 '삼척핵발전소유치백지화투쟁위원회(상임대표: 박홍표 도계성당 신부, 이하 투쟁위원회)'가 꾸려졌지만 투쟁이 쉽지만은 않았다. 핵발전소가 들어설 예정지에 사는 근덕면의 주민들만 몸이 달 뿐이었다. 6000여 명의 근덕면 주민들 역시 이미 두 패로 갈라진 상황. 1982년부터 지금까지 30년 가까이 핵과의 전쟁을 벌이면서 찢겨진 상처가 아물기도 전에 또 다른 상처가 만들어지고 있었던 것이다.

 

이명박 대통령이 '경제를 살리겠다'고 공약해 대통령이 되었듯 핵발전소를 유치해 지역 경제를 획기적으로 활성화 시키겠다는 김대수 시장의 말이 먹혔던 것일까. 20년 넘게 핵발전소 건설 반대 투쟁에 나섰던 이들 중 상당수가 찬성으로 돌아서는 듯했다.

 

그러던 중 일본에서 지진과 해일로 인해 후쿠시마 원전이 차례대로 폭발했다. 일본 원전의 폭발은 전 세계를 공포로 몰아 넣었고 삼척 시민들도 흔들리기 시작했다. 안전한 에너지라고 믿었던 핵이 가장 강력한 위험인자라는 사실은 곧 입증되었다. 전국에서 방사성 요오드와 세슘이 검출되었고 약국의 마스크는 날개 돋친 듯 팔려나갔다.

 

일본 원전 폭발 후 '유치 반대'로 돌아서는 삼척 시민들

 

4일 저녁 삼척 시내에서 열린 '핵 없는 세상을 위한 합동 미사 및 범시민 촛불문화제'엔 보기 드물게 많은 인파가 몰려 들었다. 행사를 준비한 관계자는 "일본 원전이 폭발한 이후 삼척의 민심이 변하고 있다"고 현 상황을 진단했다. 실제로 4일 찾은 삼척에서 유치 대상지인 근덕면을 제외하고는 핵발전소 유치 찬성 현수막을 찾아보기 어려웠다.

 

찬성보다 반대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는 상황은 촛불문화제 현장에서도 확인할 수 있었다. 전국에서 모인 신부님들과 이정희 민주노동당 대표, 조승수 진보신당 대표, 정동영 민주당 최고위원 등의 정치권 인사들이 자리를 함께 했고, 전국에서 달려온 환경, 노동, 시민 단체 회원들,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모인 삼척 시민 등 1000명에 가까운 사람들이 자리를 가득 메우고 있었다.

 

삼척의 한 고등학교 3학년에 재학 중인 박아무개 양과 친구들은 교복을 입은 채 현장을 찾았다. '핵발전소 결사반대' 문구가 적힌 손피켓과 촛불을 든 학생들은 "핵발전소요? 그런 걸 삼척에 유치하면 안 되죠, 일본 보세요, 핵으로 인해 사람이 다 죽어가잖아요"라며 원전 유치에 대한 반대 뜻을 밝혔다. 핵발전소 유치에 찬성하는 어른들에 대한 생각을 묻자 박  양은 "(일본 원전 사고 이후) 생각이 많이 달려졌을 것"이라며 "우리 아빠도 찬성에서 반대로 바뀌었다"고 답했다.

 

'민심이 변하고 있다'는 말은 삼척의 한 중화요리집에서도 들을 수 있었다. 촛불문화제가 끝나고 출출한 배를 채우기 위해 찾아간 요리집의 종업원들도 둘 중 하나는 최근 마음이 돌아섰다고 말했다. 주문한 짬뽕을 내온 종업원은 "저야 아직 반반이지만, 주변에 반대로 돌아선 사람들이 많다"고 설명했다.

 

 

삼척 핵발전소 유치 논란... 어느 후보에게 유리하게 작용할까?

 

정부는 대한민국 원전 안전에 대해 강조하지만, 삼척핵발전소유치백지화투쟁위원회는 지금까지 방사성 물질 누출과 근로자들의 피폭, 핵연료봉 손상 등의 원전사고가 원자력발전소 21기에서 총 634건이 발생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한편, 정부는 일본 원전사고 이후 관련 정보를 제대로 제공하지 않아 비판을 받기도 했다. 여당인 한나라당 안상수 대표까지 나서서 관련 정보를 투명하게 공개하라고 할 정도였다. 이런 상황 속에서 핵발전소 신규 유치는 이번 강원도지사 보궐 선거에서 최대 쟁점으로 부각될 것으로 보인다. 삼척 시민의 원전 유치 찬성율이 96%였을 때 엄기영 한나라당 후보는 원전 유치에 찬성한다고 했고, 그 신념은 지금도 유지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여론의 풍향계에 따라 입장을 번복할지는 두고 봐야 하지만, 엄 후보가 한나라당 후보인 점을 감안하면 반대 목소리를 내긴 어려워 보인다.

 

반면 민주당 최문순 강원도지사 후보는 지난 3일 삼척을 찾아 '원전 반대'라는 입장을 분명히 밝혔다.

 

역대 도지사 선거에서 영동지방의 표심이 당락을 좌우했다는 것을 감안하더라도 삼척 원전 유치 문제는 강원도지사 선거에서 '뜨거운 감자'가 되기에 충분해 보인다. 더구나 강원지역 시민단체는 물론이고 인근의 동해와 정선 지역 주민들도 원전 유치 철회를 요구하고 나서고 있는 상황이라 일본 원전 폭발로 인한 여론의 풍향계가 어디로 돌아갈지 아무도 장담할 수 없게 된 점 또한 정치권을 곤혹스럽게 만들고 있다. 

        

다가오는 7일 방사능 비가 내린다는 보도가 일찌감치 떴다. 정부는 인체에는 해롭지 않지만, 우산과 우비, 장화 등을 신어 비를 직접 맞는 것은 피하라고 권고하고 있지만 국민들은 그 '권고'를 넘어 불안과 공포를 느끼고 있다. 일본 원전 폭발에 따른 정부의 발표를 믿지 못하기 때문이다. 실제 정부는 일본 원전 유출과 관련하여 바람이 편서풍을 타고 태평양으로 불어주니 핵으로부터 절대로 안전할 것이라며 국민을 속여 왔다. 이후 방사성 물질인 요오드와 세슘이 검출되자 정부는 x-레이(엑스레이) 한번 촬영할 때 피폭되는 선량에 비해 몇 만분의 일이라며 환경과 인체에는 아무런 영향을 주지 않는다고 수습하기에 바빴다.

 

대한민국은 일본과 같이 지진판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나라이다. 원전 사고 또한 언제 일어날지 알 수 없는 것도 주지의 사실이다. 그런 가운데 30년 가까운 세월, 삼척시에서 진행되고 있는 핵발전소 유치 문제는 이제 삼척시만의 문제가 아닌 것이 되어 버렸다. 이는 강원도 지역의 문제를 넘어 한반도에 살고 있는 7천만 겨레의 흥망과 생멸이 걸린 문제라고 보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강원도지사 선거의 '뜨거운 감자'가 된 핵발전소 유치 논란이 엄기영, 최문순 두 후보 중 누구에게 유리하게 작용할지 귀추가 주목되고 있다.

 


태그:#핵발전소, #원전, #일본 원전, #삼척시, #방사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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