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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의 상술, 연인들의 요구가 낳은 기념일

찢겨져 버려진 초등학생의 일기
 찢겨져 버려진 초등학생의 일기
ⓒ 이안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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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력 2월 14일, 오늘은 발렌타인데이St. Valentine's Day입니다. 그리스도교의 성인聖人 발렌티누스의 축일이 한국과 일본에서는 여자가 남자에게 초콜릿을 선물하며 사랑을 고백하는 날로 더 잘 알려지게 되었습니다.

이 날은 정벌에 나서는 병사들의 결혼을 금지한 로마 황제 클라우디우스 2세에 반기를 들었던 밸런타인이 처형된 270년의 오늘을 사랑 고백일로 받아들인 것입니다. 또한 이때쯤에 새들이 발정發情을 시작한다는 서양의 속설이 반영된 풍습이라고도 합니다.

언제나 사랑을 고백할 기회를 노리는 젊은 남녀들에게는 고백에 용기를 낼 수 있는 참 좋은 언턱거리의 날이기도 합니다.

젊은이뿐만 아니라 이즘은 기혼 남녀들조차 이 유행에 동참하고 있습니다. 저의 단호한 거절의사에도 불구하고 저의 처는 오늘도 퇴근 후에 틀림없이 초콜릿 포장을 꺼내놓을 것입니다.

이런 남녀의 성향을 좌시만할 기업이 아닙니다. 마케팅의 꼬투리를 찾는데 혈안이 된 광고업자들은 이것을 빌미로 데이마케팅Day Marketing을 개발했습니다. 일 년에 존재하는 12번의 14일을 모두 자사의 물건을 팔 수 있는 절호의 기회로 만든 것이지요.

다이어리데이(1월 14일), 화이트데이(3월 14일), 블랙데이(4월 14일), 로즈데이(5월 14일), 키스데이(6월 14일), 실버데이(7월 14일), 그린데이(8월 14일), 포토데이(9월 14일), 와인데이(10월 14일), 무비데이(11월 14일), 머니데이(12월 14일) 등이 그것입니다.

빼빼로데이(1자가 네 번 겹친 11월 11일), 커플데이(2자가 세 번 겹치는 2월 22일) 등 상품을 팔아야하는 기업의 상술과 재미를 찾는 연인들의 욕구가 결합한 이런 기념일은 앞으로도 계속 새로운 옷으로 갈아입고 등장할 것입니다.

고백은 '최후에' 단 한 번만 성공하면 된다

오늘 아침, 분리수거를 하는 중에 찢겨져 버려진 다리어리 네 장을 발견했습니다. 한 초등학생이 다이어리를 쓰기로 시작한 첫날의 일기였습니다.

11/21

안녕, 다이어리야?

난 주은(가명)이야. 앞으로 네 이름을 지어줄께... 이름은... 음... '비니'야.

어때...? 마음에 들어?

비니야... 나 좋아하는 사람이 있었어... 그애 이름은 '김현태(가명)'야. 내가 그 애한테 고백을 했어...

몇 달이 지나도 답장이 오지 않았어. 난 '그 애가 나한테 관심이 없구나'하고 포기하고 있었어...

그런데 어제 그 애한테 문자가 왔어. 머라고 했냐구?

음... 차였어... 흑

내가 너무 부담스러운가? 난 정말 이번에는 꼭 성공하고 싶었는데... 하아~. 일기 쓰는 첫 장부터 이런 이야기 써서 미안. 이 이야기를 털어 놓을 곳은 나만의 일기장 '비니' 너 밖에 없어서...

나 중학생이 될 때까지는 어떤 애라도 고백 안할래... 미안...

이 첫 장의 일기장 다음 장은 단출한 단 한 줄의 기록이었습니다.

어쩌면 사랑의 기록은 좌절의 역사인지도 모른다. 우리는 끊임없이 다시 일어설 뿐이다.
 어쩌면 사랑의 기록은 좌절의 역사인지도 모른다. 우리는 끊임없이 다시 일어설 뿐이다.
ⓒ 이안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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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3
오늘 정말 힘들었다.

이 일기장은 단 이틀 치의 일기가 끝으로 일기장으로서의 운명을 마친 것 같았습니다. 단순한 잡기장으로 쓰기위해 사적인 기록이 있는 이 부분을 찢어버렸을 것으로 여겨집니다.
초등학고 고학년으로 추측되는 그 일기의 주인공은 '이번에는 꼭 성공하고 싶었는데'라는 문구로 봐서 이번 외에도 고백을 했었고 그 때도 거절당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나 중학생이 될 때까지는 어떤 애라도 고백 안할래'라는 구절에서는 앞으로도 꾸준히 고백할 이 여자애의 의지를 읽을 수 있습니다.

이 아이는 어쩜, 오늘 초콜릿을 어떤 남자 애에게 내밀었을지도 모를 일입니다. 아직 중학생이 되지않았더라도 오늘은 누구나 고백할 수 있는 '특별한 날'이라는 것을 빌미삼아…….

만약 그렇다면 이 여자애가 이번에는 꼭 성공할 수 있기를 진심으로 소원합니다. 그리고 이번에도 실패한다고 해도 다시 고백할 용기만은 잃지 않기를 바래봅니다.

고백, 그것은 평생을 거쳐 최후에 단 한 번만 성공해도 되는 것이니까요. 비록, 수십 번을 거절당했다하더라도 말입니다.

덧붙이는 글 | 모티프원의 블로그 www.travelog.co.kr 에도 포스팅됩니다.



태그:#사랑, #고백, #밸런타인, #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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