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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다시 일상으로 돌아온 도심
▲ 설 다음날 도심의 밤 다시 일상으로 돌아온 도심
ⓒ 김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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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 연휴가 끝나가자 텅 비었던 도심이 다시 시끌벅적해진다.
올해는 설날 당일 문을 연 점포들도 많고, 당장 설날이 지나자마자 다시 일상적인 도심의 야경이 되살아난다. 하루나 이틀쯤은 더 조용했으면 했던 바람이 무색해진다. 이렇게 억척같이 일해도 먹고 살기 힘든 서민들의 마음을 헤아리지도 못하면서 '친서민' 구호만 외쳐대며 표를 구걸하는 정치인들은 오랜만의 황금연휴조차도 반납한 서민들의 마음을 모를 것이다. 그렇게 억척같이 돈을 벌지 않고서는 살 수 없는 나라가 되었다는 이야기다.

겨우내 밖에서 지낸 자전거, 이젠 기름칠을 해야겠다.
▲ 자전거 겨우내 밖에서 지낸 자전거, 이젠 기름칠을 해야겠다.
ⓒ 김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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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겨울은 너무 추웠다.
천천히 걸어도 손이며 발이며 볼이 얼어 터질 것 같았으니 자전거를 타고 달리는 것은 언감생심이었다. 그런데 추위가 풀리자 자전거를 타는 이들이 눈에 띄게 많아졌다. 이젠 그들을 보아도 '이 추운데 자전거를 타냐?' 하는 마음이 아니라, '좋겠다!' 하는 마음이 든다.
싸구려 서민자전거라 한겨울을 그냥 밖에서 났다.

그렇게 밖에 두어도 누구 하나 번쩍 들고 가버릴 일도 없는 자전거는 겨우내 안장에 먼지가 가득했었다. 이제 완연한 봄이 오면 다시 한 번 기름 조이고, 닦아서 지하철역을 오갈 때 타고 다녀야겠다.

나의 재산목록 1호이면서도 늘 애증의 관계다.
▲ 카메라 나의 재산목록 1호이면서도 늘 애증의 관계다.
ⓒ 김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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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혹은 못난 것이 차라리 편할 때가 있다. 아니, 못나서 못난 사람의 심정을 더 많이 이해하고 곁에 있어 주는 것이 아닌가 싶다. 인간의 소유욕이 문제라는 것을 알면서도 가지고 나면 더 좋은 것을 가지고 싶다. 아니, 엄밀하게 말하면 인간의 소유욕이 문제라는 것을 모르는 것이다.

연장 탓하지 말라고 수없이 말하면서도, 나는 그동안 카메라 본체와 렌즈를 바꿔보려고 수도 없이 생각했다. 그런 생각이 들 때마다 이미 완벽한 카메라임에도 점점 더 멀어져갔고, 그에 대한 관심과 사랑이 줄어들 수록에 쓸 만한 사진도 가뭄에 콩나듯했다. 그래도 습관처럼 들고 다닌다.

오늘도 외출할 때 그를 들고 나갔다. 단 한 장의 사진도 찍지 않고 돌아오는 길, 그가 화가 났는지 맨땅에 헤딩을 한다. 필터 하나 깨지는 것으로 마무리를 했지만, 그의 항변 같아서 미안한 마음이 든다.

퇴촌 도수리 즈음, 산 위에 송전탑은 포토샵으로 지워버렸다.
▲ 퇴촌 도수리 퇴촌 도수리 즈음, 산 위에 송전탑은 포토샵으로 지워버렸다.
ⓒ 김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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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도 그곳 퇴촌은 겨울 기운이 가득했다.
잠시 퇴촌이라는 곳에 전원주택을 짓고 노년의 삶을 살아갈 계획을 세우며 꿈을 키웠다. 완전히 물 건너간 꿈은 아니지만, 요즘 들어 그것이 무슨 의미일까 싶기도 해서 망설이고 있다. 아니, 솔직하게 말하자면 망설이고 말 것도 없이 하루하루 살아가는 것도 퍽퍽하다. 당장의 일용할 양식에 대한 고민을 하다 보니 노년의 계획 같은 것들이 사치처럼 느껴진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인생이 내가 계획한 대로 살아지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달은 탓이다. 그냥, 하루하루 편하게 맞이하고 보내는 것, 그 이상의 삶이 어디 있겠는가? 나이가 든 탓이다.

산수국 헛꽃이 백설의 눈 위에 누워있다.
▲ 산수국의 헛꽃 산수국 헛꽃이 백설의 눈 위에 누워있다.
ⓒ 김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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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도 설원, 그 하얀 눈 위에 비쩍 마른 산수국이 헛꽃을 단체 살포시 고개를 숙이고 있다. 새순이 돋을 때까지 그렇게 있을 모양새다. 문득, 하얀 눈 푹푹 빠지는 제주도 중산간에서 만났던 산수국의 헛꽃이 생각났다. 그날은 그 헛꽃에 한 줄기 햇살이 가득하게 들어왔었다. 그리고 그 사진은 한동안 잊히지 않는 사진이었으며, 내 이름 석 자를 달고 나온 에세이집의 표지사진이 되기도 했다. 그 산수국, 햇살은 없었지만 미세한 그물맥까지 온전하게 드러내고 있는 모습에 숙연해진다.

자잘한 것들은 참꽃의 흔적이고, 헛꽃은 커다란 것들이다.
▲ 산수국 자잘한 것들은 참꽃의 흔적이고, 헛꽃은 커다란 것들이다.
ⓒ 김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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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헛꽃은 참꽃보다 못난 꽃이라고 했을까?
헛꽃이 있어야 작디작은 참꽃에 곤충이 찾아들고 씨앗을 맺을 수 있는 것인데, 그리고 이렇게 추운 겨울을 보내면서도 그 모습을 잃지 않았으니 그 삶의 향기로 치면 헛꽃의 향기가 더 깊다 할 수도 있는 것인데.

자연에서 하등식물 혹은 동물이라고 불리는 것들이 없다면 초록생명들과 동물들은 살 수가 없다. 그냥 인간의 편의에 의한 분류고 취향일 뿐, 자연에는 차별이 없다. 아, 사람들 사는 세상도 그러면 얼마나 좋을까? 저 밑바닥 인생이라고 손가락질하는 사람들, 3D 업종에서 일하는 이들과 무지렁뱅이 서민들이야말로 이 사회를 지탱하는 근간이 아닌가?

남천 이파리, 한 겨울을 보내고도 푸른 이파리들이 남아있다.
▲ 남천 남천 이파리, 한 겨울을 보내고도 푸른 이파리들이 남아있다.
ⓒ 김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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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독하게 추운 날씨였음에도 남천의 이파리는 여전히 남아 있다.
그냥 비쩍 말라서 남아있는 것이 아니라, 단풍인 채로 혹은 아직도 푸른 잎으로 남아 있다. 그러니까 이 추운 겨울에도 쉬지 않고 물을 빨아들였다는 이야기다. 그러고도 얼어 죽지 않았으니 맨 몸으로 겨울을 난 "남천 파이팅!"을 외쳐주고 싶다.

지난겨울 친구들과 함께 노년의 삶을 구상하면서 집을 지으면 울타리는 남천을 심어 빙 두르겠다고 했다. 그 꿈이 이뤄질지는 모르겠지만, 올봄에는 남천을 사서 사무실 작은 뜰에라도 심어야겠다. 남천의 푸른 이파리와 붉은 열매를 보면서 한겨울에도 자극을 받게 말이다. 맨몸으로도 겨울을 나는데 너는 뭐가 그리 춥다고 의기소침하느냐는 무언의 소리를 들으며 자극을 받게 말이다.

이제사 단풍이 들어버린 남천 이파리
▲ 남천 이제사 단풍이 들어버린 남천 이파리
ⓒ 김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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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난히 추웠던 겨울, 그 겨울을 꿋꿋하게 이겨준 나무와 풀과 새들과 사람들 모두 고마운 날이다. 추위를 겪고 난 뒤에 더 푸른 잎과 진한 꽃을 피우는 것이니 올봄 피어날 꽃들은 무척이나 예쁠 것 같다. 삶도 역사도 그러할 터이니, 우리에게 얼마나 아름답고 멋진 역사가 전개되려고 이 세대는 이렇게 어두운 것일까 생각하며 위안을 얻는다.

헛꽃, 참꽃 다 예쁘고 아름답다. 헛꽃이라고 헛것이 아니라 그가 없었으면 참꽃도 의미가 없었을 터이니.

덧붙이는 글 | 위의 사진들은 스마트폰 어플카메라 스케치 기능으로 담은 사진들입니다.



태그:#남천, #산수국, #어플카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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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을 소재로 사진담고 글쓰는 일을 좋아한다. 최근작 <들꽃, 나도 너처럼 피어나고 싶다>가 있으며, 사는 이야기에 관심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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