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맨발로 기도하는 여인
 맨발로 기도하는 여인
ⓒ 이상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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탕헤르에서 페스까지는 4시간이 걸린다. 탕헤르에서 카사블랑카로 이어지는 A1 고속도로를 타고 가다 중간에 물레이 부셀함에서 지방도를 타고 페스까지 갈 예정이다. 중간에 잠깐 휴게소에서 쉰다. 아침 8시다. 그런데 차 옆에서 돗자리를 깔고 기도하는 이슬람 여인을 볼 수 있다. 신발뿐 아니라 양말까지 벗고 머리를 땅바닥에 댄다. 그들의 신심을 볼 수 있는 장면이다.

차가 다시 출발하여 시골길을 달린다. 길 주변으로 광활한 대지가 펼쳐지고, 농사를 위한 수로가 이어진다. 탕헤르, 라바트, 페스로 이어지는 북부 삼각형지대가 평지를 이루고 강이 흘러 농사에 적당하다. 그래서인지 길을 가면서 가끔 마차도 만나고, 장이 서는 모습도 볼 수 있다. 우리의 60년대를 연상케 하는 모습이다. 우리는 다시 1시간 반을 달려 시디 카셈이라는 도시 근방 휴게소 아프리키아(Afriquia)에 들른다. 모로코 시골 풍경을 보기 위해서다.

학교 가는 아이 1
 학교 가는 아이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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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가는 아이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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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가는 아이 3
 학교 가는 아이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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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전 9시40분쯤 되었는데 학교에 가는 아이들을 만날 수 있다. 초등학교 저학년 학생들로 보인다. 언니를 따라 가는 애들도 있고 엄마의 손을 잡고 가는 아이도 있다. 가방을 멘 모습이 귀엽고 천진스럽다. 가까운 곳에 있는 가게로 가서 뭔가를 사고는 학교로 가는 것 같다.

가게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는 병원이 있다. 아랍어로 표기되어 있어 내용을 정확히 알기가 어려웠지만, 구급차(Ambulance)라는 영어와 응급구조(Rettungsdienst)라는 독일어를 통해 병원임을 알 수 있었다. 또 안쪽 로비를 들여다보니 접수하는 사람들과 대기하는 사람들이 앉아 있다. 하얀 벽에 녹색 기와를 얹은 병원의 모습이 아주 깨끗해 보인다. 그러고 보니 흰색과 초록색은 이슬람의 상징색이다.    

왕궁인 다르 엘-마크첸의 정문만을 보고

페스 성벽
 페스 성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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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게소에서 휴식을 취한 다음 페스쪽으로 가면서 보니 고도가 조금씩 높아짐을 알 수 있다. 그동안 거의 보이지 않던 산이 나타나기 시작한다. 페스는 중부 아틀라스 산맥을 배경으로 발전한 대표적인 중세 도시다. 시내로 들어서자 성벽이 보인다. 성벽 윗부분을 뾰족한 지붕모양으로 만든 것이 세비야에서 본 성 알카사르와 같다. 또 말발굽 모양의 성문도 똑같다. 에스파냐를 지배했던 무어왕조가 모로코에서 건너왔음을 알려주는 유산이다.

우리 버스는 왕궁인 다르 엘-마크첸의 정문 옆에 선다. 그런데 이곳 페스의 현지인 가이드가 나와 우릴 기다리고 있다. 페스의 길이 너무 복잡해 일종의 길 안내 차원에서 나온 것이다. 그리고 모로코 사람들의 일자리 창출이라는 점에서 단체관광시 현지 가이드를 꼭 쓰도록 되어있다고 한다. 우리는 왕궁을 잠시 살펴보고 점심을 먹으러 갈 예정이다. 그런데 왕궁 관광이라는 것도 내부는 불가능하고 정문과 광장만 보는 수준이다.

왕궁의 정문
 왕궁의 정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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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궁의 문
 왕궁의 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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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궁의 문은 파란 톤(tone)에 초록색 기와를 얹었다. 가운데 큰 문을 중심으로 좌우 두 개의 문이 대칭으로 나 있다. 가운데 큰 문은 출입구가 세 개다. 이들 문은 황금색을 띤 청동문이다. 그리고 벽과 문 모두에는 기하학적 무늬가 장식되어 있다. 벽의 타일이 특히 아름다운데 노란색, 빨간색, 파란색, 초록색, 검은색으로 화려하게 디자인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 왕궁의 문은 모두 최근에 다시 만들어진 것으로 문화재적 가치는 없다.

모로코 전통음식 꾸스꾸스
 모로코 전통음식 꾸스꾸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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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을 보고 우리는 다르 알 바타의 모로코 전통식당으로 간다. 다르 알 바타는 페스 구도심의 얼굴로 페스 엘 발리(Fes el Bali: Old Fes)의 출발점이다. 그래서 호텔과 식당 그리고 카페가 많다. 우리는 이곳 식당에서 꾸스꾸스(Couscous)를 먹는다. 꾸스꾸스는 쌀가루 비슷한 것에 양고기 또는 닭고기를 넣고 그 위에 각종 야채를 얹어 옹기형 접시에 쪄낸 음식이다. 아랍식 빵에 이 꾸스꾸스를 얹어 먹을 수도 있고 따로 먹을 수도 있다. 이와는 별도로 밥과 감자, 야채와 걸쭉하게 삶은 팥이 나온다. 이들 모두 우리 입맛에 맞는다.

이 레스토랑은 전통음식점답게 실내 인테리어를 했다. 식탁과 주전자, 램프 같은 용품뿐 아니라 천정까지 특이하다. 실내가 추운 것 같다고 주인에게 말하자 천정을 덮어준다. 소위 개폐가 가능하도록 만든 천정이다. 또 한쪽으로는 전통악기들을 진열해 놓았는데, 얼굴 모양을 한 기타가 재미있다. 기타와 작은 장구 모양의 북은 아프리카 음악에서 빼놓을 수 없는 악기다.     

병아리들처럼 구시가를 한 바퀴 졸졸졸

금속 세공품
 금속 세공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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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심을 먹고 우리는 구시가지 탐험에 나선다. 우리가 가는 길에 만나게 될 중요한 문화유산은 부 이나니아 코란학교, 물레이 이드리스2세 영묘, 카라윈 모스크, 아타린 코란학교이다. 그러나 이들은 이슬람교도들만 출입이 자유롭기 때문에 마음대로 들어갈 수가 없다. 그래서 우리는 중간 중간 시장과 골목을 지나가며 페스 사람들의 삶의 현장을 살펴보고 마지막에 가죽 무두질 공장을 볼 예정이다.

또 책에 구시가지 지도가 나오지만 길이 완전히 미로여서 내 스스로 길을 찾는 것이 거의 불가능하다. 그래서 현지 가이드의 안내를 따라 병아리처럼 졸졸졸 따라갈 수 밖에 없다. 중간에 대열을 잃게 되면 우리의 다음 목적지인 라바트까지 알아서 와야 한다는 가이드의 엄포에 모두 주눅이 든다. 가이드가 여행지 도심의 지도를 주면서 여행의 출발점과 도착점을 알려주는 자세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가죽 모자
 가죽 모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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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목으로 들어가 처음 만난 곳이 금속세공품 거리다. 쟁반, 주전자, 화병, 잔, 양념 그릇, 거울 같은 생활용품과 동물 모형을 볼 수 있다. 한쪽에서서는 왕궁 문을 세공한 장인의 아들이라는 사람이 망치와 정을 가지고 세공기술을 보여준다. 이곳을 나오니 도자기에 글씨와 무늬를 새기는 사람이 보인다. 다음으로 찾아간 곳은 의류와 생활용품 거리다. 의류의 색깔이 원색적이고 화려하다. 그리고 가죽으로 만든 모자 역시 화려하고 아름답다. 모자에 새긴 팔각형의 별이 인상적이다. 유대교의 별은 육각형인데 이슬람교의 별은 팔각형이다.

다음으로 찾아간 곳은 물레이 이드리스 2세 영묘다. 물레이 이드리스 2세는 8세기 말에 이드리스 왕조를 연 물레이 이드리스 1세와 베르베르인 어머니 사이에서 유복자로 태어나 807년 왕이 되었다. 그는 페스를 수도로 하고 20년 이상 통치하면서 영토를 확장하고 제도를 정비하여 이드리스 왕조의 위상을 높였다. 당시 페스는 아프리카의 동부와 에스파냐의 코르도바를 잇는 동서무역과 아틀라스 산맥을 넘어 사하라로 이어지는 남북무역의 중심지가 되었다.

물레이 이드리스 2세 영묘
 물레이 이드리스 2세 영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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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레이 이드리스2세는 829년 죽어 이곳에 묻혔고, 1437년 메리니드 왕조 때 재발견되어 지금과 같은 영묘로 만들어졌다. 이곳은 페스를 찾는 이슬람교도들의 성소로 사원 역할도 하고 있다. 영묘를 보고 가죽 무두질 공장으로 가다 보면 카라윈 모스크, 아타린 코란학교를 만날 수 있다. 이 중 카라윈 모스크에는 대학과 도서관이 만들어져 모로코의 종교와 교육의 중심지 역할을 하고 있다. "페스의 모든 길은 카라윈으로 통한다"는 속담이 있을 정도로 중요한 곳이다.

무두질 풍경을 촬영하다 그만

페스의 가죽 무두질 공장
 페스의 가죽 무두질 공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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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들을 지나 우리가 마지막으로 찾아간 곳은 가죽 무두질 공장이다. 그곳으로 가까이 가자 거름 냄새가 밀려온다. 냄새가 조금 역하기도 하지만 그 유명한 장면을 안보고 갈 수는 없다. 이 공장은 페스 강변, 사방이 벽으로 둘러싸인 고립된 공간 안에 있기 때문에 현장에 들어갈 수는 없다. 일부 방송사에서 촬영을 위해 안으로 들어가 작업을 시연해 보이기도 하지만, 우리는 공장을 둘러싸고 있는 상가의 4층으로 올라가 작업현장을 내려다본다.

영상에서 보던 것처럼 그렇게 환상적이지는 않지만 붉은색, 갈색, 회색, 흰색, 연한 하늘색의 향연을 볼 수 있다. 또 동그란 염색통에서 작업하는 인부들의 모습도 보인다. 그들은 뭔가 이야기를 주고받으면서 끊임없이 손과 발을 움직인다. 가위를 가지고 가죽을 자르기도 하고 가죽에 붙은 것을 떼어내기도 한다. 어떤 사람은 염색통에 팔을 걸치고 발로 가죽을 밟기도 한다. 붉은색 물을 들이려는 것 같다. 몸을 염색물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허리까지 올라오는 장화를 신었다.

무두질 공장의 환경은 좋지 않은 편이다. 바닥이 흥건하고 지저분하며 냄새까지 진동을 한다. 무두질 공장은 크게 세 부분으로 나누어진다. 염색을 위한 지역이 있고, 가죽의 털을 제거하고 부드럽게 하는 지역이 있고, 가죽을 말리는 지역이 있다. 물론 이중에서 염색지역이 가장 넓다. 이곳 무두질 공장의 외적 아름다움은 염색통의 색깔에서 나온다.

무두질 장인 1
 무두질 장인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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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두질 장인 2
 무두질 장인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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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 광경을 놓칠 수 없어 사진을 여러 장 찍는다. 그런데 이들 광경을 조금이라도 더 가까이서 보려고 3층으로 내려간다. 그곳에서는 사진만이 아니라 비디오도 좀 찍는다. 비디오라는 것이 사진과 달라서 제대로 찍으려면 30분 이상은 있어야 한다. 그렇지만 나는 방송용이 아니라서 한 5분 정도 찍는다. 인부들의 대화도 들리고 화면도 좋아 의외로 좋은 화면을 만들 수 있다.

그런데 문제는 그 다음에 생겼다. 비디오를 다 찍고 보니 우리 일행이 보이질 않는다. 다시 4층으로 올라가 봐도 없고 아래층으로 내려가 봐도 없다. 순간 당황스럽다. 요즘 젊은이들 쓰는 말로 '허걱'이다. "우리 일행은 다 어디로 간 겨?" 상가를 내려와 길에서 잠시 우리 일행이 간 방향을 생각해본다. 상인들에게 "코리안 팀 웨어?"하고 물으니 간 방향을 알려준다. 그러나 바로 삼거리가 나오고, 여기서도 간 길을 찾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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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찌해야 하나?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난처한 상황이다. 그때 이곳 주민 하나가 5유로를 주면 찾아주겠다고 말한다. 그렇지만 그 친구를 선뜻 따라갈 수도 없다. 정말 고민이다. 조금만 더 기다려 보자. 괜히 이 장소를 벗어나면 우리 일행이 나를 찾을 수 없다. 불안한 마음으로 서성대는데 저기서 우리 인솔자인 정지희 씨가 온다. 구세주가 따로 없다. 아프리카 페스 땅에서 길을 잃고 미아가 되다니. 길눈이를 자처하는 내가. 이게 바로 페스 구시가지의 미로다. 


태그:#페스, #왕궁, #물레이 이드리스 2세 영묘, #가죽 무두질 공장, #꾸스꾸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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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심분야는 문화입니다. 유럽의 문화와 예술, 국내외 여행기, 우리의 전통문화 등 기사를 올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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