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이상한 광경이 벌어졌다. 지난 1일 오후 서울시의회 본회의에서 서울 지역 모든 학교에 무상급식을 시행하는 '친환경 무상급식 지원에 관한 조례안'을 의결하는 과정에서 격한 몸싸움이 벌어졌다.

 

한나라당 시의원들이 의장석을 점거한 채 물리적 저지 행동에 나서자 민주당 시의원들이 이들을 끌어낸 뒤 조례안을 통과시키는 등 국회와 꼭 닮은 싸움이 벌어진 것이다. 의장석을 점거한 한나라당 의원들이 몸을 던져가면서 외치고팠던 슬로건은 "보편적 복지 달성하는 친환경 무상급식 결사반대한다!" 정도였을까? 웃음이 난다고 해야 할지 눈물이 난다고 해야 할지 모를 처연한 광경이다.

 

무상급식 대신 한강운하?

 

지난 6·10지방선거의 핵심의제 두 가지는 누가 뭐래도 '4대강'과 '무상급식'이었다. 서울지역 사안으로 보자면 '한강운하'와 '무상급식'이 가장 핵심 키워드였다. 지난 지방선거에서 민심이 보여준 것은 운하에 대한 견제와 무상급식에 대한 전폭적 지지였다는 해석에 많은 이들이 공감했다.

 

그리고 임기 시작 이후 150여 일이 지나는 12월 현재, 서울시는 2011년 예산을 편성하면서 '한강운하 752억', '무상급식 0원'이라는 황당무계한 안을 내놨다. 무상급식을 위해서 서울시가 분담해야 할 금액이 '700억'이었다는 점을 상기시켜보면 그야말로 지방선거 민심을 정면으로 거슬렀다는 표현이 정확할 것이다.

 

이에 대해 지난달 12일 <손석희의 시선집중>에 출연한 서울시 교육협력국장은 "시의 이러한 일반적인 사업(한강운하, 한강예술섬 등 토목예산)들의 예산을 무상급식과 연계시켜나가는 것이 시민을 위한 것인가, 이건 판단이 필요하다"고 밝히기도 했다.

 

거대도시 서울시의 1년 예산은 20조 원이 넘지만 그동안 이 천문학적인 예산은 거의 견제받지 않은 채로 편성되고 집행되어왔다. 하지만 더 이상은 견제없는 드라이브는 불가능 할 것으로 보인다.

 

지난달 27일 서울시의회 별관에서는 뜨거운 열기 속에 2011년 서울시 예산을 분석하는 토론회가 개최되었다. 장장 8시간 30분의 기나긴 토론회 내내 행사장을 꽉 메운 시의원과 시민, 시민사회단체 활동가와 회원들이 내뿜는 열정으로 후끈 달아올랐다. 이 토론회 결과를 바탕으로 서울풀뿌리시민사회단체네트워크(이하 서울풀씨넷)는 2일 서울시 예산 '삭감 베스트 10'과 '증액 베스트 10'을 발표했다.

 

날려보자! 2011 서울시 삭감예산 베스트 10

 

삭감예산 1순위로 입을 모아 꼽은 것은 두말할 여지없이 한강운하 예산이다. 의회가 구성되자마자 전면전을 선포했던 한강운하는 타당성 부족과 절차 부실 등으로 많은 논란을 키워왔으며, 한반도운하사업의 시발점이라는 측면에서 전면삭감되어야 할 예산이다.

 

이 부분에서 논란은 양화대교 재건축이다. 5천 톤급 선박의 운항을 가능하게 하기 위해 다리를 떠받치는 기둥의 간격을 넓히는 공사가 현재 진행되고 있다. 의회 임기가 시작되기 전 서울시의원 당선자들은 양화대교의 상행선방향 교각공사를 전격 중단시켰으나, 9월에는 안전상의 문제를 이유로 공사 마무리를 합의한 바 있다. 문제는 서울시의회에서 상행선방향 공사가 완료된 후 하행선방향 교각 공사도 마무리하게 합의할 것인가이다. 반쪽짜리 공사가 되지 않도록 양화대교 정도는 그냥 마무리하게 두어야 하지 않냐는 목소리가 고개를 든 것이다.

 

하지만 90년대 중반부터 조금씩 수로폭을 넓혀가고, 중단과 백지화를 반복하면서도 끈질기게 살아남은 경인운하의 사례로 보건데 양화대교를 선박운항을 위한 완전한 작품으로 완성한다면 이번에 한강운하가 백지화된다 하더라도 토건세력은 언제든 다시 한강운하를 되살려 내고야 말 것이다.

 

2순위로 꼽은 것은 406억 원이 편성된 한강예술섬이다. 전형적인 문화계 토목예산이다. 이명박 시장 시절부터 환경, 문화, 교통 많은 분야의 전문가들이 부적절함을 지적해왔고, 시민들의 반대로 무산되었던 한강예술섬조성 재추진하는 것이다. 3순위는 9988복지센터 98.9억 원이다. 기존 노인복지관 등의 시설이 수행중인 기능의 중복 과잉 투자 사례로서 토목예산에 불과하다는 평을 받았다.

 

4순위는 경쟁·특권 교육 169억 원이 꼽혔다. 수준별수업·고교선택제·진단평가 및 국제고·과학고·과학중점고에 배치된 예산이다. 5순위는 서울대표도서관 설립 641억 원이며, 대형 시설중심의 도서관 건립에 들어가는 예산이다. 지역에 필요한 것은 각 지역별 작은 도서관 지원사업이 우선이며, 종합적인 지원체계에 대한 예산 배정이 필요하다는 것이 문화연대 지현 문화정책팀장의 지적이다.

 

6위는 빗물펌프장과 하수관로 확충에 편성된 3100억 원으로 1/3 이상 삭감해야 한다는 것이 서울환경연합 염형철 사무처장의 지적이다. 지난 추석 서울 도심을 공황상태에 빠뜨렸던 홍수 당시 천재지변이라는 서울시의 주장과 전형적인 인재라는 시민사회의 지적이 팽팽히 맞섰으며, 이후 실제 하수관로 현장조사 결과 부적절한 설계와 퇴적물 관리 미비로 결론난 바 있다. 하지만 이후에도 원인에 대한 진단과는 무관하게 또다시 토목사업을 추진을 대책으로 마련하고 있다. 이는 재난기금의 고갈을 가져올 우려가 있고, 현황파악 및 관리계획을 우선수립해야 한다는 비판이 쏟아졌다.

 

7위는 평창-은평터널 건설 110억 원이다. 민간투자를 내세운 사업에 어째서 서울시민의 세금이 110억 원이나 당당히 배정되는지 의아하기 그지없는 사업이다. 불과 5년 전에 은평 뉴타운과 경기 삼송지구가 개발될 때만 해도 버스전용차선 등을 통해서 교통을 분산하므로 별도의 도로교통이 필요하지 않다고 주장했었으나, 2006년도에 오세훈 시장이 등장하자마자 시장지시로 투·융자 심사가 진행됐다. 결과는 전액 민자였으나 이후에 정책을 바꿨다. 특히 국립공원을 희생하면서 추진하는 사업임에도 교통수요에 대한 정확한 추계가 없으며, 유료터널로 운영할 계획이므로 이후 이용자의 부담이 가중될 것으로 보인다.

 

이 외에도 제물포터널․과천-송파간도로 등 민자도로에 대한 예산, 우이배수장 58억 원 등이 삭감대상으로 꼽혔다. 눈여겨 볼 것은 월드컵대교 100억 원과 지천운하 48억 원은 서울시 부채가 위험수위에 오른다는 지적 이후 '민선5기 부채관리 종합대책'에서 서울시가 스스로 백지화하겠다고 선언했던 사업인데, 2011년 예산에 버젓이 올라와있다는 점이다.

 

늘려보자! 2011 서울시 증액예산 베스트 10

 

읽으면서 혹시 계산기를 두드려 보셨는가. 한참 삭감해야 한다고 읊은 사업들의 예산만 얼추 합해 봐도 2700억 원에 가깝다. 숨가쁘게 삭감하고 나니 이제 이 돈을 어디다 쓸지 고민해봐야 할 시간이다. 서울풀씨넷이 제안하는 좋은 예산 증액 10가지 사업을 함께 보자.

 

1순위는 누가 뭐래도 친환경 무상급식이다. 이제 '무상급식'은 더 이상 단순한 '무상급식'만의 문제가 아닌 수준에 이르렀다. '보편적 복지'의 대명사로 자리를 잡고, 우리사회에 뜨거운 논쟁의 중심에 선 것이다. 본인이 가난함을 증명해야 누릴 수 있는 복지가 아닌, 인간으로 태어났으면 누구나 반드시 누려야 할 기본적인 복지를 대변하는 단어가 되어버린 것이다. 이에 서울시가 부담금해야 할 규모인 700억 원을 온전히 편성해야 한다고 전교조 서울시지부 사립위원회 김영승 선생님은 주장했다. 한강운하 예산이 752억 원이니 삭감한 만큼이면 충분히 편성하고도 남을 성 싶다.

 

2순위는 공원녹지 확충 1000억 원이다. 2011년 330만㎡를 확보를 통해서 구와 동별로 주거지 인근에 공원 녹지를 확충해서 도심 투수층 비율을 늘리고, 온난화현상 완화 및 삶의 질 향상에 기여해야 한다는 것이다. 재밌는 것은 카자흐스탄의 타쉬켄트와 몽골 울란바토르에 서울을 홍보하기 위한 공원을 조성하는데 각각 29억 원과 26억 원이 배정되어 있다는 점이다. 대표적인 전시성 사업이다.

 

3순위는 신재생에너지 96억 원이다. 서울시의 2030 신재생에너지 계획을 이행하기 위해서는 2011년에 1440kw를 확보해야 한다는 것이 서울환경연합 염형철 사무처장의 주장이다. 최소한 전년수준으로 예산을 회복해야 할 것이다.

 

4순위는 저소득지원 94억 원이다. 저소득 틈새계층 80억 원, 가사간병방문서비스 8억 원, 서울광역자활센터 3억 원, 노숙인 자활프로그램 3억 원 등 취약계층의 복지예산 증액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5위는 저소득층 집수리 150억 원, 6위는 기존주택 매입임대 사업 55억 원 증액, 7위는 종합사회복지관 156억 원으로 전년수준으로의 회복 등으로 주거 및 복지와 관련한 의제가 물망에 올랐다.

 

8위는 경력단절 여성의 재취업 지원을 위한 여성일자리 창출 사업 및 인력개발기관 예산 복원을 위한 88억 원과 가정폭력과 성폭력 방지 및 피해자 지원, 성매매 피해여성 및 십대여성 지원예산 30억 원 증액 등 여성 관련 예산이 제안되었다. 그 외에도 오세훈 시장 공약이었던 공공보육시설 1000개소 확충을 위해서는 1차년도에 80개초 확충을 우선 시행할 예산 50억 원이 추가 증액되어야 한다고 여성정치세력민주연대 김선희 부장은 주장했다.

 

서울시 의원회관에 자리잡은 한 민주당 의원실 방 한켠에 붙어있는 대자연(대한민국자식연합회)의 성명서가 눈길을 끈다. 지난 지방선거의 결과는 야당의 성공적 활동에 대한 성찬이 아닌, 여당의 토목일방통행에 대한 견제였음을 잊지말라는 격문이다. 이제 갓 5개월이 지났다. 시민의 목소리에 귀기울이고, 사람 사는 도시를 설계하는 자세로 예산안을 바라봐야 할 것이다.

 

 

주민참여예산제의 초석 다지자!

 

다양한 분야의 시민사회가 함께 모여서 뜻을 모으고 논의한 2011년 예산안 편성제안이다. 조목조목 항목별로 모두 공감할 수는 없겠지만, 큰 방향에서 시민사회가 서울시의 예산방향을 분석하고 제안하는 첫 자리였다는 점에서 주민참여예산제의 기반을 닦았다는 의미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조심스레 정리해보면 '운하대신 무상급식', '토목대신 복지'정도가 되지 않을까 싶다. 이 역시 많은 사람들이 참여해서 만든 제안이기는 하지만, 훨씬 더 다양한 사람들의 아이디어가 필요하다.

 

이달 16일로 예정된 예산안 심의가 무난하게 진행되기 어려울 것 같다는 조심스런 전망이 나오고 있다. 무상급식 조례 의결 이후 오세훈 시장은 시정질의 참석을 거부한 채 휴가를 떠나는 등 파행으로 치닫고 있기 때문이다. 싸우는 꼴은 보기 싫지만, 그래도 정치라는 것이 우리가 두눈 똑바로 뜨고 지켜봐야 할 일임은 두말 할 나위없다. 토론회에 참석해서 노인문화복지 사업인 허리우드 극장의 예산 전면삭감을 회복해달라는 어르신들의 애절한 이야기는 듣는 이의 눈시울을 뜨겁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이처럼 2011년 서울시 예산에 대한 좋은 아이디어가 번뜩 떠오른다면, 서울시(http://www.seoul.go.kr), 서울시의회(http://www.smc.seoul.kr), 서울풀씨넷(http://cafe.daum.net/seoulpulseenet) 홈페이지로 달려가자. 자신의 가장 가까운 곳에서부터 서울시 예산이 어디에 쓰이면 좋을지 아이디어를 모아보자. 이 얼마나 멋진 일인가! 참여하고 행동하는 당신이 바로 진정한 21세기 대한민국의 양심임을 잊지 마시길.

덧붙이는 글 | 신재은 기자는 서울환경운동연합 활동가입니다.


태그:#서울시, #예산, #서울풀씨넷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