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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한울중학교 복도 게시판 한쪽에 '사랑의 매, 무서워요'라고 적힌 포스터가 붙어 있다. 한울중은 체벌을 전면 금지했다.
 서울 한울중학교 복도 게시판 한쪽에 '사랑의 매, 무서워요'라고 적힌 포스터가 붙어 있다. 한울중은 체벌을 전면 금지했다.
ⓒ 박상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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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웨덴, 독일, 룩셈부르크, 영국, 오스트리아, 프랑스, 캐나다, 일본 등. 이들 24개 나라는 학교뿐 아니라 가정에서의 아동 체벌도 법으로 금지시켰고, UN인권위원회에 의해 채택된 아동인권협약 역시 아동체벌을 금지하고 있다. 우리나라도 이른바 '오장풍 교사' 사건을 계기로 촉발된 체벌 논란이 곽노현 서울교육감의 체벌금지 조치로 본격화됐다.

서울교육청은 성찰교실제와 전문상담교사 등을 대안으로 내놓았고, 각 학교들은 상벌점제나 학생자치법정 등을 시도하기도 한다. 14일 서울교육청은 '유형별 학생생활지도 매뉴얼'을 내놓았는데, 교총 등 체벌 허용을 주장하는 측에서는 벌써 실효성에 의문을 제기한다. 이 가운데 교육과학기술부도 체벌 금지 법제화의 대안으로 미국에서 실시하고 있는 학부모 소환제를 고려하고 있다는 보도가 나오고 있다. 미국의 체벌과 학부모 소환제의 실태를 통해 우리 사회에서의 적용 가능성과 시사점에 대해서 한번 살펴보자.

미국의 체벌, 주마다 달라요... 체벌 허용도 기준 엄격

미국이 50개의 주로 이루어진 연방제 국가인 만큼 각 주마다 체벌에 대한 입장이 다르다. 상대적으로 정치적 성향이 진보적인 것으로 알려진 캘리포니아, 뉴욕, 오하이오 등 서부와 동북부 지역은 체벌 금지 30개 주에 해당하고, 텍사스, 테네시, 앨라배마 등 남부와 중부 지역의 주 20개 정도는 체벌을 허용하고 있다.

캘리포니아 주는 주 교육법(C.E.C SEC 49001)으로 "학생 시기는 가장 상처받기 쉽고, 외부영향을 받기 쉬운 시기이기 때문에 적어도 일반 시민과 똑같이 신체의 존엄성과 건강에 대한 안전장치가 학생에게 주어지는 것이 마땅하다"고 하면서 모든 교사와 직원의 체벌금지를 규정하고 있다.

동시에, 형법의 정당 방위처럼 주 교육법으로 기물 파손이나 다른 사람 상해의 위험이 있는 학생의 행동을 제압하는 것, 소유하고 있는 무기 같은 위험한 물건을 뺏는 것을 위한 자기 방위 행위는 체벌 금지에도 불구하고 예외적으로 인정하고 있다.

체벌 허용 주도 엄격한 제한 두어 자의적 체벌은 금지

거꾸로 체벌을 허용하는 주들도 체벌에는 엄격한 제한을 두고 있다. 대표적으로 보수 색채를 지닌 지역인 남부 테네시주(州)의 마우리 카운티의 경우 법에 따라 부분적으로 체벌을 인정하면서도 엄격한 제한을 가하고 있으며 이와 관련된 자세한 내용을 소책자로 만들어 학생과 학부모에게 안내하고 있다.

체벌을 허용하는 테네시 주의 마우리 카운티의 학생용 소책자. 체벌을 허용하면서도 사전 교장의 허락을 받고, 입회인을 두고, 3대 이하로 할 것 등 엄격한 제한을 두고 있다는 점과 학부모가 체벌하지 말 것을 요구할 수 있는 권리 등을 자세하게 안내하고 있다.
 체벌을 허용하는 테네시 주의 마우리 카운티의 학생용 소책자. 체벌을 허용하면서도 사전 교장의 허락을 받고, 입회인을 두고, 3대 이하로 할 것 등 엄격한 제한을 두고 있다는 점과 학부모가 체벌하지 말 것을 요구할 수 있는 권리 등을 자세하게 안내하고 있다.
ⓒ 김행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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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에 따르면, 교장이나 교사가 학생 체벌을 위해서는 엄격하게 정해진 최소 6개 정도의 가이드라인을 지켜야 한다. 가이드라인은 아래와 같다(TCA 49-6-4104).

1. 다른 벌이 실패한 이후에 유일한 합리적인 수단일 것.
2. 체벌 도구는 미리 교장에 의해 승인 받을 것.
3. 3대 이하의 적절한 수준.
4. 전문교사(직원) 입회 하에 실시.
5. 불법 행동의 중대성, 동기와 태도, 다른 학생에게 미치는 영향에 비례하여 결정.
6. 나이, 성별, 신체 크기, 육체적 감정적 상태를 고려할 것.

체벌 후에는 학생의 이름, 비행의 유형, 실시된 체벌의 유형, 체벌 교사의 이름, 입회(목격)한 목격자(전문가)의 이름, 체벌의 날짜와 시간 등이 포함된 징계 기록을 반드시 남겨야 한다. 이 기록은 교무실에 제출돼야 하고, 학생과 학부모가 활용할 수 있다(TCA 10-7-504).

가장 중요한 점은 교사에게 체벌을 할 수 있는 권리가 있다면 학부모에게는 자기 자녀에 대해서 체벌하지 말 것을 요구할 권리가 있다는 것이다. 학부모는 서면으로 학생의 체벌 금지를 요구할 수 있으며, 이런 요구가 있을 시에 체벌 여부나 대체벌 종류, 학생과 학부모의 책임 등을 토론하기 위해 학부모, 교장, 지정인이 참가하는 회의를 해야 한다. 이 회의를 통한 합의가 있어야만 체벌 또는 대체벌이 가능하다.

이처럼 체벌 허용 주에서도 엄격하게 사유를 제한하고, 절차와 수준을 규제하고 있으며, 학부모가 체벌하지 말 것을 요구할 수 있는 권리를 부여하고 있다. 그리고 체벌은 반드시 다른 전문가가 입회한 상태에서 3대 이하의 적정 수준에서 이루어져야 하며, 이후에는 이유, 수준, 교사의 이름 등을 반드시 기록으로 남기고 언제든지 학생과 학부모가 볼 수 있도록 보장하고 있다. 만약 우리 나라에도 체벌을 허용하면서도 이런 제약을 둔다면 체벌하겠다는 교사가 있을까? 사실상 체벌을 전면적으로 금지하는 것과 똑같을 것이다.

무단 결석 방치하면 학부모 소환하고 형사 처벌

체벌 허용 여부와 상관없이 미국에는 '학부모 소환제'라는 것이 있다. 학생 지도의 의무가 학교뿐 아니라 학부모, 지역사회의 공통의무라는 인식을 잘 보여주는 제도다. 현재 우리 교육 당국이 체벌 금지의 대안으로 이를 검토하고 있다는 보도가 있다. 그 구체적인 운영의 실태를 '무단 결석 또는 지각자'를 어떻게 대하는지를 통해서 살펴보자.

먼저 체벌이 인정되는 테네시주 마우리 카운티의 경우, 5번 무단 결석 또는 지각을 할 경우 부모나 보호자에게 편지(사실확인서)를 보낸다. 7번 무단 결석 혹은 지각을 한 학생의 부모나 보호자는 학교 청문회에 소환되는데 반드시 출석해야 한다. 무단 결석이나 지각이 9번인 학생의 보호자는 지역교육청 수업결손재고위원회에 소환된다. 그래도 개선되지 않고 12번 이상 수업 결손이 발생한 학생은 청소년법정에 소환되고, 부모는 영장을 받게 되는데 형사 처벌을 받을 수 있다는 의미이다.

체벌이 금지된 캘리포니아 주는 이를 좀 더 세밀하게 규정하고 있다. 먼저 3번 이상 수업에 지각을 하거나 결석을 한 학생은 '무단 결석자'로 규정되고 지역교육청의 출석감독관이나 교육감에게 통보된다. 지역교육청은 무단결석생의 부모나 보호자에게 일급우편 등의 방법으로 통보서를 보내야 한다. 캘리포니아 교육청 홈페이지에는 무단결석생의 학부모에게 보내는 편지와 통보서를 단계별 견본으로 올려 놓았고 학부모가 이를 받았음을 확인하는 서명을 해서 다시 제출하도록 하고 있다.

미국 캘리포니아 주교육청 홈페이지와 학부모 편지. 체벌을 금지하는 캘리포니아 주에서는 무단 결석 등 문제 학생의 학부모에게 편지, 통보서를 보내도록 하고 있고, 그 편지의 견본을 단계별로 작성하여 홈페이지에 올려놓았다. 이 편지와 통보서들에는 학생이 학생법정에 소환될 수 있고, 학부모는 소환될 수 있으며 형사 처벌을 받을 수 있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미국 캘리포니아 주교육청 홈페이지와 학부모 편지. 체벌을 금지하는 캘리포니아 주에서는 무단 결석 등 문제 학생의 학부모에게 편지, 통보서를 보내도록 하고 있고, 그 편지의 견본을 단계별로 작성하여 홈페이지에 올려놓았다. 이 편지와 통보서들에는 학생이 학생법정에 소환될 수 있고, 학부모는 소환될 수 있으며 형사 처벌을 받을 수 있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 김행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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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통보서에는 부모가 학생을 학교에 출석시킬 의무와 이 의무를 다하지 않았을 경우에는 법에 따라 형사 처벌 받을 수 있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지역교육구가 제공하는 대안 프로그램 이용과 학생의 무단 결석을 해결하기 위해서 적절한 학교 관계자와 상의할 권리도 통지하고 있다. 또 적어도 하루 동안 학생과 함께 학교에 등교해 수업에 참가할 것을 권고하는 내용과 함께, 학생은 정학이나 등교제한, 운전면허증 발급 지연 등의 제제를 받을 수 있다는 내용도 담고 있다.

학교뿐 아니라 지역교육청의 의무도 이와 비슷하다. 지역교육청에는 학생의 출석업무만 담당하는 감독관이 있고, 이를 담당하는 변호사와 근신담당공무원이 따로 있다. 학부모와 교사는 이들을 통하여 이 문제 해결을 위한 상담을 할 수 있으며, 거꾸로 이들이 무단결석생 부모를 소환할 수도 있다.

무단결석학생은 청소년 법정에 의하여 단계적 처분을 받게 된다. 먼저, 무단결석을 하지 말라는 서면경고장을 받는데, 이는 최소 2년 동안 학교에 보관된다. 두 번째, 무단으로 수업을 빠지면 학교에 의해 같은 교육구 내에 위치한 방과후 또는 주말 교육프로그램을 받을 수 있다. 세 번째로 같은 혐의로 적발되면 '상습적인 무단결석생'으로 분류되어 교육구청 내에 설치된 출석재고위원회나 무단결석 치료프로그램에 출석해야 한다.

그래도 계속 수업에 빠지면 학생은 교육법에 따라 청소년법정의 재판에 회부된다. 그 결과에 따라 법정이 승인하는 일정 기간 동안 지역봉사프로그램을 이수하거나 무단결석 방지 프로그램 출석, 학생과 부모가 공동으로 책임이 있는 100달러 이하의 벌금에 처해질 수 있다. 여기에 부가적으로 교통법에 따라 그 학생의 운전면허증 발급을 지연하거나 아예 폐지할 수도 있다.

학생 교육은 학교-학부모-교육청-지역사회의 공동 의무

교문앞 체벌
 교문앞 체벌
ⓒ 청소년인권행동 아수나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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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단결석 학생뿐 아니라 그의 부모 또는 보호자는 법원에 의해 기소돼 캘리포니아의 경우 첫 번째는 100달러, 두 번째는 250달러, 세 번째는 500달러 이하의 벌금을 받을 수 있는데, 지역에 따라서는 최대 5000달러에 이르기도 한다. 여기에 법원은 예방을 위한 부모교육 프로그램 또는 부모상담 프로그램을 부가적으로 명령할 수 있다. 경찰은 수업을 빼먹고 그 시간에 거리를 떠돌아다니는 학생을 체포해, 경우에 따라서는 수갑을 채워서까지 학교나 가정에 인계할 권리를 가지고 있다.

미국은 대부분 주가 체벌을 엄격하게 금지하며 일부 허용하는 주도 엄격한 제한을 두고 있다. 특히 학부모가 체벌하지 말 것을 요구할 수 있다. 무단결석 등 문제를 일으키는 학생에 대해서 학교와 학부모뿐 아니라 지역교육청과 경찰, 법원이 나름대로의 역할을 하고 있다.

학교가 일차적으로 이들을 지도할 권한을 가지고 이를 반드시 학부모에게 통보해 학부모로 하여금 아이들을 지도하도록 한다. 교육청에서는 이를 담당하는 출석담당관, 근신담당관, 변호사가 있다. 학부모는 학교나 교육청에 소환될 수 있으며, 거꾸로 학부모도 이 문제에 대해서 상담과 문제 해결을 요구할 수 있다. 상습적인 위반자에 대해서는 학생을 청소년 법정에 세울 수 있다. 그 학부모는 기소되어 법정에서 유죄선고를 받으면 벌금을 내야 하고 법원이 승인하는 학부모 교육 또는 상담 프로그램을 이수해야 하며 지역사회는 이런 프로그램을 제공한다.

현재 체벌 금지를 두고 우리 교육계에서 논쟁이 진행 중인데, 그 대안으로 미국의 학부모 소환제를 검토하고 있다. 그러나 미국의 학부모 소환제에서 정작 배워야 하는 것은 그 제도 자체가 아니라 정신이다. 학생 교육이 교사와 학교만의 책임이 아니라 학부모, 교육청과 지역사회의 공동 책임이라는 정신이 그것이다. 이 정신에 맞게 학교와 학부모, 교육청, 지역사회가 각자 제도적으로 역할을 나누어 맡고 있다. 우리도 체벌 금지 논쟁에 앞서 근본적으로 고민해야 하는 것이 바로 이 정신과 사회적 역할 분담이 아닐까?


태그:#미국, #학부모소환제, #체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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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교육에 관심이 많고 한국 사회와 민족 문제 등에 대해서도 함께 고민해 보고자 합니다. 글을 읽는 것도 좋아하지만 가끔씩은 세상 사는 이야기, 아이들 이야기를 세상과 나누고 싶어 글도 써 보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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