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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책과 책삶과 책값

 

책방이라는 곳은 책방 일꾼과 책손이 책을 사고팔 뿐 아니라 책에 얽힌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서로 배우는 나눔터라고 생각합니다. 책방 일꾼은 책을 갖추거나 다루는 동안 겪은 이야기를 들려주고, 책손은 책을 쓴 사람이나 책을 만든 곳이나 책에 담긴 줄거리를 책방 일꾼한테 알려줍니다. 서로서로 잘 아는 테두리에서 책 이야기를 나누면서 책삶을 한껏 북돋우는 책방입니다. 책방이라는 곳이 책방다웁자면 서로서로 이야기가 오가야 합니다. 이야기가 오가지 않고 '더 싼 값'이나 '더 많은 적립금'을 살피며 물건만 다룬다면, 이러한 곳은 책방이라는 이름을 붙일 수 없습니다.

 

오늘날 수많은 '큰 새책방'은 적립금을 주고 더 싸게 물건을 팝니다. 우리는 이러한 곳에서 새로 나온 책을 틀림없이 더 눅은 값으로 살 수 있습니다. 참말 읽고프다는 책 하나를 주머니 후줄근할 일 없이 장만하여 읽을 수 있다 할 만합니다.

 

그런데 제값이 아닌 에누리한 값으로 책을 장만한다면, 이렇게 에누리하는 책값은 누구한테 도움이 될까 궁금합니다. 출판사에서 책 하나에 1만 원 값을 매겼으면 1만 원이라는 값이 되어야 비로소 출판사 살림을 꾸리는 한편, 책을 내놓은 이한테 보탬이 되고, 나중에 새로운 책을 일굴 밑돈을 마련한다는 소리입니다.

 

그런데 이와 같은 제값이 아니라 10퍼센트이든 20퍼센트이든, 때로는 30∼40퍼센트나 50퍼센트 넘게까지 눅은 값으로 책을 다룬다면 어찌 되지요. 텔레비전 홈쇼핑에 나오는 책을 보면 어마어마하게 에누리한 값으로 파는데, 출판사는 어떻게 이처럼 싸디싼 값으로 책을 팔 수 있는지 궁금하고, 이렇게 싸게 책을 팔아도 돈이 남으니까 홈쇼핑에 책을 내놓는지 궁금하기까지 합니다.

 

 

생각해 보면, 이렇게까지 에누리해서 책을 판다 할 때에는 처음부터 제값(정가)을 낮게 매겨야 합니다. 사람들이 사 가야 할 알맞은 값을 붙여야 옳습니다. 책에는 1만 원이라 붙이지만 새책을 정작 4000원에 팔고 있다면, 이 책은 값을 처음부터 4000원이라 붙여야 마땅합니다. 4000원이라 붙인 책은 어디에서든지 4000원에 팔아야 합니다. 1만 원이라 붙인 책이라면 1만 원에 팔아야 하고요.

 

이렇게 해야 헌책방에서는 4000원짜리 책을 500원이나 1000원에 사들여 2000원이나 2500원에 팔 수 있습니다. 1만 원짜리로 값을 매겼으면서 4000원에 판다면, 헌책방 일꾼은 1만 원 값으로 헌책 값을 헤아리기 마련입니다. 더군다나, 홈쇼핑에 아주 눅은 값에 내놓아 4000원에 파는 책일 때에는 도서관 사람들은 이 책을 얼마에 사들여야 할는지요?

 

책은 책다와야 하고, 출판사는 출판사다와야 합니다. 출판사 스스로 출판사다움을 내버리면서 책이 책다울 수 없도록 한다면, 이 나라 책삶은 엉망진창이 되고 맙니다.

 

 

 (2) 헌책방에서 마주하는 사진책

 

헌책방 <뿌리서점>을 찾아갑니다. <뿌리서점>을 찾아가는 날은 늘 즐겁습니다. 오늘은 또 어떤 새로운 헌책으로 내 마음을 살찌울 수 있을까 두근거리거든요. 설레는 마음으로 어깨에는 사진기를 걸치고 책방 아저씨한테 꾸벅 인사를 한 다음 아래층으로 내려갑니다. 가방은 한켠에 잘 내려놓습니다. 다시 섬돌을 밟고 위로 나옵니다. 책방 아저씨가 새로 들어오는 헌책을 다루는 모습을 물끄러미 지켜봅니다. 아저씨가 사들이기로 하면서 한쪽에 쌓아 둔 책을 가만히 바라봅니다. <뿌리> 아저씨가 하나하나 다 살펴볼 때까지 누구도 아저씨한테 말을 걸어서는 안 됩니다. 아저씨가 다 살핀 책에 책값을 매기기까지는 함부로 건드려도 안 됩니다. 아저씨가 새 헌책을 고르는 동안에는 '책을 다 골라서 값을 셈해야 한다' 할지라도 기다려야 합니다. 아저씨로서는 책을 파는 일도 큰 일이라 하지만, 책을 사는 일만큼 큰 일이 없습니다.

 

아래층으로 내려갑니다. 두리번두리번 가만가만 차근차근 책을 살핍니다. 사진책 <강진화(사진),강진화·양인순(글)-어머니>(ESSAY,2010)는 여섯 아들과 네 딸을 둔 어머니 '오영효'라는 분이 몸이 무너져 내려 병원에 드러누운 뒤 백쉰 나날을 사진과 글로 돌아보고 나서, 마지막 숨을 거두고 흙으로 돌아가기까지 자취를 담습니다. 책을 엮은 마음이 좋구나 하고 느끼지만, 사진은 그닥 대단하지 않습니다. 이렇게 오래도록 가까이에서 지켜보며 담은 사진인데 '너무 뻔한' 틀에 갇힙니다. 한결 홀가분하게 사귀면서 더욱 즐겁게 사진을 찍을 수 있을 텐데요. 사진을 찍든 그림을 그리든 글을 쓰든, 내 삶은 내 삶대로 더 깊이 돌아보는 가운데 내 이웃 삶은 이웃 삶대로 넓고 알뜰히 껴안을 수 있어야 한다고 느낍니다. 많이 배우고 오래 배우며 두루 배우지 않고서는 아무런 창작을 하지 못합니다.

 

화보책 <관광경기>는 염보현이라는 분이 경기도 지사로 있던 무렵 나옵니다. 인천이 직할시로 나누어진 뒤 나온 화보책이 아닌가 싶습니다. 그래도 '을왕리 해수욕장' 사진까지 한 장 나옵니다. 관청에서 만드는 화보책은 '갓 나올 때'에는 참 재미없습니다만, 적어도 스무 해쯤 지나고 보면 '꽤 재미있다' 싶을 모습이 군데군데 섞입니다.

 

<사진 영화 사람>이라는 책은 잡지 <스크린>·<로드쇼>·<키노>·<씨네21>·<프리미어>에서 사진기자로 일하는 이들이 연예인이나 영화감독 사진을 담아서 엮은 도록입니다. '영화판' 사진기자들이 모여 사진잔치를 벌였다고 하는데, 아마 사진잔치 때에 쓴 도록이지 싶은데, 언제 어디에서 했는지를 이 도록에 담지 않습니다. 첫머리에 실린 최진실 님 사진부터 주욱 넘기노라면, '찍은 사람' 이름만 사진 밑에 알파벳으로 적어 놓고, '찍힌 사람' 이름은 따로 밝히지 않습니다. 아마 사진만 보면 척 하고 누군가를 알아볼 수 있으리라 여겼을 테지요. 그러나 마땅히 '모델은 누구인가'를 밝혀야 합니다. 초상권, 곧 얼굴 권리이니까요. 그나저나 영화판 사진기자라는 분들이 일군 사진이 그리 와닿지 않습니다. 이름나거나 알 만한 배우를 사진으로 담았다뿐, 무언가 남다르거나 새롭게 나눌 만한 이야기를 사진 한 장에 담지 못합니다. 거들먹거린다고 해야 할는지, 우쭐거린다고 해야 할는지, 영화배우나 연예인을 사진으로 담는다고 뭔가 그럴싸한 작품이 된다고 잘못 아는구나 싶습니다.

 

<AURA>(한국사진학회) 1997년 4호를 봅니다. '한국사진학회지'라고 하는데, 윤건혁·이주용·김흥수·김기주·이용환·정주하·임영환·금동호·이영기·강용석·오승환·황철환·최병관·심재근, 이렇게 열네 사람이 쓴 글과 찍은 사진으로 엮습니다. 2010년이라는 눈높이에서 1997년에 나온 사진학회 잡지를 들여다보자니 아무래도 아쉽거나 모자라 보이는 대목이 많구나 싶습니다만, 1997년에 이 사진학회 잡지를 내놓은 분들로서는 새내기나 풋내기가 아니었습니다. 모두들 사진밭에서 어느 모로 목소리를 낼 뿐 아니라 이름이나 힘이 있던 분이요, 당신들 사진밭을 꽤 오래 깊이 일구던 분입니다. 그렇지만 1997년부터 열세 해가 지난 2010년에 이 사진학회 잡지를 들여다보면서 '이 사진학회 잡지가 우리 사진밭을 어느 만큼 북돋우'는가 하는 대목과 '이 사진책 하나가 우리 사진넋을 얼마나 어루만지'는가 하는 대목에서는 아리송합니다. 학회 잡지 이름을 영어로 붙이는 대목부터 안쓰럽지만, 이런 이름이야 다들 겉멋을 부리면서 쓰니까 어쩌는 수 없습니다. 곰곰이 들여다볼 대목이란 바로 사진이요 사진 이야기입니다. 사진을 다루는 글을 쓴 분은 사진에 당신 삶을 얼마나 깊이 담아서 글을 썼는가 궁금합니다. 사진을 찍어 보여주는 분은 사진마다 당신 삶을 어느 만큼 알뜰히 실어서 내보이는가 궁금합니다.

 

 

주제와 목표만 너무 대단한 나머지, 정작 사진이라고 하는 빛깔과 글이라고 하는 손길을 놓치지 않느냐 싶습니다. 꼭 무엇을 하려고 쓰는 글이 아니며, 반드시 무엇을 이루어야 하기에 찍는 사진이 아닙니다.

 

이런저런 아쉬움은 나라밖 사진책 <Thierry Mauger-Undiscovered Asir>(Stacey International,1993)를 들추면서 살짝이나마 풀어냅니다. 글까지 읽어야 이 사진책이 얼마나 잘 엮었는가를 헤아릴 텐데, 사진만을 돌아보면서도 여러모로 알뜰히 담았다고 느낍니다.

 

중동 한자락에서 조그맣게 어우러져 살아가는 'Asir' 겨레는 남자이든 여자이든 치마처럼 보이는 천을 아랫도리에 두릅니다. 무척 더운 나라이기에 치마 같은 천만 둘러야 하는지 모르는데, 사진을 하나하나 들여다보면 볼수록 사진으로 찍힌 사람들 매무새가 부드럽습니다. '기록'이라든지 '다큐'라든지 '문화'라든지 '역사'라든지 하는 이야기를 끄집어 내려고 찍은 사진이 아니라고 느낍니다. 그저 이들 겨레하고 동무로 지내면서 '사진 한 장 함께 찍자'고 하면서, 또는 이런 말 따로 없이 가만히 담은 사진이라고 느낍니다. 사람들을 억지로 웃음짓게 해야 할 까닭이 없고, 사람들이 딱딱하게 굳은 얼굴일 때에 굳이 찍을 까닭이 없습니다. 스스럼없이 어울리거나 사귀는 가운데 담는 사진이면 넉넉합니다.

 

일본사람이 일군 사진책 <田沼武能(타네마 타케요시)-地球星の子どもたち>(朝日新聞社,1994)를 보면서 우리네 사진밭이 더없이 메말라 있다고 새삼 느낍니다. <지구별 어린 벗들>이라는 사진책을 내놓은 일본 사진쟁이 타메나 타케요시 님은 일본을 비롯한 온누리 숱한 나라를 찾아다니며 사진 한두 장으로 '그 나라 그 겨레 어린이' 삶을 알뜰히 잡아채어 그러모읍니다. 많이도 적게도 아닌 사진 몇 장으로 한 나라 한 겨레 어린이 삶을 고이 골고루 보여줍니다.

 

좋군요. 아주 좋습니다. 땀은 옴팡지게 흘리면서 열매는 기꺼이 나누는 사진이 참으로 좋아요.

 

비매품으로 나왔던 <대한민국 훈장>(총무처,1974)이라는 자료책을 봅니다. 이런 자료책은 누가 갖고 있다가 헌책방까지 스며들었을까요. 이와 같은 자료책은 정부에서 어떠한 곳에 갖추어 놓고 사람들이 자료로 쓰도록 했을까요. 비매품으로 엮은 <대한민국 훈장>은 새로운 판을 거듭 내놓아 국립중앙도서관이든 우리 나라 곳곳 도서관이든 보내주어 사람들이 '우리 나라 훈장으로 무엇이 있는가'를 알아보도록 도와주고 있는지 궁금합니다.

 

 

 (3) 책을 왜 사는가

 

산문책 <김수미-미안하다, 사랑해서>(샘터,1997)를 봅니다. 김수미 님 수필책을 또 하나 만났습니다. 이 책은 뒤쪽으로 갈수록 이야기가 살짝 곁길로 새는데, 그래도 수수하며 털털한 삶을 거리끼지 않고 보여주는 김수미 님 목소리가 반갑습니다. '휘문출판사'에서 일한 적 있다는 대목은 무척 남다릅니다.

 

.. 군산에 내려가 봐도 바로 위 언니는 시계방 수리공이 아닌 다른 사람한테 시집가고 아무도 없었습니다. 큰오빠는 군대 가서 중령인데 농사를 못 짓겠다 했고, 작은오빠도 결혼해서 서울 변두리 방 한 칸에 살고 있었는데 갈 곳이 없었습니다. 휘문출판사에 나가면서 급사 겸 일을 했지만 한 달 월급이 그때 돈 3천 우너도 채 안 됐습니다(1969∼70년 일) ..  (44쪽)

 

<Bernd Growe 엮음-Edgar Degas 1834-1917>(Bebedikt Taschen,1992)이라는 책 하나 집습니다. 에드가 드가라는 그림쟁이 삶과 이야기를 다룬 책입니다. 반양장으로 된 <Edgar Degas 1834-1917>는 에드가 드가라고 하는 그림쟁이 작품을 차분하게 보여주면서 이야기를 알맞게 담습니다. 제가 읽을 수 없는 말로 엮은 책이지만, 짜임새와 그림을 보면서 즐겁습니다. 누군가는 책내음을 맡기만 하여도 즐겁다고 하는데, 저로서는 제가 모르는 바깥말로 된 책을 사들여 넘길 때에, 책 짜임새와 엮음새와 그림과 사진을 보기만 하여도 즐겁습니다. 잘 빚은 책은 책 그대로 내 가슴으로 스며듭니다.

 

그러니까, 책은 읽으려고 삽니다. 책을 사려고 읽지 않습니다. 책은 나 스스로 새롭게 다시 태어나고자 읽습니다. 책은 머리속에 지식을 좀더 채워 넣으려고 읽지 않습니다. 책은 내가 이제까지 아직 깨닫거나 보거나 느끼지 못한 이야기를 나누어 주면서 나 스스로 내 삶을 거듭나게 일구는 힘을 거듭니다. 책은 내 스승이 될 수 없고, 책은 내가 할 일을 따로 맡아 주지 않습니다.

 

일본에서 나온 만화책 <鈴木由美子(스즈키 유미코)-カンナさん大成功です! (1)∼(5)>(講談社,1997∼1999)를 봅니다. 어, 낯익은 그림인데 뭔가 뭔가 하고 곰곰이 떠올리니, 아하, 우리 나라에는 <미녀는 괴로워!>로 나온 만화이군요. 그런데, 일본책 이름은 "미녀는 괴로워!"가 아니라 "칸나는 대성공!"이라니. 그러니까 성형수술이 "크게 잘 되었다"는 소리이거나 "새로운 삶으로 멋지게 바뀌었다"는 소리가 될 테지요. 어쩌면 "미녀는 괴로워"라 붙인 이름이 제법 어울린다 할 수 있습니다만, 아무래도 "칸나는 대성공"이라 이름을 붙일 때에 '대성공'이라는 낱말이 풍기는 느낌을 옳게 보여주지는 못하는 셈 아닌가 싶습니다.

 

<신형건-동화책을 먹는 치과의사>(푸른책들,2004)라는 책을 봅니다. 치과의사이면서 <동화읽는가족>이라는 잡지를 내는 분이 쓴 어린이문학 비평입니다. 지난 스무 해에 걸쳐 수많은 어린이책을 읽은 삶을 바탕으로 쓴 책이라 하는데, 글쓴이 스스로 털어내지 못하는 굴레가 곳곳에 보입니다. 이를테면, 동시책 하나 소개하는 글을 쓰며 "누군가 적극적으로 권하지 않는다면 아이들이 스스로 알아서 동시를 가까이하기는 쉽지 않다. 아이들이 기대하는 흥미로운 이야기와 부모들이 흔히 원하는 학습적인 효과를 과연 동시에서 찾을 수 있을까(138쪽)"와 같은 이야기를 붙이는데, '재미'하고 '학습 효과(배움)'가 어린이책을 이루는 바탕이 될 수 없습니다. 재미와 배움이란 모든 문학에서 밑바탕입니다. 따로 다룰 까닭조차 없는 바탕이에요. 어떤 작품이든 재미가 있으며 배울 만해야 합니다. 이를 밑바탕으로 '가슴을 적시는가'와 '얼마나 웃음꽃이 피도록 하는가'와 '얼마나 눈물짓게 하는가'를 살피는가를 따져야지요. 그런 다음 '읽는이 삶을 얼마나 움직이는가'라든지 '읽는이 스스로 내 삶을 어느 만큼 거듭나게 하도록 이끄는가' 같은 대목을 돌아보아야 합니다. 어린이문학이든 어른문학이든 줄거리나 글감을 따지는 일은 아주 부질없습니다.

 

그럭저럭 책 구경을 마치고 책값을 셈합니다. 책값을 셈하는 자리에서 <뿌리서점> 사장님이 책 문화를 걱정하는 한 말씀을 들려줍니다. "앞으로 전자책이 나오면 종이책이 다 사라진다는데, 여기(건물 임자인 시민단체 ) 새로 온 사무총장이 와서 '아니요. 괜찮습니다. 자료를 보관해도 시디와 종이책을 같이 두지 종이책을 없애지 않아요.' 해. 그런데 앞으로 종이책이 괜찮을까." "종이책이 다 사라진다면 헌책방은 더 잘 될 텐데요. 이제 종이로 책을 만들지 않으니 종이로 된 책이 있는 헌책방에 깃든 책은 더 값어치가 있을밖에 없잖아요. 그러나 종이책이 없어지든 전자책만 나오든 크게 살필 일은 아니라고 생각해요. 종이책이든 전자책이든 책이라는 자리에 담는 이야기가 크니까요. 글을 쓰는 사람이 글을 책으로 담을 때에 얼마나 알차고 알뜰히 일구어 글쓴이 삶이 오롯이 드러나면서 사람들한테 즐거움과 사랑을 나누어 주느냐에 따라 책 값어치가 달라지잖아요. 어쩌면, 종이책으로 베스트셀러를 만들려고 하는 사람은 손해를 볼는지 몰라요. 그러나 다문 삼천 사람이 사 읽든 오천 사람이 사 읽든 삼백 사람이 사 읽든, 돈에 얽매이지 않으며 올바르게 살아내며 올바른 이야기를 알뜰히 엮으려는 사람들은 앞으로 책마을이 어떻게 달라지든 흔들리지 않아요." "허허, 그럴까? 그래, 그렇겠지? 앞으로 종이책도 괜찮겠지?"

 

 

<뿌리서점> 사장님은 또다른 걱정을 풀어놓습니다. "이전하는 문제도 걱정이고, 원효로도 알아보는데, 거기도 곧 개발하는 데야. 이 (책방에 가득한) 책을 다 싸들고 가야 할지, 여기에서 살아남아야 할지, 앗싸리 변두리로 나가야 할지 ……. 10년은 (개발바람만 있고 개발은 안 된 채) 간다는 사람이 있고, 5년은 간다는 사람이 있고, 나도 몰라. 불안하고 ……. 한 번 가면 자리를 오랫동안 잡고 하는 장소로 가야 하는데, 변두리로 가는 것도 그렇고, 중심에 있자니 장소가 그렇고 ……."

 

헌책방도 작은 새책방도 걱정입니다. 책방뿐 아니라 작은 가게 어디나 근심입니다. 큰돈을 굴리며 큰돈을 버는 가게는 굳이 끌탕할 일이 없을는지 모릅니다. 삶은 돈이 아니고 책은 돈이 아닌데, 자꾸자꾸 이 나라 삶과 사람은 돈한테 사로잡히거나 돈에 얽매인 채 데굴데굴 구릅니다. 아마, 전자책이 나와 종이책이 사라진다기보다, 더 많거나 커다란 돈에 눈이 멀어 사람들 손길은 책하고 동떨어지지 않을까 싶습니다. 아니, 앞으로는 사람들 삶이 온통 돈에 쏠려 있으니 돈 이야기를 하는 책만 허벌나게 나올밖에 없지 않겠느냐 싶습니다. 어쩌면, 삶 이야기를 다루는 책은 조용히 작게 뜻있는 사람들하고 오순도순 나누는 길로 접어들고, 돈 이야기를 다루는 책은 시끄럽게 갖은 신문과 방송과 인터넷을 누비면서 사람들 눈을 더 홀릴는지 모르지요.

 

덧붙이는 글 | ― 서울 용산 <뿌리서점> / 020 797-4456

- 글쓴이 누리집이 있습니다.
[우리 말과 헌책방 이야기] http://cafe.naver.com/hbooks
[인천 골목길 사진 찍기] http://cafe.naver.com/ingol

- 글쓴이는 다음과 같은 책을 써냈습니다.
<어른이 되고 싶습니다>(양철북,2010)
<골목빛, 골목동네에 피어난 꽃>(호미,2010)
<사진책과 함께 살기>(포토넷,2010)
<생각하는 글쓰기>(호미,2009)
<책 홀림길에서>(텍스트,2009)
<자전거와 함께 살기>(달팽이,2009)
<헌책방에서 보낸 1년>(그물코,2006)
<모든 책은 헌책이다>(그물코,2004)
<우리 말과 헌책방 (1)∼(9)>(그물코,2007∼2010)


태그:#헌책방, #뿌리서점, #책읽기, #삶읽기, #종이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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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꽃(국어사전)을 새로 쓴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를 꾸린다. 《쉬운 말이 평화》《책숲마실》《이오덕 마음 읽기》《우리말 동시 사전》《겹말 꾸러미 사전》《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비슷한말 꾸러미 사전》《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숲에서 살려낸 우리말》《읽는 우리말 사전 1, 2, 3》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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