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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른바 진보교육감의 대표격으로 불리는 서울교육청 곽노현 교육감이 얼마 전 서울 시내 초중고에서 체벌을 금지한다고 발표했다. 진보교육감의 원조격인 경기도 김상곤 교육감도 체벌 금지 내용을 담고 있는 경기도 학생인권조례가 의회에서 통과되는 대로 유예 기간을 두었다가 내년부터 전면 시행에 들어간다고 발표했다. 여기에 18일 교과부가 후원한 교육개발원의 토론회에서 아예 초중등교육법에 체벌금지를 명문화하는 방안을 검토하겠다고 밝혀 어떤 식으로든 조만간에 체벌 금지를 둘러싼 새로운 결론이 내려질 전망이다.

영화 <투사부일체>의 한 장면. 니코틴 측정기보다 체벌측정기를 먼저 도입하는 게 좋을 것 같다.
 영화 <투사부일체>의 한 장면. 니코틴 측정기보다 체벌측정기를 먼저 도입하는 게 좋을 것 같다.
ⓒ (주)시네마 제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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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체벌 금지의 문제는 좌파니 우파니 하는 이념을 따지는 것 자체가 우스꽝스럽다. 현재 체벌이 금지된 서구 사회에서도 진보좌파들이 앞장 서서 체벌 금지를 주장하고 이를 법제화하고 있으니, 우리나라에서 진보교육감들이 체벌 금지와 학생인권을 외치는 것이 이상한 게 아니다.

그런데 대한민국 최대 교원단체인 교총(회장 안양옥)은 교권과의 충돌 가능성과 학생 지도의 어려움 등을 이유로 들며 체벌 금지를 탁상공론이라고 비판하고 있다. 이에 반해 전교조와 개혁적 성향의 교육시민단체들은 교권과 학생인권은 충돌하는 것이 아니며 교권이 바로 서기 위해서라도 학생인권의 보호가 필요하다며 체벌 금지를 지지하고 있다.

사실 학교 현장에서도 체벌을 찬성하는 쪽과 반대하는 쪽이 공존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교사들이 일방적으로 체벌 금지를 반대하는 것처럼 언론이 보도하고 있지만 필자를 비롯하여 많은 교사들이 체벌을 반대하고 있는 것도 현실이다.

물론, 일부 학생들이 "몇 대 때리고 말지 왜 말로 사람을 귀찮게 하느냐?"면서 차라리 체벌해 달라고 요구하는 황당한 상황이 벌어지기도 하고, "저런 애는 말로 안 되니까 그냥 몇 대 때리고 마세요"라고 말하는 친구들도 있어 교사를 당황하게 만들기도 한다.

교도소, 군대, 학교의 공통점은?

특수한 목적을 위하여 개인의 신체적 자유의 일부를 제한하는 것을 법으로 합의한 대표적인 공간이 교도소와 군대이다. 그곳에서 신체적 자유를 제약당하는 사람들이 재소자와 군인들에게 일반인과 같은 신체적 자유를 허용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지만, 동시에 이들에게 일체의 신체적 자유를 박탈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 역시 없다.

어느 사회의 인권 상황을 파악하기 위해서는 그 사회에서 가장 인권 수준이 열악한 곳의 인권 상황을 보면 된다고 한다. '교도소(감옥) 재소자의 인권 상태는 그 나라 민주주의와 인권의 척도'라는 말이 있는 이유가 바로 이런 것이다. 그런데 우리 나라에서는 교도소 재소자들, 군대의 군인과 더불어 신체의 자유를 제약당하는 또 한 부류가 있으니 바로 학교의 학생들이다. '대한민국 인권은 교문에서 멈춘다'라는 말이 있고, 가끔은 농담반 진담반으로 학생들은 죄수(재소자), 교사들은 간수(교도관), 교복은 죄수복이라고 비유하기도 한다.

재소자와 군인 그리고 대한민국 학생들의 제약 정도를 비교해보면 누가 가장 심하게 신체의 자유를 제약받고 있을까?

태형(笞刑)이 남아있는 유일한 공간, 학교

등교를 서두르고 있는 고등학생들, 과도한 체벌과 강제교육으로 아이들의 인권이 멍들고 있다.
 등교를 서두르고 있는 고등학생들, 과도한 체벌과 강제교육으로 아이들의 인권이 멍들고 있다.
ⓒ 이주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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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에도 조선시대까지 태형이라는 벌이 있었다. 흔히 사극 장면에서 보는 "곤장을 내리쳐라"는 장면에서 보이는 바로 그 벌이다. 이 태형은 현대에 들어서면서 신체의 자유, 즉 인권을 침해하는 구시대적 유물이라는 인식이 확산되면서 싱가포르, 말레이시아, 그리고 이슬람의 전통이 강한 아랍권에만 일부 남아 전세계적으로 거의 없어졌거나 사라져가고 있는 징벌의 형태이다.

만약 우리 나라의 국회가 폐지된 이 태형을 '교통법규를 어긴 사람은 곤장 10대, 길에 침을 뱉은 사람은 곤장 5대' 등으로 부활시키는 법을 만든다면 사람들은 뭐라고 할까? 아마 '정신 나간 국회, 인권 무개념 국회의원'이라는 비난이 쏟아질 것이다.

그런데 100년 전에 없어진 이 태형이 아직도 남아있는 대한민국 유일의 공간이 있다. 바로 학교이다. 아직도 대한민국의 학교에서는 사랑의 매라는, 이름도 고상한(?) 태형이 교육적 체벌이라는 형식으로 남아있다.

이 구시대적 유물을 역사의 박물관으로 보내자는 "체벌 금지"는 시대적으로 늦어도 한참 늦은 조치인데도 아직도 이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만큼 우리 사회의 인권 지수가 낮다는 반증이 아닐까?

교도소에 교화의 매는 없지만, 학교에 교육의 매는 있다?

얼마 전 양천경찰서 경찰들이 재소자들에게 가혹행위를 하여 사회적으로 큰 물의를 일으킨 적이 있다. 지금 MBC에서 방송되고 있는 조선시대를 배경으로 하는 <동이>라는 사극에 죄인들을 형신이라는 이름으로 죄를 자백하라고 하면서 고문하는 장면이 나오고, KBS에서 방송되는 '전우'라는 드라마에서도 포로가 되었다가 살아 돌아온 국군을 특무대(빨갱이 때려잡는 부대로 나옴)에서 빨갱이임을 실토하라면서 구타하는 장면이 나온다. 이 장면에서 대부분의 시청자들은 눈살을 찌푸리며 저런 세상에 태어나지 않은 걸 다행으로 여겼을 것이다.

지금은 공식적으로 죄인에게도, 군인에게도 이런 고문과 구타가 허용되지 않는다. 즉, 교도소에서 '재소자 교화를 위한 매'는 인정되지 않으며, 군대에서 '군인 훈련을 위한 구타'도 허용되지 않는다. 그러나 학교에서 '학생 교육을 위한 매(체벌)'는 허용되고 있는 것이 우리 현실이고, 체벌 금지는 여전히 한국적 교육의 특수성으로 포장된 거창한 현실이라는 큰 장벽 앞에 놓여 있는 것이 우리 교육이다.

왜 죄를 지은 재소자들에게도, 왜 국가안보를 위해 신체의 자유를 위임한 군인에게도 허용되지 않는데, 아무런 죄도 없고, 신체의 자유를 위임한 적도 없는 학생들에게만 체벌이 허용되어야 하는지 이해할 수 없다.

'재소자 두발 전면자유화' 10년... 그러나 학교는 여전히 두발 규제 중

교도소에 수용되어 있는 재소자들이 머리를 기를 수 있도록 두발 전면자율화가 시행된 지 이미 10년이 넘었다. DJ 국민의 정부 시절인 2000년 6월 법무부는 수원교도소 등 4개 교도소에서 4개월간 시범 시행했던 재소자들의 두발자유화를 전국의 교도소, 구치소, 감호소로 확대 시행한다고 발표했다.

그래서 지금은 재소자들의 상징처럼 우리 머리에 각인된 삭발을 하지 않아도 된다. 그런데 재소자들의 머리가 길어져서 재소자 교화에 문제가 생겼다는 소식을 들은 적이 없다. 머리 긴 재소자들이 출소하여 재범 비율이 높아졌다는 통계도 본 적이 없다.

그런데, 여전히 우리 나라의 학교는 두발 길이와 모양을 제한하고, 머리카락의 자유를 학력 향상을 위한다는 명목으로 인정하지 않는다. 분명히 이전에 비하면 정도는 약해졌지만 여전히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학력 향상과 생활 지도라는 명목 하에 머리카락의 자유를 박탈당하고 있는 현실은 바뀌지 않았다.

군대도 '욕설과의 전쟁'을 선포하는데 학교는 여전히 반말 중

지난 5일 국방부는 "욕설과의 전쟁을 선포"하는 수준에서 군 당국이 직접 장병들의 언어순화교육에 나선다고 발표했다. 이는 국방부 김태영 국방부 장관이 국방전략회의에서 직접 참모들에게 지시하여 이루어진 것이라 한다.

그 어느 조직보다 위계가 강조되고, 국가안보라는 절대절명의 과제를 가진 군대에서도 욕설을 하지 못하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이는 육군 법무실의 '군 내 언어폭력, 이대로 좋은가'라는 인권가이드에 나온 최근 5년간 육군 자살 사건의 27%가 언어폭력에서 비롯되었다는 통계와 최근 5년간 장병들의 언어폭력으로 발생한 사건이 형사 처벌의 6%, 징계 사건의 18% 정도를 차지하고 있다는 자료가 크게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노무현 참여정부 시절인 2007년 7월 군대에서의 구타나 가혹행위 그리고 언어폭력 등을 금지하는 내용의 '군인복무 기본법안'이 통과되어 법으로 금지되었지만 여전히 근절되지 못한 군대에서의 언어 폭력을 이번에 더 확실하게 바로잡기 위한 조치일 것이다.

군대에서도 욕설과 언어 폭력이 장병의 자살과 불화의 원인이 되어 전투력을 약화시키는 요인이 된다고 보고 이를 근절시키려고 하는데 학교는 어떠한가? 지난 16일 국가인권위에 따르면 올해 4~6월 3개월간 학교를 피진정인으로 한 진정과 상담이 73건 접수되었는데 그 중 대부분이 학생에 대한 교사의 부적절한 언사라고 한다.

흡연 측정기에 걸린 고등학생이 "학비까지 지원받는 놈이 담배 살 돈은 있나 보지? 내 세금으로 학비와 급식비를 지원받는 주제에…"라고 면박받고, 또다른 고등학생은 입시원서를 쓰면서 상의하지 않았다며 "무릎 꿇고 사과해라, 얼굴 보기 싫으니 그냥 꺼지라"는 막말을 듣고, 초등학생은 알림장에 부모 도장을 받아오지 않았다고 "엄마 아빠가 모두 죽었느냐, 가정교육도 못 받은 것이 무식하다"는 폭언을 듣고, 중학생은 보충수업을 안 받는다는 이유로 "엄마는 술 먹고 바람 피우니, 네 아빠는 술 먹고 때리냐"는 비아냥을 들은 사례가 있었다.

최근 일명 '오장풍' 교사의 극단적인 신체적 체벌이 아니라도 언어 폭력이 학교에서 다반사로, 그것도 무의식 중에 일어나고 있다. 꼭 욕설과 비하 같은 언어폭력까지는 아니라도 교사가 학생에게 반말을 하는 것 역시 일반화되어 있다.

우리 학교의 미국 출신 원어민 교사는 학생들에게 'Guy'(우리 말로 하자면 '녀석' 정도 되겠다)라고도 부르지 않는다. 학생 1명과 이야기할 때는 이렇게 쓰기도 하지만 전체를 대상으로, 공식적인 자리에서는 절대로 쓰지 않는단다. 알려진 것처럼 프랑스에서는 교사가 학생에게 너(Te)라고 부르는 것도 금지되어 있고 반드시 당신(Vous)라고 존칭으로 불러야 한다.

재소자 기준에도 못 미치는 교실 면적, 우리 학생은 60년간 인권침해

지난 9일 국가인권위원회는 "교도소에서 3.3㎡(1평) 정도의 협소한 징벌방에 재소자를 2~3명씩 수용하는 것은 그 자체로 비인도적인 처우이며 「헌법」 제10조 및 제11조에서 보장하고 있는 인간의 존엄성과 행복추구권을 침해한 행위에 해당한다"는 결정과 함께 법무부에 개선 방안을 마련할 것을 권고했다고 밝혔다.

이 사건 진정에서 법무부장관과 교도소장은 "독거실은 1실당 1명, 혼거실은 2.58㎡당 1명을 수용하도록 관련 규정이 마련돼 있지만 정원이 초과돼 과밀 수용이 불가피한 측면이 있어 일시적으로 2~3명을 넣은 적이 있었다"고 해명했다. 이런 해명에도 국가인권위원회는 "법을 위반하여 죄 값을 치르고 있는 수형자라도 최소한 인간으로서의 존엄성이 보장되어야 한다는 것이 피구금자에 관한 인권 기준의 기본 전제"라며 이 같이 결정했다고 밝혔다.

대한민국 헌법에 기초한 너무나도 당연한 결정이다. 그런데 이 기준을 대한민국 학생들이 수업 받고 있는 교실로 들여 오면 어떻게 될까? 우리나라의 표준 설계도에 따른 일반교실의 크기는 9.0mX7.5m로 면적은 67.5㎡(약 20평) 정도라고 한다. 이를 이전의 한 교실 당 60명 기준으로 하면 1인당 1.12㎡ 정도 되고, 현재의 35명~45명 기준으로 하면 1인당 1.5~1.93㎡ 정도 된다. 재소자에 대한 교도소 기준 면적이 1인실은 1인당 3.3㎡, 2인실 이상에서는 1인당 2.58㎡이라는데 학생에 대한 교실 기준 면적이 여기에 훨씬 못 미치는 것이다.

즉, 대한민국 학생들은 교실에서 지난 60년 동안 교도소 기준에도 못 미치는 인권 침해를 당하고 있었다는 의미이다. 교도소의 재소자 기준에도 못 미치는 우리나라는 여전히 콩나물 교실이라 불려도 변명의 여지가 별로 없고, 교실에서 교육받는 것이 아니라 사육 당하고 있었다는 비판이 빈말로만 들리지 않는다.

UN 인권이사회 상임이사국 대한민국의 부끄러운 자화상

우리나라는 지난 2006년 유엔의 초대 인권이사회의 상임이사국으로 선출되었고, 2008년 다시 인권이사국으로 재선에 성공하여 현재까지 이사국으로 활동하고 있다. 출마 당시 공약으로 각종 인권 개선과 국제 인권 기준 이행을 내세웠음은 주지의 사실일 것이다.

모든 지위에는 거기에 맞는 역할이 부여되는 것이 당연하다. UN 인권이사회의 상임이사국이라면 적어도 보편적인 인권 기준에 미달하지는 말아야 한다는 것 또한 당연하다. UN의 사무총장을 배출한 나라, UN 인권위원회 상임이사국 재선국가 대한민국이 아직도 학생 체벌을 허용하고 있다고 하면 세계가 비웃을 일이다. 우리 나라의 인권 의식 수준을 보여주는, 우리가 자초한 부끄러운 인권 자화상이다.

전 세계 모든 나라에, 모든 사람들에게 보편적인 인권이 보장되는 사회를 만드는 것을 목표로 만들어진 인권이사회의 상임이사국으로서 아직도 어린 학생들에게 학교에서 체벌이 허용되고, 두발을 규제하고 있다는 것은 분명 이율배반이다. 이제 우리 교육계가 스스로 나서서 이 모순을 해결해야 한다. 그 실천이 서울의 곽노현 교육감, 경기의 김상곤 교육감 등이 추진하고 있는 학생인권조례의 시행이고, 그 상징적 조치가 체벌 금지가 될 것이다.


태그:#체벌, #곽노현, #김상곤, #유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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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교육에 관심이 많고 한국 사회와 민족 문제 등에 대해서도 함께 고민해 보고자 합니다. 글을 읽는 것도 좋아하지만 가끔씩은 세상 사는 이야기, 아이들 이야기를 세상과 나누고 싶어 글도 써 보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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