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2008년 7월 대한민국 국방부는 23종의 도서를 불온서적으로 선정한 바 있다. 북한찬양, 반정부, 반미, 반자본주의 등이 이유였다. 이에 국민들은 불온서적을 불티나게 사고 읽는 것으로 국방부를 조롱하였다. 대체 국방부는 왜 그런 시대착오적인 발상을 한 것일까? 세계적인 석학 노엄 촘스키 교수가 인터넷 카페 '불온도서를 읽는 사람들의 놀이터' 운영진에게 보낸 답변에는 그 답이 나와있다.

 

"독재자들을 몰아내고 민주주의를 세우기 위한 (한국인의) 투쟁은 세계에 영감을 주었으나, 항상 자유를 두려워하고 생각과 표현을 다시 통제하려는 사람들이 있다... 국방부가 그에 속한다는 것은 불행한 일... 국방부(Ministry of National Defense)라는 이름을, '자유·민주주의 방해부'(Ministry of Defense against Freedom and Democracy)로 바꿔야 할 것이다."

 

그의 말에서 우리는 금서가 가진 이데올로기를 본다. 그것은 생각과 표현을 통제하려는 것이고, 또 하나 그런 일은 언제든지 있어왔다는 것이다. 실제로 금서의 역사는 우리의 생각보다 오래되었다. 고대 중국에서는 진시황이 분서갱유(焚書坑儒)를 통하여 금서의 표본을 선보인 바 있으며 고대 이집트에서는 종종 종교적 이유로 도서관을 파괴하기도 하였다. 심지어 위대한 철학자 소크라테스마저 금서는 사람들로 하여금 스스로의 자리에서 소임을 다하도록 하는 가장 현명한 방법 중의 하나라 말한 바 있으니, 금서의 역사가 오래되었음은 짐작하고도 남음이다.

 

다양한 금서 방법... 가장 악독한 것은 태우는 일

 

금서의 방법은 다양하다. 단순히 국방부처럼 불온도서의 목록을 정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하여 이른바 금서들은 유폐시키는 방법 그리고 불태우거나 찢어서 종이로 만드는 학살 등이 있다. 물론 그 중에서 가장 돌이킬 수 없는 것은 바로 책을 태워버리는 것이다.

 

<20세기 이데올로기, 책을 학살하다>는 바로 이와 같은 책 학살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 이 책의 저자는 20세기가 이전의 어느 시기보다 다양하게 그리고 보다 광범위하고 빠른 시간 안에 '책의 학살(libricide)'이 이루어진 시기라고 말한다.

 

20세기 초부터 20세기 말까지 그리고 서유럽에서 중동, 아시아에 이르기까지 지속되어 온 '책 학살(libricide)'은 고대부터 전해오던 방식과 비슷하면서도 달랐다. 기존의 방식이 단순히 대중을 통제하기 위한 것이었다면 20세기의 책 학살(libricide)은 인종 학살과 교차하여 발생하였기 때문이다.

 

우선 공통점부터 살펴보면 고대의 금서가 그러하였듯 20세기의 책 학살 역시 생각의 통제를 위해 실시되었다. 책이나 도서관이라고 하는 것은 휴머니즘적이며 개인주의적이다. 책은 다양한 생각들을 담고 있고 이를 존중해야 한다는 암묵적 동의를 내포하고 있다. 바로 이점에서 민주주의적인 것이다. 그러니 이러한 책을 읽는다는 것은 전체주의국가나 공산주의 국가에서는 매우 위험한 일이다. 일정한 사상을 담고 있는 책만이 소멸되는 것이 아니라 책을 읽는 것 자체를 꺼리게 되는 것이 바로 이 때문이다.

 

물론 이는 읽는다는 행위에 들어가 있는 개인성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우리는 무언가를 읽을 때 철저히 혼자가 된다. 생각을 정리하고 스스로를 가다듬으며 공간 속에서 책과 홀로 있는 것이다. 이러한 개인성 역시 집단을 중시하는 국가체제에서는 위험한 것이다. 바로 이점에서 책은 공격의 대상이 되었다.

 

문화혁명 당시 중국이 모든 지식인들을 부르주아라 칭하고 학문을 연마하기보다는 노동을 강요하고 지식과 책 자체에 강한 거부감을 보인 것은 바로 이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즉, 근본적으로 책의 학살이나 금서는 권장하는 사상이나 이념을 통제하기 위해서이기도 하지만 생각하는 자유 자체를 통제하기 위함이기도 한 것이다.

 

적어도 20세기에는 그러하였다. 물론 우리가 익히 경험한 3S정책 같은 것 역시 생각의 자유 자체를 통제하기 위한 정책 중 하나였을 것이다. 또 다른 공통점은 책 학살이 적대국 사이의 전투에서 승리자의 만족감을 위해서 자행되기도 했다는 것이다. 이라크가 쿠웨이트의 문화유산이나 도서관을 파괴 시킨 것이 바로 이런 예에 속한다.

 

대한민국에도 고스란히 살아있는 20세기 책학살의 특징

 

반면 20세기의 책 학살이 고대나 중세의 학살과 다른 점은 인종 학살을 위한 문화학살의 측면에서 자행되었다는 것이다. 인종 학살은 두 가지의 측면으로 이루어진다. 하나는 나치처럼 인종자체를 말살해버리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중국이 티베트에게 하는 것처럼 동화시키는 것이다. 이 두 가지 방법에는 근본적으로 흔적지우기라는 공통점이 존재한다. A라는 인종이 살았던 흔적 자체를 아예 지워버리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그들의 역사나 문화, 관습을 지울 필요가 있다.

 

인종을 말살시키려면 이 역시 같이 소멸되어야 할 것이고 -인종이 사라지더라도 흔적은 남을 테니- 인종을 동화시키기 위해서도 이는 소멸되어야 한다. 실제로 나치와 중국은 유대인과 티베트를 상대로 이와 같은 일을 자행하였다. 종교적 경전은 물론이거니와 각 개인의 소소한 일상의 기록까지 모두 말살한 것이다.

 

20세기 책 학살의 특징은 대한민국에서도 고스란히 드러난다. 20세기 초 한국에서 자행되었던 일본의 책 검열이나 우리말 금지, 왜곡된 역사서의 발행 등은 인종 학살을 위한 도서정책이었고 60~80년대를 풍미했던 금서의 행렬은 생각의 통제를 위한 것들이었다. 문제는 대한민국의 경우 그것이 21세기에도 자행되었다는 것이지만 말이다.

 

이 책은 이처럼 책 학살이라는 주제를 가지고 굵직굵직한 사건들을 추적해나간다. 그리고 그 속에서 20세기를 읽는다. 근대를 지나 현대로 들어서면서 나타난 수많은 이데올로기와 우생학에 따른 인종주의, 20세기를 대표하는 아이콘들은 책 학살에도 고스란히 드러나고 있다. 저자는 이를 따라가면서 책 학살이 얼마나 정치와 결합되어 이루어지는가를 살펴 책과 정치의 미묘한 동거를 드러내고 있다. 이 책의 흥미로움은 바로 이것이다. 책과 정치의 미묘한 동거, 2008년 국방부표 불온도서가 탄생하게 된 배경도 바로 여기에서 찾을 수 있다.

 

그래서 우리는  왜 <삼성을 생각한다> 와 같은 책들은 언론에서 홍보되지 않았는지, 문화체육관광부가 추천한 교양도서는 어떤 것들이 있는지 등등 눈을 부릅뜨고 책을 지켜야 한다. 21세기에도 여전히 책과 정치의 미묘한 동거는 진행 중이므로.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네이버 블로그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20세기 이데올로기, 책을 학살하다 (반양장)

레베카 크누스 지음, 강창래 옮김, 알마(2012)


태그:#책을 학살하다, #책과 정치, #책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세상에 대한 소소한 이야기들을 담고 싶습니다.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