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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일이다. 난생 처음 '나홀로' 영화관 나들이를 했다. 나는 밥은 빼먹어도 좋은 영화 빼먹는 것은 용서 못한다는 영화광도 아니고, 1년에 영화를 한두 편 볼까 말까한 평범한 시골아줌마다. 그런 내가 나 홀로 영화관 나들이를 했다니 별일 중에 별일 아니겠는가.

시골 아줌마 혼자 극장에 나서다

사정은 이렇다. 나는 흥행이 별로인 영화 중에 작품성이 뛰어나다는 평이 많은 영화는 보고 싶어 하지만 타고난 게으름 때문에 반짝 상영인 영화를 번번이 놓치고 있다. 그래서 할 수 없이 독립영화를 주로 상영하는 영화관을 찾는데 문제는 이런 극장(말 그대로 70년대 극장 그대로다)은 시설이 형편무인지경이라는 것이다.

급기야 어제는 에어컨 없는 극장에서 땀 뻘뻘 흘려가며 무려 두 시간 동안 영화를 봤다. 에어컨 귀한 몇 십 년 전도 아니고 시골 우리 집 같은 곳에도 있을 만큼 보편화된 세상인데 에어컨 없는 극장이라니. 이 정도면 짜증은커녕 '세상에 이런 일이'에 소개될 일 아닌가.

우리 지역 독립영화관은 시내 중심가에 있는 '광주극장'이다. 땅값 비싼 광주 '본전통'에 그것도 3층 빌딩이었으니 그 옛날엔 얼마나 으리으리했을까. 아마 종로 단성사나 피카디리극장 찜 쪄 먹을 만큼 대단했으리라.

그런데 패스트푸드의 유행에 떠밀려 골목 백반 집 찌그러지듯 무슨 무슨 시네마란 상영관에 밀려 '광주극장'은 말 그대로 퇴기 신세가 됐다. 그 광주극장에서 <워낭소리> <시> 뭐 그런 영화들을 봤다. 그때는 더운 때가 아니었든지 에어컨 안 튼 것은 기억이 없고 다만 볼 때마다 관객이 너무 적어서 이래 가지고 얼마나 버틸라나 걱정이 앞선 기억만 있다.

어제 본 영화는 일본 영화 <우리 의사선생님>이다. 지난번에 모처럼 남편과 함께 <시>를 보러 갔는데 후속 편인 <우리 의사선생님>에 꽂혔다. 그래서 다음에 꼭 같이 보자고 약속을 했는데 남편이 번번이 영화 시간을 못 맞췄다.

매일 상영하는 것도 아니고, 상영시간 역시 들쭉날쭉이니 남편 탓할 일도 아니었다. 남편 시간 나기 기다리다간 '갓끈 매다가 장 파하게' 생겼다. 나중에 같이 가자고 사정하는 걸 못 들은 체 하고 나 홀로 영화관엘 갔다. 지인들과 약속을 잡아도 좋겠건만 날짜, 시간 따져가며 따따부따 하는 게 성가셔 그것도 생략했다.

'쿨'한 극장 기대했는데, 찜질방이 따로 없네

우리 의사 선생님
 우리 의사 선생님
ⓒ (주)영화사 진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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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분 일찍 도착해 극장 로비에 있는 동그란 나무의자에 앉았다. 마치 검표원처럼 매표소 앞에 앉아 들어오는 손님을 관찰하는데 심란하기 짝이 없었다.

나를 포함해 아줌마로 보이는 여성 넷, 아가씨로 보이는 여성 둘 그리고 생활한복을 입은 아저씨가 고등학교 학생쯤으로 보이는 남학생들을 다섯 명 데리고 입장했고 어떤 청년이 '여친'으로 보이는 여성과 함께 들어 온 것이 다였다.

지난번 <시>를 볼 때는 적어도 50여명은 됐었는데 이를 어쩌나. 이 정도 관객 가지고 인건비, 건물유지비, 기타 등등 문 닫을까 겁났다. 그런데 "오메니나~~ 뭔 일이다냐?" 상영 임박해서 들어 간 객석에서 기도 안 차는 상황에 직면했다. 밖의 날씨는 30도를 넘는 찜통더위인데 실내는 후끈, 찜질방 수준 아닌가.

로비에 있을 때는 구형 에어컨이라도 돌아가서 속사정을 짐작 못했는데 이 속에서 두 시간 가까이 버틸 생각을 하니 아찔했다. 검표원도 없는데 객석 안내인이 있을 리 만무하고. 일어서서 어두컴컴한 실내를 한번 휘둘러보았더니 아까 내가 셈한 관객에서 더 늘어난 것 같지도 않았다. 이러니 에어컨을 켤 수가 있나.

내 옆에 옆에 앉은 생활한복 아저씨. 이 극장 단골인지 준비를 단단히 해왔다. 부스럭부스럭 가방 뒤지는 소리가 나더니 짜잔~~하며 나오는 것이 조그만 휴대용 접이부채였다.

"자, 느그들 하나씩 부쳐라. 이게 하나에 천 원짜린데 우리나라에서 맹글었다면 못 나가도 4~5천 원은 나갈꺼다."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며 하나씩 나눠주는데 얼마나 부럽던지. 하나 더 챙겨 와 이웃 좀 보살피면 안 되나. 야속한(?) 생각이 절로 들 만큼 무더웠다. 그렇다고 내가 자원봉사를 하고 싶을 만큼 파리 날리는 극장 측에 항의를 할 수도 없고. 신기하게도 듬성듬성 앉은 다른 관객들 역시 불평을 이야기하는 사람이 하나도 없었다.

그래도 정말 혼자 오길 잘 했다. 모처럼 영화 삼매경에 빠지는 감동을 맛봤으니까. 미모의 여성 연출자 '니시카와 미와'가 극본과 감독을 맡았고 의사선생님 '이노' 역엔 일본 국민 엔터테이너라는 '쇼후쿠테이 쓰루베'인데 이 아저씨 정말로 순박한 웃음이 일품이어서 우리 동네 이웃 집 아저씨를 보는 것 같았다.

'고맙습니다. 우리를 지켜준 당신의 거짓말...'

엽서 크기의 팸플릿 안에 있는 문구처럼 2010년 일본아카데미 10개 부문 최다 석권, 권위 있는 무슨 무슨 상을 휩쓴 감동의 드라마라는 결과물이 결코 허명이 아니었다. 의술이 손에 미치지 않는 산간벽지 마을에 있음직한 이야기. 시놉시스를 옮겨보자면 다음과 같다.

"어느 시골 마을. 도쿄에서 발령받아 온 인턴의사 소마(에이타, 되게 잘 생겼다)는 동네 사람들의 건강을 세심하게 돌보는 이노와 함께 지내며 의사로서의 자부심을 느낀다. 그러던 어느 날, 이노가 갑자기 실종되고 경찰까지 출동하여 사라진 그의 행방을 찾아 수사를 펼친다. 주변 사람들을 상대로 그의 신상을 조사하던 중 이노의 비밀스런 과거가 밝혀지게 되고 절대적인 믿음으로 이노를 의지했던 마을 사람들은 그에 대한 기억을 하나씩 되살리며 서로 엇갈리기 시작하는데..."

의사가 아니라 형님 같고, 동생 같고 자식 같은 사람. 언제나 푸근한 웃음으로 마을 주민들 하나하나 정성껏 돌보던 마을의 주치의. 마을 사람들이 하느님처럼 의지했던 의사선생님 이노는 가짜 의사였다.

가짜 의사 이야기긴데, 그들이 부러워지는 까닭

전직이 의료기 영업사원이었던 이노. 비록 의사면허 없는 가짜였지만 현장에서 어깨 너머로 익혔던 의료상식과 환자들을 돌보는 과정에서 독학으로 갈고 닦은 의학공부 때문에 진짜 못지않은 실력을 갖추게 된다. 게다가 종합병원 응급실 출신의 노련한 간호사는 이노가 미처 습득하지 못한 응급처치까지 지도해 줘 죽어가는 응급환자를 소생시키는 명의가 되게 한다.

임종을 앞둔 할아버지 가족들에게 SOS 요청을 받은 이노. 급히 달려가 심폐소생술을 시도하지만 정작 가족들은 할아버지의 소생을 눈짓으로 만류한다. 환자 가족을 바라보며 흔들리던 이노의 눈빛. 이노는 모든 행위를 중단하고 숨이 멎어가는 할아버지를 품에 안고 고생 많으셨다고 작별인사를 한다.

그런데 이게 웬일? 이노가 토닥토닥 등을 두드리자 할아버지 기도에 걸려있던 피조개가 튀어 나오고. 할아버지는 저승 문턱에서 극적으로 소생한다. 할아버지의 소생을 보고 환호하는 마을 노인들. 이노의 가운을 붙잡으며 당신들이 위급한 상황에 처할 때도 그렇게 구해달라고 아우성을 친다.

위암으로 시한부 삶을 살고 있는 초로의 할머니. 의사 딸을 둔 할머니지만 의술로 연명하고 싶지 않다고 자식들에게 함구할 것을 부탁한다. 명색이 의사인 이노는 번민하지만 품위 있는 죽음을 선택하는 환자를 존중해 부탁을 들어준다.

마치 호스피스 병동의 호스피스처럼 홀로 고통에 시달리는 환자의 통증을 완화시키고 때로는 말동무도 되어 주며 환자가 외롭지 않게 온 정성을 쏟는 시골 의사선생님. 결국 종합병원 의사인 그 환자의 딸로 인해 가짜 의사라는 게 들통 나게 된 이노가 갑자기 자취를 감추고, 실종사건 수사를 하는 도중에 이노의 모든 것이 밝혀지게 된다.

인간이 실종된 의료행위. 히포크라테스의 선서가 "구신 씨나락 까먹는 소리"로 전락한 우리 시대의 비정함을 다시 한 번 생각하게 하는 영화. 한 사람의 능력을 자격증 만으로 판단할 수 있을까? 여기 해답이 들어있다.


태그:#옛날식 극장, #독립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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