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강이 아프다. MB(이명박) 삽날에 찍힌 강이 지금 누런 황톳물을 토해내며 소리 없이 눈물을 흘리고 있다. 아무 소리도 없어서, 아픔도 눈물도 없는 줄 알았다. 예전처럼 높은 산 밑을 흘러서, 푸른 들판을 적신 뒤 그냥 조용히 바다로 흘러드는 줄만 알았다. 4대강 사업이 본격화되었다는 소식을 접하고도 설마 했다. 그처럼 거대한 강이 인간의 손에 그렇게까지 맥없이 무너질 줄은 몰랐다. 상상하기 힘들었다.

 

MB 삽질에 여기저기 상처를 입은 강이 지금 몹시 심하게 앓고 있다. 상처가 생각했던 이상으로 깊다. 더 이상 큰 상처를 입기 전에 치유에 나서야 하는데, 과연 그럴 수 있을까? 이왕 시작한 공사, 끝을 보자는 사람들이 있다. 하지만 4대강은 그런 식으로 우리가 끝장을 봐야 할 대상이 아니다. 강에 상처를 입히는 공사는 하루라도 빨리 그만두어야 한다. 그것이 더 큰 상처를 막는 길이다. 강이 아프면, 그 아픔이 언젠가는 반드시 인간에게로 되돌아오게 되어 있다.

 

'4대강 사업'이란 게 이런 것인 줄은 미처 몰랐다

 

지난 7일 자전거를 타고 떠난, 4대강 공사 현장 답사 여행 길에서였다. 여주 이포대교 근처 4대강 공사 현장에 들어서면서 충격에 빠졌다. 이포보 공사 현장, 검게 파헤쳐진 강바닥에 굴삭기와 덤프트럭 같은 갖가지 건설 장비들이 우글거리는 장면이 눈에 들어왔다. 내 평생 이렇게 거대한 공사 현장은 처음이다. 굴삭기들이 강가에 걸터앉아 쉼 없이 강바닥을 긁어내고 있었고, 그 앞에 덤프트럭들이 줄지어 서서 강바닥에서 퍼낸 흙을 어디론가 끊임없이 실어 나르고 있었다. 일자리 창출 현장에 사람은 잘 보이지 않고, 굴삭기와 덤프트럭만이 분주히 오가고 있었다.

 

강바닥을 준설한다기에, 단지 한강에 한가롭게 떠 있던 준설선을 떠올렸던 내가 한심했다. 4대강에서 벌어지고 있는 준설은 단순히 강바닥을 깊게 하는데 그치지 않았다. 굴삭기가 강을 저 깊은 밑바닥부터 완전히 파괴하고 있었다. 아이들이 한때 맨발로 뛰어놀았을 강변의 금빛 모래사장이 사라지고, 정겨웠던 여울물 아래 반짝이던 조약돌들마저 깨끗이 사라졌다. 갖가지 동식물들의 보금자리였던 강가의 습지도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더불어 추억도 사라지고, 낭만도 사라졌다.

 

어떻게 이런 일이 벌어질 수가 있을까, 기가 막혔다. 그곳의 공사 현장을 처음 목격했을 때 내 몸 어딘가에서 '으악' 하는 비명소리가 터져 나왔지만, 나 역시 그 순간 시름시름 앓고 있는 강처럼 입 밖으로는 아무 소리도 내지를 수가 없었다. 인간이 있기 전부터 존재해온 강이, 인간의 손에 의해 이렇게까지 처참하게 망가질 줄은 몰랐다. 그것도 한순간에 이렇게 풀썩 무너져 내릴 줄이야. 그 현장이 언론을 통해 보던 것과도 또 다르다.

 

4대강 '살리기'는 완전히 허구다. 진실을 호도하기 위해 만들어낸 하나의 구호에 불과할 뿐이다. 지금 4대강에서 어떤 일들이 벌어지고 있는지 직접 가서 두 눈으로 확인하고 나면 그 사실을 확연히 깨달을 수 있다. '강'이 사라지고 있다. 그리고 그 자리에 대신 인간이 다스리기 편리한 '수로'가 들어서고 있다. 그런데도 돈이 되는 일에 눈이 먼 탐욕스런 인간들은 자신들이 저지르고 있는 파괴 행위를 강을 살리기 위한 것이라고 둘러대기 바쁘다.

 

지금 강을 파괴하는 행위가 4대강 전 구간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진행되고 있었다. 여주에서 받은 충격은 그 후 11일 구미에서 여행을 마칠 때까지 계속됐다.

 

공사는 이제 그만, 앞으로 투입될 비용이 더 아깝다

 

지금도 늦지 않았다. 더 큰 희생, 더 큰 비용을 치르기 전에 지금이라도 당장 개발을 멈추게 해야 한다. 하루라도 빨리 공사를 중단하면 중단할수록 강이 본래의 모습을 되찾아가는 기간 또한 더욱 짧아질 수 있다. 자연이 가지고 있는 생명력은 지금까지 강이 입은 상처를 충분히 회복시키고도 남는다. 거기에 다시 4대강을 지켜내려는 국민의 힘이 더해지면, 회복세는 더 빠를 수도 있다.

 

이제는 돌이킬 수 없는 일이 돼 버렸다고 해서 쉽게 포기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지금까지 대규모의 준설이 이뤄졌다고 하지만, 앞으로 계속될 준설에 비하면 아직 1/4 수준에 불과하다. 거기에 준설이 끝난 다음에 이어질 엄청난 규모의 갖가지 공사를 감안하면 4대강 사업은 여전히 미미한 진척도를 보이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동안에 투입된 비용이나 공사 진척도 때문에 공사를 계속 해야 한다는 논리라면, 지금 당장 그만두는 게 더 좋다. 그렇지 않아도 국민 전체의 이익을 도모할 목적으로 쓰여야 할 혈세가 소수 개발주의자들의 이익을 위해 쓰이고 있다. 공사가 끝나고 난 뒤에는 또다시 매년 엄청난 규모의 혈세가 수로가 된 강을 유지하고 보수하는 비용으로 쏟아져 들어갈 게 분명하다. 그러니 이쯤에서 그만두도록 하는 게 가장 현명하다.

 

4대강 사업으로 '지역 경제가 살아난다'는 주장 또한 허무맹랑하다. 설사 수로가 된 강으로부터 어떤 이익을 얻게 된다 한들, 그 이익이 이전에 강에 의지해 생계를 꾸려가던 사람들의 손에 들어갈 리 없다. 돈이 될 만한 곳에 자본이 앞서 움직일 터, 지역 경제가 넘보기 전에 중앙 경제가 먼저 그 이익을 탐할 게 분명하다. 지금 4대강에서 공사를 벌이고 있는 사업 주체들은 대부분 중앙에 기반을 둔 대형 건설사들이다.

 

애당초 4대강 사업이 끝나고 난 후의 경제 효과를 따지는 것 자체가 무리다. 아무것도 입증된 것이 없다. 그러니 역시 4대강에서 이익을 얻고 돌아가는 건 4대강을 열심히 파헤친 다음 그 강을 온통 시멘트 범벅으로 만들어 놓고 떠난 소수의 개발주의자들뿐이다. 현재와 같은 조건에서는 지역민들에게 아무것도 보장해 줄 수 없다. 그런데도 개발주의자들은 줄곧 4대강 사업으로 지역 경제가 살아난다고 떠들고 있다. 속셈이 너무 뻔하다.

 

우리의 강이 처한 현실, 꼭 한 번 찾아가 보시라

 

비록 깊은 상처를 입기는 했지만 강은 여전히 살아 있다. 낙동강에서는 여전히 여러 곳에서 건강한 모습의 모래밭과 습지가 남아 있는 걸 찾아볼 수 있다. 물론, 앞으로 개발을 기다리고 있는 곳들이다. 이들 모래밭과 습지를 바라보고 있으면, 우리가 왜 4대강을 지켜내야 하는지 더욱더 절실해진다. 이 모래밭과 습지들마저 사라지는 걸 눈뜨고 지켜볼 수 없다. 아직 개발에 들어가지 않은 모래밭과 습지를 지켜내는 일부터 4대강의 원래 모습을 되찾아갈 방법을 찾아야 한다.

 

개발주의자들은 강이 죽어서 강을 살려야 한다는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내뱉고 다니는 사람들이다. 문제는 강이 아니다. 강에 온갖 오염 물질을 흘려 보내고, 강을 여러 돈벌이 수단 중에 하나로 여기면서, 죽지도 않은 강을 죽었다고 설레발을 치고 돌아다니는 사람들이 진짜 문제다.

 

그런 사람들이 제정신인지 의심스러운 상태에서 마구 휘두르는 삽질을 중단시키는 일이 쉽지가 않다. 지금은 인간의 갑작스런 침탈에 강이 그 모든 걸 순순히 받아들이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결국에는 인간으로 하여금 감당하기 힘든 대가를 치르게 할 게 분명하다. 할 수만 있다면 지금 당장 개발을 멈추게 하는 게 더 큰 희생을 막는 길이다.

 

21세기에 개발주의자들이 극성을 부리고 있는 게 마치 송장이 되살아나 떠돌아다니고 있는 듯 으스스하다. 지금 4대강에 가면, 그들 유령이 내지르는 괴성을 들을 수 있다. 직접 가서 보지 않으면 믿을 수 없다. 4대강 사업은 지금이라도 당장 중단되어야 한다. 그 이유는 지금 바로 4대강 공사 현장을 찾아가 보면 알 수 있다. 그곳에 4대강 사업을 중단시켜야 하는 분명한 이유가 있다.

 

우리의 강이다. 우리 스스로 지키지 않으면 안 되는 강이다. 4대강이 지금 어떤 험한 꼴을 당하고 있는지, 시간을 내서라도 꼭 한 번 찾아가 볼 것을 부탁한다. 기왕이면 걸어서 가 보거나, 자전거 같이 느리고 간단한 교통수단을 이용할 것을 권한다. 그래야 강가에 좀 더 가깝게 다가갈 수 있기 때문이다.

 


태그:#4대강 사업, #낙동강, #남한강, #한강
댓글
이 기사의 좋은기사 원고료 21,000
응원글보기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