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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루탄이 날아다니고 화염병이 날아다니는 우리의 '현장'은 극렬한 전쟁지역에서나 볼 수 있는 모습이었던 것이다. 그래서 한국에 취재를 오는 기자들에게는 종군 수당이 나왔다고 한다. 아랍이나 이라크 같은 전쟁이 일어나는 지역에 취재를 가는 기자들이 그러하듯이 통역지원, 차량지원, 정보 수집비, 그리고 봉급의 배에 달하는 위험수당을 받았다. - 책 속에서

 

사진 한 장이 주는 의미는 강렬하다. 전쟁처럼 참혹했고, 전쟁처럼 숨막히는 긴장이 일상이 되었던 1980년대. 그 뜨거웠던 시대에 현장 깊숙이 뛰어들어 카메라 셔터를 누르며 시대를 기록했던 사진 기자 고명진의 포토에세이는 펄펄 끓는 용광로처럼 뜨겁고 강렬하다.

 

"주르륵 눈물이 나네요. 87년 6월 대학 3학년. 대구 동성로에 있었습니다. 그런데 무서웠습니다. 하얀 블라우스를 입은 여학생의 옷에 빨간 피가 묻은 걸 보았고, 어느 순간 전경이 바로 내 뒤에 있는 걸 알고 막 뛰었지요. 나보다 더 빨리 내 앞으로 날아가는 최루탄을 보고 어찌할 바를 몰라 공포에 떨었던 너무나도 여린 여학생이었습니다. 비겁하게도 나는 6·29 선언이 나올 때까지 함께 하지 못했습니다. 무섭고 두려웠지요." - 책 속에서

 

80년대 뜨거웠던 대학에서, 거리에서 전쟁처럼 참혹했고, 숨막혔던 상황에 맞닥트렸던 이들에게 사진이 주는 의미는 더욱 강렬하다. 사진을 보며 당시의 참혹함이 되살아나 주르르 눈물이 나고 부르르 몸이 떨린다.

 

 

대학가에서, 거리에서 저항했던 이들이 온몸으로 역사를 써내려갔다면, 그들 곁에서 카메라 부여잡고 셔터를 눌러댔던 사진기자들은 사진으로 역사를 기록했다. 번개같이 구호를 외치고 사라지는 시위대를 카메라에 담기 위해 운동화를 신은 학생이 보이면 그를 따라 다녔고, 운동화 신은 사람이 많아지면 그곳에 멈춰 사진 찍을 준비를 했다. 대학 교문 앞 가두 시위의 생생한 현장을 담기 위해 페퍼포그(pepper fog) 차 옆에 매복했다 최루탄 가루를 온몸에 뒤집어썼다. 시위대와 전경들의 중간 지점에서 사진을 찍다 최루탄 파편이 신발을 뚫고 발에 박힌 적도 있다.

 

당시 사진기자들은 시위대로부터 환영받지 못했다. 사진 기자들 사이에 몇몇 사복 경찰이 경찰 채증반으로 시위대 사진을 찍었고, 이 사진은 연행된 시위자들을 구속하기 위한 유력한 물증으로 활용됐다.

 

연행되어간 경찰서에서 화염병을 들고 있는 자신과 맞닥뜨리는 상황에서 시위대는 사진기자들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래서 사진을 찍다 시위대에 둘러싸여 신분증을 뺏기기도 하고, 카메라와 필름을 뺏긴 채 폭행을 당하기도 했다. 나는 경찰도 아니고 권력의 앞잡이도 아니라는 각서를 쓰기도 했다.

 

경찰로부터도 따돌림을 당했다. 연행되는 학생들이 닭장차에 오르기 전 백골단에게 연행 학생들이 폭행을 당하는 경우가 많았는데, 이때 경찰은 사진 기자들의 사진 촬영을 막았다. 카메라 렌즈에 잘 지워지지 않는 이물질을 묻히기도 하고, 욕을 하고 무차별 폭행을 당하기도 했다.

 

 

그러면서도 80년대 대학가에서 거리에서 시위대가 있는 곳이면 어디든 갔다. 시위대가 뛰면 따라 뛰었고, 시위대가 멈추면 따라 멈췄다. 시위대의 뜨거운 몸짓을 보며 피가 끓어도 뭔가 외치고 싶어도 카메라 셔터만 눌렀다. 역사적 현장을 사진으로 기록하기 위해서.

 

뜨거운 현장의 중심부에서 최루탄에 온몸이 범벅이 되고, 파편에 맞아 피를 흘리면서 찍은 사진이 데스크의 정치적 판단에 의해 국내 신문에 보도되지 못하고 외국 언론에 먼저 보도되는 경우도 있었다.

 

뜨겁다. 80년대 거리에서, 대학가에서 전쟁처럼 이어졌던 그 치열한 투쟁의 중심에 서서 카메라에 담았던 사진을 보면 현장의 뜨거운 열기가 느껴진다. 사진 속에서 목청껏 외치던 구호가, 소리 높여 부르던 노래가 귓전에 맴도는 것 같은 착각에 사로잡힌다. 최루탄과 지랄탄이 시위대를 향해 인정사정없이 돌진하던, 화염병과 돌멩이가 허공을 가르던 그 시절 그 거리가 생생하게 되살아난다.

 

 

책을 덮고 생각해본다. 30년이 지난 지금 달라진 게 무엇일까. 최루탄 사과탄 지랄탄이 자취를 감추고 페퍼포그란 말을 듣도 보도 못한 청소년들이 대부분이지만, 등록금 인상을 반대하며 삭발을 하고, 제도권 밖으로 삶이 밀려난 노동자들이 삭발을 한다. 80년대처럼 민주이발소는 여전히 성업 중이다.

덧붙이는 글 | 고명진/한국방송출판/2010.5.15/15,000원


다시 쓰는 그날 그 거리 - 사진기자 고명진의 포토에세이

고명진 지음, 조천우.최진 글.정리, 한국방송출판(2010)


태그:#사진, #80년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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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서 있는 모든 곳이 역사의 현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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