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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 정세가 냉전시대로 회귀하고 있다. 매우 빠른 속도다. 어두운 과거를 향해 매섭게 질주하고 있다. 천안함 침몰사고 이후 남북관계에 있어서 '대화'와 '타협', '햇볕'과 '포용'이라는 말은 오랜 옛말이 되고 말았다. 아니, 호사가들의 사치가 됐다. 

24일 대북 강경론이 가득 담긴 이명박 대통령 담화문 발표에 이어 국방부가 천안함 사태에 따른 대북제재 차원에서 6년 만에 대북심리전을 재개하고, 한미연합 대잠수함 훈련과 함께 대량살상무기 확산방지구상(PSI)에 따른 역내외 해상차단훈련도 실시하겠다고 곧바로 밝혔다. 다시 '냉전시대', '반공시대'로 접어들었음을 대내외에 선포한 것이다.

북한의 동향 또한 심상치 않다. 25일 북한 조국평화통일위원회(조평통)은 이 대통령 임기 동안 당국 간 대화와 접촉을 포함해 모든 관계를 중단하겠다고 선언했다. 조평통은 그 전날 우리 정부의 대북조치에 대해 "우리와 끝까지 대결해 전쟁도 불사하겠다는 것을 공식 선언한 것"이라며 단호한 카드를 꺼내 들었다.

향후 상호 불가침 합의 파기, 협력사업 전면 철폐, 판문점 적십자 연락대표 사업 완전 중지, 통신연계 단절 등을 일차적으로 내세웠다. 우리 선박과 항공기의 북측 영해, 영공 통과금지 방침도 밝혔다. 남북관계가 끝내 암흑의 시절로 되돌아가고 만 것일까? 불안 또 불안하다.       

기자 76.5% "천안함 정보공개 불충분", 76.4% "발표시점 부적절"

<한국기자협회>가 주관한 여론조사 결과, “천안함 침몰 사건 이후 군 당국이 언론에 정보를 충분히 제공했느냐”는 질문에 기자의 76.5%가 부정적인 입장을 밝혔다.
 <한국기자협회>가 주관한 여론조사 결과, “천안함 침몰 사건 이후 군 당국이 언론에 정보를 충분히 제공했느냐”는 질문에 기자의 76.5%가 부정적인 입장을 밝혔다.
ⓒ 한국기자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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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상황에서 취재 현장을 누비는 기자들과 북한학을 가장 많이 공부한 교수들은 최근의 상황, 특히 남북관계를 어떻게 바라보며 또 무슨 생각을 갖고 있을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기자들 대다수는 군 당국의 천안함 관련 정보공개가 불충분했으며, 발표시점도 부적절했다는 의견을 밝혔다.

또 국내 대학의 북한학과 교수들은 대체로 정부의 대북제재 조치에 반대의 뜻을 나타냈다. 또한 이들 사이에선 정부의 천안함 조사결과를 두고 신빙성 논란이 잦아들진 않지만 남북한의 '관계 재설정'에 대한 논의가 불가피하다는 데 인식을 함께 했다. 전국 각 지역에 깨어 있는 기자와 교수들이 있다는 것은 그나마 희망을 의미한다. 그러나 이제부터 그들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  
     
이런 가운데 <한국기자협회>는 25일 <한국PD연합회> 및 <전국언론노동조합>과 공동으로 <한길리서치>에 의뢰해 24~25일 전국 언론사 기자 24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천안함 관련 여론조사 결과를 밝혀 주목을 끌었다.

<한국기자협회>가 주관한 이번 여론조사 결과, "천안함 침몰 사건 이후 군 당국이 언론에 정보를 충분히 제공했느냐"는 질문에 응답 기자의 76.5%가 '부정적인 입장'(매우 부정 39.6%, 다소 부정 36.9%)을 밝혔다는 것. 반면 '충분히 정보를 제공했다'는 답변은 21.5%(매우 긍정 1.8%, 다소 긍정 19.7%)에 불과했다.

지방선거운동 돌입 당일 이뤄진 합조단의 발표시점에 대해서는 76.4%가 '부적절(매우 부적절 34.6%, 다소 부적절 41.8%)하다'고 응답했으며 '적절했다'는 의견은 20.4%(매우 적절 2.0%, 다소 적절 18.4%)로 나타났다.

기자들 "천안함 관련 언론 소송 부당" 58.6%

또한 응답 기자들 중 73.5%는 '천안함 사건이 지방선거에 영향을 줄 것'(큰 영향 22.7%, 다소 영향 50.8%)으로 전망했다. 나머지 23.6%는 '회의적'(전혀 영향 못줄 것 2.3%, 별 영향 못줄 것 21.3%)으로 응답했다.

이밖에 '합조단에 참여한 미국, 영국, 스웨덴, 호주 등 외국 조사단이 이번 조사에 공신력을 높이는 데 기여했다'고 생각하는 기자들은 54.8%(매우 기여 10.3%, 다소 기여 44.5%)로 나타났다. 나머지 42.4%(매우 기여 못함 6.2%, 다소 기여 못함 36.2%) '부정적'으로 응답했다.

천안함 관련 일부 언론의 보도와 인터넷 게시글에 대한 군 당국의 소송과 관련해서 응답 기자들 중 58.6%는 '부당하다'(매우 부당 24.4%, 부당한 편 34.2%)고 응답했다. 반면 '정당하다'는 응답자는 34.3%(매우 정당 3.0%, 다소 정당 31.3%)로 나타냈다. 이들 중 방송(69.7%), 국제부(63.7%), 차장급(69.4%)에서 '부당하다'는 답변이 많았다. 이번 조사는 전화면접법으로 실시됐으며 표본 오차는 95% 신뢰수준에 ±3.5포인트다.

이날 <한국기자협회> 편집위원회는 여론조사 결과 발표와 때를 함께 해 ''북풍'의 꼼수'란 논평(우리의 주장)을 내놓아 눈길을 끈다. 논평은 "1961년 5·16 쿠데타로 권력을 장악한 박정희 군사독재 정권이 18년 동안이나 집권할 수 있었던 것은 '북풍' 덕분"이라며 내막을 이렇게 적시했다.

"1968년 1월 21일 북한 124특수부대원 31명이 서울 세검정 고개를 넘어 청와대 코앞까지 습격하는 충격적인 사건이 일어났다. 이틀 뒤에는 미국 정보함인 푸에블로함이 북한에 납치됐다. 박정희 정권은 이 사건을 계기로 향토예비군을 창설하고 안보를 더욱 굳건히 다졌다. 1971년 제7대 대통령 선거에서 이 두 사건은 야당과 학생들의 3선 개헌 저지 투쟁에 찬물을 끼얹는 '전가의 보도'였다."

'KAL기 피격', '아웅산 테러', '북핵사건' 벌써 잊었나?

<한국기자협회> 편집위원회는 여론조사 결과 발표와 때를 함께 해 ‘‘북풍’의 꼼수’란 논평(우리의 주장)을 내놓아 눈길을 끌었다.
 <한국기자협회> 편집위원회는 여론조사 결과 발표와 때를 함께 해 ‘‘북풍’의 꼼수’란 논평(우리의 주장)을 내놓아 눈길을 끌었다.
ⓒ 한국기자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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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 논평은 "1979년 12·12 쿠데타와 이듬해 5월 광주시민들의 피를 먹고 집권한 전두환 정권도 마찬가지"라며 역시 내막을 이렇게 밝혔다.

"전두환과 민정당은 물고문, 성고문 등 온갖 방법으로 인권을 유린하고 자유를 억압하며 그들만의 '정의사회'를 구현했다. 1983년 가을 소련(현 러시아)의 KAL기 피격사건과 북한의 버마(현 미얀마) 아웅산 테러사건은 전두환 체제를 공고히 하는 밑거름이 됐다. 두 사건은 국민들에게 반공과 안보의 중요성을 환기시키면서 재야인사들과 학생들의 저항을 무력화시켰다."

그 이후에도 계속 이러한 문제는 선거와 직간접적인 연관성을 나타냈다.  1987년 6월의 뜨거운 항쟁을 통해 대통령 직선제를 쟁취했으나 대선을 불과 18일 앞둔 11월 29일 터진 KAL 858기 폭파사건으로 군부는 재집권에 성공했다.

대선 전날 KAL기 폭파범이라는 묘령의 여인을 압송하는 장면은 '북풍'의 하이라이트였다. 민간 정부가 들어서고 남북 화해 물결이 조성되면서 '북풍'은 되레 역풍이 되곤 했다. 1996년 총선기간에 일어난 판문점 총격사건이 그랬고, 2002년 대선 때 북핵사건이 그랬다.

그런데 6·2 지방선거를 앞두고 다시 '북풍'이 불고 있다. 국방부는 공식 선거운동 첫날 천안함 조사결과를 발표했다. 천안함 어뢰 공격의 증거물을 건져 올린 지 닷새 만에 서둘러 발표했다. 하지만 의문투성이다. 북한의 움직임과 관련된 정보 판단과 물기둥의 존재 등이 초기 판단과 완전히 달라졌다. 가스터빈실 등 원인 규명에 핵심적인 증거자료는 빠진 채 시뮬레이션이 이뤄졌다. 조사단을 파견하겠다는 북한의 요구에는 꿈쩍 않고 불응하고 있다.

"북풍의 불씨는 정부가 지피고 보수언론은 열심히 부채질"

오죽했으면 <한국기자협회>가 보수언론을 향해 돌팔매를 던졌다. 회원사도 있지만 '색깔공세'와 '전쟁타령'을 해도 너무한 때문이다. 

"북풍의 불씨는 정부가 지피고 보수언론은 열심히 부채질하고 있다. 한나라당과 보수언론은 '북풍'으로 지방선거에서 이겼다고 좋아할지 모르겠다. 하지만 '꼼수'는 언제나 역사의 웃음거리가 됐다는 사실은 왜 모를까."

보수신문들이 노골적으로 전쟁을 부추기고 있는 데 대해 MBC 논설위원들이 "<조선>·<중앙>·<동아>·<문화일보>의 천안함 보도와 관련해 노골적으로 전쟁을 부추기고 있다"며 냉정한 보도를 촉구하고 나서 이목을 끌었다.

임태성 논설위원은 25일 저녁 MBC 라디오 '김미화의 세계는 그리고 우리는'에 출연해 "(몇몇 보수 신문이) 노골적으로 전쟁을 부추기는 게 이게 정말 속마음인지, 아니면 선거용인지, 제대로 된 언론인지 묻고 싶다"며 "마치 1970~1980년대 군사정권 시절의 신문을 다시 펼쳐든 느낌이었다"고 밝혔다.

이우호 논설위원도 같은 날 저녁 라디오논평 '천안함에서 9·11을 생각하다'에서 "천안함 사건에 대한 조사결과가 발표되자 일부 보수 언론과 논객들이 앞다투어 '전쟁 불사' 분위기를 한껏 고양시키고 있다"고 진단했다.

이 위원은 "한 신문은 '천안함 발표 못 믿겠다니 대체 어느 나라 국민인가'라는 기사를 1면에 실었다. 또 다른 신문은 '천안함 테러는, 안보는 공짜로 주어지는 것이라 착각해온 한국인들에게 던져진 경고'라는 사설을 썼다"며 "쏟아지는 '애국주의' 앞에서 어떤 이견이나 온건론, 신중론을 제시하면 곧 바로 '국민이 아닌' 사람으로 매도되는 분위기"라고 지적했다.

북한학과 교수들 "정부의 대북제재 조치에 반대"

<교수신문>은 지난 20일, 국방부 민군합동조사단의 천안함 조사결과 발표 직후 북한학과 교수들에게 긴급 의견조사를 실시했다.
 <교수신문>은 지난 20일, 국방부 민군합동조사단의 천안함 조사결과 발표 직후 북한학과 교수들에게 긴급 의견조사를 실시했다.
ⓒ 교수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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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교수신문>은 지난 20일, 국방부 민군합동조사단의 천안함 조사결과 발표 직후 북한학과 교수들에게 긴급 의견조사를 실시했다. 그 결과, 교수들은 대체로 정부의 발표를 "신뢰한다"고 응답했지만 정부의 대북제재 조치에는 "반대"의 뜻을 나타냈다.

정부가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에 천안함 사태를 가져가 국제여론으로 대북압박을 강화한다는 계획에 대해 교수들은 "중국을 비롯한 국제사회에서 호응을 얻지 못할 것"이라고 진단했다. "북한에 '따질 것은 따져가면서' 한반도 문제를 국제여론에 호소해야 영향력을 가질 수 있다"는 주장도 나왔다.

이수훈 북한대학원대학 교수(비교사회학)는 <교수신문>의 의견조사에서 "정부 스스로 북한과 접촉할 통로를 막아버린 결과를 초래했다"며 "중국은 또 어떻게 설득할 것이냐"며 반문했다"고 전했다. 또 김병로 서울대 통일평화연구소 책임연구원은 "관계가 단절된 상태에서 강경책은 아무런 효과가 없다. 압박이든 협상이든 관계의 끈을 유지한 상태에서 하지 않으면 단지 '국내용'에 지나지 않을 것"라고 언급했다.

남북경협과 6자회담도 문제로 지적됐다. 교수들은 "정부의 대북제재 조치로 인해 그나마 남아있는 경협(개성공단)마저 끊어지면 6자회담에서 남한이 내놓을 카드는 없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정영철 서강대 북한사회학 교수는 <교수신문>과 인터뷰에서 "개성공단을 폐쇄하면 남한 정부가 얻을 수 있는 이득은 북한 근로자들의 임금이 차단되는 정도일 것인데 정부는 국민여론과 업체 보상문제를 어떻게 해결할지 의문"이라고 밝혔다.

이에 앞선 지난 14일 <한국대학신문>이 교수 107명을 대상으로 '6·2 지방선거'를 주제로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교수들은 6·2 지방선거 판도에 가장 크게 영향을 미칠 이슈로 '천안함 침몰사건'을 꼽았다.

또 '4대강 사업'이 미치는 영향이 가장 클 것이라고 보는 의견도 맞섰다. 교수들 중에는 하나는 여당에 다른 하나는 야당에 유리하게 작용할 것으로 각기 전망, 이들 두 가지 이슈가 이번 선거의 향방에 상당한 영향을 줄 것으로 내다봤다.


태그:#천안함, #북풍, #한국기자협회, #교수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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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가 패배하고, 거짓이 이겼다고 해서 정의가 불의가 되고, 거짓이 진실이 되는 것은 아니다. 이성의 빛과 공기가 존재하는 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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