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서울대 총장 후보 중 한명인 성낙인 법대 교수가 지난 95년부터 2002년까지 총 '5건 10편'의 논문을 이중게재한 것으로 드러났다.
 서울대 총장 후보 중 한명인 성낙인 법대 교수가 지난 95년부터 2002년까지 총 '5건 10편'의 논문을 이중게재한 것으로 드러났다.
ⓒ 오마이뉴스 구영식

관련사진보기


서울대 총장 후보 대상자로 지명된 3명 중 2명이 '논문 자기표절' 논란에 휩싸이게 됐다.

<오마이뉴스>가 지난 8일 '5건 11편'에 이르는 오연천(행정대학원) 교수의 이중게재(혹은 중복게재) 사실을 확인해 보도한 데 이어 또다른 후보자인 성낙인(법학전문대학원) 교수도 '5건 10편'의 논문을 학술지와 정기간행물에 이중 게재한 것으로 드러났다. 

특히 서울대 측이 사전에 이러한 사실을 알고 있었음에도 총장 후보 대상자 지명을 강행했다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서울대 내부에서조차 서울대 총장 후보 검증 절차에 적지 않은 문제점을 드러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성 교수는 현재 검사들의 '향응·금품·성 접대' 파문을 조사하는 진상규명위원회 위원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그는 최근 '연구비 이중 수령 의혹'까지 불거져 '진상규명위원장 자질 논란'이 일기도 했다.

95년~2002년 논문 중 '5건 10편'이 '이중게재'

<오마이뉴스>가 국회도서관을 통해 성낙인 교수의 논문을 검토한 결과, 그는 95년부터 2002년까지 쓴 논문 중 '5건 10편'을 학술지와 정기간행물에 이중게재한 것으로 확인됐다. 그는 논문을 정기간행물 등에 그대로 중복게재하거나 요약게재했으며, 일부는 내용을 추가하거나 짜깁기해 싣기도 했다. 

같은 글을 학술지와 정기간행물에 이중으로 싣거나, 자기 논문의 일부를 다른 논문에 실으면서 출처를 밝히지 않는 것은 모두 '논문 자기표절'에 해당된다. 성 교수도 '논문 자기표절'의 행태를 그대로 따른 셈이다. 

먼저 성 교수는 95년 1월 대한변호사협회에서 발행하는 <인권과 정의> 221호에 '정보공개법제의 비교법적 검토: 정부 정보공개법(시안)을 중심으로'라는 논문을 발표했다. 이 논문은 '정보공개법 입법방향'이란 특집면에 실렸다. 그런데 1개월 뒤에 똑같은 내용이 요약된 형태로 <고시연구>(고시연구사 발행) 251호에 실렸다.

97년에는 2건 4편의 논문이 이중게재됐다. 95년 12월 개혁성향의 나라정책연구회에서 발행하는 <나라의 길> 30호에는 '언론표현에 의한 국민의 권리침해에 관한 구제제도: 한국의 언론중재위원회 등에 관하여'라는 성 교수 논문이 실렸다. 이 논문은 성 교수가 나라정책연구회의 회원 자격으로 썼다. 그는 이 연구회의 정책위원장과 부회장을 지냈다. 

그런데 97년 11월 <세계헌법연구> 2호에 똑같은 내용이 실렸다. <세계헌법연구>는 국제헌법학회 한국학회에서 발행하는 학술지다. 2년 전 한 연구원의 기관지에 기고한 글을 2년 뒤에 학술지에 발표한 것이다.

단락과 장 형태로 추가하거나, 짜깁기 한 곳도 있어

성낙인 서울대 법대 교수.
 성낙인 서울대 법대 교수.
ⓒ 유성호

관련사진보기

또한 성 교수는 97년 8월 <고시연구> 281호에 '한국헌법상 이원정부제(반대통령제) 권력구조의 정립'이라는 논문을 발표했다. 당시 권력분점론의 하나로 제기된 이원정부제가 학계에서도 쟁점으로 등장하고 있었다. 그런데 같은해 12월, 똑같은 내용이 <법과 사회>(창작과 비평사 발행) 15호에 '권력의 민주화와 정부형태: 한국형 이원정부제(반대통령제)'라는 제목으로 실렸다.

특히 후자의 논문에는 전자의 논문에 없던 내용이 일부 덧붙여졌다. 예를 들면 후자의 논문에는 '(1)전제정부로부터 입헌정부로의 정립'이란 제목으로 두 단락이 추가돼 있다. 또 후자의 논문 중 '(3)한국 헌정사의 오도된 권력의 인격화와 명목적 헌법'에도 몇 단락의 내용이 추가돼 있다.

특히 성 교수가 전자의 논문을 교묘하게 짜깁기해 후자의 논문을 쓴 흔적도 발견됐다. 4장 '현행 헌법 규범의 실천적 해석과 적용의 필요성'은 심한 짜깁기의 대표적 사례로 거론할 만하다.

전자의 논문 '4장 3절'의 두 번째 단락은 후자의 논문 '4장 2절'의 두 번째 단락에 실렸다. 이런 식으로 짜깁기한 사례가 적지 않게 발견되는데, 이보다 심한 경우도 있다. 

'3.국민적 합의문서인 헌법 규범의 정확한 이해
(전략) 현행 헌법은 대통령직선제를 채택하고 있기 때문에 대통령제적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국무총리제, 국무총리·국무위원 해임 건의제 등의 도입으로 인하여 대통령제는 상당히 완화되어 있다. (후략)'

'(3)헌법재판소의 어설픈 대통령제 단정
(전략) 현행 헌법은 대통령직선제를 채택하고 있기 때문에 대통령제적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국무총리제, 국무총리․국무위원 해임 건의제 등의 도입으로 인하여 대통령제는 상당히 완화되어 있다. (후략)'

똑같은 단락이 전자의 논문에서는 '국민적 합의문서인 헌법규범의 정확한 이해'(4장 3절)에, 후자의 논문에서는 '헌법재판소의 어설픈 대통령제 단정'(4장 3절)에 실린 것. 똑같은 단락이 전혀 다른 내용의 절에 들어가 있는 것으로 이것도 전형적인 '짜깁기' 사례에 해당한다.

성 교수는 전자의 논문을 바탕으로 새로운 내용을 '단락'과 '장'의 형태로 추가하거나 일부 내용은 위치를 바꾸는 '짜깁기'를 통해 후자의 논문을 써서 발표한 것이다.

이와 함께 '이중게재' 논문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단어나 문장 다듬기' 행태도 되풀이됐다. '다행히 근래'를 '하지만 최근 들어'로, '전락하게 만들었다'를 '전락시켰다'로, '제공해 주었음을 부인할 수 없다'를 '제공해주었다'로, '모색이 필요함을'을 '모색할 필요가 있음을'로, '모델로서'를 '모델로'로 바꾼 것이 대표적이다.

성낙인 "'논문 자기표절' 최근 개념... 윤리적으로 문제 없다"

위에서 거론한 '이중게재' 사례는 성 교수가 영남대 법대에 재직하고 있을 때 일어난 것이다. 그는 99년부터 서울대 법대 교수로 재직해오고 있는데, 2002년에 쓴 '2건 4편'의 논문도 '이중게재'한 것으로 드러났다.

성 교수는 2002년 6월 <인터넷법연구> 1호(한국인터넷법학회 발생)에 '인터넷과 선거운동'이라는 논문을 발표했는데, 이 논문과 거의 똑같은 내용의 글이 같은 해 10월 <JURIST>에 '인터넷시대의 선거운동'이라는 제목으로 실렸다. 다만 후자의 논문에서는 전자의 논문 중 'Ⅱ.공직선거법상 선거운동 자유의 원칙과 규제'(약 21쪽) 부분이 통째로 삭제됐다.

또한 성 교수는 2002년 상반기 때 <세계의 언론법제>(한국언론재단 발행) 11호에 '언론관련 선거법제의 문제점과 개정방향'이라는 논문을 발표했다. 이 논문은 50여쪽에 이르는 상당히 긴 논문인데, 이와 비슷한 내용이 같은 해 후반기에 <열린 미디어 열린 사회>(열린 미디어센터 발행) 7호에도 실렸다. 다만 후자의 논문은 전자의 논문 분량이 대폭 줄어든 10쪽으로 이루어졌다.

이러한 이중게재 사실과 관련, 성낙인 교수는 "학술지에 실은 논문 200매를 정기간행물 쪽에서 50매로 줄어달라고 해서 그렇게 줄인 뒤 게재했다"며 "엄격함을 요구하는 학술지에 실었다가 다른 학술지에 실었으면 이중게재라고 할 수 있지만 이런 정도는 도덕성문제가 불거질 만한 이중게재는 아니다"라고 해명했다.

성 교수는 "당시에도 (이중게재와 관련된) 정해진 룰(rule)이 없었고, 현재 서울대에서도 확정된 룰이 없다"며 "몇 년 전부터 이중게재가 쟁점이 되면서 '언제 쓴 논문을 수정하거나 보완해 실었다'고 밝히면 이중게재가 아닌 것으로 인정받는 분위기"라고 말했다.

이어 성 교수는 "출처를 밝히는 관례가 옛날에는 없었다"며 "그 시절 그런 관례가 없었기 때문에 (내 경우) 도덕적으로나 윤리적으로 문제될 게 없다"고 말했다.

이중게재 등 요즘 쟁점이 되고 있는 '논문 자기표절'은 '최근의 개념'이기 때문에 이전의 이중게재는 학문윤리상으로 문제될 게 없다는 것이 성 교수의 주장이다.

서울대 정문(자료사진).
 서울대 정문(자료사진).
ⓒ 권우성

관련사진보기


성 교수는 한국사회 엘리트의 주축인 'KS(경기고-서울대)'출신이다. 그는 프랑스 파리제2대학에서 법학박사 학위를 받은 뒤 80년부터 99년 8월까지 영남대 법대 교수로 재직하다가 99년 9월부터 서울대 법대로 자리를 옮겼다. '헌법'과 '선거법' 등에 정통한 학자로 평가받는다.

성 교수는 김영삼 정부에서는 대통령자문교육개혁위원회 위원을, 김대중 정부에서는 정보통신부 정보통신망법 심의위원장을 지냈다. 그는 현재 정보공개위원회 위원장과 국회 헌법연구자문위원회 부위원장, 한국법교육학회·한국법학교수회 회장, 한국공법학회 고문을 맡고 있다.

서울대 총장후보초빙위, 이중게재 알고도 후보자 지명 강행?

한편 서울대가 두 교수의 논문 이중게재 사실을 알고도 총장 후보 대상자 지명을 강행했다는 의혹이 일고 있다.

서울대 총장 후보 대상자는 13인으로 구성된 '총장후보초빙위원회'(초빙위)에서 지명한다. 초빙위는 총장 후보 대상자 지명은 물론이고, 입후보자들을 검증하는 역할도 맡고 있다. 이에 따라 초빙위는 지난달 28일 성낙인(법대)·오세정(물리천문학부)·오연천(행정대학원) 교수를 총장 후보 대상자로 지명한 바 있다.

그런데 KBS 취재팀이 작년부터 올해 3월까지 서울대 인문사회과학분야 교수 전원을 대상으로 표절·이중게재(중복게재) 의혹을 취재해왔다. KBS의 취재결과 50여 명 정도 교수에게 문제가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여기에는 나중에 총장 후보 대상자로 지명된 성낙인·오연천 교수가 포함되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러한 사실은 초빙위와 예비후보들(지명 전 후보들)에게도 전해졌다고 한다. 하지만 초빙위는 이를 제대로 검증하지 않고 앞서 언급한 세 명의 교수를 총장 후보 대상자로 최종 지명한 것이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는 것이다. 

"지난 선거와 가장 큰 차이점은 총장 후보의 검증을 크게 강화했다"는 박삼옥 서울대 평의원회 의장(지리학과)의 말이 무색해지는 대목이다. 초빙위는 예비후보들의 연구업적과 도덕성을 심의하는 등 철저한 후보검증 걸차를 거쳐야 했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는 비판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태그:#서울대 총장 선거, #성낙인, #오연천, #이중게재, #논문 자기표절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1970년 전남 강진 출생. 조대부고-고려대 국문과. 월간 <사회평론 길>과 <말>거쳐 현재 <오마이뉴스> 기자. 한국인터넷기자상과 한국기자협회 이달의 기자상(2회) 수상. 저서 : <검사와 스폰서><시민을 고소하는 나라><한 조각의 진실><표창원, 보수의 품격><대한민국 진보 어디로 가는가><국세청은 정의로운가><나의 MB 재산 답사기>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