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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종영한 MBC시트콤 '지붕뚫고 하이킥'(116회)에서 초등학교 반장선거에 나선 정해리(진지희 분)의 귀여운 모습이 기억나리라. 2학년에 올라간 해리, 임시로 선생님께 인사 구령을 붙이기 위해 의자 위에까지 올라가 "전체 차리엇!" 이라고 목소리를 높인 해리는 신신애(서신애 분)를 반 협박해 새학기 반장선거 후보가 된 뒤 본격적인 선거유세에 나선다.

초등학교 반장선거에 나선 해리는 친구들을 반협박해 새학기 반장선거 후보가 되어 백방으로 뛰어보지만 결과는 참담했다.
▲ '지붕뚫고 하이킥' 초등학교 반장선거에 나선 해리는 친구들을 반협박해 새학기 반장선거 후보가 되어 백방으로 뛰어보지만 결과는 참담했다.
ⓒ M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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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리는 반장이 되기 위한 굳은 신념으로 신애에게 우유와 케이크를 가져다주며 선거운동을 부탁하고, 반장 선거운동에 강한 집착을 보인다. '사탕, 떡볶이, 만두, 피자, 햄버거' 등 물량공세는 물론이거니와 "매일 집에 데려와 갈비를 먹여주고 방학 때는 미국 디즈니랜드로 소풍을 가게하겠다" 등 허무맹랑한 공약까지 내걸었지만 결과는 암울했다. 다행히 식구들은 반장이 되지 못한 해리를 위해 '집반장'제도를 신설해 그나마 소원을 풀어줬는데...

반장? 반장이 그렇게도 하고 싶을까? 하기야, 초중고를 통틀어 줄곧 반장을 독차지 하는 아이들이 있는가 하면 반장투표만 하다 학창시절 다 보낸 아이들도 있다. 한때 '반장'이 권력이자 소원인 시절도 있었으니...

그 시절이 그립다. 절대 내 이름이 올라갈 리가 없다고 생각했는데 표가 나온 것이다. 1표! 지금도 누가 나에게 1표를 던져줬는지 궁금하지 않는가? 여자애들은 아니었을 텐데 그 1표의 주인이 여전히 궁금하다.

각각 5학년과 2학년에 올라가는 두아들
▲ 두 아들 각각 5학년과 2학년에 올라가는 두아들
ⓒ 김학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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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학기초, 우리집에는 두가지 소망이 있었다. 하나는 어느 부모와 마찬가지로 두 아들이 제발 좋은 담임선생님을 만나는 것이었다. 호랑이 선생님이라도 만나 혹시라도 마음에 상처라도 받지 않을까 하는 염려 때문이었다(다행히 담임 선생님은 잘 만났다).

또 하나는 제발 반장을 하지 말라는 것이었다. 5학년으로 올라간 큰 아들 태림이는 이유가 어찌됐든 불행히도(?) 초등학교에 들어간 이래 4년동안 반장을 한 번도 놓친 적이 없고, 둘째 승규도 이제 2학년이 되어 반장 선거에 뛰어들 것이 뻔했기 때문이었다. 이번에도 두 아이에게 제발 반장같은 것은 하지 말아달라고 부탁 겸 엄포를 단단히 놓았다(이유는 자세히 쓰지 않아도 아시리라).

"미남 아들들! 제발 이번에 반장만은 참아줘! 먹고 싶은 거나 원하는 것 있으면 다 들어줄테니, 사랑하는 아들들아, 제발 부탁한다. 알았지?"

반장선거에 출마하지 않는 조건으로 두 아들에게 컴퓨터 게임시간까지 늘려주고 게임아이템을 충전할 수있는 상품권까지 제공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엄마의 '작은 소망'일 뿐이었다.

드디어, 반장선거일. 아침부터 두 아들은 나름대로 흥분하는 것 같았다. 아이들 엄마는 내심 속으로 '그래, 설마 이번에는...' 하며 위로했지만 결과는 참담(?)했다. 엄마의 '혹시나' 했던 기대는 '역시나'였다. 그렇게 애원했는데도 태림이는 다른 아이들의 막무가내식 추천에 떠밀려 결국 반장이 되고 만 것이다. 그 이야기를 듣고 또 한번 가슴을 쓸어내리고 상심할 수 밖에 없었다.

"아! 저 진짜 이번에는 안 하려구 했는데요. 5학년까지 함께 올라온 애들하고 친구들이 서로 추천해서 어쩔 수 없었어요. 선생님도 잘 추천했다고 하시고요. 아! 저도 미치겠어요. 정말 죄송해요"

오랫동안 반장을 한 태림이의 모습이 눈에 익어 아이들이 앞다투어 반장을 아주 잘할 것 같다고 추천했다는 것이다. 죄송하다는 말까지 덧붙이는 아들에게 더 이상 무엇이라 위로(?)의 말을 할 것인가? 할 말이 없다. 다행히 둘째 승규가 반장선거 출마를 포기했다는 소식이 그나마 위로를 준다.

"후보가 나하고 여자아이 한 명이 나왔는데, 우리반은 여자애들이 적어서 내가 불리했어. 반 아이들 24명 중에 내 표가 17표나 나왔어. 원래 여자애들은 주로 여자후보를 찍어 주는데... 아, 정말... 찍을 사람이 나밖에 없었나봐!"

두번째줄 맨 왼쪽이 5년 동안 반장직을 짊어진 아들이다,
▲ 아들 반 친구들 두번째줄 맨 왼쪽이 5년 동안 반장직을 짊어진 아들이다,
ⓒ 김학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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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도 반장의 역할은 숙제 걷어오기, 선생님께 경례하기, 떠든 사람 감시하기, 청소감독, 선생님 잔심부름 등 허울좋은 감투일 뿐 모든 일은 고스란히 엄마의 몫이다. 정확히 말하면 '반장엄마'가 아니라 '엄마반장'이 맞는 표현이리라. 아이가 반장이면 엄마도 반장인지라 뒤를 봐주는 일도 신경이 많이 가고, 직장일 때문에 학교가서 궂은 일이나 회의에 참여 할 만큼 여유가 없는데 아이는 엄마의 속내도 아랑곳 않고 또 반장이 되는 엄청난 일을 저지르고 만 것이다.

결국, 잘난 아들덕에 내리 5년째 반장 엄마가 되어 학교에 필요한 물건도 챙겨 넣어주고, 환경정리니 등굣길 도우미니 교실청소까지 도와야 되는 신세가 되고 말았다. 대도시든 시골학교든 할 것 없이 같은 학교 학부모가 아닐까 싶을 정도로 학교 돌아가는 모습은 너무나 비슷하다. 그래서 1~2년 정도 반장, 부반장, 회장 등 임원을 겪어본 엄마들은 이후 아이들에게 임원선거에 나가지 말라고 신신당부를 한다.

임원을 맡게 되는 학부모들은 환경정리와 운동회 등 행사 명목으로 돈을 걷고, 견학과 소풍 때에는 선생님 도시락에 학교 행사 때는 부침개를 지져가며 식당 아줌마 취급을 받고, 운동회 때는 물 나르고 아이들 간식까지 챙겨야 함은 물론이다. 어디 그 뿐이랴. 학기초가 되면 환경정리 한답시고 반장다운 튼실하고 비싼 화분도 넣어야지, 대형문구점 가서 사온 환경정리판을 들고 밤새 궁리하여 만들어 가져다 붙여야지. 일부 학교에서는 운영위원회와 자모회, 학년반대표 모임에서 금전 갹출이나 간식 돌리는 것을 안 하기로 했다고 하지만 그건 빙산의 일각이지 싶다.

반장선거를 마친후 각 학년 반별로 반장을 비롯한 임원들에게 임명장을 주고있다.
▲ 임원(반장)임명식 반장선거를 마친후 각 학년 반별로 반장을 비롯한 임원들에게 임명장을 주고있다.
ⓒ 김학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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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써 지갑에 돈나가는 소리가 들린다. 2학기때 둘째 승규의 반장출마가 벌써부터 두려워진다. 간식과 소풍날 선생님 도시락, 스승의 날 선물 명목이야 그나마 돈으로 때우면 된다지만, 등교도우미나 환경정리, 공개수업참관, 각종회의 참석, 자모회의, 행사도우미는 어떻게 대처해야 한단 말인가?

하지만 결국 반장엄마가 되고 보니 어쩌겠는가. 내 아이를 위해 기를 세워 줄 수밖에... 엄마가 청소라도 빠져 선생님 눈밖에 나지는 않을까, 엄마가 반장엄마 역할을 등한시하여 아이에게 보이지 않는 불이익이 가지 않을까 노심초사 하는 것은 한결같은 부모마음 아니겠가? 울며 겨자먹기로 태림이는 반 아이들에게 피자를 쏘고 엄마는 같은 반 엄마들에게 반장턱을 거하게 쏘았지만 왜 이렇게 마음 한구석이 허전한지...

우리 아이가 반장이 되었다고 했을 때 기쁨은 뒷전 부담감으로 가슴이 답답하고, "엄마 나 반장됐어"하는 소식에 집안이 반쯤 뒤집혀지는 일이 대한민국이 아닌 어느 나라에서 찾을 수 있을까. 내년에 6학년이 되는 태림이가 또 반장을 하겠다고 하면, 승규가 이번 2학기때 반장을 하겠다고 하면 그땐 또 어떻게 해야하는가?

부모라는 이름으로 아이의 기를 꺾어가며 하지 말라고 말리며 아이들을 키우는 세태가 한심스럽다. 언제부터 이런 세상이 되었는지... 누가 이렇게 만들었는지... 반장이 귀찮은 감투가 아니라 생활에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는 바른 정치의 시작임을 일깨워줌을 기대하는것은 무리일까? 학부모들에 대한 쓸데없는 동원 풍토가 사라지기 전에는 아마도 '아니올씨다'라는 생각이 드는 건 나만의 생각인가.

자녀의 '리더십'을 증명할 강력한 방법은 '반장을 해 오는 것'이 아니라 '반장을 안 해오는 것'임을 아는지 모르는지... 자신감 있는 표정과 당당한 걸음걸이로 단상에 올라 친구들을 향해 활기차게 외치는 모습이 그립다. "안녕하세요!. 기호 1번 김태림입니다!"

'개콘' 동혁이형! 쿨한 샤우팅으로 뭐라고 말좀 해봐요?


태그:#반장, #반장엄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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