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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갑 갤러리 두모악 정문. 제주도 전형적인 날씨 덕분에 오렌지색 정문이 눈에 더욱 선명하게 안겼다.
 김영갑 갤러리 두모악 정문. 제주도 전형적인 날씨 덕분에 오렌지색 정문이 눈에 더욱 선명하게 안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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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갑 갤러리의 정원은 루게릭병으로 죽어가고 있던 고 김영갑 선생의 혼으로 만들어졌다. 그는 "새길 있음을 인정하지 않는 자들이 슬퍼한다"며 일체 치료를 거부하고 죽음을 맞았다.
 김영갑 갤러리의 정원은 루게릭병으로 죽어가고 있던 고 김영갑 선생의 혼으로 만들어졌다. 그는 "새길 있음을 인정하지 않는 자들이 슬퍼한다"며 일체 치료를 거부하고 죽음을 맞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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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제주도하면 파란 하늘에 에메랄드빛 바다, 그 사이로 간간이 모습을 드러내는 한라산이나 오름이 걸친 멋진 풍광을 떠올리곤 한다. 그도 그럴 것이 시중에 나와 있는 제주도 홍보책자엔 온통 제주도의 푸르고 파란 빛만 담겨 있기 때문이다.

제주도에서 하늘 파랗고 물 푸른 날을 볼 수 있는 날은 사실 그리 많지 않다. 통계청 발표에 따르면 1년 중 제주도에서 맑은 날을 볼 수 있는 날은 평균 80일에서 90일에 불과하다. 나머지 날들은 비나 눈이 내리는 날을 제외하곤 옅은 회색빛 하늘에 습기 먹은 바람이 느리게 돌아다니는, 마치 안개 살짝 걷힌 새벽 숲 같다.  

제주도 서귀포시 성산읍 삼달리 '김영갑 갤러리 두모악'을 찾아가던 날, 전형적인 제주도 날씨 덕분에 두모악의 오렌지색 정문 빛깔이 다른 때와 달리 눈에 꽉 차 안겼다. 수십 번을 들락거렸을 텐데 이번에 느낀 색감은 부드러우면서도 강렬했다.

오름 사이로 깃든 제주도 노을. 김영갑 선생의 작품은 온전히 제주도 그 자체다. 작품 앞에 엽서며 방명록을 쓸 수 있는 의자가 준비되어 있다.
 오름 사이로 깃든 제주도 노을. 김영갑 선생의 작품은 온전히 제주도 그 자체다. 작품 앞에 엽서며 방명록을 쓸 수 있는 의자가 준비되어 있다.
ⓒ 이주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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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숙하다고 자만하면 안된다. 수십번 이곳을 오갔지만 저 돌하르방이 갤러리 정문 돌담 사이에 저렇게 서있었음은 처음 알았다.
 익숙하다고 자만하면 안된다. 수십번 이곳을 오갔지만 저 돌하르방이 갤러리 정문 돌담 사이에 저렇게 서있었음은 처음 알았다.
ⓒ 이주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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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모악을 가면 언제나 제일 먼저 하는 일이 고 김영갑 선생이 만든 정원을 천천히 걷는 것이다. 루게릭병을 앓던 그는 근육이 굳어가는 속도를 조금이라도 늦추기 위해 제주도 돌을 놓으며 폐교 운동장에 세상에서 가장 황홀한 정원을 만들었다.

바로 저기, 장승처럼 성큼 다가와 있는 죽음조차 '새로운 길'이라 여겼던 그는 "새길 있음을 인정하지 않는 자들이 슬퍼한다"며 모든 치료를 거부했다. 대신 그는 폐교 운동장에 자신이 그토록 사랑했던 제주도의 바람이 빚은 돌을 하나씩 하나씩 불러 모았다. 그렇게 그와 제주도의 바람과 돌이 하나가 되어 있는 곳이 갤러리 두모악의 정원이다.

이곳을 걸을 때면 온 몸에 소름이 돋는다. 죽음이 삶의 시간을 단축시키고, 병의 고통이 남아있는 생의 시간을 정확히 계기하는 순간에도 살아남을 자들을 위해 콘크리트처럼 굳어가는 몸을 움직였을 그. 갤러리 두모악의 정원이 소름 돋도록 황홀한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2월 섬 동백꽃의 처연한 낙화.
 2월 섬 동백꽃의 처연한 낙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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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연한 동백꽃을 마주한 곳도 바로 그곳이었다. 돌담 위 마른 잎 누운 옆자리에 동백꽃은 떨어져 있었다. 품었던 그리움 오롯이 품은 채 댕강 모가지만 떨어진 동백꽃. 그 모습이 오기 창창한 사무라이의 기상을 닮았다 해서 일본에서는 동백꽃을 '사무라이의 꽃'이라 부른다고.

하긴 동백꽃 지는 모습이 배포 있긴 하다. 동백꽃은 결코 홑으로 지는 법이 없다. 몇 장 되지 않는 꽃잎, 홑으로 흩어지지 않고 피었던 모양 그 대로, 통으로 툭 떨어진다. 썩어 문드러지는 것은 나중 일, 적어도 동백꽃은 낙화(洛花)하는 법을 안다. 사람으로 치면 갈 때 갈 줄 알고, 잊혀질 때 잊혀질 줄 아는 것이다.    

그렇게 갈 때 갈 줄 알고, 잊혀질 때 잊혀질 줄 알기에 썩어 문드러지고도 추하지 않는 것이다. 그러나 철없는 인간들은 얼마나 많은 미련 때문에 추해져 가던가. 자기밖에 모르는 탐욕 때문에 떠나야할 때 떠나지 않고 패악을 저지른다. '기득권'이라 불리는 추한 미련이다.

모든 사람들이 결기 곧은 지사처럼 살 순 없다. 그렇다고 모든 사람들이 추한 미련으로 어설픈 기득권을 강짜부리며 손가락질 받을 짓거리를 할 필요도 없다. 이때 필요한 것이 함께 산다는 마음가짐이다. 나의 욕심이 혹 타인의 소박한 밥상을 엎어버리고 있지는 않은지, 나의 추한 미련이 혹 타인의 사뿐한 걸음을 훼방 놓는 지뢰는 아닌지….

이처럼 가장 분명하게 폈듯이, 가장 분명하게 질 것이다.
 이처럼 가장 분명하게 폈듯이, 가장 분명하게 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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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는 동백꽃인들 제 가슴에 피 눈물로 새긴 그리움 하나 없었겠는가. 지는 동백꽃인들 제 심장에 안타까운 미련덩어리 없었겠는가.

그래도 가는 것이다, 그래도 지는 것이다. 그게 동백의 순정이다. 그 붉은 순정, 마음에 심으며 두모악 문을 나섰다.

"모든 그리움은 붉다, 섬에 핀 2월 동백꽃처럼.
불현듯 타올랐다 댕강 모가지 채 섬멸하는 그리움, 그리움."
- 두모악에서 쓴 메모 중에서

무인카페도 생겼다. 출입문 옆 작은 우체통이 정겹다.
 무인카페도 생겼다. 출입문 옆 작은 우체통이 정겹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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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동백꽃, #김영갑, #제주도, #돌하르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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