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섣달 그믐날이다. 설날 차례 준비에 바쁜 날이다. 설날 차례를 지내기 위해 여러 가지 음식을 만드는 것을 세찬(歲饌)이라고 한다. 이 세찬은 살림살이 형편에 따라 달라진다. 떡방아간은 떡을 만들려는 사람들과 구입하려는 사람들의 발길이 분주하다. 강진 재래시장 장옥 근처의 노점상도 바쁘기는 매한가지였다. 세찬 준비를 위해 장보러 나선 사람들이 제법 많았다. 평소에 비해 오가는 사람들이 많은데도 상인들은 한숨이다.

 

강진 신전면에서 새송이버섯 농사를 짓는 한 농부는 자신이 수확한 버섯을 들고 직접 판매에 나섰다. 새송이버섯 1kg에 5천원이다. 대목인데도 사람들이 별로 관심이 없다며 힘들어한다.

 

장흥 수문앞바다에서 채취한 키조개를 파는 상인부부는 대목이라 그나마 났다고 했다. 키조개1망(4~50개)에 1만5천원이라고 한다. 정찬일(46)씨 부부다.

 

강진 재래시장이 지난해 9월부터 현대화시설 공사를 하고 있어서 재래시장 근처인 이곳에 자연스레 골목시장이 형성된 것이다. 기존 시장상인들은 대부분 이곳에서 장사를 하고 있었다. 강진읍 재래시장의 현대화 사업은 8800여㎡의 면적에 사업비 52억 원이 투입됐다. 재래시장 기능을 겸비한 상설시장 점포도 2천여㎡에 이른다고 한다.

 

현대식 건물로 새 단장이 되는 장옥은 전천후 개장이 가능하며 다양한 공연을 펼칠 수 있는 무대도 마련된다. 2월말 개장할 예정이라며 상인들은 입주의 꿈에 부풀어 있었다.

 

강진 재래시장은 남도의 시장답게 어패류와 생선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 재래시장 물건이 저렴하다며 싸게 줄 테니 사가라는 상인, 지난번에 구입했는데 생선이 안 좋아 재 구매하러 와서 돈이 운다는 손님이 흥정을 하고 있다.

 

"진짜 맛있는 병치 3마리에 3만원 옴막 다줘버려."

"돈이 운다, 돈이 울어~"

 

"장사는 잘 되나요?"

"워매워매~ 환장 하것소, 오늘도 안 나가요. 장사를 한 10년 했소만 모태논건 없소."

 

20년째 강진, 해남, 완도, 남창의 재래시장을 다니며 어패류와 해산물을 파는 털보수산의 김창주(60)씨 부부를 만나봤다. 수염이 덥수룩한 외모 때문에 그는 털보, 산적 등의 별명으로 불려진다.

 

"설 대목 경기가 어때요?"

"안된다고 어렵다고들 하지만 패냐 똑같지 뭐."

 

"부부가 함께해서 좋으시겠어요."

"산다는 것이 어려워."

 

"인상이 정말 멋진데요?"

"여자들이 날보고 산적 같다고들 해."

 

그는 날마다 세상 사람들이 곤히 잠든 새벽 2시경에 자리를 털고 일어난다. 도매상에서 물건을 가져와 미리 장사준비를 해야 하기 때문이다. 쉬는 날도 없이 새벽 5시경에 장에 나와 오후 5시께가 되어야 마무리되는 일상의 반복이다. 하지만 그의 표정은 무척이나 밝아 보였다.

 

명태 한 무더기 5마리에 2만원, 갈치 6마리에 2만원, 대구 1마리에 5천원에 팔고 있었다. 바지락 까기에 부지런을 떨고 있던 그의 아내는 담배 값도 못하면서 산적이 연신 담배만 피워댄다며 타박이다. 담배 없이는 못산다는 넉살좋은 그는 "아내에게 기대 살아도 담배 값은 주것제"라며 환하게 웃었다.

 

또 다른 노점이다. 꽃게를 파는 할머니는 게를 사가라며 외친다. 할머니는 꽃게와 바지락을 찌그러진 양푼에 눈대중으로 담아 팔았다.

 

"귀 좀 사씨요, 귀 이라고 조아라~"

 

바람이 차갑다. 노점에서 나물 파는 아주머니와 꼬막을 파는 아주머니가 사이좋게 늦은 점심을 먹고 있다. 찬은 달랑 김치 한 가지뿐이다. 찬밥을 따뜻한 물에 말아 먹는다. "장사는 안 되고 묵고 살랑께 어쩔 수 없다"는 말에 가슴이 싸하다.

 

요 며칠째 비가 내리더니 섣달 그믐날에는 진눈깨비가 날린다. 귀가 시리다. 오가는 손님들은 가격을 묻고 되돌아서기가 일쑤다. 설을 하루 앞둔 대목인데도 장터 분위기가 썰렁하기는 마찬가지다. 대롱대롱 매달린 명태 너머로 상인들의 지친 얼굴이 다가온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전라도뉴스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강진 재래시장, #섣달그믐날, #대목, #노점, #털보수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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