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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유형문화재 제107호로 지정이 되어있는 이천시 장호원읍 어석리의 석불입상
▲ 어석리 석불입상 경기도 유형문화재 제107호로 지정이 되어있는 이천시 장호원읍 어석리의 석불입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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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즈음 세상에 고통을 받지 않고 있는 사람은 몇이나 될까? 아마 누구나 한 가지 걱정은 있을 것이고, 그런 걱정을 하지 않고 살 수 있다면 그것이 곧 피안의 세계란 생각을 한다. 이천시 장호원읍 어석리에 있는 미륵석불 입상을 찾아 길을 나섰다.

들어가는 입구에는 다행히 안내판이 붙어있어 잘 들어갈 수가 있었지만, 정작 마을 안에 있다는 석불입상을 찾아가기에는 어려움이 있었다. 몇 바퀴를 근처를 돌아서야 겨우 찾은 어석리 석불입상. 낮은 구릉을 뒤로하고 서 있는 석불을 만난다는 것이, 흡사 고통을 받다가 그 고통에서 벗어난 듯한 느낌이 든다.

불상의 형태로 조성이 된 석불입상

미륵은 석가모니 다음으로 세상을 구하러 온다는 부처이다. 미륵불은 부처와 보살의 두 가지 형태로 나타나는데, 어석리의 석불입상은 부처로 표현을 하였다. 마을 안, 집 사이에 자리를 하고 있어 곁으로 지나가면서도 쉽게 발견을 할 수가 없다. 높이 4,32m의 석불입상은 커다란 두 덩어리의 석재로 만들어졌다. 허리 아래까지가 한 개의 네모난 석재로 구성이 되었으며, 그 밑으로 발까지가 또 하나의 석재로 만들어졌다.

미륵은 석가모니 다음에 세상을 구하러 온다는 부처이다. 미륵은 보살과 부처 두 종류가 있으며, 어석리 석불은 부처로 표현을 하였다
▲ 석불입상 미륵은 석가모니 다음에 세상을 구하러 온다는 부처이다. 미륵은 보살과 부처 두 종류가 있으며, 어석리 석불은 부처로 표현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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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고통을 없애주고 마음의 소원을 이루게 해준다는  ‘시무외여원인’을 하고 있다.
▲ 손 인간의 고통을 없애주고 마음의 소원을 이루게 해준다는 ‘시무외여원인’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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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슴 앞에 손은 모든 고통을 없애주고 소원을 들어준다는 '시무외여원인'을 하고 있다. 손 모양이 조금은 어색해 보이기도 하는데, 이러한 것이 고려시대 경기, 충청지방에서 보이는 석불의 특징이기도 하다. 양발의 발가락이 뚜렷하게 보이게 조성한 아래로는, 꽃부리를 위로 향한 연꽃무늬가 새겨진 앙련을 조각한 연화대좌가 있다. 아랫부분은 땅 속에 묻혀있는 이 연화대좌는 석불입상을 받치고 있기에는 조금 버거워 보이기도 한다.

평범한 속에 보이는 따사로움

머리 위에 팔각의 보개석을 이고 있는 어석리 미륵석불. 이 석불을 보면서 저 보개가 어쩌면 인간의 무거운 고통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한다. 그 고통을 이고도 저리 엷은 미소를 띠고 있는 석불이, 인간의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는 것을 상징한다는 생각이다. 그토록 많은 석불을 곳곳에 세우고도, 아직도 가시지 않은 이 땅의 고통이 가슴 아프다. 하기야 인간들 스스로가 그런 고통을 만든다고 하니, 무슨 할 말이 있으리오.

네모난 얼굴에 뺨과 턱이 둥글게 표현이 되고, 눈은 길게 꼬리가 뻗어있다. 오뚝한 코에 작은 입, 그리고 입 주위를 둥그렇게 원을 만들었다. 생명이 없는 찬 석재를 갖고도, 저리 온화한 미소를 표현할 수가 있다는 점이 놀랍기만 하다. 그것이 미륵입상을 조성한 석공의 마음이었을지도 모른다. 커다란 돌을 갖고 이렇게 깎아내고 다듬기까지, 얼마나 많은 시간이 걸리고, 땀은 또 얼마나 흘렸을까? 그런 생각을 하다가보면 절로 마음속에 고통을 잊게 된다. 아마 이 불상을 조각한 석공이 바로 부처였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한다.

엷은 미소를 띤 얼굴은 미륵불이 이 세상의 고통을 없애주기 때문이다.
▲ 얼굴 엷은 미소를 띤 얼굴은 미륵불이 이 세상의 고통을 없애주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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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발의 발가락이 뚜렷하게 보이게 조성한 아래로는, 꽃부리를 위로 향한 연꽃무늬가 새겨진 앙련을 조각한 연화대좌가 있다
▲ 발 양발의 발가락이 뚜렷하게 보이게 조성한 아래로는, 꽃부리를 위로 향한 연꽃무늬가 새겨진 앙련을 조각한 연화대좌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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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각은 사라지고 주추만 남아

석불입상 주변을 보면 사방으로 선돌이 서 있다. 밑이 넓고 위가 좁은 마름모꼴의 이 선돌들은 주추였을 것이다. 그렇다면 이 석불입상은 전각 안에 있었다는 것이고, 근처 어딘가에 절이 있지나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한다. 충청도와 경기도, 강원도 일대에는 고려시대의 미륵불이 유난히 많다.

그것은 통일신라 후기에 일어난 궁예가, 이 지역을 중심으로 후고구려를 세웠기 때문은 아니었을까? 스스로 미륵이라 자처한 궁예가 미륵정토를 염원했기 때문은 아니었을까? 그런 질문을 쏟아내다가 보니, 어느새 해가 저물고 있다. 그런 마음 속의 생각으로 인해 잠시 세상의 고통을 잊는다.

석불입상의 네 귀퉁이에 선돌이 있다. 주추로 보이는 이 선돌로 보아 이곳에 전각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 주추 석불입상의 네 귀퉁이에 선돌이 있다. 주추로 보이는 이 선돌로 보아 이곳에 전각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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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바람이 부는 날 찾아간 어석리 미륵석불입상. 그 엷은 미소에서 마음의 평안을 찾는다. 온갖 세상의 모든 고통을 사라지게 만든다는 미륵불. 그래서 사람들은 오늘도 그 앞에 정화수 한 그릇을 받치고 촛불을 켜는가 보다.


태그:#석불입상, #미륵, #이천, #어석리, #유형문화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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