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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의 벗님, 안상규화백께서 참으로 오랜만에 헤이리 밖으로 나들이를 하셨습니다. 11을 13일부터 12월 4일까지 서울의 galleryCERESTAR 에서 개인전을 여신 것입니다.

안상규 초대전, 마음으로 읽는 그림전
 안상규 초대전, 마음으로 읽는 그림전
ⓒ 이안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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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선생님은 73년부터 77년까지 연속해서 5회에 걸쳐 국전에 입상하고, 74년부터 78년까지 앙데팡당전의 국제전 출품작가로 선정되었으며, 77년에 천년작가회관에서 첫 개인전을 여는 등 70년대의 한국화단을 대표하는 화가였습니다. 하지만 본인을 드러내는 것을 극히 꺼리는 천성적인 성격상, 그 후 오랫동안 대외적으로는 침묵으로 일관했습니다. 98년에 뉴욕 소호에 위치한 Gallery Stendhal에서 개인전을 가졌고, 작년에 이건갤러리에서 개인전을 가지긴 했지만, 많은 상업갤러리들의 초대전 제의를 늘 고사苦辭하곤 했습니다.

안상규 초대전, 마음으로 읽는 그림전
 안상규 초대전, 마음으로 읽는 그림전
ⓒ 이안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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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이리의 본인 스튜디오인 '안상규스튜디오'에 침거하며 꾸준히 작품만을 해 오실 뿐이었습니다.

작업실 옆의 공간에 마련된 개인갤러리에 작품을 공개하면서 누구에게나, 무료로 드나들 수 있도록 그 공간을 개방하셨습니다.

'내 작품을 보고 싶으면 이 공간에 언제든지 와서 보면 되지 않느냐. 상업갤러리에서의 전시는 내게 허영이다. 이 나이에 허명虛名을 쫓아무엇하겠는가?'라는 논리가 늘 전시 제의를 거절하는 이유였습니다.

하지만, 이번 안화백님을 불러낼 수 있었던 것은 두 가지 이유 때문이었습니다.

첫째는 안선생님의 오래된 제자인 김영선선생님의 특별한 간청이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김선생님의 친구이기도 한 갤러리케레스타의 윤선관장님에 대한 배려의 나들이었던 것이지요.

안상규화백님과 갤러리케레스타의 윤선관장님
 안상규화백님과 갤러리케레스타의 윤선관장님
ⓒ 이안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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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번째는 박성남화백님과 함께하는 나들이었기 때문입니다. 박수근화백님의 자제분인 박화백님은 70년대 한국 화단을 누비며 10년의 나이차이에도 불구하고 깊은 우의를 나누었던 분입니다.

200평이나 되는 갤러리케레스타를 반으로 나누어 두 분의 개인전을 동시에 개최했던 것이 주효했던 것입니다. 혼자였다면 외로워서 거절했을 나들이를 박화백님과 함께할 수 있으니 외로움과 수줍음을 덜 수 있었습니다.

호주에서의 20년 가까운 이민생활을 마치고 귀국하신 박성남화백과의 재회를 무엇보다 기쁘했습니다.
 호주에서의 20년 가까운 이민생활을 마치고 귀국하신 박성남화백과의 재회를 무엇보다 기쁘했습니다.
ⓒ 이안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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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선생님은 그간 세 번에 걸쳐 화풍에 큰 변화를 겪습니다. 첫째는 70년대 백색을 주조로 한 작업이었습니다. 캔버스를 흰색으로 채우는 그 작업은 비어있되 충만한 한국인의 정신세계를 대변하는 것이기도 했습니다. 그렇지만 사진을 찍어도 아무것도 나오지 않는 그 흰색의 작품으로 인해 도록에조차 수록될 수 없는 불이익을 겪기도 했습니다.

이어서 한국인의 정신과 생활에 기반한 색인 오방색五方色만을 구사하는 작업을 하셨습니다. 황黃, 청靑, 백白, 적赤, 흑黑의 5가지 색은 우리에게 단순한 색상의 의미를 넘어서 하늘과 땅이기도 했고 세상만물의 아득한 조화로서의 음양이기도 했으며 생명이기도 했습니다.

음양의 기운은 목木ㆍ화火ㆍ토土ㆍ금金ㆍ수水의 오행의 원리를 낳았고, 그것은 다시 다섯 가지의 색으로 대변되며, 그 색은 우주를 포괄하는 방위의 상징이 됩니다. 즉 중앙의 황黃과 동의 청靑, 서의 백白, 남의 적赤, 북의 흑黑이 그것입니다.

또한 이 오방색은 우주만물이기도 합니다. 황黃은 오행 가운데 토土로서 우주의 중심이며 청靑은 목木으로서 만물이 기운생동 하는 봄의 색이며, 백白은 금金으로 진실과 순결이며, 적赤은 화火로서 창조의 색이며, 흑黑은 수水로서 지혜를 대변했습니다.

안선생님은 오랫동안 이 오방정색에 매달렸었지요.

갤러리케레스타의 안상규화백님
 갤러리케레스타의 안상규화백님
ⓒ 이안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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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방정색의 작업에서 스타일을 달리한 작업이 문자 추상화입니다. 한지에 시대의 상징 단어들을 무수히 중첩되게 오방색으로 표현한 다음, 그것을 뒤집으면 그 문자가 가지고 있던 소통의 도구로서의 언어의 의미는 사라지고 조형만 남게 됩니다. 안선생님은 인간의 언어가 사랑을 얘기하는 화목의 도구이기도하지만 서로 충돌하여 불화의 불씨가 되기도 하는 언어적인 기호로서의 문자를 모두 섞어서 조화를 낳는 조형적인 언어로 전환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안선생님의 문자추상화는 곧 화합을 함의含意하는 것이기도 했습니다.

헤이리로 오셔서는 창窓 작업만을 해오셨지요. 캔버스의 바탕에 흰색을 중첩되게 칠하여 마티에르matière를 만들고 짐작할 수 있는 흐릿한 이미지를 그린다음, 다시 분명코 한옥 창호의 문살일 직선의 격자무늬를 얻습니다. 다시 그 위에 꽃 혹은 나비나 벌레 같은 자연에서 떼어낸 한 장면을 선명하게 그려 넣습니다. 창의 나무오리들이 만들어 내는 직선과 결구의 단순함과 번잡하지 않은 색의 조화가 빗어내는 작품이 완성되지요. 높은 연세에도 불구하고 긴 붓으로 서서 긋는 창의 나무개비들이 자로 긋는 선보다 더 바릅니다. 저는 나무오리들이 만드는 그 단순한 결구는 안선생님의 소박한 성품이며 번잡하지 않는 색의 조화는 선생님께서 세상을 바라보는 깨끗한 시선으로 여기고 있습니다.

안상규 초대전, 마음으로 읽는 그림전
 안상규 초대전, 마음으로 읽는 그림전
ⓒ 이안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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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전통창호는 안과 밖의 경계에 있으면서도 결코 그 둘을 가르지 않았습니다. 바람을 적당히 소통케하며 밖의 소리를 우리 귀의 고막鼓膜처름 가늘게 울려 안으로 전했습니다. 그러므로 한국의 창호는 서양의 유리처럼 안팎의 소통을 가로막지 않았습니다. 안선생님은 창을 그리면서 소통을 얘기했던 것입니다.

안화백님은 '백색시리즈', '오방색시리즈', '문자시리즈', '창시리즈' 등 화풍의 변화에도 불구하고 그 분의 작품에 일관하고 있는 주제는 '한국의 정신'입니다.

안상규 초대전, 마음으로 읽는 그림전
 안상규 초대전, 마음으로 읽는 그림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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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의 벗님인 안선생님이 평생의 가장 큰 응원자인 이귀영사모님과 함께 지금의 건강이 계속되어 오랫동안 헤이리의 아틀리에서 모든 사람들과 소통을 계속하시면서 한국의 정신이 아직 잘 벼린 칼날처럼 시퍼렇게 살아있음을 증언해주길 소망합니다.

안상규화백님과 이귀영사모님. 사모님은 반평생을 미술교사로서 후학들을 지도했습니다. 안선생님은 가정생활에 열외되어 평생 그림을 그릴 수 있도록 해준 부인께 감사하곤했습니다.
 안상규화백님과 이귀영사모님. 사모님은 반평생을 미술교사로서 후학들을 지도했습니다. 안선생님은 가정생활에 열외되어 평생 그림을 그릴 수 있도록 해준 부인께 감사하곤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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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상규화백과 박성남화백의 오픈식이 있었던 그날, 갤러리가 있는 동대문과 두 분의 오랜 아지트이기도 했던 인사동에서 우리는 함께 새벽을 맞았습니다.

안선생님의 시아버지처럼 여기는 저의 처와 아들 영대도 그 기쁨에 동참했습니다.

오프닝날, 안선생님의 나들이 축하연은 끝날줄 몰랐고 결국 한국의 창호가 장식된 인사동의 한 생맥주집에서 날을 넘겼지요.
 오프닝날, 안선생님의 나들이 축하연은 끝날줄 몰랐고 결국 한국의 창호가 장식된 인사동의 한 생맥주집에서 날을 넘겼지요.
ⓒ 이안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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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모티프원의 홈페이지 www.motif1.co.kr과 블로그 www.travelog.co.kr에도 함께 포스팅됩니다.



태그:#안상규, #케레스타, #박성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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