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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으로 오랜만에 만져보았다. 여전히 작동이 잘 되어 필름 한 통을 10여 년 만에 샀다.
▲ 펜탁스 수동카메라 참으로 오랜만에 만져보았다. 여전히 작동이 잘 되어 필름 한 통을 10여 년 만에 샀다.
ⓒ 김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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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오랜만이었다. 디지털 카메라에 맛을 들인 후, 필름 카메라를 거의 만진 일이 없다. 아마도 비용 문제가 가장 크게 작용한 것 같고, 차후에는 바로 확인이 가능한 디지털 카메라에 익숙해지다보니 조급증이 들어 필름 카메라를 기피한 듯하다.

디지털 카메라가 표현하지 못하는 느낌들이 필름 카메라에는 들어있다. 그래서 여전히 디지털 세상 속에서도 필름 카메라와 흑백 사진이 명맥을 유지할 수 있는 것이리라.

어제 카메라를 정리하다가 몇 년을 고이 장식품으로 두었던 펜탁스 카메라를 집어들었다.
셔터를 눌러보니 여전히 작동이 잘된다. 필름 사진을 담아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 문구점으로 달려갔다. 1롤에 3500원짜리 36방짜리 필름을 구입해 셀레는 마음으로 필름을 장착하고 사진을 담기 시작했다.

습관처럼 사진을 찍고는 사진기 뒷면을 바라본다. '아, 이건 바로 볼 수 있는 것이 아니지'하면서도 찍을 때마다 바라보곤 한다. 필름 카메라로 사진을 찍고 현상소에 맡기고 찾아오기까지 며칠씩 기다리다가 한 시간 이내에 인화를 해주는 사진관이 등장했을 때만도 얼마나 신기했는데, 이젠 찍는 즉시 확인하지 않으면 답답해 하니 기술의 발달이 기다림의 미학을 깨뜨린 것이 아닌가 싶다.

그러나 현상결과는 이렇다. 필름장착이 잘못된 것이다.
▲ 결과물 그러나 현상결과는 이렇다. 필름장착이 잘못된 것이다.
ⓒ 김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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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론부터 보자. 3.5.mm필름 36장짜리 한 롤 현상과 스캔을 받아 CD에 담아주는 데 5천 원이라고 했다. 이틀 동안 부지런히 찍어서 맡기고도 한 시간을 더 기다려야만 했다. 그러나 결과는 "필름 장착을 잘못하신 것 같은데요"하는 사진관 아저씨의 이야기와 아무것도 담기지 않은 필름이었다.

내심 기대를 하며, 심혈을 기울여 찎었고 필름 사진도 쓸 만하게 나오면 필름 전용 스캐너까지 마련할 계획을 세웠는데 여지없이 무너져 버린 것이다. 사진 인화를 하지 않아도 36장을 찍고 스캔을 받는 데 드는 비용까지 8천 5백원, 그러면 사진 한 장당 순수비용만 236원이니 만만치 않은 비용이다. 사진을 함부로 찍을 수 없는 것이다.

예전엔 몰랐는데, 그럭저럭 카메라들이 많다. 이것말고도 자동필름카메라 몇 개와 고장난 디지털카메라까지 치면 10여 개나 된다.
▲ 필름 카메라들 예전엔 몰랐는데, 그럭저럭 카메라들이 많다. 이것말고도 자동필름카메라 몇 개와 고장난 디지털카메라까지 치면 10여 개나 된다.
ⓒ 김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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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무한 마음으로 집에 돌아와 옛날 구형 필름카메라들을 꺼내보았다. 그리고 현상된 필름뭉치도 찾았다. 스캔을 받는 데만도 한참 시간이 걸리겠지만, 옛날의 추억이 고스란히 들어있는 필름들이니 언젠가 큰 맘 먹고 디지털화해야겠다. 형광등에 필름을 비춰보니 잊어졌던 추억들의 단편이 하나 둘 떠오른다.

사진이라는 것은 참으로 신기하게도 잊혀졌던 순간들을 다시금 현재화시킨다. 필름들을 하나 둘 보다보니 인물사진보다도 풍경이나 사물 같은 것들을 담은 사진들도 제법 많다. 그때는 몰랐지만 어떤 끼가 내 안에 있었던 것이다.

이것저것 카메라들을 다 모아보니 꽤나 많다. 자동 필름 카메라부터 폴라로이드 사진기, 디지털 카메라 등등 10여개 가까이 된다. 사진으로 먹고 사는 일을 하지 않으면서도 제법 많은 사진기를 소장(?)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싶다. 필름 카메라가 고물이 되었다며 몇몇 지인들이 필름 카메라를 갖지 않겠냐고 한다. 물론 공짜로 준단다. "주면 고맙고"했지만, 적극적으로 졸라서라도 확보해 놓아야겠다는 욕심이 든다.

렌즈 속에 들어있는 딸아이
▲ 렌즈 속 세상 렌즈 속에 들어있는 딸아이
ⓒ 김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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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꾸로 보이는 세상, 순간에 보이는 세상을 그리는 신비
▲ 렌즈 속 세상 거꾸로 보이는 세상, 순간에 보이는 세상을 그리는 신비
ⓒ 김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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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무한 마음에 필름카메라 렌즈를 빼서 렌즈 속에 딸아이를 담아본다. 며칠 지나지 않아 다시 필름을 사서 필름 카메라로 사진담기를 도전할 것이다. 필름 카메라가 생소한 아이들은 아빠가 필름 카메라를 들고는 그렇게 찍어대더니만 한 장도 건지지 못했다는 것을 알고는 나의 사진 실력을 의심하기 시작했다.

조금 이미지 구겨지기는 했지만, 필름 카메라도 다시 손에 익으면 제대로 된 사진 건지지 못할까 싶다. 그나저나 아내가 필름값 걱정을 벌써 한다.

디지털카메라가 나오기 전에 작품사진을 담은 사진작가들의 기다림, 그리고 현상하고 인화한 뒤에 느끼는 희열 모두 정겹게 느껴진다. 너무 빠르지 않은 속도, 살아가기에 적당한 속도가 그 정도가 아니었을까 싶다.

찍자마자 확인하고, 마음에 들지 않으면 미련없이 삭제 키를 눌러버리는 조급증을 버리고 진득하게 고민하는 가운데 사물을 관찰하고, 대상이 되는 주제에 대해 이해를 한 후 한 컷 한 컷 정성을 다하는 사진을 담아야 할 터인데 필름 카메라를 다시 진열장에 모셔놓고는 디지털 카메라로 마음껏 찍어대고 무지막지하게 삭제를 해댄다. 그러니 마음에 쏙 드는 사진이 나올리가 없다.


태그:#필름카메라, #펜탁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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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을 소재로 사진담고 글쓰는 일을 좋아한다. 최근작 <들꽃, 나도 너처럼 피어나고 싶다>가 있으며, 사는 이야기에 관심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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