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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금에 절인 배추를 아내가 세 번씩 씻어주고 있다.
▲ 엄동추위에 김장 담구기 소금에 절인 배추를 아내가 세 번씩 씻어주고 있다.
ⓒ 이종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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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집마다 김장하느라 정신없는 요즘입니다. 시장에 가면 배추가 산처럼 쌓여있고, 배추를 실은 차량들이 부산하게 움직입니다. 집집마다 배추를 절이고 시뻘건 김장속을 넣느라 주부들 손길이 한창 주가를 올리는 요즘, 난생 처음 김장 만들기에 제대로 걸려(?)들었습니다.

해마다 김장철이 되면 기껏해야 배추나 날라주고 입맛 다시는 굴김치나 배불리 먹는 게 지금까지 김장의 추억이었습니다. 작년에는 온 집안 식구들이 시골에 모여 김장을 하는 통에 김치속도 조금 넣어 봤지만 제대로 일하기보다는 감독관 흉내 내는 정도였습니다. 남자들은 부엌일에 상관 말라는 어머니 입김 덕이겠지요.

엉겁결에 시작된 김장, 영하의 추운 날씨에 온갖 허드레 일 도맡아

올해는 집 짓느라 김장배추도 심지 못했지만 훈훈한 이웃 인심덕에 배추와 무, 파까지 넉넉하게 얻어 50포기 정도 김장을 담그게 되었습니다. 이런저런 겨우살이 준비 때문에 김장날짜를 고민하던 중, 윗집에서 졸지에 김장을 시작하자 우리도 엉겁결에 김장을 하게 되었습니다. 바로 며칠 전 영하의 추위가 전국을 강타하던 날이었습니다.

배추절임을 마친 윗집 식구들이 칼을 들고 내려와 하는 김에 해버리자고 거드는 통에 시작된 김장은 내게 예전처럼 어슬렁거리는 꼴을 허락하지 않았습니다. 기온이 뚝 떨어지는 오후 늦게 시작된 김장은 내게 배추 이동부터 온갖 보조역할을 요구했습니다. 은근히 짜증도 났습니다. 날씨 풀리면 하지, 왜 이렇게 갑자기 이끌려 하느냐고 아내에게 눈치도 줬지만 이미 배추는 소금단지로 옮겨지는 상태였습니다.

추위에 덜덜 떨며 겨우 배추를 소금물에 절여 놓고 휴식을 취하던 밤 11시경, 아내가 나가서 배추를 뒤집어 줘야 한다고 합니다. 이 추운 밤에 또 나간다니? 정말 짜증도 나고 추워서 나가기도 싫었지만 아내 혼자 나가게 할 수는 없었습니다.

김장 하면 소금물에 절이고 배추 속만 넣으면 되는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랍니다. 소금물에 담근 지 일정 시간 후에 한번 뒤집어 줘야 되고, 내일은 또 세 번은 물에 깨끗이 씻어줘야 한다고 합니다. 뭐가 이렇게 복잡하냐고 혼잣말로 투덜대며 아내의 일을 거들어야 했습니다. 참으로 살 떨리게 추운 산골의 밤이었습니다.

"야~ 이거 김장배추 그냥 먹는 게 아니네"
"이제야 알겠지, 해봐야 안다니까.."
"난 그냥 절이고 속만 넣으면 끝나는 줄 알았지"
"그동안 여자들이 얼마나 고생하는지 이제 알겠어?
"음.. 알 것 같아, 왜 요즘 여자들이 김장 안하는지.."

다음날 아침부터 소금물에 절인 배추의 본격적인 세 번 씻기가 시작되었습니다. 절임통에서 배추 옮겨주고 세 번 씻은 배추 물기 빠지라고 조심조심 걸쳐 말리는 일이 내 몫이었습니다. 혼자서 세 번이나 배추를 씻는 아내 앞에서 힘들다는 내색은 못하고 그저 열심히 도와줄 수밖에 없었습니다.

오전 내내 씻어주고 물기 빠진 배추는 오후 들어서야 실내로 옮겨지고 아내와 이웃마을의 품앗이로 김장속 넣기는 시작되었습니다. 온갖 보조 일을 도맡아 하는 입장에서 고무장갑 낀 아낙들이 시키는 대로 이리 갔다 저리 갔다 그야말로 엉덩이 한 번 붙일 새 없이 움직여야 했습니다.

배추밭부터 10번의 손길을 거쳐 만들어진 김치입니다
▲ 완성된 김장김치 배추밭부터 10번의 손길을 거쳐 만들어진 김치입니다
ⓒ 이종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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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 무렵 50포기 김장이 저장을 위해 각 통으로 들어가고 밖으로 내놓으니 겨우 한숨 돌리는 시간이 됐습니다. 김장이 마무린 된 거실과 수돗가 잔해들을 대충 정리하니 어느덧 산골의 밤은 깊어지고 적막만이 찾아 옵니다. 아주 추운 날에 제대로 김장 한 번 담근 것이지요.

"사람 입으로 들어가는 게 힘 안든 게 어딨어?"

김장김치 만들어 먹는 게 이렇게 힘들 줄은 몰랐습니다. 되돌아보니 이렇게 사람 입으로 들어오기 까지 총 10번의 손길이 들어간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배추밭에서 배추 뽑고, 뿌리 잘라내고, 곁가지 정리하고, 네 조각으로 자르고, 소금물에 담그고, 다시 뒤집어 주고, 세 번 씻어주고, 물기 마르게 하고, 김치 속 넣고, 저장하기까지 어느 것 하나 소홀히 할 수 없는 과정들 입니다. 

김장은 그저 여자들의 몫이고 남자는 배추나 옮겨주고 맛있게 먹어주기만 하면 된다는 고정관념을 한방에 날려버린 올겨울의 김장김치는 더욱 더 소중하고 맛있는 김치가 될 것 같습니다.

김장 담그는 모습을 지켜보던 이웃집 할머니의 말씀이 새롭게 다가옵니다.

"사람 입으로 들어가는 게 힘 안든 게 어딨어?"


태그:#귀농, #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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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을 찬 유학자 남명 조식 선생을 존경하고 깨어있는 농부가 되려고 노력중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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