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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이 꽁꽁 얼어붙었다. 오늘은 올 들어 가장 추운 날이란다. 갑작스런 추위에 두꺼운 옷에 머플러와 모자까지 쓰고 총총걸음으로 출근하는 사람들과 교복치마 밑에 얇은 스타킹을 신고 어깨를 잔뜩 움츠리고 등교하는 학생들을 보았다. 서울은 체감온도가 7.8도란다.


이맘때쯤이면 감기몸살로 병원을 찾는 사람들도 늘어난다. 나는 겨울 내내 감기가 내게 왔다가 갔다가 하여 거의 감기를 달고 사는 편인데, 요즘은 감기 뿐 아니라 신종플루가 유행하고 있어 사람들을 더 움츠려 들게 하고 더 춥게 느껴지는 것 같다.


겨울철 최고의 차, 따끈따끈하고 향기로운 유자차가 생각나는 추운 날이다. 며칠 전 부모님으로부터 부쳐온 택배, 포장을 뜯자마자 노란 유자들이 박스 가득 짙은 유자향이 확 와 닿았다. 앞전에는 고구마 두 박스, 다음날은 유자 한 박스가 차례로 왔다. 택배회사 사람은 덕분에(?) 이틀 동안 우리 집 3층까지 왕복하느라 낑낑댔다.

 

해마다 이맘때면 우리 집엔 택배가 온다. 부엌 가득 부쳐온 사랑이 가득가득 쌓여 부자가 된 것 같다. 작년에도 제 작년에도 그 앞에도 부모님은 김장김치를 비롯해 고구마 유자차까지 부지런히 보냈다. 부모님의 밭에는 고구마를 비롯해 양파, 고추, 깨, 콩 등 많은 농작물이 질서정연하고 사이좋게 이웃해 푸릇푸릇 자란다.


밭가에는 유자나무들과 감나무 몇 그루가 울타리처럼 둘러 서 있다. 유자는 맑은 바닷바람과 온난한 기후에서 잘 자란다고 한다. 거긴 바다를 끼고 있는 농촌이라 유자재배하기에도 안성맞춤인 것 같다. 택배로 부쳐온 유자, 곱디고운 빛깔과 향기는 고향의 것이었다. 부모님의 마음이었다. 유자향이 집 안 가득 향기를 퍼뜨렸다.


추석 때만해도 유자는 진초록으로 단단하게 나뭇가지에 달려있더니 어느새 노랗게 황금색으로 물들였나보다. 많기도 했다. 한 박스 가득한 유자는 부모님의 사랑이 깃든 편지를 받은 것처럼 반가웠다. 그런데 반가움도 잠시 이 많은 유자를 언제 채 썰어 차로 만들까 큰 숙제를 떠안은 기분이었다.

 

해마다 우리 집 뿐 아니라 서울, 부산, 울산, 서창 곳곳에 흩어져 사는 아들 딸네들 집에 고구마며 김장김치며 유자차며 가득가득 택배로 부치느라 바쁜 부모님, 거저 얻어먹기만 했던 것들이다. 김장김치 해서 보낼 때쯤에 유자차를 함께 넣어서 보내주시곤 해서 우린 힘든 것 없이 맛있게, 편하게 그저 먹었다. 당장 시작하려니 부담이 되어 유자를 봉지봉지 넣어 냉장고에 넣었다.


냉장고 문을 열 때 마다 묵은 체증처럼 개운치 않은 마음, 안되겠다 싶어 이틀 만에 소매를 걷어붙였다. 마치 김장철이 다가오면 김장을 해야 할 텐데~하면서 김장을 마칠 때까지는 늘 마음에 부담을 안고 있는 것처럼 유자차를 만들기까지 마음 한구석이 짓눌린 듯 답답했기 때문이다. 오래 놔둘 수도 없었다.


어제 오후에야 팔을 걷어 부치고 숙제를 풀 듯 유자차를 만들기 시작했다. 혼자서 하면 노동이지만 둘이서 함께하면 시간도 잘 가고 즐거운 일이 된다. 종이도 맞들면 낫다. 주일예배를 마치고 오후에 남편과 함께 유자차를 만들었다. 역시 시작이 반이다. 일을 시작하고 보니 일이 착착 잘 진행되었다. 시작하면서 끝을 내다보았다.


큰 소쿠리 가득 쌓인 유자를 보며 텅 비어진 소쿠리 바닥을 생각했다. 유자를 칼로 반으로 갈라서 남편에게 건네주면 남편은 반에 반으로 다시 잘라 씨와 하얀 속살을 빼내 유자 껍질을 내게 주면 나는 유자껍질을 채로 썰었다. 반복적인 일을 둘이서 3시간 하고도 조금 더 되는 시간동안 계속하다보니 어깨가 결리고 손목과 팔 손가락이 아파왔다.


칼을 잡은 오른손의 엄지와 검지 사이 안쪽이 붉어지더니 쓰라렸다. 면장갑을 꼈다. 면장갑을 끼고 했는데도 물집이 생겼다. 시작하고 보니 점점 끝이 보였다. 전혀 진도가 나가지 않을 것 같더니 하면할수록 커다란 소쿠리에 담긴 유자는 줄어가고 유리병 안에는 채 썰어 설탕석어 넣은 유자가 차곡차곡 채워졌다.

 

둘이서 함께 일하니 힘든 줄 모르고 웃음꽃 이야기꽃 피어나고 유자향기 부엌 가득 집 안에 가득 가득 채워져 향기로운 시간이 되었다. 유자차가 다 만들어졌다. '한 잔의 유자차를 마시기 위해, 오늘 유자 썰기는 그리도 힘이 들었나보다' 시를 패러디까지 해 가면서 '조금만 더 하면 됩니다. 끝이 보입니다.' 하면서 유자차를 만들었다. 드디어 다 되었다.


마지막으로 남은 유자를 썰어서 설탕을 섞고 유리병에 넣어 쟁였다. 유리병 가득 든 유자 위에 설탕을 붓고 밀봉했다. 뭐든지 그저 되는 일이 없나보다. 올 겨울을 따뜻하게 나기 위해, 추운 겨울날 최고의 차인 유자차로 감기도 예방하고 몸 튼튼, 마음도 튼튼, 사랑도 따끈따끈 하게 하기위해 유자차를 만든 시간, 유자향기가 몸에 깊이 배였다.


오늘은 양산 5일장이다. 시중에 판매되는 유자 가격을 알아보기 위해 5일장에 나가보았다. 유자를 판매하는 곳은 거의 없었다. 한 군데 발견하고 가격을 물었더니 굵고 색깔이 고운 것은 15개 1만원, 그보다 조금 작은 것은 25개 1만원이라 했다. 부모님이 보내주신 유자는 이 가격으로 치면 10만원도 더 되겠다. 일부러 사 먹으려면 조금밖에 못했겠다. 감사한 일이다.


유자는 비타민 C가 단감의 2배, 레몬보다 3배 정도 더 함유하고 있다고 한다. 예로부터 겨울철 최고의 건강차로 알려져 있다. 유자에는 미르신, 터르피닌 등을 함유하고 있어 노화방지에 효과가 있고 비타민 C의 함유가 많아 기침, 몸살감기, 신경통, 관절염, 소화불량에 좋고 또 피로를 풀어주는 효과가 있다고 한다.

 

본초강목에 따르면 유자는 가래를 삭혀주는 효과가 있고 찬 성질을 가지고 있어 감기로 인해 열이 날 때 도움이 된다고 한다. 신종플루에 매실차 뿐 아니라 유자차도 효과가 있다하니 올 겨울 추위 따뜻한 유자차로 감기를 예방하고 신종플루도 이겨낸다면 금상첨화가 아닐까.


애들은 유자차 만들 거라고 했더니 벌써부터 기다리고 있는 눈치다. 받은 사랑 나도 그저 줘야지, 아들딸에게 유자차랑 고구마랑 보내 줄 생각하니 마음 흐뭇해진다.

 

▼유자차 만드는 법

①향과 색이 진하고 껍질이 울퉁불퉁한 유자가 좋다. 설탕은 유자와 같은 양으로 준비(1:1)한다. ②깨끗이 씻어 건져 물기를 뺀다. ③유자를 반으로 잘라 껍질 안에 든 씨와 하얀 속껍질을 꺼낸다. ④유자껍질을 채 썬다. ⑤채로 썬 유자를 설탕과 섞어(1:1) 보관용기에 담는다.(설탕이 모자라면 곰팡이 생길우려가 있다)⑥보관 용기에 담은 다음, 마지막으로 설탕으로 덮어 밀봉하여 서늘한 곳에 보관한다.


태그:#유자, #유자차, #겨울, #감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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