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벌써 가을입니다. 돌아보니 일년 가운데 벌써 반절을 훌쩍 넘어 9월도 둘째 주입니다. 매년 초에 세우는 계획인데도, 연말이 되면 늘 아쉽고 안타까운 것 가운데 하나가 바로 이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어쩌면 가장 쉬운 일인데도 결과는 늘 못내 모자라고 어려운 이것입니다.

오늘은 제가 좋아하는 피에르 오귀스트 르누아르(Pierre-Auguste Renoir, 프랑스, 1841-1919)의 그림을 통하여 이 "책읽기"에 대한 계획과 마음을 새롭게 다져보려고 합니다. 국제적으로도 명성을 얻었던 르누아르의 평범해 보이는 아래 그림들은 제가 아껴두었던 작품들이기도 합니다. 소녀들을 아름답고 매력적으로 표현한 매우 인상적인 그림입니다.

아래 소개하는 르누아르의 초상 그림은 제가 특히 더 좋아하는 자화상 그림들 가운데 하나입니다. 인상주의(impressionism) 화풍의 농익은 붓질을 느낄 수 있어서 시선을 사로잡는 그림입니다. 그가 사망하기 9년 전인 말년에 자기 모습을 비교적 세밀하게 화폭에 담아낸 작품입니다. 노년임에도 눈에 총기가 가득하며, 젊은 시절에 비해 인자하고 자상한 매력이 한껏 묻어나서 이 가을에 잘 어울리는 멋스러운 그림입니다.

르누아르, 도자기 공장에서 일하며 그림 공부를 하다

르누아르(Pierre-Auguste Renoir, 프랑스, 1841-1919)는 1841년 2월 25일, 프랑스의 리모주(Limoges)에서 양복 장인이었던 집안에서 출생하였습니다. 7명의 자식을 두었던 아버지는 그의 나이 4세 때인 1845년경 가족을 데리고 파리로 이주하여 정착하였으며, 르느와르도 줄곧 파리에서 자랐습니다.

.
▲ 르누아르의 서명 .
ⓒ Renoir

관련사진보기

르누아르는 그런 집안의 내력을 이어받아 어릴 적부터 그림에 재능을 보였습니다. 부모는 아들의 재능을 일찍 알아차리고 13세 때 도자기 공장에 보내어 훈련을 받을 수 있도록 도왔습니다. 이 곳에서 그는 접시에 담긴 꽃다발을 그리는 법과 부채, 그리고 교회에 걸 헝겊 패널에 종교적인 주제를 다룬 그림을 그렸습니다.

르누아르도 그림솜씨가 뛰어났을 뿐 아니라 그림을 그릴 때면 큰 기쁨을 느꼈기 때문에, 이 때 정식으로 그림을 공부하기로 결심합니다. 1854년 도기공방(陶器工房)에 윗 그림을 그리는 직공으로 들어가 일하면서 밤에는 데생을 공부하였습니다. 이 때의 작업이 결국 평생 그가 화가로서의 길을 걷는데 결정적인 영향을 주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몇 년 뒤, 공방 일자리를 잃게 되자 화가가 될 것을 결심하고, 1862년 스물 한 살의 나이에 본격적인 그림 공부를 시작합니다. 19세기 신고전주의 화가 앵그르(Jean Auguste Dominique Ingres, 프랑스, 1780-1867)의 제자였으며, 파리 국립미술학교의 교사로 당시 고전적 누드의 대가로 손꼽히던 화가, 샤를 글레르(Charles Gleyre, 스위스, 1808-1874)의 화실에서 그림 교습을 받습니다. 퐁텐블로 숲에서 만난  쿠르베(Gustave Courbet, 프랑스, 1819-1877)와 들라크루아(Ferdinand Victor Eugène Delacroix, 프랑스, 1798-1863)의 영향을 받았습니다.

글레르의 화실에서 모네(Claude Monet, 프랑스, 1840-1926)와 시슬레(Alfred Sisley, 프랑스, 1839-1899)를 알게 됩니다. 이들을 통해 알게 된 피사로(Camille Pissarro, 프랑스, 1830-1903),  세잔(Paul Cezanne, 프랑스, 1839-1906) 등과 함께 "카페 게르부아의 모임"에도 참가하였습니다. 이 때 마네(Edoward Manet, 프랑스, 1832-1883)와 모네의 영향을 받으며 점차 인상주의를 지향합니다.

1910, Oil on canvas, Private collection
▲ 르누아르의 자화상(Self-Portrait) 1910, Oil on canvas, Private collection
ⓒ Renoir

관련사진보기


이렇게 초기에는 들라크루아, 크루베 등의 영향을 받았고, 1870년 프로이센-프랑스 전쟁에 종군한 후에는 작풍도 점차 밝아졌습니다. 그리하여 인상주의의 기치를 든 1874년 제1회 전람회에는 "판자 관람석(1874)"을 출품하였으며, 계속하여 제2회와 제3회에도 참가하였습니다.

한동안 인상파 그룹의 한 사람으로서, 오늘날 그림들(아래)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더욱더 눈부시게 빛나는 색채표현을 전개하기도 하였습니다. 대작(大作) "물랭 드 라 갈레트(Le Moulin de la Galette, 1876)"와 "샤토에서 뱃놀이를 하는 사람들(1879)"은 인상파 시대의 대표작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인물 중심의 밝은 색채와 구성에 집중했던 르누아르   

1881년 이탈리아를 여행하며, 라파엘로(Sanzio Raffaello, 이탈리아, 1483-1520)와 폼페이의 벽화에서 감동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귀국 후 얼마 동안의 작품은 색감과 묘법(描法)이 크게 바뀌었습니다. 다시 말해서 담백한 색조와 화면 구성에 깊은 의미를 쏟은 고전적인 경향을 띤 작품들로 "목욕하는 여인들(1884-1887)"을 주로 그렸습니다.

그 뒤로는 완전히 인상파에서 이탈하여 독자적이고도 풍부한 색채 표현을 되찾아 원색대비에 의한 원숙한 작풍을 확립하였습니다. 1890년대부터는 그림에 대한 더욱 강한 의욕을 보였습니다. 꽃, 어린이, 여성상을 많이 그렸는데(아래), 특히 "나부(裸婦, 1888)"는 빨강이나 주황색, 황색, 초록이나 청색 따위 엷은 색채로 부드럽고 관능적으로 묘사하였습니다.

한편 66세 때인 1906년에는 마이욜( Aristide Maillol, 프랑스, 1861-1944)과 사귀면서 그의 영향을 받아 조각작품을 창작하기도 하였습니다. 그러던 1919년 12월, 79세 나이로 카뉴에서 사망하였습니다. 대표작으로는 루브르 미술관에 소장되어 있는 "목욕 하는 여인들", "피아노 앞에 앉은 소녀" 등을 비롯하여 "목욕하는 여자와 강아지", "관객석", "우산", "테라스에서", "나부" 등이 있습니다.

1875-1876. Oil on canvas. Musee d'Orsay, Paris, France
▲ 책 읽는 여인(Woman Reading) 1875-1876. Oil on canvas. Musee d'Orsay, Paris, France
ⓒ Renoir

관련사진보기


1886, Oil on canvas. Stadelsches Kunstinstitut und Stadtische Galerie, Frankfurt, Germany
▲ 책 읽는 어린 소녀(Young Girl Reading) 1886, Oil on canvas. Stadelsches Kunstinstitut und Stadtische Galerie, Frankfurt, Germany
ⓒ Renoir

관련사진보기


위 두 그림은 르누아르의 작품 가운데, 아마도 우리에게 가장 익숙하고 친근한 그림일 것입니다. 젊은 시절 르누아르의 화풍과 특징을 잘 보여주고 있는 대표작들입니다. 또한 학창시절에 어설프게나마 저도 스케치 그림으로 즐겨 그려보던 추억의 작품이기도 하며, 그래서 무척 더 애착이 가는 그림입니다. 

기쁨과 환희에 찬 독서 삼매경을 포착한 그림

인상파 시대에 활동했던 르누아르의 작품들을 살펴 보면, 모네와 같은 다른 인상파 화가들과 같은 자연에 대한 묘사보다는 인물, 특히 여인을 주제로 한 명작들이 많이 남아 있습니다. 특히 그가 그린 대부분의 풍경화에서도 여인들이 등장하며, 인물들을 그 풍경화의 주인공으로 묘사하고 있습니다.

위 두 그림도 그러한 작품들 가운데 하나입니다. 르누아르의 초기 작품에서 볼 수 있는 전형적인 특징들을 잘 보여줍니다. 여느 인상파 화가들은 햇빛 속에 펼쳐진 '대자연'을 주제로 삼았으며, 밝은 색조를 강조하면서 자연의 빛깔을 추구해 나갔던 반면, 르누아르는 주로 '인물'을 중심으로 빛의 효과를 강조하고 있는 것이 그 나름의 두드러진 특징입니다.

그가 인물을 중심으로 빛의 효과를 탐색하고 있음을 위와 아래 그림에서도 확인할 수 있을 것입니다. 창 밖에서 흘러 들어오는 부드러운 햇살을 이용하여 젊은 아가씨들의 즐거운 독서 삼매경을 경이롭게 잘 포착해내고 있습니다. 얼굴 한 쪽에 반영된 햇빛이 밝고 고와서 싱싱한 생명감을 느끼게 하며, 관객을 그림 속으로 초대하여 책읽는 기쁨과 환희를 공감하게 만듭니다.

1883, Pastel on paper, Private collection, Germany
▲ 책을 읽고 있는 아이들(Reading Children) 1883, Pastel on paper, Private collection, Germany
ⓒ Renoir

관련사진보기


1872, Oil on canvas, Private collection
▲ 신문을 읽고 있는 모네(Claude Monet Reading A Newspaper) 1872, Oil on canvas, Private collection
ⓒ Renoir

관련사진보기


위 두 그림은 르누아르의 그림으로는 많이 알려진 작품은 아닐 것입니다. 그러나 첫 번째 그림은 자매로 보이는 두 소녀가 머리를 맞댄 채 책을 읽고 있는 다정한 모습이 참 정겹고 따듯하게 묘사되었습니다. 이 가을 날에, 햇빛 바른 따듯한 처마 밑에 나란히 붙어 앉아 책을 읽는 모습 같기도 하고, 어린 시절을 추억하는 듯한 감흥이 느껴지기도 합니다.

종이 활자를 읽는 따듯한 마음과 감흥이 전해지는 그림

아래 두 번째 그림은 담배 파이프를 문 채 신문을 읽고 있는 모네의 여유로운 한 때를 시원하고 신선한 색채감으로 묘사하고 있습니다. 특히 파이프의 담배 연기에 살아 흔들리는 듯한 운동성을 부여하고 있어서, 시간의 흐름과 생명력을 실감케 하는 그림입니다. 또한 매우 사실적이어서 르누아르가 오랫동안 모네의 자태와 손동작, 생김새 등 그의 습관을 면밀히 관찰해 왔음을 알 수 있습니다.

실제로 모네와 르누아르의 교류와 소통은 더 각별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이 외에도 르누아르가 남긴 작품 가운데에는 "아르장퇴유 정원에서 그림을 그리는 모네"와 같이, 모네가 모델로 등장하는 그림을 몇 점 더 발견할 수 있습니다. 이로써 서로의 창작에 깊은 영향을 주고 받았으며, 생전에 서로 잦은 소통으로 그림에 많은 영향을 주고 받았음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프랑스 화가였던 그의 초기 작품들을 살펴보면, 특히 반짝이는 색채와 빛으로 가득 차 있으며, 현실 생활의 단편을 그린 전형적인 인상주의 그림들입니다. 그러나 1880년대 중엽부터는 인상파와 결별하였음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초상화나 인물, 특히 오늘 소개하는 여인을 소재로 한 위 그림들에서 보면, 조금 더 엄격하고 형식적인 기법을 적용하고 있습니다.

르누아르의 말년에는 "목욕하는 여인들(1898-9)"처럼 누드화를 많이 그렸습니다. 이런 후기작품에서 보면, 고전 미술에 대한 관심과 인상주의의 붓질을 결합해 햇빛에 따라 변화하는 여인의 피부색을 묘사합니다. 그는 모델의 아름다움에서 그림에 대한 영감을 얻었으며, 빛을 잘 받는 피부의 여인을 가정부로 고용해 모델로 삼기도 하였습니다.

르누아르만의 독특한 화풍이 기대되는 말년의 누드 그림들

그의 누드 그림은 18세기 로코코 회화의 풍부한 관능성을 계승하고 있습니다. 일레르 제르맹 에드가 드가(Hilaire Germain Edgar Degas, 프랑스, 1834-1917)의 작품과는 좋은 대조를 이루며, 르누아르의 누드는 실제와는 그다지 관련이 없는, '르네상스의 전통'을 계승하는 성적인 대상들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르누아르의 목욕하는 모습을 담은 이런 누드 관련 그림들도 기획 중에 있으므로 기대바랍니다.

위 르누아르의 그림들을 볼 때, 읽고 있는 그 것이 활자로 된 종이책이든, 그림이 주가 된 만화나 그림책이든, 또는 그것이 신문이든 잡지책이든 아날로그적인 종이책은 늘 곁에 둘 수 있어 좋습니다. 또 혼자이든 형제, 재매나 친구와 함께이든 늘 손에 가지고 다닐 수 있고, 마음의 풍요와 여유까지 함께 안겨주는 것이 바로 책이 아닌가 싶습니다.

또한 불과 몇 년 전과 비교해 보면, 책을 읽는 풍경도 이전과는 많이 달라졌음을 실감합니다. 컴퓨터나 인터넷 사이트를 통해서 영상이나 움직이는 그림으로도 읽을 수 있습니다. "실용주의 이야기"란 블로그를 꾸리고 계신 한 독자는 하루쯤 휴가내어 뒹굴며, 실컷 책을 읽고 싶다고도 하셨고, '동대문구정보화서도관' 블로그를 꾸리시는 한 독자는 한 달에 하루만이라도 독서휴가를 받고 싶다는 희망을 얘기하십니다.

저도 올 독서 목표를 돌아보면서 그것이 무엇이든 디지털 화면이나 아날로그적인 활자를 통하여 올 남은 한 해에도 욕심을 내볼까 합니다. 오늘 르누아르의 그림을 통하여 올 연말의 후회없는 "책읽기"를, 다양하고 풍요로운 책읽기를 다짐하고 결심해 봅니다. 이 여름과 가을의 사이에서 활자의 풀숲을 뒹굴거나 산책하듯 맨발로 걸어보는 것은 어떨가요.

* 관련 전시 안내 :
전시명 : 행복을 그린 화가-르누아르전
기   간 : 2009년 5월 28일 ~ 9월 13일
장   소 : 서울시립미술관 서소문 본관
문   의 : 1577-8968
티켓가격 : 성인 12000원, 청소년 10000원, 어린이 8000원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뉴스앤조이와 초하뮤지엄.넷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르느와르의 아래 그림들과 소개, 약력은 "Olga's Gallery(르누아르)"와 "The Art Renewal Center(르누아르)", "브리태니커사전"과 "Auguste Renoir Gallery", "towooart", 그리고 "천년의 그림여행(스테파노 추피 지음, 예경)", "주제로 보는 명화의 세계(Alexander Sturgis 편집, Hollis Clayson 자문, 권영진 옮김, 마로니에북스)"의 내용을 참고하였으며, 번역하여 종합, 정리한 것입니다.



태그:#르누아르, #그림, #예술, #인상주의 , #프랑스, #미술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