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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글보글 끓고 있는 추어탕
 보글보글 끓고 있는 추어탕
ⓒ 정현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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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오늘(11일) 추어탕 먹으러 가자. 내일모레가 말복이잖아."
"그래 그거 먹으러 가자."

친구들과 점심으로 추어탕을 먹으러 갔다. 비가 쉬지 않고 오는 날이라 아주 제격인 듯했다. 사람들이 제법 북적인다.

"이왕이면 튀김도 시켜먹자."
"그런데 튀김 속에 들어간 것이 진짜 미꾸라지일까?"
"따지지도 묻지도 말고 그냥 먹어. 따지면 나와서 먹을 거 하나도 없어."
"맞다 맞어."

그렇게 시끄럽더니 먹느라고 조용하다. 튀김은 눈 깜짝 할 사이에 한 접시가 비워졌다.

미꾸라지 튀김
 미꾸라지 튀김
ⓒ 정현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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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이렇게 더운 여름날 집에서 꼭 말복을 차려야 해? 불옆에 있으면 맛있는 거고 뭐고 짜증만 나. 누가 이런 날을 만들어 놨는지."
"그렇게 이름 있는 날이라야 가족들도 모이고 별식도 해먹지."

"우리 조상들이 지혜롭긴 한 것 같아. 이 더운 여름에 그냥 지내면 더 더우니깐 조금이라도 재미있게 지내라고 만든 거 아닐까? 그냥 맹숭맹숭 한 것보다 초복, 중복, 말복 따지다 보면 여름이 지루할 새 없이 금세 지나가는 것도 같고. 난 그렇게 생각하니깐 괜찮더라."
"그래 그렇게 생각해야겠다. 어차피 있는 날이니깐. 내가 이렇게 불평한다고 그런 날이 없어지는 것도 아니고."

"우리 안주도 좋으니깐 백세주 하나 시키자. 비도 오는데."

친구들이 술은 많이는 못해도 조금씩 즐기는 편이다. 9명이 백세주 한 병이 금세 동이 나고 만다. 하여 한 병 더 시켰다. 그날은 비가 와서 그런가 친구들이 술이 맛있다고 하며 함박웃음을 웃는다. 나이가 들어가면서 부끄러움도 점점 퇴색해 가는 것 같기도 하고. 그래도 그렇게 편안하게 변해 가는 친구들의 모습이 싫지 않다.

추어탕에 빠질 수 없는 산초
 추어탕에 빠질 수 없는 산초
ⓒ 정현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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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어탕
 추어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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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안방에 있는  달력을 보니깐 13일에 빨간 매직 팬으로  동그라미가 그려져 있었다. 난 그날이 무슨 날인가 보았더니 말복 날이었다. 어찌나 기가막히던지. 남편의 생각이다. 그런 날은 정말 철저하게 따지니깐 어떤 때는 내가 피곤할 때가 있다.

그 동그라미를 보고 이번 말복에는 깜빡 잊어 버린 것처럼 그냥 지나가 볼까? 하는 생각이 잠시 들었다. 그런데 그날 그 친구한테 그런 말을 듣고 나니 마음이 달라졌다. 일년에 몇 번씩 있는 것도 아니고 말복은 그해 여름에 딱 하루 있는 건데. 그렇다면 돌아 오는 말복에는 무엇을 해주어야 잘 먹었다고 소문이 날까? 생각이 바뀌니깐 마음도 그다지 나쁘지 않았다.

추어탕에 산초, 후추가루를 듬뿍 넣어 먹으면서 생각했다. 또 삼계탕? 아님 남편이 좋아하는 오리 로스구이? 친구들에게 물어봤다.

"너희들은 말복에 뭐 해 줄 거니?"
"글쎄 뭘 해 줘야 하나? 몸보신에 최고인 삼계탕이나 해줄까?"

친구들과 말하는 사이에 생각났다. 장어구이! 요새 마트에 가면 장어를 많이 팔고 있으니 그거나 해줄까? 아마 모르긴 해도 남편의 입이 크게 벌어질 것같다. 그러고 보니 여름에 삼복이 있고 영양식을 만들어 먹는다는 것이 힘든 것만은 아닌 듯하다. 친구들과 추어탕에 백세주 한잔하며 '가족들에게 무엇을 해주어야 좋아할까?'하는 행복한 고민에 빠질 수 있으니.


태그:#말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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