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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지영 "우리에게 정말 필요한 것은 공감"
ⓒ 이종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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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은 인류에게 절대적으로 필요한 습성입니다. 그래서 인류는 '이야기'를 통해 그것을 아주 어릴 때부터 오랫동안 훈련해 왔지요. 여러분은 본인의 인생을 울린 사람 5명의 이름을 댈 수 있습니까?"

 

공지영씨의 소설에 '공감'을 하고 모여든 독자들은 귀를 쫑긋 세웠다. 이들은 수능을 100일 앞둔 고3 학생부터 딸의 손을 잡고 온 어머니, 다정해 보이는 커플, 반백발의 중년, 고급 DSLR카메라로 연신 셔터를 누르던 건장한 청년, 전동 휠체어를 탄 장애인까지, 나이도 생김새도 모두 제각각이었다.

 

전혀 연관성이 없어 보이는 이 사람들을 한데 불러모은 것은 최근 소설 <도가니>의 작가 공지영씨였다. <도가니>는 교장과 일부 교사들이 청각장애 학생들을 성폭행한 광주 인화학교 사건에서 모티브를 얻은 작품이다. 공지영은 <도가니>를 쓰게 된 이유를 관련 기사 속 한 줄, '청각장애인들의 울부짖는 소리'가 자신의 귓가에 기괴하게 맴돌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강연이 시작되고, 공지영씨의 이야기가 시작되자 이들은 공지영씨가 이야기하는 '공감의 힘' 도가니 속으로 빠져들었다.

 

최근 소설 <도가니>(창비 펴냄)을 펴낸 공지영씨는 29일 저녁 서울 상암동 <오마이뉴스> 스튜디오에서 열린 '저자와의 대화'에서 독자 70여 명과 만났다. 이날 저자와의 대화는 인터넷서점 알라딘과 창비 출판사가 주최하고, 오마이TV를 통해 생중계됐다.

 

"인류의 조상은 도태된 동료를 버리지 않고, 다친 동료를 구했습니다. 위험 상황에서 자신을 희생하면서 감정이입을 했던 종이 살아남아 우리가 된 것입니다. 인류는 '공감'의 유전자를 강화시키며 지금까지 번영해 올 수 있었습니다."

 

공지영씨는 '공감' 예찬론을 폈다. 그는 인간이 미(美)를 추구하는 것과 같이 인류의 생존과 번영에는 '공감'이 필수적이었다고 말한다. 인류가 다음 세대에게 '공감'을 교육시키기 위해 선택한 것이 '이야기'이며, 지금의 온갖 문학·연극·영화·예술들이 이야기에서 잉태되었다는 것이다.

 

그는 한때, 다른 사람들보다 감수성이 풍부한 자신이 싫었다고 고백했다. 하지만 그는 스스로를 독려했다. 감정을 표현하라고, 생명력이 넘치는 것이라고.

 

"생기 넘치는 아이들은 감정과잉이기 때문에 사랑스럽습니다. 저는 이 나이에도 울고 웃을 수 있어 기쁩니다. 살아 있는 나를 만끽할 수 있으니까요."

 

'쏘쿨(so cool)'한 세상, 우리에겐 지금 뜨거운 '공감' 이 필요하다

 

공지영씨가 우려하는 것은 소통이 단절된 채 "공감 못하는 사회"로 가고 있는 현실이다.

 

"제가 어릴 때만 해도 가난한 집 아이들과 부잣집 아이들이 한 동네, 한 학교에서 뒤섞여 놀았어요. 이제는 가난한 집 아이들과 부잣집 아이들은 서로 얼굴을 마주칠 일도 없어요. TV에 나오는 단편들이 서로를 이해할 수 있는 전부입니다. 불우한 환경의 범죄자들은 부자들은 너무나 행복하기 때문에 상처받아도 괜찮다는 악의를 갖습니다. 대다수가 서민인 대중들은 그들의 말도 안 되는 범행동기에 은밀히 동조해주지요. 소통의 부재입니다. 가난해도 행복할 수 있다는 것을 아무도 인정하려 하지 않듯이 돈이 많다고 행복하지 않다는 것을 이해하는 사람들이 너무도 적습니다. 앞으로 공감 능력이 훼손된 사이코패스들은 계속 나올 겁니다. 아무도 서로를 이해하려 하지 않기 때문에 우리 사회는 점점 공감을 못하고 소통이 안되는 쪽으로 치닫고 있습니다."

 

공지영씨는 사회에 영향력 있는 사람들이 보다 '공감'하는 연습을 하기를 바란다고 했다.

 

"정치가·의사·판사·검사·교사들은 참 중요한 사람들이에요. 사회에서 중추적인 역할을 하면서 내 행복과 불행을 심각하게 좌우하니까요. 그런데 이런 중요한 분들이 저를 만나면 당당하게 말씀하세요. '공지영씨, 우리 아내와 딸이 공지영씨 소설을 참 좋아해요. 난 죄송하게도 공지영씨 책 하나도 안 읽어봤지만요. 대신 저는 철학과 경제학 책을 많이 읽습니다. 하하하!'

 

소위 '쿨(cool)'할수록 요직을 차지하기 쉬운 세상입니다. 그래도 소설가 앞에서 자기는 소설을 안 읽는다고 자랑스레 이야기하는 것은 굉장히 소름끼치는 일입니다. 이 분들이 우리 아이들의 삶에 현실적으로 관여하는 사람들인데, 안타깝게도 힘을 쓸 수 없는 사람끼리만 계속 책을 읽고 공감하고 있거든요."

 

공지영씨는 연세대 의대에서 문학이 예과 필수 교양과목으로 자리잡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며, 사법연수원에서도 문학이나 예술 과목을 필수로 한다면 나라의 품질을 높이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이라며 밝게 웃었다.

 

"댐을 무너뜨리는 것은 다이너마이트가 아니다"

 

그렇다고 해서 공지영씨가 영향력 있는 사람들에게만 '공감'이 필요하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그로서는 처음으로 인터넷에 연재한 소설 <도가니>에는 하루에도 몇 십, 몇 백 개의 댓글이 달렸다고 한다. 진실에 '공감'해주는 평범한 사람들의 응원들이 있어 의미 있는 변화가 이루어지고 있다고 공지영씨는 말한다.

 

"다이너마이트 몇 개로 댐은 무너지지 않습니다. 다만, 우리가 균열시킨 그 틈으로 물이 댐을 무너뜨리는 것입니다."

 

그는 어느 흑백영화의 대사를 인용해 나의 작은 공감이 소통을 통해 우리의 공감이 되어 세상을 좀 더 좋은 쪽으로 변화시킬 수 있다고 말했다.

 

"작가 지망생들에게도 말해주고 싶어요. 꾸준한 글쓰기, 많이 읽기도 중요해요. 예쁜 글 말고, 좋은 글을 쓰기 위해서는 삶을 공감할 줄 아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해요. 책상머리에서 세상에 공감할 수 있나요? 나가서 돈 한번 벌어봐요. 그러면서 돈이 세상을 어떻게 움직이는지 나를 어떻게 변화시키는지도 알 수 있으니까요."

 

이날 공지영씨의 강연을 들은 박현화(장애여성네트워크 기획팀장)씨는 다소 떨리는 목소리로 공지영씨에게 인사를 했다.

 

"저는 <도가니>와 비슷한 인권유린의 현장 속에 살았던 경험이 있습니다. 지적장애아들을 말로, 또 물리적으로 폭행하는 원장 부부의 눈빛이 생각나 몇 번이고 책 읽기를 쉬었습니다. 지금 장애 운동을 시작한 지는 2년이 되었습니다. <도가니>를 읽으면서 이런 일이 다시 일어나지 않도록 열심히 힘쓰겠다고 다짐했습니다. 작가님께 고맙단 말 꼭 하고 싶었습니다."

 

1시간 넘게 뜨거운 공감 속에서 진행된 공지영씨와 독자들의 만남은 박수와 함께 끝이 났다. 공지영씨의 진실과 희망에 대한 이야기는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다. 또한 독자들은 그의 글을 읽으며 소통하고 공감하길 바랄 것이다.

 

"댓글로 사람에게 희망을 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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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기에 머리감고 고민했다. 소설을 쓰겠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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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공지영, #저자와의 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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