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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을 한편 보고 왔다. 필자는 <카르멘>을 3년 전 본 뒤 처음 이런 공연을 보는 거라 설렜다. 공연이 8시 시작이라, 같이 보기로 한 동료 분들을 기다렸다. 장소는 두산아트센터 연강홀. 속속 동료 분들이 도착하고 관계자에게 이 공연에 대해 설명을 들은 뒤, 시계를 보며 공연장으로 들어갔다. 그때까지는 뮤지컬을 본다는 것만 해도 설렘이 가시지 않았다. 객석에 앉아서 무대구성에 대해 '특이하다'라는 이야기를 나눌 때쯤 공연이 시작되었다.

맨 처음 여주인공 벤들라(김유영 분) 가 노래하는 것으로 시작된다. 아마 당신이 공연을 보게 된다면 처음에 듣게 되는 이 노래는 공연 초반부에서 중반부까지 계속 듣게 될 것이다. 그리고 노래를 들어보면 굉장히 심오함을 알게 된다.

'엄마는 날 낳아......' 로 시작하는 이 노래는 벤들라의 호기심에도 부합하는 가사이다. 나중에 자신의 비극적 운명을 암시하기도 하지만. 벤들라는 어머니(이미라 분)에게 '황새이야기를 더 이상 믿지 않아'라고 말하며 남녀 간에 임신은 어떻게 이루어지는지 말하여 달라고 한다. 여기서 우리현실과 닮은 모습이 나오는데, 무조건 성적인 것을 은폐하려는 풍조. 개방적이지 않은 성 문화를 비꼬는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다. 이 모습은 뮤지컬 중에서도 비극의 복선이 된다.

벤들라가 어머니에게 궁금증을 제기하는 모습
 벤들라가 어머니에게 궁금증을 제기하는 모습
ⓒ 안태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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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장면이 지나고 나면 '남자주인공들'과 친구들이 나온다. 이 뮤지컬의 배경을 아까 관계자에게 19세기 독일 청교도학교라고 들었기에 이해가 되었다. 기본적인 배경은 알고 보아야 이해를 좀 더 도울 수 있을 것이다. 딱딱한 학교생활, 엄격한 청교도적 윤리. 억압된 학생들은 우리의 현재와 정말 닮아있다.

남주인공 멜키어(김무열 분)는 또 다른 남주인공 모리츠(조정석 분)가 잘못 외운 것을 덮어주기 위해서 교장(송영창 분) 에게 '창의적인 해석'을 이야기한다. 하지만, 모리츠가 잘못되었다고만 말한다. 게다가 권위적인 회초리질로 멜키어를 제지한다. 이쯤에서 속에서 하고 싶었던 말이 노래로 폭발한다. '엿 같은' 이런 말로 분노를 표출하는데, 10대에게는 이렇게밖에 분노를 표출할 길이 없다. 비단, 경박하기 만한 표현방법은 아니다. 필자는 그 노래가 끝날 때 '자유'를 느꼈다. 다른 사람들도 별반 다르지 않았던지, 모두 박수를 쳤다.

멜키어(김무열 분)의 모습
 멜키어(김무열 분)의 모습
ⓒ 안태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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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그머니 이야기는 본격적으로 사춘기 때 가장 큰 문제인 性적문제를 건드리기 시작하는데. 모리츠가 수치스러운 상상이 자꾸 떠올라 잠을 이루지 못한다고 하자 멜키어가 모든 것을 다 알려주게 된다. 하지만, 멜키어가 쓴 글을 읽은 모리츠는 더욱 혼란에 빠진다. 평소에는 알지 못했던 것. 누군가 제대로, 정확히 짚어주지 않은 문제. 어쩌면, 모리츠가 혼란에 빠지는 건 어떤 외딴 나라에 갑자기 아무런 준비도 없이 떨어진 것과 같을 것이다.

나침반도 없고, 이정표도 없는 상황. 이야기 속 상황만은 아니다. 우리나라 유교윤리 아래 性적인 영역은 청소년이 함부로 입에 올려서는 안 되는 문제이므로 청소년기에는 알려주지 않다가. 어른이 되어서 갑자기 덜컥 알려주는 것이다. 이 뮤지컬은 그 문제를 잘 꼬집는다. 

뮤지컬이 계속 전개되어 마르타(백은혜 분)가 아버지에게 폭행당해 자국을 보여주는 장면이 나온다. 불쌍하다는 느낌도 들었지만, 한편으로는 화가 나기도 했다. 청소년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농락당하며 폭행당해도 자기스스로 무언가 할 수 있는 힘이 없어서 아무 소리 못하는 나약한 청소년의 모습.

화나는 마음을 억누르고 계속해서 보고 있는데 황당한 감정도 느낄 수 있게 되었다. 되려, 벤들라는 마르타가 맞는 것을 부러워하고 있던 것이다. 이 장면은 처음 본 사람에게는 이해가 되지 않을 수도 있다. '어떻게 맞는 걸 부러워할까?' 라는 생각이 들것이다. 하지만, 자세히 보면 부모가 자신을 다 잡아 주었으면 하는 청소년의 생각이 들어있다. 청소년은 주체적인 존재이기도 하지만, 아직은 모르는 게 많기 때문에 삶의 이정표 같은 것이 필요하다. 그런 맥락에서 본다면 부모의 훈육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훈육해서 바로 잡지 않는다면 청소년들에게는 인생에 있어 치명타가 될 수도 있다.

그 장면이 끝난 후, 인터미션 20분간 뮤지컬의 감흥에 휩싸여 있는 필자를 발견하게 되었다. 2부, 그 시작을 알리면서 모순되는 장면이 나온다. 교장이 윤리적 훈화를 하고 있는 앞에 멜키어와 벤들라는 성관계를 하고 있다. 어른들의 관점으로는 윤리적 모순일 수 있다.

그러나 생각해 보자. 혹시 '시선 1318' 이라는 영화를 아는가? 그곳에서 나오는 대사 중에 '고등학생은 왜 안 되냐? 그럼, 능력 없는 대학생은 된다는 말이냐' 라는 식의 대사가 나오는데 이런 것에 비추어 본다면 성행위는 청소년과 성인 할 것 없이 음의 영역이 아니라 양의 영역으로 끌고 나와서 성행위에 대한 관념을 바꾸어야 한다. 고등학생이 성행위를 하는 것이나, 능력 없는 대학생, 아니 성인이 성행위를 하는 것은 똑같은 일임을 알아야 할 것이다. 그걸 알았다면 윤리적으로 잘못되었다고 왈가왈부 하지 못할 것이다.

장면은 흐르고 흘러, 모리츠가 낙제를 해서 아버지에게 뺨을 맞는 장면이 나온다. 이 장면에서 부모님들은 그렇지 않지만 사회가 계속해서 공부 아니면 길이 없다는 듯이 말하며 뺨을 날리는 현실과 너무나 닮아있는 장면이었다. 이 장면이 지나고 모든 관객의 눈시울을 적시는 장면이 펼쳐진다.

모리츠가 자살하려하자 일세(김지현 분)가 갑자기 나타나 모리츠와의 추억을 이야기한다. 하지만, 마음을 굳힌 모리츠는 공부해야 한다는 핑계로 일세의 마음을 뿌리친다. 일세가 떠나고 난 뒤 '너무 어두워......' 라는 말을 남기고 자살하고 만다. 관객들은 자신들의 제단에 꽃을 던지는 느낌이 들었는지 눈물이 절로 쏟았고 그 배우의 감정에 몰입하게 되었다.

그 후, 교장은 모리츠가 죽은 원인이 멜키어에게 있다고 보고 멜키어가 모리츠에게 써주었던 성적 호기심에 관한 글을 집중 추궁한다. 여기서 ♬ Totally Fucked 가 나왔다. 이 노래는 정말로 가슴이 트이는 느낌이었다. 사춘기의 혼란을 잘 표현한 노래가 아닌가 싶다. 이 노래가 끝나고 멜키어는 소년원에 가게 된다. 벤들라에게 보냈던 편지에서 멜키어가 벤들라를 임신시킨 것을 알아버렸기 때문이다.

그러나 정작 당사자인 벤들라는 임신하게 된 것을 모른다. 인상적인 대사는 "왜 전부 가르쳐 주시지 않았어요?" 이었다, 그 대사가 끝나자 벤들라의 엄마는 뺨을 때린다. 이 행동에서 어른들의 답답함이 드러난다. 무조건 은폐해서 되는 것이 아니다. 은폐하면 청소년들에게는 이렇게 비참한 결과를 가져올 수 있는 것이다. 그러고선 청소년에게 모든 잘못을 떠맡기는 건 잘못된 생각 아닐까?

Totally Fucked의 마무리. 시원한 느낌.
▲ Totally Fucked의 마무리 Totally Fucked의 마무리. 시원한 느낌.
ⓒ 안태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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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장면 후로 소년원 장면에서 멜키어는 그제야 벤틀라의 임신사실을 알게 된다. 소년원에서 탈출한 멜키어는 약속장소로 가는데, 우연히 벤들라의 무덤을 보고 미친 사람 마냥 충격에 휩싸이게 된다. 어른들의 논리대로 성을 다루다 보면 문제가 이렇게 극한으로 치달아 청소년에게 인생을 살 기회마저 포기하게 만든다. 마지막은 일세의 노래로 끝이 난다. 사람들은 뮤지컬의 막이 내리자 앞 다투어 박수를 쳤다. 진심으로 돈을 내고도 그보다 더 갚진 것을 받은 느낌이었다. 좋은 '산 성교육이 될 수 있겠고 , 학교에서 단체관람을 해도 유익한 뮤지컬이 되지 않을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왼쪽부터 모리츠(조정석 분), 벤들라(김유영 분), 멜키어(김무열 분)
▲ 세 주인공 왼쪽부터 모리츠(조정석 분), 벤들라(김유영 분), 멜키어(김무열 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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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난 뒤에 기자단으로써 리뷰 인터뷰를 했다. 쑥스러웠지만 정말 좋은 뮤지컬이었기에 사람들에게 보러오라고 권유하고 싶었다. 최선을 다해서 인터뷰를 하고 관계자분과 뒷이야기를 한 뒤에 감사하다며 인사를 하고 일행들과 헤어졌다. 춘천에서 올라온 보람이 있는 하루였다.


태그:#스프링 어웨이크닝, #청소년, #사춘기, #청소년단체협의회, #성교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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