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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과 독서취향이 비슷한 사람은 한눈에 알아볼 수 있다. 오마이뉴스에서 서평기사를 쓰고 있는 김준희 기자와 본인 역시 장르소설 중 추리소설을 좋아한다는 공통점이 있다. 이번에 신간된 일본작가 누쿠이 도쿠로의 '증후군 시리즈'를 두 기자가 나누어 읽었다.

김준희 기자는 <유괴증후군>과 <실종증후군>, 나는 <살인증후군>을 맡았다. 같은 작가의 시리즈를 읽고 난 뒤 그 느낌과 일본추리소설에 대한 생각, 평소 자신이 생각하는 추리소설의 매력 등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어보았다. 기사는 주로 서면과 전화로 이루어졌다. <기자 주>

안(안소민 기자): 우선 김기자가 읽은 <유괴증후군>과 <실종증후군>에 대한 간략한 소개를 해준다면.

김(김준희 기자): <실종증후군>에서는 자식에게 많은 기대를 거는 부모, 그런 부모로부터 멀어지기 위해서 스스로 실종되는 젊은이들이 나온다.  <유괴증후군>에서는 자신의 우월함을 증명하기 위해서, 타인을 조종하기 위해서 이유없이 유괴를 행하는 사람들이 등장하고. 그리고 이들은 별 생각없이 타인에게 잔인한 폭력을 행사한다.

증후군 시리즈 1탄- 실종 증후군
 증후군 시리즈 1탄- 실종 증후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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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 <살인증후군>은 '정의'라는 이름으로 사람을 죽이는 것이 과연 정당한가,라는 의문을 제기하고 있는 소설이다. 부당한 죽음에 복수하기 위해 혹은 자신의 아들을 살리기 위해 살인을 하게 되는데 결국 이들 살인은 또 다른 살인을 부른다.

결론은 이거다. '살인은 살인으로 해결할 수 없다'는 것. '실종'은 우리나라에서는 흔한 소재는 아닌데 일본소설에서는 자주 등장하는 것 같다.

김: 실종에 관한 책이라면 미야베 미유키의 <화차>가 떠오른다. 카드빚에 시달리다 스스로 실종의 길을 택하는 여성이 등장한다. 인간이 극단적인 상황이 되면 그런 선택을 할 수도 있겠구나, 라는 생각을 많이 했다.

안: 나도 그 책 읽었는데 그때의 나로서는 완전 '반전'이었다. 정말 깜짝 놀랐다. 히가시노 게이고의 <환야>나 <백야행>도 생각난다. 그 소설에서도 완전히 딴 인물로 변하는 인물들이 나오는데 나는 소설의 '극적 재미'를 위해서 작가가 창작한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일본에서는 그게 사회적인 문제가 될 정도로 심각한가 보다. <유괴증후군>은 어땠나?  나같은 아이엄마로서는 읽기 괴로울 것 같다. 읽기 힘들지 않았는지.

김: 내가 가장 무섭게 읽었던 소재는 유괴보다는 '가정폭력'에 관한 것이었다. 가정 폭력, 주로 아버지의 폭력. 그런 폭력이 한 인간의 남은 삶을 어떻게 변화시키는지, 어떻게 한 집안을 콩가루로 만드는지 등이 잘 나타나있다. 아이슬란드의 작가 '아날두르 인드리다손'의 작품이 이런 소재를 잘 다루고 있다.

일본 추리소설 vs 서양 추리소설

증후군 시리즈 2탄-유괴 증후군
 증후군 시리즈 2탄-유괴 증후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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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 김기자의 평소 서평을 보면 일본추리소설 소설뿐 아니라 서양 추리소설에도 관심이 많은 것 같다. 둘을 비교하면 어떤가? 서양쪽에는 초자연적, 초인간적인 존재들이 비교적 많이 등장하지 않나?

김: 물론 초자연적이나 심령적인 소재를 다룬 서양 미스터리 소설도 많다. 딘 쿤츠, 스티븐 킹처럼. 이런 작품들과 사회파 추리소설 나름대로 각각의 매력이 있다. '가장 무서운 것은 사람이다'라는 말처럼, 사회파 추리소설을 읽다보면 인간세상의 어두운 모습이 극단적으로 드러난다.

추리소설은 결국 인간에 관한 이야기인데, 그런면에서 범죄를 저지르는 인간의 내면, 범죄를 할 수 밖에 없도록 몰아가는 사회 분위기를 적나라하게 느낄 수 있다. 일본 추리소설만의 독특한 매력이라 할 수 있다.

반면에 초자연적인 소재를 다룬 미스터리 소설은, 인간의 내면보다는 그런 현상에 좀더 주목하는 경향이 있다. 물론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지만. 스티븐 킹과 딘 쿤츠는 현상과 내면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는데 성공한 몇 안되는 작가라고 생각한다.  안 기자는 일본소설의 어떤 점에 끌렸나.

한없이 나약하고 모순적인 인간의 모습 잘 보여줘

안: 나는 '인간'의 문제에 관심이 많다. 특히 이중적이고 모순적인 인간의 모습에 많이 끌린다. 일본 추리소설은 이러한 인간의 모습을 잘 보여주고 있다고 생각한다. (물론 일본에도 초자연적인 소재를 다룬 '오컬트류 소설'도 무지 많다.)

이상한 얘기처럼 들릴지 모르겠지만 나는 일본 사회파 추리소설을 읽으면서 가끔 감동을 받는다. (아마 추리소설을 읽으면서 감동받는다고 할 사람은 나밖에 없을 듯^^) 왜냐하면 인간의 위선적이고 모순적인 모습 그리고 한없이 나약하고 고독하고 유한적인 존재로서의 나의 모습을 보기 때문이다. '지금' '여기'있는 자신의 모습을 잘 보여주는데 그것은 곧 내모습이기도 하더라. 그들을 맹렬히 비난하고, 두려워하고, 증오하지만 한편으로는 연민이 느껴진다. 

김:  일본에서는 그런 사회풍토를 재미있는 소설로 묘사하는데, 우리나라에서는 그런 점이 좀 부족하다는 것이 아쉽더라.

안: 예전에 내가 어느 일본소설 번역자분과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그분은 우리나라에도 사회파 추리소설을 쓸 수 있는 소재나 고민거리들이 많은데 그냥 지나치는게 아쉽다는 말을 했었다.

일일이 열거할 수 없지만 우리사회에 큰 충격을 주었던 사건사고가 오죽 많았나. 삼풍백화점 붕괴사건이나 성수대교 붕괴사건, 씨랜드 참사, 대구 지하철 참사에서부터 최근의 뉴스로 눈을 돌리면 고 장자연씨의 자살, 비정규직 해고, 안락사 김할머니 등등 우리사회의 모순과 치부, 미스터리를 안고있는 문제들이 정말 많다. 이런 사회문제들을 소설로 쓸 수 있다면 우리의 모습을 좀더 '직시'할 수 있지 않을까. 그게 사회파 추리소설의 사명이라면 사명이라고 생각한다. 감히. (웃음) 

한국사회 vs 일본사회

증후군 시리즈 3- 살인증후군
 증후군 시리즈 3- 살인증후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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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그런데 일본 추리소설을 읽다보면 한국과는 여러 가지 면에서 참 많이 다르다는 생각이 든다. 일본작가 기시 유스케는 '일본 사회에서 모럴이 없어져 간다'라고 표현했는데 우리나라도 최근 발생하는 연쇄살인이나 묻지마 살인을 보면 점점 그렇게 닮아가는 것 같다.

안: 나 역시 일본소설을 읽으면서 괴리감을 느낄 때가 있다. 비슷한 것 같지만 일본과 우리나라 정서는 참 미묘하게 많이 다르다. 아까 얘기했던 '실종증후군'에서 사람이 다시 다른 이름으로 신원을 확 바꾼다거나하는 '리셋증후군'을 볼 때가 특히 당혹스럽다.

얼마 전 읽은 온다리쿠의 <어제의 세계>도 그런 작품인데 우리나라같으면 치고 박고 싸우다가 죽더라도 그 자리에서 해결하지, 자신의 존재를 전면 바꿔버린다는 그런 행동은 아마 하지 못할거다. 자신의 부모나 자식, 배우자를 생각해서라도. 이런 점에서는 우리나라사람들이 인간적인 관계가 더 끈끈하게 얽혀있지않을까 싶다. 그게 좋든 싫든.

김: 이번에 <증후군 시리즈>를 읽으면서 그들의 내면이 얼마나 공허할까 하는 생각을 자꾸 떠올렸다. 일본사회의 실제 모습이 이렇다고 한다면 꽤 심각한 사회문제가 되지 않을까 싶다.

안: 그래도 아직 우리나라는 일본보다는 도덕성과 윤리라는게 '적어도' 존재한다고 생각한다. 내가 아는 한 일본분은 한국에서 결혼해서 산 지 15년 가까이 되어간다. 이 분이 말하길 한국은 가족간의 정과 사회적인 도덕윤리가 아직 남아있다, 이것이 한국사회를 지탱하는 힘이라고 말했다.

여름밤에 혼자 읽는 추리소설의 묘미

화제를 바꾸어서, 여름하면 추리소설의 계절이다. 영화도 마찬가지고. 김기자는 (추리소설에) 특별히 계절을 타는지.

김: 가만히 생각해보니까, 최근 몇 년 동안 장르소설이 아닌 다른 소설은 거의 읽은 적이 없다. 하지만 아무래도 한 여름 밤에 읽기에는 추리소설만한 것이 없다고 생각한다. 이제 장마도 시작되었는데 더위를 잊기 위해서 밤에 침대에 누워서 누쿠이 도쿠로의 '증후군 시리즈' 읽기를 '강추'한다(웃음). 여름 밤에 침대에서 추리소설을 읽으면 천국이 따로 없지 않을까.

안: 여름밤에 혼자서 읽는 추리소설의 묘미는 사실 아는 사람만 안다. (웃음) 결론은 '역시 사람이 제일 무서워'라는 것을 알고 몸서리를 칠 때가 있다. 그러나 추리소설의 묘미는 단순히 '흥미진진하다' '범인을 꼭 밝히고싶다'는 흥미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사건 뒤에 감춰진 고통과 문제를 공감하고 함께 고민하는데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덧붙이는 글 | 추리소설에는 사회파 추리소설, 미스터리, 스릴러, 오컬트류, 본격추리소설 등 종류가 많은데 여기에서 '추리소설'이라 함은 이 모든 것을 통칭한 것입니다.



실종증후군

누쿠이 도쿠로 지음, 노재명 옮김, 다산책방(2009)


태그:#추리소설, #누쿠이 도쿠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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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아픈 것은 삶이 우리를 사랑하기 때문이다. -도스또엡스키(1821-18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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