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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일은 필수직이니까, 병원 행정장도 그렇고 병원장도 그렇고 산재의료원 본사에 인력요청을 했습니다. 그런데 노동부에서 정원을 안 늘려준다고 합디다. 이번에 해고되면서 우리가 투쟁할 상대가 사측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기간 연장? 그게 말도 안 되는 정책인 것은 이영희 장관 스스로 알고 있을 겁니다."

 

김태형 산재의료원 해고자 대표는 지난 6월 30일 계약해지 통보를 받고 4년 동안 일하던 직장을 나와야 했다. 그가 일하던 한국 산재의료원 동해병원은 노동부 산하기관인 근로복지공단 소속이다. 그는 "설마 노동부인데 우리를 이렇게 버릴 줄 몰랐다"고 말했다.

 

통보를 받는 그 순간까지 김 대표는 자신이 해고자가 되리라고는 생각도 못했다고 한다. 해고 전날인 6월 29일까지도 동료들과 테니스를 치면서 평화롭게 지냈다. 그러나 30일 산재의료원은 30명의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해고했고, 7일 현재 그는 '해고자 대표'가 되어 다른 해고자들과 함께 서울 영등포구 근로복지공단 1층 로비에서 농성 중이다.

 

김 대표는 "사측에는 요구할 것이 하나도 없다, 우리가 싸울 상대는 각자의 병원도 산재의료원도 근로복지공단도 아닌 노동부"라고 잘라 말했다.

 

산재의료원 해고자 "이영희 장관 보면서 미치는 줄 알았다"

 

김태형 대표가 일하던 동해병원은 지역내 유일한 정부 산하 기관이었고, 주변 사람들은 "출세했다, 좋은 직장 갔다"면서 그를 부러워했다.

 

김 대표 자신도 노동부에 대한 자부심과 믿음이 있었다. 그러나 믿었던 만큼 배신감도 컸다. 김 대표는 "그래도 설마 노동부 산하기관인데 이렇게 될 줄은 몰랐다"고 말했다.

 

해고 당시 부원장은 김 대표에게 직접 전화를 걸어 "미안하다, 법이 잘 되면 우선적으로 재고용하겠다, 건강 잃지 말고 꼭 다시 보자"고 그를 위로했다고 한다.

 

산재의료원 인사팀 관계자는 "법이 유예되면 고용을 유지하면서 시간적 여유를 두고 (정규직으로) 해소할 생각이었다"면서 "6월 30일까지 법시행 유예를 기대했다"고 말했다. 그는 "법 통과 상황에 따라서 재고용 가능성이 있다"고 덧붙였다.

 

그는 "인력 충원을 요청했지만 노동부에서 정원을 늘려주지 않았다"면서도 "정원 확보는 최종적으로 우리 기관의 책임이다, 노동부에서 해고 지침이 내려온 것은 아니다"고 말했다. 그러나 김 대표는 "사측은 노동부 방침에 따라 우리를 해고시켰다"면서 "우리의 투쟁대상이 노동부"라고 여러 차례 못박았다.

 

김 대표는 지난 2일 이영희 노동부 장관이 '비정규직 사용기간 4년 연장' 재추진을 주장하는 뉴스를 보고 "미치는 줄 알았다"고 했다. 그게 노동부 장관이 할 소리냐고도 했다.

 

"여야가 흥정하다시피 (유예기간을) 1년 6개월, 1년 줄이는데 우리는 하루하루 피가 말랐습니다. 그런데 이영희 장관이 그렇게 고심고심 끝에 내세운 게 고작 4년 연장안입니까. 이 장관이 흘린 게 눈물인지 땀인지 모르겠는데, 자기 자식이 비정규직이라면 이렇게 못합니다. 노동부 장관이라면 (법 시행부터) 2년 뒤를 바라보고 1년 전부터 계획을 세웠어야죠. 한번만 의료원 현장을 답사해 보면 우리가 얼마나 필요한 인력인지 알 겁니다. 지금 제일 바쁘게 여당과 싸울 사람이 노동부 장관 아닙니까? 안 그러면 노동부 장관 아니죠."

 

이번에 해고된 산재의료원 노동자들은 모두 2년 이상 근무한 계약직이고, 5년 동안 근무한 사람도 9명이나 있다. 방사선사·물리치료사·임상병사 등의 의무직과 전기기계를 설비하는 기술기능직, 병원 행정을 맡는 행정보조직 노동자들이 주로 해고됐고, 절반 정도는 기술기능직이다.

 

김 대표에 따르면, 태백중앙병원의 경우 기술기능직 5명이 3교대로 움직이고 있었는데 이번에 2명이 해고됐다. 3명이 3교대를 해야 하는 상황이다. 그는 "남은 사람들이 잠도 못자고 일한다는데 아직 사고가 안 난 게 천만다행이다"면서 "진료시간이 길어지고 시설이 잘못 돌아가면 그게 다 환자들 불편이다"고 강조했다.

 

김자동 산재의료원 노조위원장은 "그래도 노동부가 노동자 권익에 앞장서는 기관이라고 믿었는데 산하 기관에서 이런 일이 생겨 분노를 느낀다"면서 "정규직화 하나만 바라보면서 4~5년 근무한 노동자에게 희망을 주는 것이 노동부의 역할"이라고 강조했다.

 

"멀쩡한 사람 자르고 인턴으로 일자리 늘리나?"

 

김태형 대표는 지금의 상황이 기간제 사용기간 연장이나 비정규직법 시행 유예로 해결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고 주장했다.

 

지금 농성하는 노동자들은 새로 직장을 구해도 계약직일 테고 2년 뒤에 다시 해고될 게 뻔하다는 것이다. 이번에 해고된 노동자들만의 문제도 아니다. 앞으로도 계약기간이 2년이 되는 동료들이 줄줄이 해고될 것이고, 산재의료원에서 새로 직장생활을 시작하는 동생들이나 후배들의 처지도 다를 바 없다.

 

노조 측은 "지금 의료원 현장에서는 멀쩡하게 몇 년씩 일하던 사람을 내보내고 제대로 일을 시킬 수도 없는 인턴을 억지로 사용하고 있다"면서 "한쪽으로는 인원을 감축하고 한쪽으로는 일자리를 늘리는 정부 정책의 모순을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김자동 노조위원장은 "공기업은 국민에게 봉사하기 위해서 만들어진 곳이다, 인위적으로 인력을 감축하면 국민에게 돌아가는 서비스가 줄어들 수밖에 없다"고 비판했다.

 

또한 "정부가 인력과 예산을 결정해주지 않기 때문에 노사간 자율교섭으로는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정부 의지만 있으면 사측과 쉽게 문제를 풀 수 있다"면서 정책 전환을 요구했다.

 

지금 김태형 대표의 바람은 하나다. 일단 만들어놓은 비정규직법을 법대로 시행하는 것.

 

당장 정규직화가 어렵다면 이를 지원하기 위해 지금부터라도 법을 개정하는 것이다. 국회에서 머리를 맞대고 정규직화 방안을 내놓는다면 충분히 기다려줄 수 있다는 것이다.

 

김 대표는 "구체적인 노력도 없이 기간제 사용기간을 연장하고 비정규직법 시행을 유예한다면 우리들은 희망이 없다"면서 "(정부 여당에서는) '나라가 어려우니 정규직화가 안 된다'고 하지만, 나라도 어려운데 잘 흐르는 4대강 파헤치지 말고 그 예산으로 정규직화하면 되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


태그:#산재의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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