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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요하다. 노무현 정부 시절부터 의료산업화라는 이름으로 공론화를 시도하다가 여론의 거센 반대에 부딪혀 물러섰고, 이명박 정부 들어서도 의료 서비스 선진화를 시도하다가 촛불의 분노를 불러일으켰다. 또한 이명박 정부와 김태환 제주도지사가 제주도민의 찬반 여론조사를 통해 추진했던 영리병원 도입도 실패했다. 그 뒤 한동안 잠잠하더니, 이번에는 윤증현 기획재정부 장관이 앞장서고 대통령과 보수언론이 이를 지원하면서 의료민영화 움직임이 다시 꿈틀거리고 있다.

계속되는 반대와 실패에도 의료 민영화를 포기하지 않는 이유가 무엇일까. 지금 그들이 표면으로 내세우는 '산업화와 선진화' 이유만으로는 납득이 가지 않는다. 이런 풀리지 않는 의문에 답을 주는 이가 있다. 제주도 영리법인 설립을 막아낸 '제주대첩'의 선봉장 이상이(45) 제주대 의과대학 교수 겸 '복지국가 소사이어티' 공동대표다. 그를 지난 12일 서울 마포에 있는 '복지국가 소사이어티' 사무실에서 만났다.

이상이 제주대학교 의과대학 주임교수 겸 복지국가SOCIETY 대표
 이상이 제주대학교 의과대학 주임교수 겸 복지국가SOCIETY 대표
ⓒ 이승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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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료 민영화의 본질과 배후세력

이 교수는 의료민영화를 추진하는 진영의 주된 논리인 '의료서비스 개선과 민간 투자 활성화'를 통한 '의료 선진화 및 산업화' 그리고 '의료수지 적자 탈피'는 표면적인 이유일 뿐 그 본질은 따로 있다고 말한다.

"의료 민영화의 본질을 봐야 합니다."

이 교수는 '영리법인 병원 허용'과 '실손형 민간 의료보험 활성화'가 의료 민영화의 두 가지 핵심 사항이라고 말했다. 그는 "참여정부 시절 '의료 산업화'라는 이름으로 추진되던 것이 지지부진하다가 이명박 정부 들어서 강하게 추진되고 있다"며 "전 정권부터 수그러들지 않고 계속 불거져 나오는 의료 민영화를 누가 하고 싶어 하는지, 누가 추진세력인지 잘 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국정 운영 철학이 다른 두 정권에서 지속적으로 추진되는 의료 민영화의 추진세력이 따로 있다는 것이다.

이 교수는 그 추진 세력으로 거대 민간 의료 보험사를 꼽았다. 우리가 이름만 들어도 알 수 있는 생명보험 회사들 그리고 '화재'라는 상호가 붙어 있는 회사들이 그들이다. 이 교수는 "이런 민간 보험 회사들은 금융자본"이라며 "그들이 돈을 벌고 싶은 것"이라고 거두절미하고 말했다. 과거 '노인 연금'과 '생명 보험' 등에서 돈을 벌었던 회사들이 그 시장이 포화상태에 이르고 수익성이 떨어지자 새로운 사업 영역을 찾고 있다는 말이다. 그렇게 보험회사들이 의료를 새로운 수익의 원천이 될 미개척지로 생각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이해 관계의 공유

현재 한국의 의료 재정규모를 보면 정부가 운영하는 건강보험의 경우 약 30조 원에 이르고 민간보험의 규모는 10조 원 정도로 건강보험의 1/3 수준에 머무르고 있다. 이 교수는 "아직까지 우리 국민의 의료비 조달 메커니즘을 건강보험이 장악하고 있기에 국가가 정한 일정한 보험료를 유지할 수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끊이지 않는 의료 민영화 추진으로 민간 보험이 의료 재정에서 그 영향력을 넓혀갈수록 국민 전체의 의료비 부담은 늘어날 수밖에 없다고 강조한다.

"현재 전체 의료비 중 64%를 건강보험이 지불하고 있고 환자 개인이 지불하는 금액은 36%에 해당합니다. 그런데 민간보험에 가입하면 100% 보험회사가 의료비를 부담합니다. 점차적으로 국민들이 민간보험에 가입하고 건강보험의 재정 규모가 줄어들면서 의료비 조달 메커니즘을 민간보험이 장악하게 되면 그때부터는 민간보험회사들이 보험료를 마음대로 올릴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더욱이 이런 민간보험회사와 같은 금융 자본에게는 든든한 버팀목이 있다. 이 교수는 현 경제 관료들이 그들이라고 말한다.

"기획재정부, 금융감독위원회 등이 금융자본과 이해관계를 같이하는 경제 관료들입니다. 특히 현재 기획재정부 윤증현 장관은 과거 금융감독위원장이었습니다. 전형적인 금융자본주의자이죠. 한국 경제가 성장하기 위해서는 금융이 커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금융자본이 진출할 수 있는 시장을 넓혀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금융자본주의자입니다. 결국 이들은 의료 분야에 민간 영역을 넓히기 위해 미국식 의료 시스템을 도입하는 것이 금융을 키우는 일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렇듯 '민간 보험회사들과 경제 관료들의 이해 공유가 의료민영화의 본질이다'라는 것이 이 교수의 주장이다. 이 교수는 "이런 이해관계 저변에 깔려 있는 전반적인 맥락 속에서 의료 민영화를 이해한다면 지난 정부부터 현 정부에 이르기까지 정권의 성향 차이를 넘어서 왜 이렇게 지속적으로 의료 민영화를 추진하는지 우리가 이해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이상이 제주대학교 의과대학 주임교수 겸 복지국가SOCIETY 대표
 이상이 제주대학교 의과대학 주임교수 겸 복지국가SOCIETY 대표
ⓒ 이승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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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개의 국민, 두 개의 의료

이 교수는 "금융자본주의자들은 의료 서비스를 시장에 맡겨 다소 국민의료를 희생하더라도 전체적으로 금융산업이 발전하는 것이 자본주의 발전에 득이 된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는 한 나라에 '두 개의 국민, 두 개의 의료'가 존재하는 결과를 초래한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의료 분야에선 전형적인 시장 실패의 원리가 작동합니다. 의료 서비스를 시장 경쟁에 맡긴다면 그 서비스의 질은 더 떨어지거나 의료기관별로 차별화됩니다. 그러면서 서비스의 가격은 늘 올라가는 것이죠. 결국 국민의료비가 폭등하고 서비스의 질을 양극화시켜 어떤 국민은 질 좋은 서비스를 받고 어떤 국민은 질 나쁜 서비스를 이용하게 됩니다. 이렇게 구조적이고 제도적으로 질 좋은 서비스를 받는 국민과 질 나쁜 서비스를 이용하는 국민으로 나뉜 나라는 전 세계적으로 미국 하나입니다."

대안은 건강보험 보장성 대폭 강화

이상이 교수가 쓴 <의료민영화 논쟁과 한국의료의 미래>
 이상이 교수가 쓴 <의료민영화 논쟁과 한국의료의 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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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교수는 1964년 1월 태어나 1982년에 고교를 졸업, 의과대학과 보건대학원을 졸업했다.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 출범에 참여했고 1998년부터 2년 4개월간 새정치국민회의 전문위원으로 일하면서 의료보험 통합 등을 주도했다. 2000년부터 제주대 의대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2004년부터 3년간 국민건강보험공단 건강보험연구원장도 지냈다.

저서로는 '의료의 산업화와 공공성에 관한 연구' '복지국가 혁명' '한국사회와 좌파의 재정립' '의료민영화 논쟁과 한국의료의 미래'(모두 공저) 등이 있다. 현재 그는 '복지국가 소사이어티'라는 시민단체를 이끌면서 의료민영화를 강력하게 반대할 뿐만 아니라, 의료민영화를 저지한 이후의 대안을 국민들에게 알리는 데 주력하고 있다.

"건강보험의 보장성을 대폭 강화해서 재정규모를 45조원으로 단기간 내에 늘려야 합니다. 그렇게 되면, 한국의 경우 온 국민이 건강보험에 가입되어 있기 때문에 실질적으로 의료비 부담이 거의 없어집니다. 이를테면 개인 의료비가 1년에 100만 원을 넘지 않게 하는 겁니다. 이를 위해 100만 원이 넘는 금액에 해당하는 부분을 건강보험이 다 보장해 주는 것입니다. 건강보험이 이 정도 수준의 보장성을 갖춘다면 모든 국민은 의료비 걱정 없이 필요한 모든 의료를 다 이용할 수 있습니다. 저희는 이것을 하고 싶은 겁니다. 그리고 이런 일을 국민들에게 구체적으로 설득하려고 준비하는 중입니다. 이게 되면 몸이 아픈 국민들이 돈 걱정할 필요는 없을 것입니다."

덧붙이는 글 | 이승환 기자는 현재 세명대 저널리즘스쿨 대학원생입니다.



태그:#이상이 교수, #의료민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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