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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 전 대통령이 서거한 지난 토요일부터 전 국민이 힘든 시간을 보냈다. 전직 대통령의 자살은 세계적으로도 사례를 찾아보기 힘든 것으로, 국민들은 그것이 '정치적 압박'의 결과였다는 참담한 현실을 마주해야 했다.

 

지난 6일 동안 그를 추모했던 사람들은 이제 그를 떠나보낼 채비를 하고 있다. 전국적인 추모 열기가 맘에 들지 않았던 사람들은 죽은 자를 함부로 비난할 수 없어 그 나름대로 '힘든' 시간을 보냈을 것이다.

 

추모 열기에 불을 지핀 정부

 

이제 29일이 지나면 추모하던 사람들의 한없는 허탈함과 추모 열기에 동의할 수 없었던 사람들의 후련함이 어떤 식으로 표출될지 궁금하다.

 

노 전 대통령 자살에 대한 분노와 침통함으로 시작된 추모는 지난 며칠 사이에 노 전 대통령의 행적과 죽음에 대한 다양한 해석과 의미를 생산해냈다. 국민들의 추모 형식은 시간이 지날수록 진화됐고 스스로 정체성을 찾아갔다.

 

지지자로서의 분노와 침통함, 전 국가수반에 대한 예의, 인간적 고뇌에 대한 이해와 측은함, 신념을 공유했던 동지를 잃은 애석함, 소탈했던 지도자에 대한 그리움과 존경 등은 모두 한데 모아져 국민으로서의 의무와 권리 행사에 대한 다짐으로 진화했다. 이런 진화에 제일 큰 공헌을 한 것은 추모 열기에 대한 정부의 노골적인 불만 표시와 방해였다.

 

정부의 노골적인 방해는 서울광장 '사수'로 나타났다. 작년 촛불에 덴 정부는 서울광장을 차벽으로 둘러싸고 세계유산이라도 보호하듯 추모객들의 접근을 막았다. 정부는 차벽을 통해 국민들과 차벽보다 몇 배 높은 소통 불가의 벽을 쌓았다.

 

물론 많은 국민들은 작년 '명박산성'의 등장으로 그 높다란 소통 불가의 벽을 이미 경험했다. 그러나 이번 차벽을 통한 정부의 새로운 '도전'은 작년 소통 불가의 벽을 경험하지 못한 많은 국민들에게 '신선한' 현장체험의 기회를 제공했다. 시민분향소를 찾은 국민들은 현장체험을 통해 자신이 왜 노 전 대통령을 추모하고 있는지, 2009년 대한민국에서 그의 죽음이 갖는 의미가 무엇인지 이해하게 됐다. 이제 보이진 않지만 그들 마음속에도 깨달음의 촛불이 켜진 것이다.

 

노 전 대통령의 서거는 모순적이게도 현 정부에게는 지지율을 높일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될 수도 있었다. 그러나 그 기회는 이미 수명을 다했다. 대한문 앞 시민분향소를 찾은 대부분의 사람들은 약속이나 한 듯 "도대체 무엇이 무서워서..."라는 말을 내뱉었다. 끝맺지 못한 말 속에는 대한민국 국민인 자신들의 진정성을 인정하지 않고 우범자 취급하는 정부에 대한 서운함과 분노, 동시에 상황을 파악 못하는 정책결정자들에 대한 측은함이 담겨있었다.

 

통제 냄새 풍기는 사회통합 원치 않는다

 

정부는 끝까지 국민들의 자발적인 추모를 인정하지 않았고 결국 정부와 여당 인사들은 정부분향소에서 조문하고 대부분의 국민들은 대한문 앞을 비롯한 민간분향소와 봉하마을에서 조문하는 상황이 벌어졌다. 국민들이 "서울광장 개방"을 외치며 끝없이 손을 내밀고 노 전 대통령 측에서도 국민장을 수용하는 등 많은 기회를 줬지만 정부는 그 기회를 모두 차버렸다. 정부와 추모하는 국민들 사이에는 '명박산성'보다 높은 벽이 쌓아졌고 이제 그 벽은 잠재적 갈등으로 변하고 있다.

 

정부가 뿌린 새로운 갈등의 씨앗이 29일 이후 어떤 식으로 커가게 될지는 알 수 없다. 그동안 '힘든' 시간을 보내며 자제했던 추모 반대자들이 일대 반격을 가할지도 모르겠다. 정부는 사회통합을 외칠 수도 있다. 그러나 노 전 대통령을 추모했던 많은 국민들은 구시대적이며 사회 통제의 냄새를 흠씬 풍기는 정치 용어인 사회통합을 원치 않는다. 국민들은 다양한 목소리를 낼 수 있고, 다양한 목소리가 정당성을 인정받고, 다양한 건설적 갈등이 만들어지고 그 갈등이 상식적인 소통을 통해 해결되는 사회를 원한다.

 

'무장해제'라는 말이 있다. 단어상의 의미로는 상대의 무기를 제거해 무력 저항을 불가능하게 만드는 것이다. 긴급한 상황에서 상대를 무장해제 시키는 방법은 상대가 공격을 멈추고 자신과 소통할 수 있도록 상대의 요구와 예상을 뛰어넘는 제안을 하고 그 제안을 실천하는 것이다.

 

정부가 마음속에 촛불을 켜고 일제 반격 태세를 갖추고 있는 국민들을 무장해제 시키려면 국민들의 요구를 뛰어넘는 획기적인 결단과 행동을 보여줘야 한다. 현재 마음을 닫은 많은 국민들은 그것조차 받아들이지 않을 가능성이 크지만 그럼에도 진정성이 있다면 효과는 있을 것이다. 


태그:#노무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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