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26일 충청북도의 작은 도시 제천 시민회관 광장은 한산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서거한 지 나흘이 지나면서 전국 200만 명이 넘는 조문객이 분향소를 찾았다는 언론 보도가 나오고 있다. 역대 국민장 가운데 최대 규모 조문객 수가 될 거라는 뉴스까지 나오고 있다. 여기에는 봉하마을 외에 정부와 자치단체 및 사찰 또는 시민분향소까지 전국에 세워진 314개의 유례없는 분향소 숫자가 한몫 했다. 이 가운데는 제천 시민회관에 마련된 분향소도 포함된다. 하지만 이곳의 상황은 언론의 흥분된 조문객 보도 분위기와는 사뭇 다르다.
 

시외버스 터미널과 기차역 사이에 위치한 제천 시민회관은 이곳 지역민의 유동인구가 가장 많은 곳 중에 하나로 꼽힌다. 제천 시민 김의엽(26/직장인)씨는 인근 거래처에 왔다가 잠깐 들렀다며 급하게 말을 잇는다. "솔직히 여기에 분향소가 있는지 몰랐는데 지나가다 우연히 봤습니다." 언론에서는 연일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 관련 뉴스를 쏟아내지만 정작 각 지역에 설치된 분향소들의 모습을 전하는 곳은 찾기 힘들다. 의엽씨 역시 시청 차원의 안내문이나 언론 보도에서 제천시의 분향소에 관한 것을 본 적이 없단다.

 

제천 시민회관 분향소에는 조문객보다는 스쳐 지나가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분향소 바깥쪽에서 검은 정장차림으로 조문객들을 맞이하는 양순경(제천 시의원/민주당) 의원의 얼굴에는 비통함과 따분함이 묘하게 엇갈린다. 양 의원은 "언론을 통해 연일 보도되는 노 전 대통령의 서거 소식으로 국민적 관심이 모아지는 가운데 자기 지역에 마련된 분향소를 보고 주변에서 서성이는 분들은 많은데 정작 분향소 안으로 들어오지는 않는다"며 "사람들이 조문하는 데 눈치를 보는 느낌이다"라고 말한다. 비록 무관심하고 그냥 멀리서 바라보는 시민들도 많지만 양 의원은 그래도 뿌듯하단다. "'노사모(노무현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를 비롯해 재천·단양 소재의 지역 시민 단체들과 자발적으로 분향소를 마련했고 29일 영결식에는 서울 덕수궁에서의 상황을 영상으로 보여 줄 겁니다."

 

날이 점점 어두워지면서는 조문객 수가 다소 늘기 시작했다. 분향소 주변에는 어느새 촛불도 켜지기 시작하면서 추모분위기를 돋구기 위한 시민단체 활동가들의 움직임이 바빠지기 시작했다.  

 

노 전 대통령의 생전 모습이 담긴 영상도 대형 스크린을 통해 나오기 시작했다. 하지만 여전히 분향소 주변을 맴도는 사람들이 대부분일 뿐 문상에 선뜻 나서는 시민을 보기가 쉽지 않다. 서울에서 문상을 하기위해 길게 늘어선 줄에서 몇 시간이고 기다려야 한다는 언론 보도를 떠올리면 이곳 활동가들의 힘이 절로 빠지진 않을까 하는 걱정도 들게 된다.

 

제천·단양 소재 노사모 회원인 안아무개(38)씨는 따로 홍보도 없었는데 시민들이 이 정도라도 찾아준 게 고맙단다. "특별히 분향소를 알리기 위해 한 일은 없고, 민주당 시의원들이 각자 지인들에게 문자 메시지를 보낸 걸로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런 안씨도 국민장을 치르면서 특히나 안타까운 것이 있다. "도덕성에 다소 흠집은 났지만 그 분 생전에 지키려고 했던 소중한 가치들은 지켜져야 합니다. 노 전 대통령께서는 항상 지역주의를 넘어서 진정한 통합을 원하셨죠. 저승에서도 대한민국에서 이런 진정한 통합과 화합이 이뤄지길 바라실 겁니다. 그런데 언론에 보도되는 추모 상황을 보면 서울 아니면 봉화죠. 그리고 너무 들뜬 나머지 이것이 마치 전국적인 분위기인 것처럼 보여지더군요."

 

어느덧 새벽에 가까워진 시간, 시민회관 주변을 지나가는 사람들이 줄어들었다는 것을 광고라도 하듯 분향소 옆에 설치된 대형 스크린에서 나오던 스피커의 울림이 더욱 우렁차졌다. 더욱이 점점 봐주는 이가 줄어드는 노 전 대통령의 외로운 영상과 함께 분향소의 전체적인 분위기는 점차 쓸쓸해져 갔다.

 

오늘도 신문들에서는 어김없이 봉화마을과 서울 도심 분향소에 조문객의 발길이 잇따르고 각각 조문객 수는 20만과 7만 명을 넘으며 전국적인 추모물결이 이어지고 있다고 보도한다. 그렇다면 여기 제천을 포함한 300여 개에 각 지역에 마련된 분향소들 역시 물결 같은 추모행렬이 이어지고 있는 것일까? 같은 시각, 전국 각 지역에 퍼져 있는 분향소들의 쓸쓸함은 크게 다르지 않을 듯하다.


태그:#이기자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