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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살이 급증하고 있다. 우리네 삶이 팍팍해지다 못해 삶의 의지마저 꺾이게 만드는 일이 도처에 널려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였을까. 사람들은 팍팍함을 견디지 못한 채 죽음을 생각하고, 홀로 죽기는 너무도 쓸쓸하고 외로운 일이라 죽음을 각오하고 '함께'할 동반자를 찾아 나서고 있다.

정신이 빈곤한 사회가 동반자살 불러

세상이 물질의 풍요를 합창할 때 정신의 풍요는 갈 곳을 잃었다. 물질의 풍요가 지상의 낙원인양 교육하는 사이 아이들의 정신은 생기를 잃기 시작했다. 사진은 영화 <강원도의 힘>에서의 한 장면.
 세상이 물질의 풍요를 합창할 때 정신의 풍요는 갈 곳을 잃었다. 물질의 풍요가 지상의 낙원인양 교육하는 사이 아이들의 정신은 생기를 잃기 시작했다. 사진은 영화 <강원도의 힘>에서의 한 장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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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삶을 힘들게 만드는 요인이야 많고도 다양하겠지만, 그 중에서도 쉼없이 경쟁하라고 부추기는 이 저급한 사회가 가장 큰 원인일 것이다. 사회 분위기를 경쟁 구도로 몰아가는 것은 일부 계층, 즉 권력이나 돈 등을 가진 자들이다. 그와 함께 그 반열에 오르고 싶어하는 이들이 함께 공모하여 생산해낸 사회적 스트레스는 가히 압권이라고 할 수 있다.

건강한 사회는 물질의 풍요보다 정신의 풍요를 교육하고, 그렇게 교육받은 이들에게 그 몫을 담당하게 해야 한다. 하지만 우리의 교육은 그러하지 못했다. 학교에서부터 내몰려진 경쟁은 차라리 전쟁이라해도 다르지 않았다. 언제나 '성공이냐 실패냐'의 갈림길만 강요받는 현실에서 아이들은 행복하지 않았다.

그래서 성적이 조금이라도 떨어지면 죽음을 떠올렸다. 성공할 자신이 없기 때문이었다. 취직을 하지 못한 대학생도 자살 행렬에 합류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앞날이 보이지 않고, 아무리 발버둥쳐도 후보 선수에조차 끼지 못한다는 현실이 그들을 죽음의 유혹으로 내몰았던 것이다.

세상이 물질의 풍요를 합창할 때 정신의 풍요는 갈 곳을 잃었다. 물질의 풍요가 지상의 낙원인양 교육하는 사이 우리의 미래인 아이들은 생기를 잃기 시작했다. 시간이 흘러 사람들의 정신은 빈곤해졌고, 스스로 깨어나야 한다는 의지마저 놓고 말았다. 그러는 사이 사람들은 죽어갔고, 오늘도 죽음을 공모하고 있다.

올해의 동반자살은 강원도 정선이 시작이었다. 지난 4월 8일 경치 좋은 오대천 변에 있는 민박집에서 남녀 각 2명, 4명이 동반자살했다. 그들은 방문 앞에 '긴 취침중'이라 적어놓고 정말이지 돌아올 수 없는 '긴 취침'에 들어갔다.

동반자살, 그들이 머문 방엔 '긴 취침'이라는 글귀만

그들이 묵었던 방엔 연탄 화덕이 놓여 있었고, 출동한 경찰이 문을 열었을 때는 연탄가스가 자욱했다고 한다. 다음 날 기자가 현장을 찾았을 때는 폴리스라인 하나 없이 말끔하게 정리되어 있었다. 몇 시간만에 다시 경치 좋은 민박집이 된 자살 현장엔 담장의 개나리꽃만 피어나고 있었다.

"비수기라 집 주인은 원주에 머물고 있었는데, 자살 사건이 벌어졌지 뭡니까. 사람 목숨이 파리 목숨보다 못한 세상이니 이거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모르겠어요."

민박집 근처에서 주유소를 운영하고 있는 주민은 마을에서 동반자살이 일어난 것에 대해 무척이나 놀라워 했다. 주민과 대화하는 사이 민박집 주인이 트럭을 몰고 지나갔다. 민박집 주인을 따라가 보았다. 그는 할 말을 잃었던지 망연히 집을 바라보았다. 그날 민박집 주인은 마당가를 몇 번 서성이더니 문을 잠그고 마을을 떠났다. 지난 9일의 일이었다.

동반자살을 한 이들이 마지막으로 슬픔을 토해냈을 민박집 앞 강변.
 동반자살을 한 이들이 마지막으로 슬픔을 토해냈을 민박집 앞 강변.
ⓒ 강기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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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금연휴를 앞둔 4월 30일 다시 민박집을 찾았다. 담장에 피었던 개나리는 자취를 감추었고, 마당은 깨끗하게 정리되어 있었다. 죽음의 흔적을 찾아 볼 수 없는 민박집은 영업준비를 끝내고 손님을 기다리는 중이었다.

민박집 인근의 다른 집들도 손님맞이 준비를 하고 있었다. 어느 집은 예초기로 마당가의 잡초를 제거하고 있었다. 풀이 베어지면서 내는 향기가 짙게 배어나오는 시간. 오대천변은 진홍빛 물철쭉(수달래)이 흐드러지게 피어 있었다.

죽음의 길을 선택한 이들이 걸었을 강변과 산책길은 살아서 걸어야 할 길이지 죽음의 길은 아니었다. 평화롭기만 한 강변마을에 연탄가스가 풀어진 것은 순간이었고, 그 일로 4명이 목숨을 잃었다.

인근에서 펜션을 하고 있는 주민을 만났다. 그의 집으로 승합차 한 대가 들어간 직후였다.

"황금연휴인데 예약은 많이 받았나요?"
"이번 연휴 기간엔 빈방이 없어요. 아마 다른 집도 그럴 걸요."

다행이었다. 사람들은 죽음의 기억을 빨리 털어내고 있었다. 어느 집으로는 관광버스 한 대도 들어가고 있었다. 민박집 주인이 버스를 맞이하고, 여행복장을 한 이들은 버스에서 내리며 "경치좋네"를 연발했다. 이 마을에서 동반자살 사건이 일어났으리라고는 짐작도 못하는 듯 했다. 그 또한 다행스런 일이었다.

지난달 8일(수) 정선에서 시작된 동반자살은 일주일 후인 4월 15일 횡성군의 한 펜션에서 또 벌어졌다. 남성 3명과 여성 2명이 동반자살을 시도해 4명이 사망했고 1명이 살아났다. 그것으로 끝인가 싶었다. 이틀 후인 17일엔 인제군의 휴업 중인 한 휴게소 주차장에 주차된 승합차량 내에서 남성 2명과 여성 1명이 동반자살을 시도, 모두 사망했다.

또 그로부터 닷새 후인 22일엔 홍천군의 한 펜션에서 남성 3명과 여성 2명이 동반자살을 시도했다. 그러나 그들의 행동을 이상하게 여긴 주인의 신고로 극적으로 살아남았다. 하루 뒤인 23일은 양구군의 도로변 차량 안에서 남성 2명과 여성 2명 동반자살을 시도하여 여성 1명이 사망하고 3명이 중태에 빠지는 사건이 있었다.

보름 남짓한 시간에만 강원도에서 22명이 자살을 시도했고, 13명이 목숨을 버렸다. 그렇게 자살의 도미노가 강원도를 휩쓸었다. 사진은 영화 <강원도의 힘>에서의 한 장면.
 보름 남짓한 시간에만 강원도에서 22명이 자살을 시도했고, 13명이 목숨을 버렸다. 그렇게 자살의 도미노가 강원도를 휩쓸었다. 사진은 영화 <강원도의 힘>에서의 한 장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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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뒤 24일엔 정선군 비행기재 인근 도로변에서 40대의 한 남자가 자신의 승합차에 연탄불을 피워놓고 자살을 했다. 동반자살이 아니라 그랬을까. 그 일은 언론의 조명도 받지 못했다. 일상이 된 듯한 자살의 행렬. 보름 남짓한 시간에만 강원도에서 22명이 자살을 시도했고, 13명이 목숨을 버렸다. 그렇게 자살의 도미노가 강원도를 휩쓸었다.

이들의 직업도 다양했다. 여고생이 있고, 자영업자도 있었다. 죽음의 장소가 강원도라지만 살아온 지역은 전국적이다. 얼굴도 모르는 이들이 만나 연탄불을 피우고 마지막 술잔을 나누는 장면은 우리의 슬픈 자화상이다.

연탄 한 장 값이 400원 정도. 번개탄을 포함해도 이들이 죽음에 이르는데 근 비용은 만 원도 들지 않았다. 가난의 상징이었던 연탄불 피워놓고 죽음을 맞이하는 이 땅의 사람들. 이렇게 허무하고 안타까운 삶들이 또 어디 있을까.

"이젠 젊은 사람들이 방 하나 달라고 하면 무서워요. 지난 번엔 차 트렁크부터 보자고 했는 걸요."

지난 8일 동반자살 사건이 벌어진 곳에서 민박을 하는 주인은 손님이 오면 반갑기는커녕 무서움이 먼저 든다고 했다. 그는 혹여 무슨 일이 생기지는 않을까 싶어 방을 대여하고도 마음이 편하지 않는단다. 하여 틈틈이 손님들의 방을 기웃거리며 '순찰'을 한다고 했다.

"전엔 손님들이 오면 재밌게 놀다 가시라고 말하곤 일체 참견도 안했어요. 그런데 동반자살이 있어난 후론 손님들의 행동에 대해 신경을 쓰지 않을 수가 없어요. 그러니 손님도 피곤하고 주인도 피곤해진 것이지요."

사회가 책임져야할 일이 엉뚱하게 민박집 주인에게 돌아간 느낌이다. 황금연휴를 맞았지만 가슴 졸이며 손님을 받아야 하는 강원도의 민박집과 펜션들. 그들은 어서 자살의 도미노가 끝나길 바라고 있었다.

전국민을 자살방조죄로 기소하라

하루가 멀다하고 벌어지는 자살 사건의 현장엔 어김없이 연탄화덕이 놓여있었다. 연탄 한 장 값이 400원 정도. 번개탄을 포함해도 자살 비용은 만 원도 들지 않았다.
 하루가 멀다하고 벌어지는 자살 사건의 현장엔 어김없이 연탄화덕이 놓여있었다. 연탄 한 장 값이 400원 정도. 번개탄을 포함해도 자살 비용은 만 원도 들지 않았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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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를 휩쓴 동반자살은 이제 지역을 넘어 어디론지 흘러들고 있었다. 인천, 봉화, 대전, 서울 등등. 그렇게 동반자살이 들불처럼 번지고 있는 사이 자살사이트를 개설해 동반자살을 하자며 10대 여성들을 모아 성폭행 하는 사건까지 터졌고, 급기야 28일엔 여성 연예인의 자살이 그 뒤를 이었다.

동반자살이 이어지자 경찰은 수선을 떨었다. 자살예방책을 마련한다며 머리를 짜냈다. 연탄화덕을 사는 사람이 있으면 신고를 하게 했고, 연탄과 번개탄을 사는 사람도 요주의 인물이 되고 말았다.

경찰은 또 자살을 예방하겠다며 자살사이트를 찾아냈다. 급기야 경찰은 자살사이트 개설자를 찾아내 구속까지 했다. 그러나 자살을 떠올리게 하는 근본적인 원인은 그대로 남아있고, 이 사회를 공동으로 책임져야할 구성원들도 여전히 뒷짐을 지고 있을 뿐이었다.

늦었지만 사회가 나서야 한다. 건강한 시민들이 나서서 그들에게 함께 살자고 손 내밀어야 한다. 우리의 이웃이, 친구가 아픔을 나누자며 그들과 어깨동무해야 한다. 그런데 어느 단체 어느 집단에서도 나서는 사람이 없다. 나 살기도 바쁜 세상이라는 것이 이유다.

함께 살아보자고 나서고 싶어도 나설 수 없는 현실을 만든 자는 누구이던가. 돈과 권력이 최고라는 정치인인가. 공부가 최고라고 가르치는 교사인가. 사랑보다 돈으로 문제 해결에 나서는 부모인가. 경쟁 상대인 우리의 친구인가. 옆집 사람도 기억하지 못하는 익명의 이웃인가. 경제논리를 최우선으로 하는 이 나라의 대통령인가.

동반자살로 생명을 잃은 이들이 마지막으로 찾은 건 함께 '긴 취침'에 들어갈 친구였다. 죽음을 동의하고 실행하는 사람들. 그들이 소중한 목숨을 끊은 이유라는 게 고작 경제적인 이유, 처지비관 등이라니 국민의 생명을 책임져야할 국가도 할 말이 없게 되었다.

멕시코에서 발생한 인플루엔자A를 예방하기 위한 뉴스가 전직 대통령 소환에 관한 뉴스보다 더 비중있게 다뤄지는 대한민국에서 나는 아직도 이 나라가 인플루엔자보다 더 무서운 동반자살 혹은 자살에 관한 예방책을 마련하기 위해 밤잠을 설친다는 보도를 본 적도 들은 적도 없다.

지금 이 순간에도 인터넷을 오가며 자살을 모의하는 이들의 아픈 상처를 씻어줄 이는 대체 누구인가. 당신인가, 아니면 나인가. 그 조차 모른다면 더 많은 이들이 '긴 취침'에 들기 전 경찰은 대한민국 대통령을 비롯한 전국민을 자살방조죄로 기소해야 마땅할 것이다.

여고 2학년 생이 동반자살할 친구를 찾고 있는 대한민국의 현실. 사람이 죽어가도 변하지 않는 그 현실이 무섭다.


태그:#동반자살, #연탄불, #강원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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