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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도협
▲ 차마객잔의 아침 호도협
ⓒ 이형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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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월 16일 호도협(虎跳峽)을 내려서서

생각보다 일찍 잠에서 깼다. 고산의 아침은 상쾌했고, 설산에서 부는 바람소리는 미처 털어내지 못한 잠을 단숨에 씻어냈다. 어제 저녁에 먹었던 닭죽을 아침까지 이어서 먹었다. 빵과 계란이 곁들여지고 수유차도 함께 나왔다.

오전 9시 30분경, 하룻밤을 묵었던 '차마객잔'을 떠난다. 벽에 그려진 동파문자의 간판이 재미있다. 위롱쉐샨(玉龍雪山) 위로 아침 해가 솟는다. 냉기를 걷어내며 황금빛으로 물드는 설산의 풍경이 장엄하다. 하룻밤 지나가는 여행자에게 객잔의 여주인이 귤을 한 봉지 싸 준다. 수천 년 전부터 이어온 여행자들과의 만남과 헤어짐이다. 언제 다시 만나게 되리란 기대가 가능할까. 어쩌면 다시는 못 만날지도 모를 여행자들에 대한 작별 인사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오래도록 손을 흔든다. 양을 몰고 가는 촌로에게도 손을 흔든다.

호도협
▲ 나시족 촌로 호도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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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려가는 길은 가파르고 좁았지만 그래도 힘은 덜 들어서 좋았다.

오전 10시 50분, '하프 웨이(Half Way) 객잔'에 다다랐다. 주로 서양 여행자들이 머무는 게스트하우스이다. '차마객잔'은 우리네 한옥과 비슷한 기와를 덮은 맞배지붕이라, 설산 위로 떠오르는 별을 누워서 바라볼 수 없는 게 아쉬웠는데 이곳에는 지붕형의 테라스가 좋았다. 탁자가 놓여 있어 차를 마시고, 그네 의자에 깊숙이 몸을 뉘고 설산을 바라보는 것도 즐거웠다.

객잔은 한창 공사를 벌이고 있었는데, 여행자들이 늘면서 방을 늘리는 듯했다. 이곳의 화장실은 입구에 '天下第一厠'이라고 쓰여 있는데, 가파른 경사지에 매달린 화장실은 앞이 툭 트여 있어 설산을 마주하고 볼일을 보게 만들어 놓았다. 예전에 팔당댐 부근의 '디디'라는 카페의 화장실이 그렇게 앞이 반쯤 트여 있었는데 이곳은 아예 앞 벽이 통째로 없으니 더 호쾌하다고나 할까.

호도협
▲ 나시족 청년 호도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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객잔을 떠나 첫 구비를 돌아가니, 나뭇짐을 지고 오는 이와 마주쳤다. 갈비를 한 짐 짊어진 청년은 웃음을 띠며 가파르고 좁은 길을 비켜 주었다. 어제보다 완만하긴 하지만 군데군데 좁게 이어진 길은 도중에 작은 폭포와도 만났다. 낭떠러지에서 쏟아지는 물줄기를 지나며, 우기에는 참 위험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낙석도 위험스럽지만 한껏 불어난 물을 머리에 뒤쓰며 좁은 절벽 길을 지나는 것은 위험천만한 일이다. 안내자의 말로는 독일의 여행자가 호도협(虎跳峽)에서 떨어져 하반신을 못 쓰게 되었는데, 그이가 휠체어를 타고 다시 자신이 떨어진 곳을 둘러보러 찾아왔다는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길도 험하지만 사람도 참 끈질기다는 생각이 들었다.

호도협
▲ 양떼 호도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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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자 비슷한 건물이 있는 곳을 지나 가파른 길이 나타났다. 일명 '깔딱 고개'라고 한다. 숨이 턱에 찰 무렵 고개를 넘어선다. 양들이 벼랑에 매달려 풀을 뜯고 있다. 고갯마루에 앉아 주머니에 있던 초콜릿을 꺼내드니, 양들이 몰려온다. 내 손에 쥐어진 초콜릿을 간절히 바라보기에 한 조각 내밀자, 아예 포장지째 집어 삼키려 한다. 행여 비닐 종이가 뱃속에 들어가 탈이라도 날까 봐 뺏어 보려 하지만 막무가내이다. 어느 결에 낌새를 눈치 챈 양들이 여기저기서 비죽비죽 머리를 내밀고 다가온다. 절벽 끝에 앉아 귤을 먹고 있던 여자분들에게도 거칠게 달려들었다. 자칫 머리로 툭 밀면 까마득한 절벽 아래로 굴러 떨어질 일이다. 이곳을 지나는 여행자들은 양들을 주의하기 바란다.

내려오는 길
▲ 호도협 내려오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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깔딱 고개를 지나면서 길은 황량한 비탈길로 이어진다. 시원하게 열린 길에는 설산에서 내려온 물들이 긴 수로를 따라 소리 내어 흐른다. 까마득이 내려다보이던 길들과 마을이 점점 가까워온다.

로우패스로 돌아오다

호도협
▲ 티나 하우스 호도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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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 1시경, 대절차량이 기다리고 있는 '티나 하우스'에 도착했다. 중도협으로 이어지는 길목에 자리 잡은 티나 하우스에서 따쥬로 이어지는 길과, 우리가 지나온 치아토우(橋頭)로 되돌아가는 로우패스(low path)이다. 이틀간 지나온 트레킹 코스는 진사지앙(金沙江)을 내려다보며 해발 1800미터에서 2800미터에 이르는 하바설산(哈巴雪山)의 높은 길이다. '하이 패스'로 통칭되는 차마고도의 이 옛길은 중국 당국에 의해 폐쇄되었다가 근래에 열린 길이다. 티나 하우스에서 바로 손에 잡힐 듯한 위롱쉐샨(玉龍雪山)에는 지금은 폐쇄된 중턱의 차마고도 옛길이 손톱자국처럼 그어져 있고, 물길 가까이 난 길에는 자동차들이 오가고 있었다.

티나 하우스에서 느긋한 점심 식사를 하게 되었다. 둘둘 말아 놓은 죽간 비슷한 식단표에는 무슨 '면(麵)'이라는 것이 있어서 우리네 국수인 줄 알고 주문했더니 국물 없는 국수가 나왔다. 우리가 생각하는 국수는 '미센'에 가깝다고 한다. 

호도협
▲ 중도협 호도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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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나 하우스에서는 위롱쉐샨(玉龍雪山) 아래쪽의 계곡과 '중도협' 을 조망할 수 있는 경점으로 내려가는 계단이 놓여 있었다. 입장료가 10위안인데, 오르내리는 계단이 부담스러워 근처를 산책하기로 했다. 다리에서 내려다보는 계곡은 웅장하고 아득했다. 다리 건너편에는 'Bridge Cafe'라는 예쁜 까페가 있었는데 문이 잠겨 있었다.

오후 2시경, 대절 버스를 타고 로우패스를 따라 호도협(虎跳峽)을 거슬러 갔다. 설산의 높은 길이 부담스럽거나 일정에 여유가 없는 여행자들은 로우 패스를 차로 둘러보기도 한단다. 혹은 이곳에서 하이패스로 올라가 거꾸로 치아토우(橋頭)로 향하는 트레킹 코스도 하는데, 가장 힘든 28밴드의 가파른 길을 내려가게 되니 체력의 부담을 덜 수 있다고 한다.

로우 패스의 도로는 군데군데 낙석이 쏟아져 있거나, 울퉁불퉁 패여 있었다. 창밖으로는 계곡을 흐르는 거친 물이 내려다 보였다. 낭떠러지를 끼고 달리는 바람에 차창 쪽에 앉은 이들은 상당한 두려움을 느끼는 듯했다. 하이패스의 낭떠러지를 말 위에서 내려다보던 것보다 더 아찔하다고 했다. 사진을 찍기 위해 차창 쪽으로 다가가니 차가 기운다고 만류할 정도였다. 고소의 두려움도 개인차가 심하다는 걸 알게 되었다.

 음악 소리 시끄러운 리지앙으로

이틀에 걸쳐 걸어간 길을 차는 순식간에 되짚어 왔다. 아쉬워 자꾸 돌아보는 설산의 풍경이 멀어진다. 무심히 내달리던 차가 '장강제일만(長江第一灣)'이라는 곳에서 걸음을 멈춘다. 장강이 석고(石鼓)에 이르러 절벽에 부딪치며 큰 여울을 이루는 곳이다. 여행자들을 기다리는 좌판들이 별로 흥이 나지 않는다. 이곳을 둘러보는 데에도 돈을 내야 한단다. 흐르는 강을 바라보는 데에도 돈을 내라는 상술에 정나미가 떨어져 그냥 지나치기로 했다.

가는 길에 정각사(正覺寺)라는 사찰에 들렀다. 아직 조경 공사 중인 사찰은 입장료를 받지 않았다. 그곳에서 아까 보지 못했던 장강제일만의 원경을 볼 수 있었다. 거저 바라보는 경치라 그런지 더 아름답게 느껴졌다. 음악소리 요란한 리지앙(麗江)으로 돌아오다

숙소의 순간온수기가 제대로 작동되지 않아 저녁식사부터 먼저 하기로 했다. 사방가 부근의 중국 식당에 들어갔다. 안내자의 추천으로 돼지고기 요리를 시켰으나 잉어 구이가 등장했다. 술도 두 번이나 다른 것으로 가져왔다. 가게에서 사다 먹기로 했다. 식당에서 30위안짜리 술이 가게에서 8위안이었다. 싸긴 하지만 중국에선 가짜 술이 기승을 부리니 가능한 믿을 수 있는 곳에서 사야 한단다. 

호도협
▲ 차마객잔의 추억 호도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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객잔으로 돌아와서도 호도협(虎跳峽)의 여정이 아쉬워 밤늦도록 술자리가 이어졌다. 리지앙의 명물인 야생호도와 야크육포 안주가 별났다. 리지앙은 야생호도의 원산지로 알려져 있다고 한다. 야크 육포는 야크 고기를 매운 양념에 무쳐 마치 우리네 오징어채처럼 가늘게 찢어낸 것이다. 육포라기보다는 양념무침이라는 것에 가까울 정도로 수분이 많았다.

잠자리에 누워서도 아직 호도협(虎跳峽)의 물소리가 귀에 와 닿는 기분에 쉽게 잠이 들지 못했다. 밤 늦도록 고성에선 음악 소리가 가뜩이나 뒤척이는 잠을 설치게 했다. 설산에서 울며 지나던 바람소리가 벌써부터 그리워진다.


태그:#호도협, #리지앙, #운남, #윈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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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동면 광대울에서, 텃밭을 일구며 틈이 나면 책을 읽고 글을 씁니다. http://sigoo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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